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예의 에필로그≫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계 곳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객관적이고 예리하게 짚어냅니다. 당신이 놓쳤던 '한 끗'을 기자의 시각으로 정밀하게 분석합니다.
아시아의 따거 배우 주윤발(저우룬파·68)에게 반했다. 오스카 여우주연상의 배우 윤여정(76)에는 또 반했다. 지난 5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주윤발은 '따거의 품격'을 물씬 풍겼다. 애써 연기하거나 내보이려 하지 않는, 오랜 시간 몸에 배어 자연스럽고 은은하게 스며든 품격이었다.
'영웅본색'(1987)의 주역이자, 홍콩 영화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주윤발은 배우로서 커다란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그는 홍콩 느와르의 효시라 볼 수 있는 '호월적고사'(1981)를 비롯해 '몽중인'(1986), '감옥풍운'(1987), '가을날의 동화'(1987), '용호풍운'(1987), '첩혈쌍웅'(1989), '더신'(1989), 와호장룡(2000) 등의 영화에서 대중의 마음을 훔쳤다.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가진 주윤발이지만,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인품이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맛있는 음식이 주는 작은 기쁨에서 행복을 찾았고, '러닝'이라는 운동으로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부산에 있는 동안 매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해운대 해변을 달렸다는 주윤발은 "동백섬 하늘이 참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음식이 잘 맞기 때문이라며 갈비탕에 김치를 꼽았다. 그는 "이따 낙지 먹으러 가기로 했다"며 설렘을 표현하기도.
8000억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주윤발은 하루에 흰 쌀밥 두 그릇과 몸을 뉠 작은 침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여전히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 쓴다는 주윤발의 최대 플렉스는 중고 카메라 렌즈를 구매하는 것이다. 그는 전시회를 열 만큼 사진 찍는 것에도 조예가 깊다고 전해진다.
얼토당토않은 사망설을 웃어넘긴 주윤발은 지난 2018년 사후 전 재산인 56억 홍콩달러(약 8100억원) 기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아내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8100억은 제가 기부한 게 아니라 아내가 기부했다"며 "저는 기부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힘들게 번 돈이다"라며 엄살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차피 제가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안 갖고 왔기 때문에 떠날 때도 아무것도 안 갖고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울림을 줬다.
홍콩 작은 바다 마을 라마 섬에서 태어난 주윤발은 "나는 많은 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게 큰 배움을 준 것은 영화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내게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세상을 가져다준 것이 영화"라며 "영화가 없으면 주윤발도 없다"고 영화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며 웃었다. 주윤발은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서 인간적 품격이 오롯이 나타났다. 그는 조깅을 하면서 만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면서 취재진들과 함께 셀카를 찍어 현장에서 직접 공유하기도 했다. 자리한 기자들에게도 기분 좋은 한 페이지의 추억을 선사한 것이다. '현재 내 앞의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소신이 실제적으로 발현된 순간이었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주윤발의 '따거 풍모'에 푹 빠진 가운데 또 한번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가 있었으니, 바로 윤여정이었다. 윤여정의 철학과 깊이야 진작 알고 있었으나, 지난 6일 '액터스 하우스: 윤여정'을 통해 만난 윤여정은 또 한번 반할 수밖에 없었다.
윤여정은 자신의 최고 커리어인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자랑'이 아닌 '족쇄'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유롭게 살던 내가 주의에 주의를 더하며 살고 있다. 오스카 수상 후 두려운 게 많아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며 "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고, 달라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올해 내 나이 77세"라고 몇 차례나 말한 윤여정은 "나하고 싶은 대로 하다 죽으려고 한다"며 이른바 '여배우 포즈'를 거부했다. 그는 "왜 여배우들은 사진 찍을 때 허리에 손을 얹냐"며 "나는 그거 안 한다. 앉아 있을 테니 그냥 사진 찍어라"며 웃었다.
예전부터 좋지 않은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는 성향이었다는 윤여정은 "내가 이 한국에서 살아남은 게 신기할 정도"라며 스스로를 '이상한 아이'라고 돌아봤다.
윤여정은 故 김기영, 임상수 감독 등을 만나 이상한 역할을 통해 자신만의 연기를 선보였다. 윤여정은 연기자로 성공하는 주요 공식이 '빼어난 미모'였던 당시를 설명하며 애당초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나는 특출난 미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받는 것에 큰 불만이 없었다. 난 내 처지를 빨리 읽었다. 배우의 조건이 없었다"며 "나는 낭만적이지도 않았고, 목소리도 안 좋았다"고 말했다.
특히, 윤여정은 이날 한 무명 배우가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며 고민을 털어놓자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연기는 김혜자가 잘하지'라고 했다. 난 그게 기분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김혜자라는 특출난 배우가 있지만, 난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며 "배우는 꿈 아니고 현실이다. 무섭게 노력해야 한다. 아티스트보다는 장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스스로를 '생계형 배우'라고 칭했던 윤여정의 뼈 있는 말이었다. 특히, 윤여정은 자신이 계속해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두 아들을 꼽으며 "돈 벌어서 다 젊은 남자 갖다줬다. 그것도 둘이었다"며 "당시엔 교육이 정말 중요했고, 걔네 교육시켜 먹여 살리는 게 나의 책임 완수였다"고 했다.
이 밖에도 윤여정은 삶의 지혜가 녹아있는 '어른의 잔소리'를 건네 좌중을 흔들었다. 그는 "어른들 말 잘 들어라, 손해될 거 없다", "뭐든 고급과 놀아야 발전이 있다", "나이가 77살이어도 실패의 연속이다", "부모님 밑에서 학교 다닐 때가 제일 좋다, 바깥은 끔찍하고 춥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싸워서 쟁취한 거다"라는 등의 말로 자리한 관객들에게 생각할 공간을 줬다.
이 같은 윤여정의 철학은 이날 자리한 MZ세대의 마음에도 꽂혔다. 현장에서는 '윤여정처럼 늙고 싶다'는 반응들이 터져나왔다. 오랜 세월 흔들리며 먼저 뚜벅뚜벅 걸어간 인생 선배 윤여정이 들려준 간결하고 직선적인 이야기가 모두의 마음에 자국으로 남은 한 시간이었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계 곳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객관적이고 예리하게 짚어냅니다. 당신이 놓쳤던 '한 끗'을 기자의 시각으로 정밀하게 분석합니다.
아시아의 따거 배우 주윤발(저우룬파·68)에게 반했다. 오스카 여우주연상의 배우 윤여정(76)에는 또 반했다. 지난 5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주윤발은 '따거의 품격'을 물씬 풍겼다. 애써 연기하거나 내보이려 하지 않는, 오랜 시간 몸에 배어 자연스럽고 은은하게 스며든 품격이었다.
'영웅본색'(1987)의 주역이자, 홍콩 영화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주윤발은 배우로서 커다란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그는 홍콩 느와르의 효시라 볼 수 있는 '호월적고사'(1981)를 비롯해 '몽중인'(1986), '감옥풍운'(1987), '가을날의 동화'(1987), '용호풍운'(1987), '첩혈쌍웅'(1989), '더신'(1989), 와호장룡(2000) 등의 영화에서 대중의 마음을 훔쳤다.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가진 주윤발이지만,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인품이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맛있는 음식이 주는 작은 기쁨에서 행복을 찾았고, '러닝'이라는 운동으로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부산에 있는 동안 매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해운대 해변을 달렸다는 주윤발은 "동백섬 하늘이 참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음식이 잘 맞기 때문이라며 갈비탕에 김치를 꼽았다. 그는 "이따 낙지 먹으러 가기로 했다"며 설렘을 표현하기도.
8000억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주윤발은 하루에 흰 쌀밥 두 그릇과 몸을 뉠 작은 침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여전히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 쓴다는 주윤발의 최대 플렉스는 중고 카메라 렌즈를 구매하는 것이다. 그는 전시회를 열 만큼 사진 찍는 것에도 조예가 깊다고 전해진다.
얼토당토않은 사망설을 웃어넘긴 주윤발은 지난 2018년 사후 전 재산인 56억 홍콩달러(약 8100억원) 기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아내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8100억은 제가 기부한 게 아니라 아내가 기부했다"며 "저는 기부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힘들게 번 돈이다"라며 엄살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차피 제가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안 갖고 왔기 때문에 떠날 때도 아무것도 안 갖고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울림을 줬다.
홍콩 작은 바다 마을 라마 섬에서 태어난 주윤발은 "나는 많은 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게 큰 배움을 준 것은 영화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내게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세상을 가져다준 것이 영화"라며 "영화가 없으면 주윤발도 없다"고 영화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며 웃었다. 주윤발은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서 인간적 품격이 오롯이 나타났다. 그는 조깅을 하면서 만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면서 취재진들과 함께 셀카를 찍어 현장에서 직접 공유하기도 했다. 자리한 기자들에게도 기분 좋은 한 페이지의 추억을 선사한 것이다. '현재 내 앞의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소신이 실제적으로 발현된 순간이었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주윤발의 '따거 풍모'에 푹 빠진 가운데 또 한번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가 있었으니, 바로 윤여정이었다. 윤여정의 철학과 깊이야 진작 알고 있었으나, 지난 6일 '액터스 하우스: 윤여정'을 통해 만난 윤여정은 또 한번 반할 수밖에 없었다.
윤여정은 자신의 최고 커리어인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자랑'이 아닌 '족쇄'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유롭게 살던 내가 주의에 주의를 더하며 살고 있다. 오스카 수상 후 두려운 게 많아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며 "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고, 달라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올해 내 나이 77세"라고 몇 차례나 말한 윤여정은 "나하고 싶은 대로 하다 죽으려고 한다"며 이른바 '여배우 포즈'를 거부했다. 그는 "왜 여배우들은 사진 찍을 때 허리에 손을 얹냐"며 "나는 그거 안 한다. 앉아 있을 테니 그냥 사진 찍어라"며 웃었다.
예전부터 좋지 않은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는 성향이었다는 윤여정은 "내가 이 한국에서 살아남은 게 신기할 정도"라며 스스로를 '이상한 아이'라고 돌아봤다.
윤여정은 故 김기영, 임상수 감독 등을 만나 이상한 역할을 통해 자신만의 연기를 선보였다. 윤여정은 연기자로 성공하는 주요 공식이 '빼어난 미모'였던 당시를 설명하며 애당초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나는 특출난 미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받는 것에 큰 불만이 없었다. 난 내 처지를 빨리 읽었다. 배우의 조건이 없었다"며 "나는 낭만적이지도 않았고, 목소리도 안 좋았다"고 말했다.
특히, 윤여정은 이날 한 무명 배우가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며 고민을 털어놓자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연기는 김혜자가 잘하지'라고 했다. 난 그게 기분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김혜자라는 특출난 배우가 있지만, 난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며 "배우는 꿈 아니고 현실이다. 무섭게 노력해야 한다. 아티스트보다는 장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스스로를 '생계형 배우'라고 칭했던 윤여정의 뼈 있는 말이었다. 특히, 윤여정은 자신이 계속해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두 아들을 꼽으며 "돈 벌어서 다 젊은 남자 갖다줬다. 그것도 둘이었다"며 "당시엔 교육이 정말 중요했고, 걔네 교육시켜 먹여 살리는 게 나의 책임 완수였다"고 했다.
이 밖에도 윤여정은 삶의 지혜가 녹아있는 '어른의 잔소리'를 건네 좌중을 흔들었다. 그는 "어른들 말 잘 들어라, 손해될 거 없다", "뭐든 고급과 놀아야 발전이 있다", "나이가 77살이어도 실패의 연속이다", "부모님 밑에서 학교 다닐 때가 제일 좋다, 바깥은 끔찍하고 춥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싸워서 쟁취한 거다"라는 등의 말로 자리한 관객들에게 생각할 공간을 줬다.
이 같은 윤여정의 철학은 이날 자리한 MZ세대의 마음에도 꽂혔다. 현장에서는 '윤여정처럼 늙고 싶다'는 반응들이 터져나왔다. 오랜 세월 흔들리며 먼저 뚜벅뚜벅 걸어간 인생 선배 윤여정이 들려준 간결하고 직선적인 이야기가 모두의 마음에 자국으로 남은 한 시간이었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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