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약이라고들 합니다. 세월이 가면 병은 낫고, 열매는 익고, 사람은 성숙해지는 거라고들 하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처음 만났을 때의 얼굴을 그대로 간직합니다. 젖살 통통하던 볼이 홀쭉해진 것만 빼면, 피오나 애플은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입니다. 데뷔이후 벌써 15년, 지난 앨범으로부터도 벌써 7년이 흘렀지만 오래간만에 만나는 그녀는 여전히 위태롭고 불안하고 그래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음표의 타래를 풀어내듯, 그녀의 목소리는 거침없이 강약과 고저를 넘나들지만 그 흐름은 결코 누군가의 자장가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긴장과 한숨, 신경질과 걱정은 함정처럼 그녀의 노래에 도사리고 있고, 덕분에 피오나 애플의 음악에는 여전히 위협적인 여울목들이 넘쳐나고 있지요.

그래서 그녀는 아직도 불편한 사람입니다. 직접 그렸다는 앨범의 아트웍이나 외우기는커녕 읽어내기도 어려운 < The Idler Wheel Is Wiser Than The Driver Of The Screw And Whipping Cords Will Serve You More Than Ropes Will Ever Do >라는 앨범의 제목은 그 불편함에 대한 피오나 애플의 노골적인 선언이고요. 게다가 머리위에 올려놓은 큰 문어로 고집스러운 열패감의 이미지를 단박에 드러내는 ‘Every Single Night’는 안락함이나 달콤함과는 도무지 화해할 수 없는 그녀의 귀환을 알리는 첫번째 싱글로 더할 나위 없습니다. 조금 덜 사납고, 조금 더 뭉근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입속에 남은 생각조각처럼, 피오나 애플은 아직도 전혀 다정해질 생각이 없습니다. 그녀는 건강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이 반드시 둥글게 세상의 기준에 맞춰지는 과정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증명입니다. 끝없는 사춘기처럼 보일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평생을 뜨겁게 살아간다면, 그건 열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온도인 거죠.

글. 윤고모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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