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신기생뎐>, 우리는 몰염치한 작가의 드라마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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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에게 SBS 의 작가 임성한은 탄생의 기원을 알 수 없는 괴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서는 젊은 작가가 중견 배우의 뺨을 때리고 (MBC ), 한 여자가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 웃다 죽으며(SBS ), 부모를 위해 다 큰 자식들이 앙드레김 코스프레를 하고 재롱을 떠는 모습이 한 회의 방송분량 대부분을 차지(MBC ) 한다. 에서는 기어이 아수라(임혁)가 할머니, 장군 귀신 등으로 빙의돼 논란을 일으켰다. 과거 MBC 에도 신내림을 받은 여주인공이 등장했지만, 무속이 소재의 중심이었던 작품과 갑작스런 빙의로 스토리를 황당하게 끌고 가는 드라마가 주는 충격은 다르다. 임성한 이후 많은 ‘막장 드라마’ 작가들이 나타났지만, 그처럼 리얼리티나 개연성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드라마의 범위를 보다 넓히면 임성한은 고전적인 이야기의 계승자일지도 모른다. 바로 KBS 이다. 배경만 조선시대로 바꾼다면 의 스토리는 의 한 에피소드로 쓰일 법하다. 여주인공은 어머니를 잃었고, 새 어머니는 탐욕스러우며,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된다. 그녀와 친모의 운명을 알고 있는 도인이나 빙의 등도 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전개다. 에서 환각을 핑계로 쥐 떼가 몰려 다니거나, 꿈이나 상상을 핑계로 등장인물들을 왕자와 공주로 만들기도 했던 임성한은 에서 드디어 상상으로만 펼치던 이야기들을 현실로 옮긴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21세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설정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도 없이 귀신을 등장시키는 것은 작가적 고집이 아니라 작가적 독단, 또는 작가적 광신일 뿐인 것은 분명하다.

식으로 구현한 작가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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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한이 왜 굳이 21세기를 배경으로 같은 이야기를 쓰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이야기가 가져오는 효과는 확실하다. 은 등의 이야기 구조에 익숙한 중장년층 시청자들에게는 몇 가지 지나친 설정을 제외하면 매우 익숙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바랄 법한 세상을 보여준다. 딸은 부잣집 남자와 결혼하고, 시부모와 늘 담소를 나누거나 노래방 기계로 함께 노래를 부르며 세대차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 온갖 음식 하는 법을 알려주거나, “늙어서 중풍에 걸릴 수 있으니 뇌 검사를 받으라”는 식으로 건강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운다. 20-30대가 주로 보는 트렌디 드라마가 SBS 의 김주원(현빈) 등을 통해 주 시청자층이 사는 현실과 그들이 원하는 판타지를 섞는다면, 은 아수라나 그의 아내쯤 되는 연령대의 시청자들의 현실과 판타지를 뒤섞는다. 다만, 다른 작품들이 현대 드라마의 작법 안에서 판타지를 구현시키는 것과 달리, 임성한은 이나 에서 나올 법한 방식으로 판타지를 구현했고, 논란을 일으켰다.

아수라의 빙의는 이런 임성한의 이상한 이야기 방식에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 에서 아다모(성훈)의 아버지 아수라는 악역은 아니지만, 주인공 단사란(임수향)과 아들의 결혼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또한 그는 집안의 경제력을 쥔 상태에서 폭군처럼 행동하는 가부장이었다. 아수라의 빙의는 그의 가부장적인 권위를 흔든다. 아수라가 할머니에 빙의한 뒤 여성적으로 행동하고, 장군에게 빙의된 뒤 정 반대로 굉장히 남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흥미롭다. 가부장은 스스로 남성다움을 포기하거나, 과장하면서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에서 악인이 천벌을 받았다면, 임성한은 빙의를 통해 가부장의 위치를 흔든다.

가부장제에 완벽히 순응한 여자들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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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수라의 빙의는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가부장제 안으로 편입되려는 여성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기생이었던 단사란은 아수라의 반대로 그의 가정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단사란은 아다모와 결혼 후 아수라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면서 점수를 따고, 아다모와의 아이를 가지면서 인정을 받는다. 단사란은 아수라의 빙의 사실을 눈치 챈 뒤 해결 방법을 생각하며 아수라의 가족에게 영향력을 넓히기도 한다. 은 결국 기생이었던 여성이 어떻게 공고한 가부장제 가정에 들어가 입지를 다지느냐의 이야기다. 트렌디 드라마가 여성의 세속적인 욕망을 일과 사랑의 결합으로 푼다면, 은 그 욕망을 부유한 가부장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해결한다.

욕망 해결의 방식에 대해 어느 것을 옳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에서 여성의 세속적 욕망은 가부장제에 완벽하게 순응할 때 가능하다. 단사란은 아이를 가진 뒤 아수라에게 인정받았고, 단사란의 친모 한순덕(김혜선)은 단사란의 친부 금어산(한진희)과 결국 한 가정을 이룬다. 반면 아이를 낳지 못한 장주희(이종남)는 금어산과 헤어져 단사란이 기생으로 일하던 부용각을 운영한다. 부용각에 있던 단사란과 한순덕은 아이를 바탕으로 가부장제에 들어가고, 아이가 없는 여자는 기생이 된다.

우리는 몰염치한 작가의 드라마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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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선택 이전에 핏줄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그리고 나는 그 좋은 핏줄의 주인이다. 은 과 여기서 갈라진다. 의 이야기 중 많은 것이 권선징악, 또는 사필귀정으로 귀결되는 것은 그 이야기들이 근본적으로 약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배신당해 결국 인간이 되지 못하는 ‘구미호’는 타자, 특히 공동체 바깥에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배척이 낳은 비극에 대한 은유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을 쓰는 임성한은 사회적 약자에 있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되, 그 약자가 강자의 세계에 완벽하게 편입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그 욕망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또 다른 여성을 희생자로 만든다. 현재는 기생이지만, 원래는 부유한 남자의 딸이었다는 전설. 반대로 아이 없는 여자는 결국 가정을 갖지 못한다는 저주.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자 단사란이 은근히 기생이 될 것을 바라던 새 어머니가 단사란은 물론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 친딸 덕에 행복하게 사는 것은 임성한의 세계에서는 ‘상식적인’ 결론일 것이다. 임성한의 드라마는 그런 여자의 욕망을, 또는 우리들이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을 그 불온한 욕망을 실현시켜준다.

을 즐겨보던 시절, 우리는 드라마에서나마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이 이뤄지길 바랐다. 하지만 은 오직 개인의 욕망을 해소하는데만 집중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핏줄과 가부장제의 이름으로 정당화 시킨다. 나는 원래 가져야할 것을 가졌다는 욕망. 나의 현재는 원래 다른 누군가가 대체했어야 한다는 이기심. 그래서 의 빙의에 관한 논란에서 따져야할 것은 빙의 그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건 빙의가 가리키는 것이다. 빙의에 관한 논란에 가려, 우리는 지금 더 어이없고 끔찍한 문제에 대한 논의조차 못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지금 이상한 작가이기 이전에 몰염치한 작가의 드라마를 보고 있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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