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
영화 의 등장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삼은 만큼 흥행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그러나 활자일 때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책을 치워둘 정도로 두려운 존재였던 사다코는 그 이후로 한동안, 심지어 최근까지도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귀신의 외적 기준이 되었다. 물론 사다코의 후손들을 공포의 주체로 등장시킨 영화들은 안일한 아류작에 머물 수밖에 없었지만 사다코는 그 정도로 강렬했다. 얼굴을 뒤덮은 긴 머리카락, 몸의 어느 기관에서도 나지 않을 것 같은 생경한 소리, 기괴하게 꺾어지는 관절. 비디오에서 브라운관 밖으로 기어 나온 사다코처럼 소설 안에 머물던 공포를 스크린으로 확장시킨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사다코가 범아시아적이며 전통적인 배경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중국의 유령화에서도 원형이 있을 수도 있겠고, 사다코가 입은 소복도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죽음을 연상시키죠. 특히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게 이나 ‘J-호러’, 아시아의 다른 작품들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어요. 서양과 다르게 동양에서는 감추면서 무서움을 조장하는 부분이 강한데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 또한 그 일종이라고 할 수 있죠. 보이지 않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시아의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그가 할리우드로 건너간 뒤 내놓은 나 를 원작으로 삼은 가 예전만큼 살 떨리는 쾌감을 주지 못한 아쉬움의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일본의 공포영화에 ‘J-호러’라는 황금기를 가져다 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추천하는 공포영화 5편이다. 의 원형이 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임산부나 노약자,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피하길 권한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1. (Lat Den Ratte Komma In)
2008년 | 토마스 알프레드슨
“3년 전에 비행기에서 봤습니다.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의 감정도 양질로 잘 담아냈고 호러영화의 정수도 잘 살려낸 것 같아요. 예산이 많지 않았을 텐데도 특수효과를 잘 이용해서 무서운 건 확실히 무섭게 표현했죠. 호러영화의 공통된 테마인 유령이나 괴물 같은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존재의 고독이 이 영화에서는 뱀파이어 소녀나 이지메 당하는 소년을 통해 살아있습니다.”
이것은 동화 같은 예쁜 외피를 쓴 지독한 사랑의 악행에 대한 보고서다. 외로운 소년 오스칼은 신비로운 소녀 이엘리를 만나게 되고, 곧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분명 소년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 될 뱀파이어 소녀와의 운명은 스웨덴의 얼음같이 차가운 눈 위에 선명한 선혈을 남긴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2. (The Haunting)
1963년 | 로버트 와이즈
“을 만들 때 참고를 많이 한 작품입니다. 유령의 집이 배경인데도 귀신이나 유령은 일절 나오지 않아요. 오히려 그 집에 가게 된 사람들의 감정, 불안한 정신상태에 의해 공포가 조성되죠. 그 부분이 아이러니하면서 좋았어요. 을 만들기 전에 다카시 히로시 감독이 꼭 보라고 해서 봤는데 세계 호러영화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걸작이라 생각합니다.”
셜리 잭슨의 소설 은 로버트 와이즈 감독과 쟝 드봉 감독에 의해 두 번이나 영화화됐다. 두 감독 모두 귀신들린 집으로 불리지만 실제 귀신이나 유령은 등장하지 않으면서 공포를 자아내는 원작에 매혹됐을 것이다. 영화는 현란한 특수효과나 두려움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 없이도 스크린 바깥의 온도를 낮춘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3. (The Ghost Of Yotsuya)
1959년 | 나카가와 노부오
“일본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에요. 가부키에서도 수백 년 동안 상연되고 매년 여름이면 납량물로 만들어질 정도로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귀신, 오이와가 등장하죠. 사무라이 남편에 의해 독살당한 귀신인데 의 사다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영화로 10편 가까이 나왔고 제가 매우 경외하는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님이 만드신 영화는 을 만드는데 있어서 최소한 다섯 번 이상 봤습니다.”
수십 년 동안 연극과 드라마, 영화로 되풀이되고 있는 요츠야 괴담을 일본 공포영화의 장르적 토대를 만든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에 의해 수작으로 완성되었다. 은 괴담영화가 유난히 발달한 일본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힌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4. (Ghost Story)
1964년 | 고바야시 마사키
“일본의 전통예능, 만담의 일종인 라쿠코 전문가가 만든 8편의 괴담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에도시대가 배경인데요, 어떻게 보면 살로메 신화와도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자가 죽으면서 연인에게 저주를 내려요. 앞으로 네가 만나는 여자는 다 죽이겠다고 말이죠. 실제로 저주가 실행되면서 남자도 미쳐가서 결국 죽게 되는데 마지막 장면이 매우 강렬합니다. 저도 이 괴담을 영화로 만들었는데요 () 제가 만들었으니까 걸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전심전력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 있다면 일본에는 괴담이 있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일본의 괴담들을 시대극에 재능을 가진 감독에 의해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로 재탄생했다. 제 1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최근에는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을 비롯한 전후 일본 대중영화의 거장들의 특별전이 영상자료원에서 열리기도 했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5. (Cure)
1997년 | 구로사와 기요시
“사람들이 면전에선 상냥하게 웃고 얘기하지만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잖아요. 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최면술로 드러내게 하면서 최면술 자체가 갖고 있는 무서운 요소를 그려냈어요. 는 ‘전도사’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영화의 반전과 힌트가 숨어있죠. 을 만들기 시작할 때 나온 작품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 을 이것보다 더 무서운 작품으로 만들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웃음)”
나카다 히데오 감독과 함께 ‘J-호러’의 아이콘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 최면과 현실, 상상의 경계를 오가며 벌어지는 살인사건보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내면을 잠식한 어둠이 더 오싹하다. 최근 한국에서 제작한 공포영화 로 여전히 공포영화의 전문가로서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제 1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의외의 고백을 들려줬다. “여성들의 긴 머리에 공포를 느껴요. 젖은 채로 늘어뜨려있거나 침대 밑 같은 데 뭉텅이로 빠져있는 머리카락을 보면 무서워요. (웃음)”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공포영화들을 신나게 소개하는 모습에서 그가 어떻게 ‘J-호러’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본인 치고는 풍부한 편”이라는 제스처로 여주인공의 섬뜩한 마지막 얼굴을 재연해보이고, 등장인물들의 고난을 실감나는 효과음을 동원해 세밀화로 찍어내는 감독의 카메라는 머리카락조차 무서워하는 심성의 소유자가 공포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이 성실한 관찰자는 신작 으로 원혼보다 더 위협적인 인간의 내면을 들춰내기에 이르렀다. 나카다 히데오가 위대한 감독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할 지를 명민하게 알고 있는 감독임에는 틀림없다.
글. 이지혜 seven@
영화 의 등장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삼은 만큼 흥행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그러나 활자일 때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책을 치워둘 정도로 두려운 존재였던 사다코는 그 이후로 한동안, 심지어 최근까지도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귀신의 외적 기준이 되었다. 물론 사다코의 후손들을 공포의 주체로 등장시킨 영화들은 안일한 아류작에 머물 수밖에 없었지만 사다코는 그 정도로 강렬했다. 얼굴을 뒤덮은 긴 머리카락, 몸의 어느 기관에서도 나지 않을 것 같은 생경한 소리, 기괴하게 꺾어지는 관절. 비디오에서 브라운관 밖으로 기어 나온 사다코처럼 소설 안에 머물던 공포를 스크린으로 확장시킨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사다코가 범아시아적이며 전통적인 배경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중국의 유령화에서도 원형이 있을 수도 있겠고, 사다코가 입은 소복도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죽음을 연상시키죠. 특히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게 이나 ‘J-호러’, 아시아의 다른 작품들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어요. 서양과 다르게 동양에서는 감추면서 무서움을 조장하는 부분이 강한데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 또한 그 일종이라고 할 수 있죠. 보이지 않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시아의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그가 할리우드로 건너간 뒤 내놓은 나 를 원작으로 삼은 가 예전만큼 살 떨리는 쾌감을 주지 못한 아쉬움의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일본의 공포영화에 ‘J-호러’라는 황금기를 가져다 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추천하는 공포영화 5편이다. 의 원형이 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임산부나 노약자,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피하길 권한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1. (Lat Den Ratte Komma In)
2008년 | 토마스 알프레드슨
“3년 전에 비행기에서 봤습니다.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의 감정도 양질로 잘 담아냈고 호러영화의 정수도 잘 살려낸 것 같아요. 예산이 많지 않았을 텐데도 특수효과를 잘 이용해서 무서운 건 확실히 무섭게 표현했죠. 호러영화의 공통된 테마인 유령이나 괴물 같은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존재의 고독이 이 영화에서는 뱀파이어 소녀나 이지메 당하는 소년을 통해 살아있습니다.”
이것은 동화 같은 예쁜 외피를 쓴 지독한 사랑의 악행에 대한 보고서다. 외로운 소년 오스칼은 신비로운 소녀 이엘리를 만나게 되고, 곧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분명 소년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 될 뱀파이어 소녀와의 운명은 스웨덴의 얼음같이 차가운 눈 위에 선명한 선혈을 남긴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2. (The Haunting)
1963년 | 로버트 와이즈
“을 만들 때 참고를 많이 한 작품입니다. 유령의 집이 배경인데도 귀신이나 유령은 일절 나오지 않아요. 오히려 그 집에 가게 된 사람들의 감정, 불안한 정신상태에 의해 공포가 조성되죠. 그 부분이 아이러니하면서 좋았어요. 을 만들기 전에 다카시 히로시 감독이 꼭 보라고 해서 봤는데 세계 호러영화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걸작이라 생각합니다.”
셜리 잭슨의 소설 은 로버트 와이즈 감독과 쟝 드봉 감독에 의해 두 번이나 영화화됐다. 두 감독 모두 귀신들린 집으로 불리지만 실제 귀신이나 유령은 등장하지 않으면서 공포를 자아내는 원작에 매혹됐을 것이다. 영화는 현란한 특수효과나 두려움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 없이도 스크린 바깥의 온도를 낮춘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3. (The Ghost Of Yotsuya)
1959년 | 나카가와 노부오
“일본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에요. 가부키에서도 수백 년 동안 상연되고 매년 여름이면 납량물로 만들어질 정도로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귀신, 오이와가 등장하죠. 사무라이 남편에 의해 독살당한 귀신인데 의 사다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영화로 10편 가까이 나왔고 제가 매우 경외하는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님이 만드신 영화는 을 만드는데 있어서 최소한 다섯 번 이상 봤습니다.”
수십 년 동안 연극과 드라마, 영화로 되풀이되고 있는 요츠야 괴담을 일본 공포영화의 장르적 토대를 만든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에 의해 수작으로 완성되었다. 은 괴담영화가 유난히 발달한 일본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힌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4. (Ghost Story)
1964년 | 고바야시 마사키
“일본의 전통예능, 만담의 일종인 라쿠코 전문가가 만든 8편의 괴담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에도시대가 배경인데요, 어떻게 보면 살로메 신화와도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자가 죽으면서 연인에게 저주를 내려요. 앞으로 네가 만나는 여자는 다 죽이겠다고 말이죠. 실제로 저주가 실행되면서 남자도 미쳐가서 결국 죽게 되는데 마지막 장면이 매우 강렬합니다. 저도 이 괴담을 영화로 만들었는데요 () 제가 만들었으니까 걸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전심전력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 있다면 일본에는 괴담이 있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일본의 괴담들을 시대극에 재능을 가진 감독에 의해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로 재탄생했다. 제 1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최근에는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을 비롯한 전후 일본 대중영화의 거장들의 특별전이 영상자료원에서 열리기도 했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5. (Cure)
1997년 | 구로사와 기요시
“사람들이 면전에선 상냥하게 웃고 얘기하지만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잖아요. 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최면술로 드러내게 하면서 최면술 자체가 갖고 있는 무서운 요소를 그려냈어요. 는 ‘전도사’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영화의 반전과 힌트가 숨어있죠. 을 만들기 시작할 때 나온 작품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 을 이것보다 더 무서운 작품으로 만들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웃음)”
나카다 히데오 감독과 함께 ‘J-호러’의 아이콘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 최면과 현실, 상상의 경계를 오가며 벌어지는 살인사건보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내면을 잠식한 어둠이 더 오싹하다. 최근 한국에서 제작한 공포영화 로 여전히 공포영화의 전문가로서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에 버금가는 공포영화들" />제 1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의외의 고백을 들려줬다. “여성들의 긴 머리에 공포를 느껴요. 젖은 채로 늘어뜨려있거나 침대 밑 같은 데 뭉텅이로 빠져있는 머리카락을 보면 무서워요. (웃음)”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공포영화들을 신나게 소개하는 모습에서 그가 어떻게 ‘J-호러’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본인 치고는 풍부한 편”이라는 제스처로 여주인공의 섬뜩한 마지막 얼굴을 재연해보이고, 등장인물들의 고난을 실감나는 효과음을 동원해 세밀화로 찍어내는 감독의 카메라는 머리카락조차 무서워하는 심성의 소유자가 공포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이 성실한 관찰자는 신작 으로 원혼보다 더 위협적인 인간의 내면을 들춰내기에 이르렀다. 나카다 히데오가 위대한 감독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할 지를 명민하게 알고 있는 감독임에는 틀림없다.
글.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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