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또래 배우들이 많은 현장이라 그런지 쉬는 시간에도 쉴 새 없이 떠들더라. (웃음)
이종석: 촬영 들어가기 전에 2주 정도 다 같이 모여서 대본 리딩을 했기 때문에 빨리 친해졌다. 촬영이 없는 날에도 모여서 수다를 떤다. 송하경(박세영), 변기덕(김영춘), 계나리(전수진), 김종현(김종현), 그리고 내 뒤에 앉는 이규환이 고정 멤버다. 사실 내가 흥수파, 남순이파를 가른다. 넌 흥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이러면서. (웃음) 남순이를 제일 좋아하는 친구는 김종현인 것 같다.
“오직 남순이한테만 집중하고 싶다”
Q. 고남순은 기존 학교 드라마에 등장하는 냉정한 모범생이나 거친 반항아처럼 뚜렷하게 잡히는 캐릭터가 아닌데, 처음 대본을 봤을 땐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이종석: 1회 대본만 받았을 때는 캐릭터가 분명하지 않아서 감이 안 잡혔다. 너무 불안해서 편집실에 자주 가서 모니터링을 할 정도였다. 애가 표정도 없고, 친구들을 대할 때도 의욕이 없고, 정호(곽정욱)가 ‘삥’을 뜯으면 그냥 돈을 주고 때리면 맞고, 그러다가 갑자기 영우(김창환)를 도와주고. 어떻게 보면 남순이는감정이 없는 아이같았다. 작가님도 “남순이랑 친해지기 힘들죠?”라고 말씀하셨다.
Q. 남순이와 친해진 건 언제부터였나.
이종석: 2회에서 ‘풀꽃’이라는 시를 읊는 장면을 촬영하고 나서 남순이를 대하는 게 굉장히 편해졌다. 남순이는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어른스러운 친구다. 본인도 정호처럼 지낸 시절이 있었으니까 정호를 그냥 다 이해해 주고, 오지랖도 정말 넓어서 가볍게 얘기를 툭 던져도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준다. 물론,시를 읊는다는 게 왠지오글거려서 대본을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지만. (웃음) 촬영할 때도 난 정말 진지한데 애들이 너무 웃어서 찍고 나서도 좀 찝찝했다. 근데 방송을 보고 알았다. 와, 남순이는 멋있는 아이구나.
Q. 사랑받은 기억이 없는 인물인데 어떻게 친구들이나 선생님한테 관심을 보이고 사랑을 베풀 수 있었을까.
이종석: 남순이가 유일하게 사랑을 받은 사람이 흥수였다. 이런 우정이 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각별했을 거다. 어머니가 안 계신 것 같고 아버지도 멀리 계시고 강주(효영)한테 무심한 거 보니까 연애도 한 번도 안 해봤을 것 같고, 남순이는 어릴 때부터 그냥 흥수랑만 놀았을 것 같다.
Q. 남순이가 결국 자퇴를 하고 나오면서 흥수에게 “내가 버린 건, 학교가 아니라 너다 이 새끼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흥수를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느껴졌다.
이종석: 대본을 볼 때부터 울었다. 흥수 얼굴이 나오고 난 어깨만 걸리는 장면을 찍을 때도 그렇게 눈물이 났다. <학교>를 찍으면서 눈물이 정말 많아진 것 같다. 평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운 적은 많지만 실제로 서러워서 운 적은 별로 없었다.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이렇게까지 눈물을 흘리면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낀 적도 없었는데, 남순이랑 친해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감정이 따라 나왔다.
Q. 중요한 감정을 표현할 때면 이민홍 감독님이 느낌 위주로 설명하면서 디렉팅을 하던데,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떤가.
이종석: 좀 추상적으로 말씀하셔서 이해가 안 될 때도 많은데, 그냥 한다. 하하. 그동안 연기를 해오면서 생긴 나쁜 버릇들 중 하나가 표정 연기를 할 때 눈동자를 많이 쓰는 거다. 감독님이 그런 건 조잡해 보이니까 가짓수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표현하라고 하시는데, 표정을 안 쓰고 표현하는 게 참 어렵다. 평소엔 감독님이 굉장히 엄하신데 가끔 민홍이 형이라고 불러드리면 정말 좋아하신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혼자 애교 부리고 까불까불하는 스타일이다.
Q. 처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을 맡았는데 배우로서 가장 많이 배운 게 있다면.
이종석: 연기자를 꿈꿔왔지만 늘 연기할 때마다 긴장했는데 지금은 정말 재밌다. 연기하면서 이렇게 재밌어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남순이를 보내고 싶지 않다. 이런 캐릭터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남순이와 정이 많이 들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절대 다른 걸 하지 않았다. 처음엔 벅차서 안했고, 지금은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안한다. 오직 남순이한테만 집중하고 싶다.
“남순이에게 흥수란 아버지이자 가족”
Q. <학교>가 끝난 후에도 남순이가 어디선가 계속 살아가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종석: 일단 대학은 안 가고 그냥 열심히 살 것 같다. 야채 장사를 하든 맥주를 팔든. 흥수와의 관계가 해결됐다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해소된 거니까 많이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Q. 왠지 그 때도 라면을 계속 먹고 있을 것 같은데 (웃음) 남순이는 어떤 라면을 가장 좋아할 것 같나.
이종석: 파나 계란을 하나도 넣지 않고 조리법에 정확히 맞춰서 만든 오리지널 라면. 라면만 고집하는 걸 보면 진짜 좋아해서 먹는다는 건데, 그러면 다른 재료를 넣지 않는 걸 좋아할 것 같다.
Q. 본인은 학창시절에 어떤 아이였나.
이종석: 집에 있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무기력한 면은 남순이와 많이 닮았지만, 그냥 조용한 아이에 더 가까웠다. 지금 2학년 2반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되는 인물처럼 살았다고 보면 된다.
Q. 그 때 가장 큰 고민은 뭐였나.
이종석: 난 언제 데뷔를 하나. (웃음) 굉장히 빨리 데뷔한 건데 그 땐 왜 그렇게 조급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그 때 아예 더 힘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내 딴에는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연기를 하다 보니 내 인생의 파도가 없었는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 너무 많더라.
Q. 마지막 질문이다. 남순이에게 흥수란?
이종석: 거창하게 설명할 것 없이 아버지이자 가족이다.
Q. 그럼 반대로 흥수는 남순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종석: 애새끼? 으하하하! 남순이가 남들 앞에서는 어른스러운데 흥수 앞에서는 아이 같다.
“10회 엔딩은 대본 볼 때부터 울었다”
Q. 남순이와 흥수가 화해의 단계에 들어섰다. 그동안 남순이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미묘하게 조절하면서 연기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김우빈: 대본에 충실한 편이다. 현장에서 (이)종석이랑 얘기도 많이 하고 상상을 하면서 만들어간다. 뒤에 이런 게 있을 것 같으니까 여기서는 좀 더 깊게 들어가자, 혹은 여기서는 좀 가볍게 치자, 이렇게.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아서 내가 알아서 계산하기보다는 감독님을 믿고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다. 눈 깜박이지 말라고 하면 안 깜박이고. (웃음)
Q. 흥수가 “넌 나 안 보고 싶었냐”면서 해묵은 감정이 폭발하는 10회 엔딩을 촬영할 땐 어떻게 감정을 잡아갔나.
김우빈: 대본 지문에는 흥수가 눈물을 참으면서 뒷모습을 보인다고 나와 있는데, 이미 난 대본을 보면서 울었다. “나한테 축구 말고는 너 밖에 없었는데. 축구 날리고 죽고 싶었을 때 너라도 그냥 있었어야지” 부분에서 눈물이 터졌다. 그래서 작가님한테 아무래도 감정 조절이 대본대로 안 될 것 같은데 울어도 되냐고 여쭤봤더니, 작가님도 원래 운다고 쓰려고 했는데 남자 둘이서 우는 게 좀 쑥스러울까 봐 그렇게 썼다고 하시면서 감정 흐르는 대로 편하게 해도 된다고 하셨다. 근데 남순이 쪽을 찍을 때 내가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오열을 해버린 거다. 사람이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지 않나. 막상 카메라가 내 쪽을 향했을 땐 눈물도 쏙 들어간 데다 주변에 사시는 주민 분들 목소리가 마이크에 들어가서 몇 번이나 다시 찍느라 되게 힘들었다.
Q. 갈수록 흥수와 남순이의 우정이 멜로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서 봤을 땐 어떤가.
김우빈: 남자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이런 우정은 있을 수가 없다. 하하. 그냥 만나면 서로 욕하고 장난치고 놀러 다니고. 물론 이 정도로 사랑하는 친구는 많지만 보통 친구 사이에는 흥수와 남순이가 겪었던 아픈 사건이 없다 보니까 우정을 확인 못하는 것 같다.
Q. KBS <화이트 크리스마스>, SBS <신사의 품격>에 이어 반항적인 고등학생 캐릭터를 맡은 게 세 번째다. 남들이 보기엔 비슷한 설정일지몰라도 스스로 차이점을 두고 캐릭터를 만들었을 텐데, 흥수의 어떤 면을 중심에 놓고 연기했나.
김우빈: 흥수는 그냥 반항적인 아이라기보다는 아픔이 많은 친구다. 행동도 느리고 수업도 그냥 앞에서 선생님이 얘기하니까 듣는 것 뿐, 의욕도 없고 굉장히 무기력한 상태다. 그나마 남순이를 다시 만나서 애증의 감정이 생겼지만 공백기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관계를 받아들이려고 애쓰다가도 어색하고, ‘에이 아니야, 다시 친구하자’라고 결심하다가도 또 마음대로 안 되는 거다.
Q. 그런 감정을 대사보다 눈빛이나 분위기로 표현해야 될 때가 많기 때문에 대본에 나와있는 것 이상으로 캐릭터를 연구하는 게 필요했을 텐데.
김우빈: 처음 연기를 배울 때부터 인물의 일대기를 작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흥수가 가지고 있는 아픔에 중점을 두고 캐릭터를 디테일하게 만들어갔다. 예를 들어 남순이한테 “너는 나 안보고 싶었냐”면서 울 때는, 축구 때문에 제대로 효도도 못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상황에서 남순이마저 없으니까 정말 힘들고 상처를 많이 받았겠다는 상상을 했다.
“흥수에게 남순이란 살아가는 이유?”
Q. 자신의 꿈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아무리 친한 친구였어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건데, 실제로 내 친구가 이런 실수를 했다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김우빈: 종석이랑도 그 얘기를 해봤는데, 이렇게까지 길게 끌고 가진 않을 것 같다. 매일 보는 사이인데 불편하면 아예 전학을 가고, 풀 거였으면 차라리 욕을 하거나 때리고, 진짜 아예 끝까지 갔으면 ‘어차피 넌 축구 안하니까 다리 부러뜨리자’ 하면서 ‘퉁치는’ 걸로 끝낼 것 같다. (웃음)
Q. 학창시절엔 어떤 아이였나.
김우빈: 친구들, 선생님들을 좋아했다. 양호 선생님과 음악 선생님 빼고 전부 남자 선생님이라 굉장히 거친 분위기였다. 규율도 엄격해서 핸드폰 한 번 뺏기면 세 달씩 못 받았는데, 난 다행히 며칠 후 소풍을 가서 바로 돌려받았다. 딱히 2반의 누구를 꼽긴 어려운데, 그나마 남순이랑 비슷했던 거 같다. 발랄하지만 모범생은 아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만 친한 친구는 따로 있고.
Q. 흥수처럼 축구도 좋아했나.
김우빈: 초등학교 땐 정말 좋아했는데 중학교 운동장이 너무 좁아서 축구 잘하는 애들이 공을 차면 골대를 다 넘어갔다. 그래서 그 때부터 안했다. (웃음)
Q. 마지막 질문이다. 흥수에게 남순이란?
김우빈: 약간 과장해서 얘기하면 흥수가 살아가는 이유? 남순이가 없으면 과연 흥수는 어디에 있을까 라는 질문도 던져봤다. 그만큼 흥수에게 남순이는 없으면 안 되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없어지니까 막 살게됐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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