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2010, 2011년 사이에서 <월간 윤종신>을 통해 조금씩 나오던 어떤 색깔이 이젠 당신만의 음악으로 자리 잡은 건가.
윤종신: 윤종신 류의 포크곡이 하나 내세울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없던 거라는 거다. (웃음) 발라드도 아니고 옛날 포크도 아닌, 윤종신 포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나이에 부르는 포크록인 건데, 이제는 내 색깔을 만들 수 있게 된 것 같다. 석원이 형 하는 게 좋고 희열이가 하는 게 좋아도 그건 그들 거니까. 어릴 때는 나도 그런 걸 하고 싶었는데, 미련한 생각이었다. 그건 그들 건데.

“40대가 넘으면 슬픈데 웃기기도 하고 이상하다”

윤종신│“좋아하는 음악 하면서 가족들 먹여 살릴 수 있으면 행복” -2
Q. 그래서 올해 <월간 윤종신>은 지금까지 앨범들보다 음악적으로 일관성이 더 느껴진다. 특히 1월부터 3월까지는 쭉 이어진다는 느낌도 들고.
윤종신: 5월호까지는 다 작년 가을부터 쭉 써왔던 곡들이다. 6월만 2004년에 썼고. 그래서 그 곡만 피아노 느낌이 많이 들고.



Q. 특히 상반기는 당신의 곡을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부르게 하고, 하반기에는 다른 뮤지션들의 노래를 직접 불렀다.
윤종신: 아이디어가 한 번 떠올랐을 때 한 번만 하는 건 재미없다. 작년과 재작년은 매 달 싱글은 나쁘지 않았는데 앨범으로 묶어 놓으니까 맥이 없었다. 올해는 여자가수로 쭉 가다가 7월에 내가 부르는 ‘망고 쉐이크’로 바뀌면 들을 맛이 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은 뭔가 알리기 부족하더라. 6월에 3월에 나온 곡의 매출이 가장 잘 나오기도 하고. (웃음) 음악을 가장 잘 알리려면 기획 자체가 한 달이 적당하지 않아서 기획에 콘셉트를 잡아야겠더라.



Q. 그런 기획을 통해 여성 보컬리스트들의 디렉터로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준 것도 흥미롭다. 특히 5월과 6월의 박정현과 정인은 평소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끌어냈다.
윤종신: 정현이 같은 경우는 ‘나는 가수다’ 이후에 너무 열창하는 보컬리스트의 이미지로 갔는데, 사실은이렇게 중음의 매력이 있는 보컬리스트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정현이도 이런 걸 오랜만에 해서 약간 헤맸는데 (웃음) 1시간 하고 나니까 싹 따라와주더라. 정말 영민하구나 싶었다. 색깔이 강한 가수인데 요즘 듣기 힘든 노래를 내 거에서 해줘서 고마웠다.



Q. ‘오르막길’은 길고 복잡한 멜로디의 곡인데 정인이 부르니까 처음부터 강한 호소력이 있다. 그의 보컬이 그렇게 발라드에 잘 어울릴지 몰랐다.
윤종신: 나는 정인이 팝 가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리쌍이라는 프로듀서를 만나니까 힙합 쪽 느낌이 많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프로듀서의 성격에 따라 보컬리스트가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었다. ‘오르막길’을 디렉팅할 때는 정말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것처럼, 연기하듯 시켰다. 원래 이 노래가 정인의 솔로 앨범에 들어갈 곡이어서 길이에게 줬는데, 다음에 넣는다고 해서 이전 앨범에 안 넣었다. 원래 길이가 그런 식으로 곡을 잘 모으거든. 많이 모았다가 아껴서 쪼개 쓰는 스타일이다. (웃음) 그런데 나는 원할 때 써야하니까, 다시 달라고 했다. 정인이 예상대로 정말 잘 해줬고.



Q. 전개도 복잡하고 어느 순간에는 슬프고, 어떤 순간에는 회고적이기도 하고.
윤종신: 희망적이기도 하고 되게 비관적인 노래기도 하다. 그리고 20대에는 절대 못 쓸 가사고. (웃음) 오르막길에서 언젠가 만난다는 게,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것 같다.



Q. 쉴 새 없이 바쁜데, 더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색의 여유는 더 많아진 건가.
윤종신: 여유보다는 생각하는 포인트가 많아졌다. 자식도 키우고 성공도 해야 하는데 같이 함께 일하는 크루도 많아졌다. 40대 중반이 되면서 생각해야 될 가짓수와 무게감이 더욱 많아졌다. 사실 2, 30대엔 되게 단순하다. 스스로는 되게 복잡한 걸 생각하고 있다고 하겠지만, 사실 대부분 떠야지, 인기 끌어야지, 돈 많이 벌어야지 그 정도일 거다. 그리고 헤어져서 슬프다 정도. 그런데 40대 넘으면 단순히 외롭다, 슬프다는 감정이 아니다. 슬픈데 웃기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이상하다. (웃음) 그리고 이렇게 참 할 말이 많고 쓸 곡이 많은데 대중들은 조금씩 등을 돌리는 게 슬프고.



Q. 20년 동안 쉬지 않고 뭘 하다보니까 스스로에 대해 정리가 된 걸까.
윤종신: 방향만 살짝 튼 느낌인데, 아마 이 길로 계속 갈 거다. 물론 난 이게 지루해지면 누군가와 콜라보레이션을 할 거다. 내 장점은 탄력성이니까. 싱어송라이터가 지겨우면 나 싱어야 이러고. (웃음) 내가 매료된 사람 곡은 다 받아 볼 거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는 여전히 노래를 제일 잘 한다고 생각하니까. 갈 길을 이 곳 저 곳 만들어 놨다. (웃음) 그래서 음악도 더 편하게 할 수 있고. 만약 가능하다면 앞으로는 내가 곡만 쓰고 나머지는 지 드래곤처럼 어리고 잘 하는 친구들한테 니 맘대로 해보라고도 하고 싶다.



Q. 그래선지 <월간 윤종신>도 사운드나 녹음이 굉장히 자유롭다. 전반부는 굉장히 빈티지 스타일이다. 1월의 ‘느낌 Good’은 라이브를 그대로 쓴 것처럼 거친데 굉장히 신선했고.
윤종신: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뭘 하면 빈티지스럽더라. (웃음) 내가 전체적으로 프로젝트를 관장하는 게 아니라, 무성의하게 한 게 아니면 후배들한테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한다. 스윙스하고의 작업도 내가 노래만 불러주고 아무것도 관여 안 했고. ‘느낌 Good’도 노래 중간에 ‘기타!’ 이러는데, 그렇게 마음대로 하는 게 재밌다. 사실 엔지니어는 그래미상 받고 에이미 와인하우스하고도 작업했던 스튜어트 혹스한테 맡긴 건데, 그래서 더 재밌는 결과가 나온 것 같다.



Q. 그렇게 맡기는데도 앨범 전체적으로는 윤종신만의 느낌이 있다. 후반부에 다른 뮤지션들이 만든 곡들도 그들보다 당신 느낌이 나고.
윤종신: 사실 내가 그들은 내가 관여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나한테 노래를 맡겼는데, 그러다보니까 서로 존중하면서 인위적으로 섞인 것 같다. 하림은 나 녹음할 때 오지도 않았다. (웃음) 그리고 ‘몰린’은 (이)규호랑 오랜만에 한 건데, 정말 이규호란 작곡가의 마성은 엄청나다. 희열이는 ‘몰린’이 <월간 윤종신>에서 되게 좋다고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이메일로 규호가 가이드를 해준 ‘몰린’을 듣는데, 그 여린 목소리로 들으니까 눈물이 흘렀다. 너무 고맙다. 가사도 너무 아름답고. 내 가사는 점점 좁아진다. 방에서 뭔가 하고, 디테일하고. 그런데 규호는 세상 밖으로 우주로 몰렸다 그런다. 호쾌하고 대륙적이다. (웃음) 자기 사랑을 우주에 표현하다니, 정말 멋졌다.



Q. 신치림 활동도 그런 것 같다. 당신 색깔이 신치림에 자연스럽게 섞여서 또 다른 느낌이다. 후배들과 한 팀으로 활동하는 건 어떤가.
윤종신: 내가 워낙 의지하던 친구들이고, 고마운 친구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그들이 알려졌으면 좋겠고. 그래서 <무한도전>에 출연해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친근해져서 부각되면 좋겠고. 올해 막판에 <무한도전> 때문에 신치림이 탄력을 받아서, 하림과 조정치라는 좋은 콘텐츠를 사람들한테 더 선보여줘야 한다. 반응이 폭발적인 건 아닌데 둘이 암암리에 활동하던 애들이니까 그전에 비하면 폭발적인 거다 지금은. (웃음) 그들과 같이 해서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좋겠다기 보다는 그들이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미지에 갇히지 않게 된 것 같고,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윤종신│“좋아하는 음악 하면서 가족들 먹여 살릴 수 있으면 행복” -2


Q. 열심히 생활하면서 책임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투개월도 제작하기로 했는데, 부담되지는 않나.
윤종신: 투개월은 부담 간다. 두 사람이 내게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애들하고 깨알 같이 재미있게 일할 줄 알았는데 내가 좋은 곡 쓰고 앨범 구성하는 거 말고 얘네의 생활에 뭘 해줄 수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고. 나는 방송하고 쟤네는 숙소에 있는데 무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사실 올해 투개월을 제작하게 된 건 나한테 가장 큰 변화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고, 잘해야한다는 것만 알겠고. 얘네 인생을 책임지는 거니까. 투개월한테 너무 고맙기도 하고. 여러 곳에서 손을 뻗었는데 막판에 “윤종신 선생님은 어떻게 하신대요?”라고 먼저 말해서 계약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말 성공하게 해주고 싶다.



Q. 왜 제작자가 되기로 했나.
윤종신: 예능, 노래까지는 할만 하더라. 관성이 생기니까 이 둘만 하는 건 무려하기도 하고. 딱 제작하는 것까지인 것 같다. 여기서 하나 더 하는 건 못하겠고. (김)예림이와 (도)대윤이 부모님들이 자식들 성공을 보고, 행복하도록 만들고 싶기도 하고. 속물적일 수도 있겠지만, 제작자로서 나는 얘네들이 음악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로 만들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투개월의 첫 앨범을 길이 남을 명작으로 만들어주기 보다 대박나서 나도 투개월도 돈 벌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물 불 안 가리겠다는 건 아니고 (웃음) 그 바탕에는 내가 하는 방식으로 성공시킨다는 게 있다. 멋지게 상업적인 음악을 만들고 싶다. 내가 활동하는 이 판에서 가장 큰 의미가 멋지게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그래야 판이 제대로 돌아간다. 좋아하는 음악 하면서 돈 벌고 가족들 먹여 살릴 수 있으면 행복한 것 아닌가.



Q. 가족, 신치림, <월간 윤종신>, 그리고 투개월까지 책임지다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달라지지 않나.
윤종신: 내 주변에 생기는 수많은 일들의 역학관계가 너무 많다. 예능만 봐도 내 멘트 하나에 피해보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멘트든 일이든 나 하고 싶은 대로 막 벌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어떤 이야기는 내가 가족들한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거고, ‘라디오 스타’는 거친 말이 어느 정도는 허용되는 토크쇼인데도 선을 넘었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말 한 마디의 파급력도 적지 않고. 그리고 곧 50, 60이라는 건 정말 두렵고. 충분히 뭘 할 수 있는 나이지만 그 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지니까. 만개할 시기는 이미 지난 것 같고, 조금씩 잘 져가는 걸 준비해야 되는 나이다. 또 다른 인생을 피우게 될 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 거다.



Q. 그런 생각들이 하나로 모여서 올해 윤종신이란 사람으로 모인 것 같다. <월간 윤종신>이든 신치림이든 다 윤종신 같다.
윤종신: 남들이 윤종신이란 사람을 생각하는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나를 드러낼 수도 있다. 이미지에 갇히지 않게 된 것 같고,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발라드 가수 이미지에 좀 갇혀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게 잘 안 된 적도 있었고 (웃음) 그러면서 많은 것을 버릴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감히 <월간 윤종신>중 올해 앨범이 가장 명반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번 앨범은 되게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Q. 당신 스스로 2012년을 결산한다면.
윤종신: 그 전까지 하던 것들이 관성으로 잘 갔는데,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툭툭 방향을 틀다 여러 일들이 생겼었다. 더 역동적이기도 하고 뒤틀리기도 했고. 한 방향으로 나사가 제대로 돌아간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들어와서 이물질도 끼고, 그 이물질이 다시 내 것으로 흡수되기도 하고. 더 뻗어나가면서 뒤틀린 것 같다. 그래서 내년 내후년은 좀 더 방향을 잡고 갈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내년에는 창작은 좀 쉴 생각이다. <월간 윤종신>을 ‘뉴 페어’란 콘셉트로 갈 생각이다. 내가 불렀던 노래를 다른 뮤지션이 부르고, 나도 한 곡씩 부르는 거다. 1월은 성시경이 하게 됐다. 지금 내 마음 속의 올스타들로 싱어들을 뽑고 있는데, 장난 아니다. (웃음) 아마도 내가 가수로서 노래를 열심히 하는 것은 내년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적게 부르게 되지 않을까. 내년에 정말 열심히 부를 거다.



의상협찬. 권오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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