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무환(無患) : 영화를 보면 근심이 없음을 뜻한다
영화 '어느가족' '가족의 탄생' '아들' '마더' 포스터./ 사진제공=네이버 무비
영화 '어느가족' '가족의 탄생' '아들' '마더' 포스터./ 사진제공=네이버 무비
추석 시즌에 볼만한 가족 소재의 영화들을 소개한다. <나홀로 집>에서처럼 온 가족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도 좋지만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질문과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영화들은 어떨까. 가족이 같이 보기에 불편한 영화들도 섞여 있을 수 있으니 주의.

피를 나눠야만 가족인가요

영어 family에 해당하는 우리말에는 가족(家族) 외에도 식구(食口)가 있다. 가족이 혈연에 방점을 둔 단어라면 식구는 끼니라는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같이 한다는 의미가 있다. <어느가족>과 <가족의탄생>은 피로 맺어져야만 가족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이다.

<어느가족>은 한국 영화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감독 중 한 사람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작이다. 원제(만비키(万引き)가족)는 '좀도둑 가족'이라는 뜻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어느 가족>이란 번역이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영화에서 한 집안에 모여 사는 여섯명의 사람들은 서로를 '선택'해 함께 살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엔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의 아들 내외와 손주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체의 혈연적 관계가 없는 '유사 가족'이다.

그들 모두에게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이라는 심리적 공통점이 있다.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부부가 아니며, 아들처럼 보이는 쇼타(죠 카이리)는 빠찡고 주차장에서 주워 왔고, 그의 누나처럼 보이는 아키(마츠오카 마유)는 가출해 유흥업소 '매직 미러'에서 유사 성행위를 하며 돈을 번다.

새롭게 이들과 더불어 살게 된 다섯 살짜리 유리(사사키 미유)는 친모가 "낳고 싶지 않았던 아이"라고 내뱉을 정도로 학대를 당해왔다. 도둑질은 그들의 생계수단 중 하나다. 마트 구멍가게 세탁공장 등 어디서든지 능숙하게 도둑질로 생필품을 마련하고, 주차장에서 고급차 털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혈연적 관계가 아니라 선택적 관계로 맺어진 삶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 크게 다툴 일도 없다. 대신 살을 맞대고 늘상 끼니를 같이 하는 식구로서 끈끈히 맺어지다 보니 어느새 부자, 모녀의 정이 싹트게 된다.

유사가족으로서 이들의 삶은 쇼타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잡히면서 해체된다. 유괴, 시신유기 등의 죄를 도맡아 뒤집어 쓴 노부요가 수사관과 나누는 대화는 이 영화의 최고 명대사중 하나로 꼽힌다. "낳았다고 다 엄마가 되나요"

<어느가족>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걸어도 걸어도>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등 가족에 천착해 온 고레에다 감독의 가족영화의 결정판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서 노부부가 사망하자 그 후손들이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연금을 챙겨오다 체포된 뉴스를 보고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2018년 칸 국제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았지만, 축전 보내기를 즐기던 아베 총리가 침묵하고,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일본의 국격을 깎아 내린 수치스런 영화"라고 비난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안도 사쿠라의 빛나는 연기는 빼놓을 수 없는 감상 포인트다. 영화 후반부 그가 취조실과 면회실에서 보여준 눈물 연기와 심지어 미소에서조차 눈시울이 붉어진다. 당시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고레에다 감독에게 "앞으로 내가 하는 눈물 연기는 무조건 안도 사쿠라의 연기를 흉내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을 정도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은 제목에서부터 가족 개념의 확장이 느껴진다. 이 영화에는 세가지 스토리가 있다.

학교 앞에서 분식집을 하는 미라(문소리)는 제대한 뒤 감감무소식이던 남동생 형철(엄태웅)이 5년만에 돌아온다고 하자 기뻐하다 정작 동생을 보고는 당황한다. 스무살 연상의 술집 작부 냄새를 풍기는 무신(고두심)을 아내라고 소개한다.

몇일 뒤 채현이라는 어린 여자 아이가 불쑥 나타나는데, 무신의 애도 아닌 '전 남편의 전 부인의 아이'다. 남동생은 무책임하게 집을 나가고, 미라와 무신, 채현 이렇게 피 한방울 섞이지 않는 세 사람의 황당한 동거가 시작된다.

일본인 관광객 가이드를 하고 있는 선경(공효진)은 엄마 매자(김혜옥)와 애증의 관계다. 매자가 사랑하는 남자는 유부남(주진모)이다. 매자가 병으로 요절한 뒤 선경은 아버지가 다른 초등학생 남동생 경석을 떠안게 된다. 청년이 된 경석(봉태규)은 열차에서 옆자리에 앉게 된 채현(정유미)과 연인이 된다. 그러나 경석은 채현이 주변 사람들에게 다 잘해주느라 정작 자신에게는 집중하지 않자 "헤프다"고 비난하고 이 탓에 자주 다투게 된다.

경석은 채현의 고향집 앞에서 서로 헤어지기로 했으나, 곧바로 채현의 '엄마들'인 미라와 무신을 만나게 되고 큰 환대를 받는다. 미라 무신 채현 경석 네 사람이 함께 김장 김치를 담그는 장면은 기묘한 가족의 확장을 예고한다. 한국 사회의 전통적 가족 관념의 변화를 반영하는 시대적 의미와 함께, 어색한 사람들의 만남이 결국은 훈훈한 삶으로 이어지는 영화 얼개가 좋은 평가를 끌어낸다.

용서와 집착

어느날 아들을 죽인 소년을 만났다. 그것도 내 제자로. 분노와 증오, 복수 같은 단어들만 떠오를 듯한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벨기에의 형제 감독 다르덴 형제의 영화 '아들'의 화두다.

5년 전 아들을 잃고 아내와도 이혼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소년원 출신들을 대상으로 한 재활센터에서 목공기술을 가르치는 그에게 16세 소년 프랜시스(모르강 마린)가 신입생으로 들어온다. 명부에서 이름을 보는 순간 그의 눈빛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영화에는 OST가 없다. 미장센도, 풍광신도 없다. 사연 전개도 없으며, 초중등생 정도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대화만 있다. 영화는 올리비에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표정을 땀구멍이 보일 정도로 근접 촬영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카메라가 사람 시선만을 쫓아가는 극밀접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다.

영화는 올리비에로부터 아들의 살인범을 가르치게 됐다는 말을 들은 전 아내가 불같이 화를 내는 장면부터 속도가 붙는다. "당신 대체 누구 편이야? 아무도 너처럼 안 해!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아내의 분노에 올리비에는 답한다. "나도 모르겠어."

올리비에가 자신이 죽인 아이의 아버지인 것을 모르는 소년은 자신의 후견인이 돼달라는 요청까지 한다. 주말 프랜시스를 데리고 형이 하는 목재소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갈등은 고조된다. 운전 도중에 자신이 사람을 죽인일을 고백하는 프랜시스에게 올리비에는 아들임을 여전히 숨긴 채 이유를 묻는다. 카 스테레오 도둑질을 막길래 이를 뿌리 치느라 목을 조르다 죽이게 됐다고. 그리고 이어 후회의 이유를 감옥에서 5년이나 썩은데서 찾는다.

죽은 사람에 대한 죄의식,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일에 대한 반성은 없다. 올리비에는 결국 목재소에서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밝힌다. 도망가고 숨고 목재를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하는 프랜시스와 그를 추격하는 올리비에.

결국 올리비에는 프랜시스를 붙잡아 목 위에 올라타지만 놓아주고 만다. 영화는 이처럼 말미에 용서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너무나도 급작스레 영화를 종료시키는 바람에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게 한다.

올리비에가 프랜시스를 용서했는지, 프랜시스에서 죽은 아들의 빈자리를 느꼈는지, 해소하지 못할 증오를 품고 살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관객 몫으로 돌린 듯 하다.

<아들>에 비해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부모는 자식에게 광적으로 집착한다. 엄마(김혜자)는 정신 장애 아들 동준(원빈)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처절하고 필사적인 노력을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숭고한 모성애가 아닌 몇 가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엄마는 동준에게 커다란 죄의식을 갖고 있다.

동준이 다섯 살 때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농약 박카스'를 동준에게 먼저 먹이고, 이로 인해 동준이 정신 이상이 온 데 대한 죄의식이다. 후에 동준이 이때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괴로워 한다.

엄마의 모성애는 죄의식이라는 자기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갈망과 맥이 닿아 있다. 그래서 동준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엄마 자신을 위한 일이다. 우발적이긴 하지만 동준이 살인범임을 목격한 유일한 증인 고물상 노인(이영석)을 스스럼 없이 죽일 수 있는 것도 그래서 가능하다.

<기생충>의 구도와 비슷하게 이 영화에서도 밑바닥 인생들간의 싸움이 벌어진다. 생계를 위해 쌀 한 꾸러미만 쥐어줘도 몸을 파는 '쌀떡 소녀' 문아정(문희라)과 '동네바보' 동준은 서로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리며 충돌한다.

두 사람은 가장 혐오하는 단어 '남자'와 '바보, 등신'이란 표현에 발끈해 돌덩이를 서로에게 던지다가 사건이 발생한다.

영화 첫 장면과 엔딩 장면이 이처럼 인상적인 영화도 드물다. 김혜자가 벌판에서 넋나간 사람처럼 춤을 추는 첫 장면에서는 귀기가 느껴지고, 이병우의 끼로 가득찬 음악 <춤>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버스에서 몸을 흔들어대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광기가 느껴진다.

엄마는 버스 좌석에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모든 걱정을 잊게 해주는 혈자라인 허벅지 한 곳에 침을 놓으면서 그토록 바라던 망각의 길을 택했다. 불에 타버린 고물상 창고에서 엄마의 침 케이스를 찾아 몰래 갖다 준 공범 아들에게도 언젠가 그 자리에 침을 놓아 줄 것만 같다.

글. 윤필영
주말 OTT 뽀개기가 취미인 보통 직장인. 국내 한 대기업의 영화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각으로 영화 이야기를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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