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년차 배우 유해진
선악 공존하는 얼굴
소시민부터 엘리트까지
'달짝지근해' 오는 15일 개봉
선악 공존하는 얼굴
소시민부터 엘리트까지
'달짝지근해' 오는 15일 개봉
전형적인 미남형 얼굴은 아니지만 한번 보면 잊기 힘든 마성의 매력을 가진 배우 유해진. 장르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유해진은 ‘타짜’의 고광렬부터 ‘올빼미’의 인조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친숙한 웃음 너머에 서늘함을 오가는 유해진은 데뷔 초기에는 촐싹대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지만, 이제는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고 마음껏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배우 유해진은 그 자체로 대체 불가능한 하나의 장르가 됐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달짝지근해:7510’(이하 ‘달짝지근해‘)에서 유해진은 첫 로코에 도전한다. 물론 ‘럭키’(2016)에서는 우연히 들른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 과거의 기억을 잃게 된 냉혹한 킬러 형욱을 맡으며, 리나(조윤희)와 투닥거리는 코믹로맨스를 보여주기는 했다. 하지만 '달짝지근해'는 유해진이 본격적인 로맨스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영화는 제과 연구원 치호(유해진)의 단조롭고 반복된 일상에 일영(김희선)이 개입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유해진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서툴고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귀여워 피식하고 웃음 짓게 되면서도 가슴 시린 절절함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세대 안에 국한되지 않고 공감되는 로맨스는 유해진의 납득가는 연기로 공감을 만들어냈다. 1997년 영화 '블랙잭'으로 데뷔 25주년을 맞은 유해진은 그간 감초 역할부터 진중한 역할, 극의 활력을 돋우는 코미디까지. 충무로의 대체 불가능한 배우로 자리 잡았다. 유해진은 서사에 흡입력을 실어주는 현실감 넘치는 말투와 어딘가 존재할 법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초랭이', '고광렬' 등 캐릭터 이름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유해진은 어떤 장르로 관객들을 만났던 걸까.
◆ 영화 '타짜'(2006) 감독 최동훈 / 범죄물 고광렬 역 앳된 얼굴의 타짜 고니(조승우) 옆에서 어딘가 능글거리면서 톡톡 튀는 말투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고광렬(유해진). 영화 '타짜'에서 유해진은 가벼워 보이지만 옹골찬 속내를 보여주는 고광렬 역으로 이름을 각인시켰다. 착착 달라붙는 패만큼이나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말투로 코미디를 더하는 유해진은 극의 밸런스를 착실하게 유지한다.
노란색 뿔테 안경에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눈동자를 쉼 없이 굴리는 초조한 모습까지. 촐싹대는 모습으로 상대를 정신없게 하는 고광렬은 고니와의 첫 만남에서 "아저씨. 그 아가리를 좀 닥치고 쳐도 될 거 같은데"라며 일침을 듣는다. 이에 당황한 고광렬은 "아니 뭐. 돈 딸라고 칩니까. 재밌자고 치는 거지. 안 그래요?"라며 능청스러우면서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인다. 유해진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톡톡 쏘아대는 빠른 말투에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유쾌한 모습은 초기작 '타짜'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 영화 '전우치'(2009) 감독 최동훈 / 액션, 코미디 초랭이 역 최동훈 감독과 영화 '전우치'로 다시 만난 유해진은 전우치(강동원) 옆에서 충실하게 보필하면서도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초랭이 역을 맡았다. 초랭이의 정체는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을 지닌 개. 영화는 500년 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이 요괴 손에 넘어가자 이후 현실로 넘어가 다시 만파식적을 되찾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사고뭉치 전우치의 예측불가능한 행동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우정을 지켜내는 초랭이의 충직한 모습은 재미난 포인트다. '전우치'에서 악인 화담(김윤석)의 맨얼굴을 알게 된 이후에 맞서 싸우는 장면이나 현대의 최신 문물을 보고 신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즐거워하는 장면들은 유해진 특유의 코미디로 재미를 더했다. 인간이 아닌 개를 연기한 유해진은 이후 영화 '승리호'에서 로봇을 연기하기도 했다.
◆ 영화 '부당거래'(2010) 감독 류승완 / 범죄물 장석구 역 유해진하면 떠오르는 장르 중 하나가 코미디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범죄물이다.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하고 선한 인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안에 왠지 모를 섬뜩한 표정이 공존한다. 그래서일까. 유해진은 악역과도 꽤나 인연이 깊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유해진은 최철기(황정민)의 스폰서이자 냉정하고 계획적인 해동건설 회장 장석구 역을 맡았다. 연쇄살인 사건으로 흉흉해진 민심 탓에 용의자를 찾는데 주력하는 경찰은 수사 도중 용의자가 사망하자 해서는 안 될 일을 해버리고야 만다.
바로 가짜 범인을 만들어 수사를 종결 짓고자 한 것. 사건을 꾸미기로 결심한 광역수사대 최철기는 장석구를 시켜 부정한 방법으로 가짜 범인을 만들게 된다. "너 지금부터 범인 해라"라며 웃음기 하나 없는 소름 돋는 얼굴로 지시하는 장석구 역의 유해진은 이전까지의 얼굴을 말끔하게 잊을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풍자하는 '부당거래'에서 가장 어두운 단면을 포착해서 보여주는 유해진은 나쁜 놈의 정석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 영화 '럭키'(2016) 감독 이계벽 / 코미디 형욱 역 '만약 킬러가 기억을 잃는다면 어떨까?' 영화 '럭키'는 유해진의 두 가지 얼굴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동네 형처럼 친근한 외모에 사람 좋은 웃음과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의 날카로운 모습까지. '럭키'에서 유해진은 냉혹한 킬러 형욱과 기억을 잃어 신분이 바뀐 무명배우 재성을 오간다.
영화는 형욱이 우연히 들른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 과거의 기억을 잃게 되면서 시작된다. 기억을 잃었지만, 여전히 몸에 남아있는 킬러 본능 탓에 승승장구하는 액션 배우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해프닝에 놓이게 된다. 재성(이준)이 훔쳐 간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꼬인 킬러 인생을 되찾기 위한 여정은 험난하다. 일본 원작 우치다 켄지 《열쇠 도둑의 방법》을 기반으로 한 '럭키'는 이야기의 개연성은 부족하지만, 유해진의 연기력으로 오락 영화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영화 '완벽한 타인'(2018) 감독 이재규 / 코미디 태수 역 개인의 무수한 정보가 들어있는 판도라의 상자 휴대폰. 만약 이러한 휴대폰에 오는 모든 것들이 타인에게 공유된다면 어떨까. 가장 친밀하다고 믿었던 부부, 친구 관계에는 일종의 균열이 생길지도 모른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내가 알던 너가 아냐'라는 간단한 키워드를 가지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모인 커플 모임에서 한 명이 게임을 제안하며 시작된 상상치 못한 상황들이 그려진다.
'완벽한 타인'에서 유해진은 아내를 시도 때도 없이 무시하며 가부장적인 태도를 보이는 밉상 캐릭터 태수를 보여준다. 아내 수현(염정아)에게 핀잔을 주는 것은 기본이요. '하지 마'라며 단호한 태도로 행동을 제어하기도 한다. 화가 부글부글 끌어오르며, 어디를 봐도 정을 붙일 수 없는 태수는 일종의 빌런이다. 자신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친구 영배(윤경호)와 휴대폰을 숨기면서 벼랑 끝에 서게 된 태수는 그럼에도 영배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주는 의리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완벽한 타인'은 원 로케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 없는 스토리의 전개와 베테랑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많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 영화 '공조'(2017), '공조2: 인터내셔날'(2022) /액션 강진태 역 브로맨스나 버디 무비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유해진의 연기. 영화 '공조'에서 북한 형사 림철형 역의 배우 현빈과의 케미는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한국형사 강진태 역의 유해진은 쉽게 협조하지 않는 림철형을 말로 잘 구슬려서 온순하게 만드는 넉살을 보여준다. 사람 좋은 얼굴로 남북의 이념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아가는 '공조'는 화려한 액션 이전에 현빈과 유해진의 투닥거리는 모습으로 더욱 사랑받았다. 영화 '타짜'에서 조승우, '전우치'에서 강동원, '부당거래'에서 황정민에 이은 '공조'의 현빈까지.
무자비한 총격 액션을 선보이는 현빈과 달리 현실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유해진은 한 가족의 남편으로, 형부로, 경찰로 역할을 달리하며 반전 매력을 뽐낸다. 특히 공조라는 명목하에 수사를 맞춰나가는 과정은 가히 흥미롭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늘 서로를 속이지만 상대를 제일 우선으로 하는 우정이 '공조'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 영화 '올빼미'(2022) 감독 안태진 / 스릴러 인조 역 의뭉스러운 얼굴로 속내를 알 수 없는 왕 인조는 유해진의 덤덤하고 까칠한 모습으로 완성됐다. 영화 '올빼미'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된 침술가 '경수’(류준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맹인이지만 불빛이 모두 사라진 밤에만 볼 수 있는 경수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상황 속 아들 소현세자를 못마땅해하면서 왕의 자리를 뺏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인조.
뾰족하고 모난 구석을 지닌 인조의 섬뜩함은 그간 유해진의 연기 내공으로 인해 무게감을 얻었다. 유해진은 그간 사극에 출연했지만, 연기 생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왕(王)을 맡았다. 그는 "대중에게 자리 잡은 이미지가 있지 않나. 연기하는 동안은 내가 왕이 생각했고, 다행히 관객들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언급하기도 했다. 광기 어린 인조 역으로 분하며 다시 한번 폭넓은 연기 변신을 유해진은 빈틈 연기력이라는 평가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베테랑'(2015), '1987'(2017), '승리호'(2020) 등에서도 평범한 소시민부터 로봇의 목소리 연기까지 보여준 유해진은 그 자체로 장르가 됐다. 선악이 공존하는 개성 있는 얼굴과 톡톡 튀는 말투부터 진중한 무게감을 보여주는 경계를 넘나드는 배우다.
현재 제작을 진행 중인 영화 '야당'에서 배우 강하늘, 박해준과 호흡을 맞추며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할 예정이다. 영화 '달짝지근해'를 통해 첫 로코에 도전한 유해진의 또 다른 도전은 무엇일까. "대본 외에도 항상 인물 분석표를 쓴다"는 유해진의 말처럼 그의 연기는 한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닌 멈추지 않는 도전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닐까.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15일 개봉하는 영화 ‘달짝지근해:7510’(이하 ‘달짝지근해‘)에서 유해진은 첫 로코에 도전한다. 물론 ‘럭키’(2016)에서는 우연히 들른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 과거의 기억을 잃게 된 냉혹한 킬러 형욱을 맡으며, 리나(조윤희)와 투닥거리는 코믹로맨스를 보여주기는 했다. 하지만 '달짝지근해'는 유해진이 본격적인 로맨스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영화는 제과 연구원 치호(유해진)의 단조롭고 반복된 일상에 일영(김희선)이 개입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유해진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서툴고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귀여워 피식하고 웃음 짓게 되면서도 가슴 시린 절절함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세대 안에 국한되지 않고 공감되는 로맨스는 유해진의 납득가는 연기로 공감을 만들어냈다. 1997년 영화 '블랙잭'으로 데뷔 25주년을 맞은 유해진은 그간 감초 역할부터 진중한 역할, 극의 활력을 돋우는 코미디까지. 충무로의 대체 불가능한 배우로 자리 잡았다. 유해진은 서사에 흡입력을 실어주는 현실감 넘치는 말투와 어딘가 존재할 법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초랭이', '고광렬' 등 캐릭터 이름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유해진은 어떤 장르로 관객들을 만났던 걸까.
◆ 영화 '타짜'(2006) 감독 최동훈 / 범죄물 고광렬 역 앳된 얼굴의 타짜 고니(조승우) 옆에서 어딘가 능글거리면서 톡톡 튀는 말투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고광렬(유해진). 영화 '타짜'에서 유해진은 가벼워 보이지만 옹골찬 속내를 보여주는 고광렬 역으로 이름을 각인시켰다. 착착 달라붙는 패만큼이나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말투로 코미디를 더하는 유해진은 극의 밸런스를 착실하게 유지한다.
노란색 뿔테 안경에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눈동자를 쉼 없이 굴리는 초조한 모습까지. 촐싹대는 모습으로 상대를 정신없게 하는 고광렬은 고니와의 첫 만남에서 "아저씨. 그 아가리를 좀 닥치고 쳐도 될 거 같은데"라며 일침을 듣는다. 이에 당황한 고광렬은 "아니 뭐. 돈 딸라고 칩니까. 재밌자고 치는 거지. 안 그래요?"라며 능청스러우면서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인다. 유해진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톡톡 쏘아대는 빠른 말투에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유쾌한 모습은 초기작 '타짜'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 영화 '전우치'(2009) 감독 최동훈 / 액션, 코미디 초랭이 역 최동훈 감독과 영화 '전우치'로 다시 만난 유해진은 전우치(강동원) 옆에서 충실하게 보필하면서도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초랭이 역을 맡았다. 초랭이의 정체는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을 지닌 개. 영화는 500년 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이 요괴 손에 넘어가자 이후 현실로 넘어가 다시 만파식적을 되찾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사고뭉치 전우치의 예측불가능한 행동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우정을 지켜내는 초랭이의 충직한 모습은 재미난 포인트다. '전우치'에서 악인 화담(김윤석)의 맨얼굴을 알게 된 이후에 맞서 싸우는 장면이나 현대의 최신 문물을 보고 신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즐거워하는 장면들은 유해진 특유의 코미디로 재미를 더했다. 인간이 아닌 개를 연기한 유해진은 이후 영화 '승리호'에서 로봇을 연기하기도 했다.
◆ 영화 '부당거래'(2010) 감독 류승완 / 범죄물 장석구 역 유해진하면 떠오르는 장르 중 하나가 코미디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범죄물이다.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하고 선한 인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안에 왠지 모를 섬뜩한 표정이 공존한다. 그래서일까. 유해진은 악역과도 꽤나 인연이 깊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유해진은 최철기(황정민)의 스폰서이자 냉정하고 계획적인 해동건설 회장 장석구 역을 맡았다. 연쇄살인 사건으로 흉흉해진 민심 탓에 용의자를 찾는데 주력하는 경찰은 수사 도중 용의자가 사망하자 해서는 안 될 일을 해버리고야 만다.
바로 가짜 범인을 만들어 수사를 종결 짓고자 한 것. 사건을 꾸미기로 결심한 광역수사대 최철기는 장석구를 시켜 부정한 방법으로 가짜 범인을 만들게 된다. "너 지금부터 범인 해라"라며 웃음기 하나 없는 소름 돋는 얼굴로 지시하는 장석구 역의 유해진은 이전까지의 얼굴을 말끔하게 잊을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풍자하는 '부당거래'에서 가장 어두운 단면을 포착해서 보여주는 유해진은 나쁜 놈의 정석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 영화 '럭키'(2016) 감독 이계벽 / 코미디 형욱 역 '만약 킬러가 기억을 잃는다면 어떨까?' 영화 '럭키'는 유해진의 두 가지 얼굴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동네 형처럼 친근한 외모에 사람 좋은 웃음과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의 날카로운 모습까지. '럭키'에서 유해진은 냉혹한 킬러 형욱과 기억을 잃어 신분이 바뀐 무명배우 재성을 오간다.
영화는 형욱이 우연히 들른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 과거의 기억을 잃게 되면서 시작된다. 기억을 잃었지만, 여전히 몸에 남아있는 킬러 본능 탓에 승승장구하는 액션 배우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해프닝에 놓이게 된다. 재성(이준)이 훔쳐 간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꼬인 킬러 인생을 되찾기 위한 여정은 험난하다. 일본 원작 우치다 켄지 《열쇠 도둑의 방법》을 기반으로 한 '럭키'는 이야기의 개연성은 부족하지만, 유해진의 연기력으로 오락 영화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영화 '완벽한 타인'(2018) 감독 이재규 / 코미디 태수 역 개인의 무수한 정보가 들어있는 판도라의 상자 휴대폰. 만약 이러한 휴대폰에 오는 모든 것들이 타인에게 공유된다면 어떨까. 가장 친밀하다고 믿었던 부부, 친구 관계에는 일종의 균열이 생길지도 모른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내가 알던 너가 아냐'라는 간단한 키워드를 가지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모인 커플 모임에서 한 명이 게임을 제안하며 시작된 상상치 못한 상황들이 그려진다.
'완벽한 타인'에서 유해진은 아내를 시도 때도 없이 무시하며 가부장적인 태도를 보이는 밉상 캐릭터 태수를 보여준다. 아내 수현(염정아)에게 핀잔을 주는 것은 기본이요. '하지 마'라며 단호한 태도로 행동을 제어하기도 한다. 화가 부글부글 끌어오르며, 어디를 봐도 정을 붙일 수 없는 태수는 일종의 빌런이다. 자신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친구 영배(윤경호)와 휴대폰을 숨기면서 벼랑 끝에 서게 된 태수는 그럼에도 영배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주는 의리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완벽한 타인'은 원 로케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 없는 스토리의 전개와 베테랑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많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 영화 '공조'(2017), '공조2: 인터내셔날'(2022) /액션 강진태 역 브로맨스나 버디 무비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유해진의 연기. 영화 '공조'에서 북한 형사 림철형 역의 배우 현빈과의 케미는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한국형사 강진태 역의 유해진은 쉽게 협조하지 않는 림철형을 말로 잘 구슬려서 온순하게 만드는 넉살을 보여준다. 사람 좋은 얼굴로 남북의 이념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아가는 '공조'는 화려한 액션 이전에 현빈과 유해진의 투닥거리는 모습으로 더욱 사랑받았다. 영화 '타짜'에서 조승우, '전우치'에서 강동원, '부당거래'에서 황정민에 이은 '공조'의 현빈까지.
무자비한 총격 액션을 선보이는 현빈과 달리 현실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유해진은 한 가족의 남편으로, 형부로, 경찰로 역할을 달리하며 반전 매력을 뽐낸다. 특히 공조라는 명목하에 수사를 맞춰나가는 과정은 가히 흥미롭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늘 서로를 속이지만 상대를 제일 우선으로 하는 우정이 '공조'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 영화 '올빼미'(2022) 감독 안태진 / 스릴러 인조 역 의뭉스러운 얼굴로 속내를 알 수 없는 왕 인조는 유해진의 덤덤하고 까칠한 모습으로 완성됐다. 영화 '올빼미'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된 침술가 '경수’(류준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맹인이지만 불빛이 모두 사라진 밤에만 볼 수 있는 경수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상황 속 아들 소현세자를 못마땅해하면서 왕의 자리를 뺏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인조.
뾰족하고 모난 구석을 지닌 인조의 섬뜩함은 그간 유해진의 연기 내공으로 인해 무게감을 얻었다. 유해진은 그간 사극에 출연했지만, 연기 생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왕(王)을 맡았다. 그는 "대중에게 자리 잡은 이미지가 있지 않나. 연기하는 동안은 내가 왕이 생각했고, 다행히 관객들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언급하기도 했다. 광기 어린 인조 역으로 분하며 다시 한번 폭넓은 연기 변신을 유해진은 빈틈 연기력이라는 평가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베테랑'(2015), '1987'(2017), '승리호'(2020) 등에서도 평범한 소시민부터 로봇의 목소리 연기까지 보여준 유해진은 그 자체로 장르가 됐다. 선악이 공존하는 개성 있는 얼굴과 톡톡 튀는 말투부터 진중한 무게감을 보여주는 경계를 넘나드는 배우다.
현재 제작을 진행 중인 영화 '야당'에서 배우 강하늘, 박해준과 호흡을 맞추며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할 예정이다. 영화 '달짝지근해'를 통해 첫 로코에 도전한 유해진의 또 다른 도전은 무엇일까. "대본 외에도 항상 인물 분석표를 쓴다"는 유해진의 말처럼 그의 연기는 한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닌 멈추지 않는 도전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닐까.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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