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민의 씨네락>>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영화 관련 이슈와 그 안에 숨겨진 1mm,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합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수도 있는, 영화 관련 여담을 들려드립니다.
"다 널 위해서야"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2010)엔 '과잉보호' 모친이 있다. 무려 18년 동안 친엄마 행세를 하며, 라푼젤을 조종한 납치범이자 사기꾼 고델이다. 고델은 '젊음'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라푼젤의 머리카락이 필요했다. 고델은 라푼젤을 납치했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해 성 안에 가둔 채 세상과 단절시켰다.
또한 고델은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은 라푼젤에게 "바깥은 매우 위험하고, 사람들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자신의 욕심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다 너를 위해서"라며 딸을 걱정해 주듯 말한다. 라푼젤은 양의 탈을 쓴 고델이 그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을 뿐이다.
지난 4월 배우 서예지가 전 연인이자 배우인 김정현을 조종했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이때부터 '가스라이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이로써 타인에 대한 통제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1938년 패트릭 해밀턴 작가가 연출한 스릴러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 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심리적 용어다. 연극 '가스등'은 1944년 영화로도 제작됐다. 그레고리 안톤(찰스 보이어)은 폴라 앨퀴스트(잉그리드 버그만)를 유혹하지만 사실 런던에 있는 그녀의 집에 더 관심이 많다.
안톤은 10년 전 보석을 훔치려다 실패해 폴라의 이모를 죽인 살인범이다. 그는 밤마다 폴라의 집안을 샅샅이 뒤진다. 의심을 피하고자 폴라와 주위 사람들에게 그녀가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안톤이 밤마다 보석을 찾는 동안 가스등 불이 약해졌고, 폴라는 이에 이상함을 느끼지만 모두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렇게 폴라는 스스로 미쳐가고 있음을 깨닫고 피폐해져 간다.
'서예지 가스라이팅' 논란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MBC 드라마 '시간'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포토타임을 위해 여주인공 서현이 상대 배우인 김정현에게 팔짱을 끼려고 했는데, 김정현이 이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또한 원활한 촬영을 위해 서현이 김정현 옆으로 다가서면, 그는 한 걸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현장에는 수많은 기자와 관계자들이 있었다. 극 중 커플로 등장하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알고 보니 김정현은 당시 배우 서예지와 교제 중이었다. 김정현은 남자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12회 만에 중도하차 해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2년 뒤 한 매체는 서예지의 조종으로 인해 김정현이 서현과의 스킨십을 거부했다며 '시간' 대본 일부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재구성해 공개했다.
대화 내용에 따르면 서예지는 김정현을 향해 (모든 여배우, 스태프들에게)'딱딱하게 대하라'고 주문하고, 김정현은 '딱딱하게 대했다'고 보고한다. 특히 서예지는 대본이 나오면 로맨스 없게, 스킨십 없게 잘 바꿔서 가라고 요구한다. 이에 김정현은 무조건 "알겠다"고 대답한다.
보도 이후 서예지 측은 "업계에서 연인 사이인 배우들 간에 흔히 있는 애정 싸움"이라고 해명했다.
얼마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tvN '알쓸범잡'에 출연해 "가스라이팅의 시작은 언제나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나니까 네 얘기를 들어주지, 얘기해 봐'라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예지와 김정현이 과거 교제 당시 나눈 문자 메시지 내용이 소개됐다. 해당 문자에는 "오늘은 어떻게 했는지 말 안 해?", "행동 잘하고 있어?", "기분 나쁘거든. 사진 찍어 보내봐", "나로 인해 자긴 행복하지. 날 그러니 더 행복하게 만들어"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오 박사는 "최근 언론에서 보도된 사례를 보면 끊임없이 보고한다. 보고를 받은 상대는 명령과 지시를 하고 판단을 내린다"고 두 사람이 보고와 지시를 주고받은 사이임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오 박사는 "의도치 않게 가스라이팅이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 가까운 사람이, 충고하는 건지 가스라이팅인지 헷갈리게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가스라이팅이 존재한다. 누군가를 대할 때, 과연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해서인지, 자신의 과한 욕심일 뿐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겠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영화 관련 이슈와 그 안에 숨겨진 1mm,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합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수도 있는, 영화 관련 여담을 들려드립니다.
"다 널 위해서야"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2010)엔 '과잉보호' 모친이 있다. 무려 18년 동안 친엄마 행세를 하며, 라푼젤을 조종한 납치범이자 사기꾼 고델이다. 고델은 '젊음'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라푼젤의 머리카락이 필요했다. 고델은 라푼젤을 납치했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해 성 안에 가둔 채 세상과 단절시켰다.
또한 고델은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은 라푼젤에게 "바깥은 매우 위험하고, 사람들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자신의 욕심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다 너를 위해서"라며 딸을 걱정해 주듯 말한다. 라푼젤은 양의 탈을 쓴 고델이 그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을 뿐이다.
지난 4월 배우 서예지가 전 연인이자 배우인 김정현을 조종했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이때부터 '가스라이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이로써 타인에 대한 통제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1938년 패트릭 해밀턴 작가가 연출한 스릴러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 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심리적 용어다. 연극 '가스등'은 1944년 영화로도 제작됐다. 그레고리 안톤(찰스 보이어)은 폴라 앨퀴스트(잉그리드 버그만)를 유혹하지만 사실 런던에 있는 그녀의 집에 더 관심이 많다.
안톤은 10년 전 보석을 훔치려다 실패해 폴라의 이모를 죽인 살인범이다. 그는 밤마다 폴라의 집안을 샅샅이 뒤진다. 의심을 피하고자 폴라와 주위 사람들에게 그녀가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안톤이 밤마다 보석을 찾는 동안 가스등 불이 약해졌고, 폴라는 이에 이상함을 느끼지만 모두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렇게 폴라는 스스로 미쳐가고 있음을 깨닫고 피폐해져 간다.
'서예지 가스라이팅' 논란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MBC 드라마 '시간'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포토타임을 위해 여주인공 서현이 상대 배우인 김정현에게 팔짱을 끼려고 했는데, 김정현이 이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또한 원활한 촬영을 위해 서현이 김정현 옆으로 다가서면, 그는 한 걸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현장에는 수많은 기자와 관계자들이 있었다. 극 중 커플로 등장하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알고 보니 김정현은 당시 배우 서예지와 교제 중이었다. 김정현은 남자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12회 만에 중도하차 해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2년 뒤 한 매체는 서예지의 조종으로 인해 김정현이 서현과의 스킨십을 거부했다며 '시간' 대본 일부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재구성해 공개했다.
대화 내용에 따르면 서예지는 김정현을 향해 (모든 여배우, 스태프들에게)'딱딱하게 대하라'고 주문하고, 김정현은 '딱딱하게 대했다'고 보고한다. 특히 서예지는 대본이 나오면 로맨스 없게, 스킨십 없게 잘 바꿔서 가라고 요구한다. 이에 김정현은 무조건 "알겠다"고 대답한다.
보도 이후 서예지 측은 "업계에서 연인 사이인 배우들 간에 흔히 있는 애정 싸움"이라고 해명했다.
얼마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tvN '알쓸범잡'에 출연해 "가스라이팅의 시작은 언제나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나니까 네 얘기를 들어주지, 얘기해 봐'라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예지와 김정현이 과거 교제 당시 나눈 문자 메시지 내용이 소개됐다. 해당 문자에는 "오늘은 어떻게 했는지 말 안 해?", "행동 잘하고 있어?", "기분 나쁘거든. 사진 찍어 보내봐", "나로 인해 자긴 행복하지. 날 그러니 더 행복하게 만들어"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오 박사는 "최근 언론에서 보도된 사례를 보면 끊임없이 보고한다. 보고를 받은 상대는 명령과 지시를 하고 판단을 내린다"고 두 사람이 보고와 지시를 주고받은 사이임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오 박사는 "의도치 않게 가스라이팅이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 가까운 사람이, 충고하는 건지 가스라이팅인지 헷갈리게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가스라이팅이 존재한다. 누군가를 대할 때, 과연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해서인지, 자신의 과한 욕심일 뿐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겠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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