≪정태건의 오예≫
오늘, 주목할 만한 예능
'개승자' 개그맨들의 작심발언
"KBS, 왜 10년간 변한 게 없나"
오늘, 주목할 만한 예능
'개승자' 개그맨들의 작심발언
"KBS, 왜 10년간 변한 게 없나"
≪정태건의 오예≫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걸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가 돼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
"개그 심의 좀 풀어달라."
KBS2 새 코미디 프로그램 '개승자'로 돌아온 개그맨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개그콘서트'가 폐지된 지 1년 5개월 만에 극적으로 복귀했음에도 작심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저격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건 개그맨 김준호와 변기수였다. 지난 13일 '개승자' 첫 방송이 나가기 전 김준호는 'TV비평 시청자데스크'에 출연해 엄격한 개그 심의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개승자' 제작진도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김준호, 변기수 방송불가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해 이러한 의견을 전했다.
해당 영상에서 김원효는 코미디가 정체돼 있다는 의견에 대해 "제약이 너무 많다. 그러니까 조심스러워지고 스스로 위축되고 예전만큼 못 살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변기수는 "저희에게 조금만 자유를 달라"며 "어느 정도까지는 풀어달라"고 촉구했다.
김준호도 "KBS가 (다른 곳보다) 더 빡빡하다"며 "요즘은 개그를 다 비하로 본다. 우린 그럴 의도가 없다. 방통위를 찾아가서 정중하게 얘기하든지 1인 피켓시위라도 하겠다"고 거들었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의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일각에서는 "심의를 탓하지 말고 개그맨들의 인식을 개선하라"고 반박했다. 변기수가 "못생긴 역할한테는 '못생겼다'고 직설적으로 1차원적인 개그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난리가 난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남을 깎아내리는 1차원적인 개그는 더 이상 웃기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해당 발언을 '변기수가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를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그가 요구한 건 개그 소재의 다양성이다. 케이블 채널은 물론 넷플릭스, 유튜브 등에서는 비교적 높은 수위의 콘텐츠도 허용되는 분위기 속에서 현재 KBS 심의 기준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변기수는 지난 20일 방송된 '개승자' 2회에서 이러한 내용을 직접 개그로 승화했다. 이날 '힙쟁이' 코너를 선보인 그는 KBS의 엄격한 심위 기준을 비꼬는 풍자 개그를 선보였다.
그는 랩을 하던 중 '오레오' 과자 이름을 언급하려 했지만, 당황한 상대방이 "KBS에서는 상표 얘기하면 안 된다"며 뜯어 말렸다. 이에 변기수는 "왜 아직까지 안 돼. 내가 KBS 떠난지 10년이나 됐는데 정체돼 있다. 바뀐 게 하나도 없다"며 "저쪽 상암동을 봐라. 다 한다. 걔네는 되고 우리는 왜 안 되냐"고 되물었다.
여기서 '상암동'은 CJ ENM 사옥이 위치한 곳으로, tvN '코미디빅리그'를 지칭한 것이다. '코미디 빅리그'에서는 허용되는 개그가 KBS에선 규제 대상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꼬집은 셈이다.
결국 변기수는 '오레'까지만 말하고 관객에게 마지막 단어 '오'를 말하도록 유도했다. 결과적으로 '오레오'라는 단어가 완성됐지만 이렇게 하면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심의 규정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그는 방통위를 향해 속시원한 한 방을 날리면서도 어떤 누구도 깍아내리지 않은 자신만의 개그를 보여줬다.
코미디언들의 외침에는 '다양한 개그 소재를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달라'는 의도가 담겨있다.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이 문을 닫았을 때 넷플릭스는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이수근의 눈치코치'등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선보였다. 소재의 제약을 받지 않는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마련이다. 개그맨들은 최소한 이들과 비슷한 출발선에서 경쟁하고 싶다는 내비친 것이다.
최근 수년간 개그맨들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온라인에서는 '개콘이 망한 이유'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현실이 코미디 무대보다 더 재밌다는 의미인데, 이곳에 몸담은 개그맨들과 한때 코미디 왕국으로 군림한 KBS 입장에선 굴욕적인 비유다.
코미디언이 시대의 흐름을 좇아가지 못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새로운 것보다 안전할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스템과 환경 속에 놓여있었다는 것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개그콘서트'라는 무대가 막을 내리고 새롭게 짜여진 판에서는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싶은 개그맨들의 절규가 나온 것이다.
한계를 극복하고 시대에 발 맞추는 것도 개그맨이 가져야 할 자질이다. 식당 주인이 손님들의 달라진 입맛을 탓할 수 있는가. 하지만 최소한의 경쟁이 가능하도록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재고가 뒷받침돼야 코미디의 부활도 가능하다.
실제로 '개승자'의 일부 코너는 과거 '개그콘서트' 전성기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김민경, 김원효, 이수근 등 일부 개그맨은 짜임새 있는 구성과 능청스러운 연기로 웃음을 자아냈다. 이처럼 코미디언들이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는 게 방통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지름길이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걸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가 돼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
"개그 심의 좀 풀어달라."
KBS2 새 코미디 프로그램 '개승자'로 돌아온 개그맨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개그콘서트'가 폐지된 지 1년 5개월 만에 극적으로 복귀했음에도 작심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저격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건 개그맨 김준호와 변기수였다. 지난 13일 '개승자' 첫 방송이 나가기 전 김준호는 'TV비평 시청자데스크'에 출연해 엄격한 개그 심의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개승자' 제작진도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김준호, 변기수 방송불가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해 이러한 의견을 전했다.
해당 영상에서 김원효는 코미디가 정체돼 있다는 의견에 대해 "제약이 너무 많다. 그러니까 조심스러워지고 스스로 위축되고 예전만큼 못 살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변기수는 "저희에게 조금만 자유를 달라"며 "어느 정도까지는 풀어달라"고 촉구했다.
김준호도 "KBS가 (다른 곳보다) 더 빡빡하다"며 "요즘은 개그를 다 비하로 본다. 우린 그럴 의도가 없다. 방통위를 찾아가서 정중하게 얘기하든지 1인 피켓시위라도 하겠다"고 거들었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의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일각에서는 "심의를 탓하지 말고 개그맨들의 인식을 개선하라"고 반박했다. 변기수가 "못생긴 역할한테는 '못생겼다'고 직설적으로 1차원적인 개그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난리가 난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남을 깎아내리는 1차원적인 개그는 더 이상 웃기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해당 발언을 '변기수가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를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그가 요구한 건 개그 소재의 다양성이다. 케이블 채널은 물론 넷플릭스, 유튜브 등에서는 비교적 높은 수위의 콘텐츠도 허용되는 분위기 속에서 현재 KBS 심의 기준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변기수는 지난 20일 방송된 '개승자' 2회에서 이러한 내용을 직접 개그로 승화했다. 이날 '힙쟁이' 코너를 선보인 그는 KBS의 엄격한 심위 기준을 비꼬는 풍자 개그를 선보였다.
그는 랩을 하던 중 '오레오' 과자 이름을 언급하려 했지만, 당황한 상대방이 "KBS에서는 상표 얘기하면 안 된다"며 뜯어 말렸다. 이에 변기수는 "왜 아직까지 안 돼. 내가 KBS 떠난지 10년이나 됐는데 정체돼 있다. 바뀐 게 하나도 없다"며 "저쪽 상암동을 봐라. 다 한다. 걔네는 되고 우리는 왜 안 되냐"고 되물었다.
여기서 '상암동'은 CJ ENM 사옥이 위치한 곳으로, tvN '코미디빅리그'를 지칭한 것이다. '코미디 빅리그'에서는 허용되는 개그가 KBS에선 규제 대상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꼬집은 셈이다.
결국 변기수는 '오레'까지만 말하고 관객에게 마지막 단어 '오'를 말하도록 유도했다. 결과적으로 '오레오'라는 단어가 완성됐지만 이렇게 하면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심의 규정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그는 방통위를 향해 속시원한 한 방을 날리면서도 어떤 누구도 깍아내리지 않은 자신만의 개그를 보여줬다.
코미디언들의 외침에는 '다양한 개그 소재를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달라'는 의도가 담겨있다.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이 문을 닫았을 때 넷플릭스는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이수근의 눈치코치'등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선보였다. 소재의 제약을 받지 않는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마련이다. 개그맨들은 최소한 이들과 비슷한 출발선에서 경쟁하고 싶다는 내비친 것이다.
최근 수년간 개그맨들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온라인에서는 '개콘이 망한 이유'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현실이 코미디 무대보다 더 재밌다는 의미인데, 이곳에 몸담은 개그맨들과 한때 코미디 왕국으로 군림한 KBS 입장에선 굴욕적인 비유다.
코미디언이 시대의 흐름을 좇아가지 못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새로운 것보다 안전할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스템과 환경 속에 놓여있었다는 것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개그콘서트'라는 무대가 막을 내리고 새롭게 짜여진 판에서는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싶은 개그맨들의 절규가 나온 것이다.
한계를 극복하고 시대에 발 맞추는 것도 개그맨이 가져야 할 자질이다. 식당 주인이 손님들의 달라진 입맛을 탓할 수 있는가. 하지만 최소한의 경쟁이 가능하도록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재고가 뒷받침돼야 코미디의 부활도 가능하다.
실제로 '개승자'의 일부 코너는 과거 '개그콘서트' 전성기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김민경, 김원효, 이수근 등 일부 개그맨은 짜임새 있는 구성과 능청스러운 연기로 웃음을 자아냈다. 이처럼 코미디언들이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는 게 방통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지름길이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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