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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를 좋아하세요?” 언젠가는 누군가의 생각과 취향을 묻는 말이 이처럼 변할지도 모르겠다. 한때 유행어처럼 번졌던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어느덧 조금은 남다른, 그리고 마니악한 취향을 은근히 드러내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질문의 주어가 ‘브람스’에서 ‘지니어스’로 바뀌었음에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건, 케이블채널 tvN ‘더 지니어스: 룰 브레이커’(이하 ‘지니어스2’)가 보여주는 도전과 배신이 가득한 게임 속 세상이 우리가 사는 현실과 접점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마침 ‘지니어스2’를 연출한 정종연 PD도 “방송을 통해 마치 홍상수 영화를 보는 듯한 불편함을 표면 위로 끌어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정말 절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13년 4월,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이라는 타이틀로 첫 전파를 탄 ‘지니어스’는 김구라, 김경란, 이상민 등 걸출한 방송인과 이준석, 차민수, 최창엽 등 비범한 일반인 출연자들 속에서 ‘홍진호’라는 초대 우승자를 배출하며 ‘리얼 관찰 예능 프로그램’의 역사를 새로 썼다. 전작에 인기에 힘입어 탄생한 ‘지니어스2’는 전작보다 더 차갑고, 날카로우며, 불편하다. 전작이 ‘마니악하다’는 평을 반영한 듯 게임은 좀 더 쉬워졌지만, ‘최후의 1인’을 목표로 게임에 뛰어든 출연자들은 더 독해졌다. 현재 남휘종, 김재경, 이다혜, 이은결, 임윤선 등 절반에 가까운 탈락자가 발생한 ‘지니어스2’는 어느덧 여섯 번째 이야기를 앞두고 있다. 노홍철, 이상민, 은지원, 유정현, 홍진호, 임요환, 이두희, 조유영 이상 8명의 도전자 중 시즌2 우승의 영예를 안을 사람은 누구일까. 매회 이슈를 낳는 문제적 프로그램 ‘지니어스2’를 연출한 정종연 PD를 만나봤다.

Q. 전체적으로 ‘게임은 쉬워졌고, 출연자는 독해졌다’는 평이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전작과 이번 시즌의 차이점을 설명해 달라.
정종연 PD: 어떤 게임이 나올지를 가장 궁금해하시는 걸로 안다. 게임의 난도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마냥 쉬워진 것만도 아니다. 게임은 ‘지니어스’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균형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출연자들의 태도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시즌1 때는 ‘방송’이라는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 시즌 출연자들은 시즌1의 학습 효과가 있어서인지 자신을 많이 내려놓고 게임에 임하더라(웃음). 높은 게임성으로 출연자들의 승부욕을 자극을 목표로 한다는 점은 같지만,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바가 좀 더 노골적으로 방송에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 시즌1과 다르다.

Q. ‘룰 브레이커’라는 부제를 놓고 보면 이번 시즌에 새로 추가된 ‘불멸의 징표’가 큰 역할을 할 듯한데, 아직 방송 중에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은 것 같다.
정종연 PD: 그러게 말이다(웃음). 언젠가는 ‘불멸의 징표’를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한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지니어스’에는 본래 균형을 깰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관계가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넷이, ‘지니어스2’에서는 ‘불멸의 징표’가 그런 도구가 될 수 있다. 곧 실체가 드러날 거다.

Q. 홍진호가 연승을 달리면서 ‘불멸의 증표’의 증거를 하나둘씩 수집하고 있지만, 막상 게임 중에는 플레이어들의 눈을 피해 ‘불멸의 증표’를 찾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인지 간혹 오프닝 입장 순서에 변화를 줘서 의도적으로 찾을 시간을 주는 것 같기도 하더라.
정종연 PD: 그렇게 의도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무리 힌트를 줘도 ‘불멸의 징표’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다. 모든 증거가 하나의 정답을 가리키고 있지만, 문제가 만만치 않으니까(웃음). 오프닝은 지난 줄거리 요약의 기능이 더 강하다. 입장하는 순서를 보면 지난 라운드의 줄거리가 그대로 담겨있다. ‘지니어스’가 관찰형 리얼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첫 회부터 마지막까지 전체적인 맥락이 이어져야 하기에 그런 스토리적 부분을 제작진이 개입할 수 있는 오프닝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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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유독 이번 시즌에는 메인 매치와 데스 매치를 통틀어 ‘개인의 능력’보다는 ‘인간관계’가 당락을 결정짓는 게임의 비중이 높다.
정종연 PD: 큰 그림에서는 게임을 통해 전달하는 내러티브가 시즌1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초반에는 연합 중심으로 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개인의 능력이 중요해진다. 시즌1 때도 7회에 등장한 ‘오픈, 패스’가 그런 맥락이다. 어느 정도 플레이어 간의 관계가 정리된 상태에서 연합이 깨지고, 개인과 집단, 집단 대 집단 등 이해관계에 따라 관계가 세분될 거다. 중요한 건 메인 매치와 데스 매치의 관계다. 우리는 한 회 두 가지 게임을 통해 내러티브의 기승전결과 플레이어 간의 관계가 드러날 수 있도록 구성했다.

Q. 4회 등장한 ‘암전 게임’에서는 드래프트를 통해 같은 편이 될 플레이어를 지목한다는 점에서 ‘연합’을 조장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정종연 PD: 4회에서는 1~3회를 통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관계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간 서로 치고박으면서 형성된 관계가 드래프트를 통해 명백히 드러났다. 관계를 분명히 하는 건 새로운 관계를 위한 밑바탕이 된다.

Q. 드래프트에서 가장 마지막에 선택된 이은결의 배신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시청자가 많았다. 특히 그가 ‘지니어스2’에서 ‘생존’을 담보로 ‘은지원의 데스 매치’를 원했다는 사실은 ‘방송인 연합’에 대한 논란으로 번졌다.
정종연 PD: 단언컨데 ‘방송인 연합’은 없다. 우리도 녹화 당시에는 ‘이은결이 원하는 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필요에 따라 연합하는 능력이 탁월한 이상민은 제외하더라도 노홍철과 은지원은 그런 논란이 생길 것을 염려해 의도적으로 둘의 연합을 피해왔다. 이은결이 배신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방송인 연합’이 생길 것에 대한 우려와 자신의 존재감이 적은 데서 발생하는 부담이 그것이다. 앞서 이은결은 3회에서도 배신을 했지만, 이두희의 배신에 묻혔다. 결과적으로 이은결이 표면으로 끄집어낸 ‘방송인 연합’은 플레이어간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계기가 됐다.

Q. 각 플레이어는 최초에 캐스팅할 때 기대한 몫을 해주고 있나.
정종연 PD: 반응이 제각각이라 뭐라고 말하기가 애매하다(웃음). 홍진호는 여전히 논리적으로 자신만의 룰을 만들려고 하고, 은지원도 처음에는 ‘겉돌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 임요환은 남의 말을 잘 듣는 스타일이 아니다. 홍진호는 남의 말을 듣더라도 이기려고 하니까 두 사람이 더 대조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유정현은 정확하게 기대한 대로 해주고 있다. 나이는 가장 많지만, 뭔가 허당기가 있어서 관찰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결과는 보시는 대로다(웃음).

tvN ‘더 지니어스 시즌2: 룰 브레이커’ 제작발표회 현장의 출연진
tvN ‘더 지니어스 시즌2: 룰 브레이커’ 제작발표회 현장의 출연진
tvN ‘더 지니어스 시즌2: 룰 브레이커’ 제작발표회 현장의 출연진

Q. 어느덧 5회 방송을 거치면서 플레이어들의 캐릭터도 잡혀가는 느낌이다.
정종연 PD: 내가 출연자들에게 주문한 것은 딱 한 가지,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적극적으로 행동해 달라는 이야기만 했을 뿐이다. 다만 ‘지니어스2’에서는 승부욕을 드러내는 게 당연시되다 보니 시즌1 때와는 반응의 온도 차가 있다.

Q. 확실히 원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되자 시즌1 때보다 게임의 밀도가 높아졌다.
정종연 PD: 방송을 거듭할수록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느낀다. 게임을 제작할 때도 ‘몰입의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촬영장에서도 카메라가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지만, 가급적 거리를 두고 세트장 밖에서 찍는 등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지니어스’의 핵심은 ‘리얼리티’다. 어느 정도 제한적인 상황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감정의 변화를 겪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게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지니어스’ 이전의 최초 기획은 섬 안에 일반인들을 고립시킨 뒤 게임을 하는 거였다. 실행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라서 타협점을 찾다가 나온 결과가 ‘지니어스’다.

Q. ‘지니어스’가 나름의 독창적인 색깔을 띨 수 있게 된 데는 아무래도 ‘게임 구성’이 큰 몫을 했다.
정종연 PD: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우리나라에 시판된 게임은 거의 다 해봤다. 몇 개월간 장소를 빌려서 밤낮으로 게임만 했을 정도다. 그런 과정을 겪다 보니 ‘지니어스’의 기초가 되는 보드게임들은 모두 테마만 다르고 규칙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간혹 게임에도 혁신적인 변화들이 따랐지만, 대체로 시간이 흐르면서 주사위와 같은 우연의 요소가 사라지고 특이한 룰이 도입되며 다양한 게임이 파생적으로 생겨난 식이다. 특히 몇 시간씩 장시간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들은 방송으로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정말 인생처럼 심오한 깊이도 있다. 그런 요소들을 필요에 따라 결합하고 제거도 하면서 지금의 ‘지니어스’가 탄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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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니어스’는 표절 논란으로 몸살을 앓은 적도 있다. 유사한 프로그램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고민도 깊었겠다.
정종연 PD: 물론 이미 잘 알려진 몇몇 프로그램들을 참고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장르적 유사성은 방송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고, 프로그램에 담긴 내러티브는 모두 제각각이다. 결국, 방송을 만든다는 것은 컨버전, 포맷 등과 관계가 깊다. 즉 제작 노하우를 얼마나 치밀하게 담아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 부분에서 제작자의 역량이 드러난다.

Q. 시즌1 때는 대중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졌던 방송 포맷이 ‘지니어스2’에서는 완전히 자리 잡은 느낌이다. 이제는 게임을 넘어 그 안에서 발생하는 관계와 감정에 집중하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는 만큼 어깨가 무겁겠다. 우리는 앞으로 ‘지니어스2’를 통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정종연 PD: 홍진호만 놓고 봐도 시즌1과 시즌2의 홍진호는 완전히 다르다. 마치 지금의 홍진호는 시즌1의 김구라와 같은 존재가 됐달까. 그를 중심에 놓고 ‘지니어스2’의 판세를 보면 이전 시즌과 공통점이 발견된다. 강자가 있고, 그 강자의 타도를 외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을 둘러싼 이해관계에 따른 배신과 연합이 존재한다. 인간의 갈등이 극대화된 상황 속에 ‘개인의 생존’을 위해 플레이어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를 집중해서 봐 달라. 어차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승리란 없지 않은가.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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