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 한 마리가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 새로운 획을 하나 그었다. 영화 이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이다. 11일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개봉한 은 개봉 15일 만인 10일 전국 누적 관객수 100만 2238명을 기록했다. 국내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이 개봉한 지 41년 만에 이룬 성과다. , , , 등 쟁쟁한 국내외 영화들이 스크린을 장악한 여름 극장가에서 이뤄낸 것이라 의 성공을 더욱 의미심장하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으로 오후 7시 이후에 상영되는 극장이 많지 않음에도 주말 평균 50% 이상의 좌석이 찼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는 영화가 장기 흥행에 접어들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 단기간에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2000년 출간된 황선미 작가의 동명 원작이 11년간 11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는 동안 쌓은 인지도와 선호도, , , 등을 제작한 명필름의 기획력과 6년간의 꼼꼼한 제작 과정 그리고 한국 애니메이션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던 시나리오의 허술함을 3년간의 개발 과정을 통해 극복해낸 점 등이 거론될 수 있다. 크게 보면 쉬운 답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 100만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을 끄집어내기는 쉽지 않다. 일단 장르 자체가 애니메이션으로서 인기가 높지 않다.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작을 보면 와 시리즈나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나 처럼 TV시리즈의 인기를 바탕으로 제작되는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50만 명 내외의 안정적인 흥행을 거둔다. 그러나 은 디즈니와 드림웍스, 지브리 등의 작품들처럼 판타지나 액션 어드벤처를 다루지도 않고 TV시리즈로 검증된 인기를 갖고 있지도 않다. 의 흥행이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기존의 애니메이션 흥행작들과 전혀 다른 특질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은 흥행이나 기록에 앞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강박을 깼다는 점에서 칭찬받아 마땅하다. 셀 애니메이션이 사라진 미국의 3D 애니메이션을 따라간 것도 아니고, 한국 애니메이션의 영원한 아킬레스 건이었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화법이나 리듬감, 정서를 추종하는 것도 아니었다. 제작사 명필름과 오돌또기는 거창한 판타지와 요란한 어드벤처의 반대편에 있는 가족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것도 독특하게 ‘고독한 인물들이 모인 유사 가족’ 이야기였다. 경남 우포늪에서 찍은 수만 장의 사진을 통해 그린 배경 그림은 현실 속의 한국적인 풍경이었다. 동물을 100% 의인화시키는 미국 애니메이션과 달리 잎싹(문소리)이 손을 못 쓰는 것처럼 의인화의 수위도 낮췄다. 공상과 허구의 세계에 집착하던 강박에서 벗어나 현실의 세계를 품은 것이다.

명필름의 가장 훌륭한 전략은 어른과 아이 관객을 동시에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다양한 세대의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제작진은 원작을 새롭게 가공했다. 파수꾼 선발 레이싱 장면을 넣어 액션 장르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추가했고 수다스러운 캐릭터인 달수(박철민)로 코미디를 강화했다. 타인에 대한 애정과 위트 넘치는 애정을 동시에 담아낸 박철민의 수다 애드리브는 재미를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관객의 감정이입 대상을 어른인 잎싹과 어린이인 초록이(유승호)로 나눈 점도 주효했다. 잎싹과 족제비 애꾸눈의 대립 관계, 이종 가족인 암탉 잎싹과 청둥오리 초록이의 갈등 등 어린이 관객이 인지하기 쉬운 스토리 구조 속에 어른 관객들이 즐길 만한 요소를 다층적으로 채운 점은 이 영화의 궁극적인 성공 요인이다. 억압적인 시스템에 갖힌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의지, 이종의 타인을 품에 안는 거시적 가족주의와 휴머니즘, 특히 충격적인 결말이 제시하는 생태계의 순리와 숙명에 대한 자발적인 순응 또는 희생을 통한 구원 등은 실사영화도 일시에 풀어내기 힘든 성숙하고 진보적인 주제들이다. “어린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배치하는 한편 사색적인 주제의식을 넣고 달수의 코미디나 액션 시퀀스를 추가하는 등의 과학적인 고민”을 첫 번째 성공 요인으로 꼽은 심재명 명필름 대표의 자체 분석은 이 모든 것에 대한 명쾌한 요약이다.

글. 고경석 기자 k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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