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석 : 잘 생겼다. 늙지도 않는다. 김병욱의 시트콤과 홍상수의 영화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 20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연극과 대학 교수를 병행하고 있다. 야구도 꽤 잘한다. 미국에는 키아누 리브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중견배우’ 정보석이 있다. 그가 50년 뒤 쯤에 최고의 연기를 보여줘도 놀라지 말자. 그는 지금 한창 연기에 재미가 붙은 뱀파이어일지도 모르니까.
정보석
정보석
손창민 : 정보석과 MBC 에 함께 출연한 배우.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보석은 MBC 창사특집극 의 주연에 캐스팅됐지만, 연기를 너무 못해 하차 당했다. 정보석은 대학시절 연출을 전공, 졸업 직전에야 연기를 시작해 대학에서도 선배와 교수들에게 “다신 연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정보석은 에서 물러난 뒤 연출자에게 “작은 역이라도 달라”고 해 단역을 연기했고, KBS 에서 사도세자를 연기하려고 그의 묘 주변에서 잠을 자는 등의 노력으로 점차 연기력이 늘었다. 그리고 1990년, 곽지균 감독은 “그런 아픔이 있었으니 오히려 잘할 수 있다”며 그를 영화 에 캐스팅했다.

김혜수 : KBS 과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은 정보석을 스타덤에 올린 작품으로, 이 작품에서 그는 원래 노비의 자식이었지만 신분이 뒤바뀐 남자를 연기했다. 악역이지만 늘 정체가 폭로될까 두려워 불안에 시달리고, 출생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그의 캐릭터는 당시 보기 힘든 ‘섬세하고 불안한 영혼의 남자’였다. 이런 그의 캐릭터는 의 사도세자 등으로 이어지며 그만의 위치를 갖게 한다.

이유진 : 방송인 겸 연기자. SBS 시트콤 에 정보석과 함께 출연했다. 정보석은 이 작품에서 이전과 달리 어설프고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는 교사를 연기, 화제를 모았다. 정보석의 선택은 스스로 “좋아해주던 분들이 슬슬 싫어하더라”고 할 만큼 모험이었지만, “미혼과 유부남 어느 쪽도 연기하기 어색한 시기”를 겪으며 정체된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던 그에게는 필요했던 선택이었다. 당시 그는 아내에게 “내가 지금 어떻게 연기하는지 안 보여? 얼마나 힘든 지 그걸 꼭 말로 해야 알겠어?”라고 말 할 만큼 힘들었다고. 실제로 정보석은 과 똑똑하지만 비열한 상인역으로 출연한 MBC , 과 홈드라마 SBS 등 비슷한 시기에 다양한 캐릭터를 쉴 틈 없이 연기한다. 정보석은 이에 대해 “휴식을 취할 만큼 이룬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마조마 : 정보석이 소속된 연예인 야구팀. 정보석은 이 팀의 최고령 투수이자 에이스다. 정보석은 어린 시절 야구를 했지만,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MBC 에 나오는 그의 이야기는 그의 경험에 바탕을 둔 셈. 또한 그는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열성 팬으로, 이 팀의 손시헌과 이종욱의 이름을 딴 ‘시종회’를 만들어 두 사람이 안타를 칠 때마다 5천원을 불우이웃 성금으로 낸다. 또한 정보석은 부상 뒤 병원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다 연기에 흥미를 느꼈고, 이 때문인지 배우를 “누군가의 글을 해석해서 보는 사람에게 잘 전달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홍상수 : 정보석이 출연한 영화 의 감독. 당시 “나는 이야기만 전달해주는 도구가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던 정보석은 홍상수가 “매너 좋고 착한 이미지의 남자”를 찾자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그는 에서 ‘매너 좋고 착한 남자’의 얼굴로 속물적인 행동을 일삼는 남자를 연기,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KBS 출연 당시 “난 지금도 주변에 내 연기에 대해 묻는다. 자신 있으면 왜 이런 과정이 필요하겠는가”라고 말할 만큼 자의식 보다는 작품 속 캐릭터를 충실하게 파고들던 그는 등을 통해 작품 해석의 깊이를 더했고, 나이 들면서 무거운 이미지의 ‘선생님’이 되는 대신 갈수록 자유로운 행보를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작품이 좋다면 하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작품에 참여해보려고 한다”면서 독립영화 에 무보수로 출연했다.

기민정 : 정보석의 아내. 정보석은 한창 인기를 얻던 시절 “여자친구가 있다”고 공개해 화제를 모은 뒤 1989년 기민정과 결혼했다. 정보석은 “배우는 배우, 내 생활은 내 생활”이라고 생각해 이런 결정이 이상할 게 없었다고. 정보석은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배들 앞에서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말하던 기민정의 모습에 반해 8개월을 쫓아다녀 교제를 허락 받았다. 이 때문인지 정보석은 스스로 “자상한 남편 축에 든다”고 말할 만큼 가정적이고, “습관적으로 살면 이혼한다”고 말할 정도로 아내와의 애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내가 새 집을 짓는 데에만 열중했을 때에는 “왜 나하고 안 놀아주느냐”며 화를 냈을 정도. 그의 아내는 정보석이 출연 이후 ‘쥬얼리 정’이라는 별명을 얻자 새 집에 ‘쥬얼리 하우스’라는 명패를 달았다.

임성한 : 드라마 작가. 정보석은 MBC 의 인연으로 MBC 에도 출연했다. 당시 정보석은 실제 나이보다 한참 적은 나이의 미혼 캐릭터를 연기해 화제를 모았는데, 그는 “고맙게도 부모님이 얼굴을 동안으로 만들어 주신 덕분”이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배우가 역할을 맡는데 부담감이 있다”는 이유로 배우의 나이가 밝혀지지 않는 게 낫다는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정보석이 에 출연한 건 배역 때문이 아니라 임성한 작가와의 인연 때문으로, 그는 데뷔 시절 임충 작가와 , 를, 최근에는 정하연 작가와 KBS , MBC , EBS , MBC 을 함께 하는 등 인연을 맺은 사람의 다른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그는 평이한 홈드라마부터 작가주의적인 성향의 작품까지 하나로 설명이 불가능한 필모그래피를 가졌다. ‘배우’의 아우라와 ‘생활 연기자’의 근면함을 동시에 가졌는데, 심지어 미남이기까지 한 배우.

정하연 : 정보석과 여러 작품을 함께 한 작가. 특히 의 공민왕은 정보석의 작품 중 자타공인 최고의 캐릭터로, 그는 출연 전부터 “반드시 하고 싶은 왕이 있다. 그 역은 내가 무릎 꿇고 빌면서 부탁할 거다”라고 말했을 만큼 공민왕을 사랑했다. 정보석은 공민왕을 천재적인 지략가이자 부모에게 버려진 불행한 아들, 그림을 잘 그리는 예술가, 노국 공주만을 사랑했던 한 남자 등 다층적인 인간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정보석의 공민왕은 확신과 불안, 감성과 이성이 뒤섞인 인물이었고, 사극의 전형적인 왕이 아닌 “시기하고 질투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왕이었다. 을 통해 정보석은 자신의 일과 가족, 그리고 자신의 내면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중년 남성을 가장 섬세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된다. 정하연이 “극 중에서 바보처럼 나오는 부분이 있다 해도 전혀 불만 없이 했다”고 말하기도 했던 에서는 부유함과 천박함을 동시에 가진 남자를 연기하며 “외로운 중년 남자를 연기하고 싶다”던 바람을 풀었다. 보석이었던 남자가 최고의 세공사를 만나 빛나기 시작한 순간.

윤정희 : 정보석이 출강중인 수원여대 연기영상학과에서 가르친 학생. 윤정희는 배우로 성공한 뒤 정보석의 부탁으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정보석은 학생들을 만나며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강의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또한 그는 학생들이 “내 연기를 정석으로 받아들일까봐” 학생들 앞에서는 연기를 하지 않고, 과거에는 대본에 온갖 색깔을 칠해가며 연기를 준비했지만 “전체의 흐름 대신 분석된 규격만 보며 연기의 한계를 짓는 것 같아”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연기를 확신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한계를 긋지 않는다. 그는 이제 만 47세지만, 마흔 넘어 과 을 연기할 만큼 꾸준히 연기가 늘고 있고, 앞으로도 늘 수 있는 배우다.

김병욱 : 시트콤의 도인. 김병욱은 “자세히 보면 은근히 멍한 표정을 뽑아낼 수 있는 부분”을 보고 정보석을 캐스팅했고, 정보석은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김병욱의 시트콤을 “사람들의 모습을 단순히 희화화 시키는 게 아니라 리얼리티에 방점”을 찍는다고 평하는 그는 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쌓은 이미지를 재정립한다. 이 작품에서 정보석은 일본 팬이 생길 만큼 잘생긴 ‘보사마’지만 동시에 간단한 산수조차 잘 못하는 멍청한 남자고, 아내와 장인에게 큰 소리 한 번 못 치는 어수룩한 남자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로맨틱한 경험들을 간직하며 자신의 현재를 바꾸고 싶은 불만이 있는 중년이기도 하다. 이나 과는 다른 느슨한 호흡과 유머가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그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석의 이미지를 종합한 뒤, 그것을 재정립한다. 이는 큰 자의식 없이 더 연기를 잘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던 배우가 대중적인 작품 안에서 자기 자신과 배역의 이미지를 합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보석은 언제 어느 때나, 어떻게 가공 되도 빛이 나기 때문에 보석이다. 그리고 그 보석이 자기만의 모습으로 완성되고 있다. 여전히 아름다운 채.

Who is next
정보석이 출연한 MBC 에 출연한 김현주와 SBS 에 출연한 고수

글. 강명석 two@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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