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만 반복 주행하기엔 일주일이 너무 길다. 그러니 퇴근 직후 30분 동안 실컷 웃고 싶은 직장인들, 금요일 밤 11시에 오디션 프로그램 보기 싫은 사람들, 내가 제일 못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는 소심증 환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늘 마이너스로 수렴하는 통장 잔고가 미스터리한 워킹 푸어, 꽃미남들이 TV에 하루 30분씩 나와 주면 그저 행복한 누나들은 주목하길.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까지 앞다투어 시트콤 시장에 뛰어들며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요즘, 기자들과 윤이나 TV 평론가가 각자 주목하고 있는 시트콤 다섯 편을 추천한다. 냉정과 애정 사이를 오가는 분석은 물론 굉장히 실용적인 별점평도 함께 매겼다.KBS2 월~금 저녁 7시 45분
도대체 어떤 장르인가: 식욕 왕성한 선녀들의 판타지 로맨스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모녀 선녀 왕모(심혜진)와 채화(황우슬혜)가 인간 세상의 단골 선녀탕을 방문하지만 알고 보니 그 곳은 촬영 세트장이요, 방심하는 사이 단역 배우가 가짜 선녀 옷과 바꿔 도망갔다. 결국 두 사람은 날개옷을 찾을 때까지 연예기획사 사장 세주(차인표)의 집에 얹혀살면서 점점 인간 세상에 찌들게 된다. 이 사람을 주목하라: ‘바바라 퀸 치킨’ CEO 금보화(박희진). 이름만 봐서는 돈만 밝히는 악덕 사장 같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금보화 사장의 ‘Bubble Pop!’ 무대를 지켜보다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손바닥에 불날 정도로 박수 한 번만 쳐주면 그 날 치킨 값은 공짜다. 조카뻘 아이들 틈에 껴서 오디션까지 응시할 정도로 노래와 춤을 사랑한다. 물론 주특기는 성대모사. 자꾸 왕모를 어디서 봤다면서 툭툭 던지는 성대모사 때문에 오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우리 금보화 사장 절대 안성댁 아니다.
당신을 위해 태어났다!
21세기에도 여전히 UFO의 존재를 믿는 순수한 추종자들
퇴근 직후 머리 쓰지 않고 30분 동안 실컷 웃고 싶은 직장인들
잘 먹는 여자가 좋은 남자들
남자보다 많이 먹는 내가 좋은 여자들
일단 따지자면 단점: 미남은 있되 꽃미남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장점: 차인표의 2012년 버전 분노 3종 세트, 차인표는 역시 화내는 게 매력.
엄마아빠와 함께 볼 수 있나? ☆☆☆☆
뻔하지 않은 이야기 볼 수 있나? ☆☆☆
주체할 수 없는 폭소 유발할 수 있나? ☆☆☆
글. 이가온 SBS 금요일 밤 11시 5분
도대체 어떤 장르인가: 해커를 신봉하는 좀도둑들의 반쪽짜리 코믹추리물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점집을 털러 간 선달(오달수)과 원삼(임원희)은 떡을 먹던 도롱뇽 도사(이병준)가 자신들을 보고 쓰러지자 돈을 벌기 위해 가짜 도사 행세를 한다. 이들은 충격으로 치매에 걸린 도사, 아버지를 죽인 원수 X를 찾기 위해 도사의 기억이 필요한 민혁(민호)과 1억을 모을 때까지만 같이 살기로 한다. 이 사람‘들’을 주목하라: 소녀시대 태연, 아이유, 인피니트 엘, 비스트 용준형, 샤이니 태민과 키, 제국의 아이들 광희, 다이나믹 듀오 등 수많은 카메오들. 이 시트콤의 총력은 카메오 캐스팅에 쏠려 있으니 주인공들의 과거사는 물론 정식 출연자 규선(김규선)조차 밀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자라면 원삼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남자라면 범인으로 등장하는 카메오들은 하나같이 5분을 50분처럼 만드는 발군의 타임워프 능력을 보여준다. 설마라고? “정말이에요. 어찌나 뛰어나던지 진짜 ‘발 연기’를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니까요!”
당신을 위해 태어났다!
금요일 밤 11시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기 싫은 사람들
시리즈의 임원희를 보며 혼자 웃다 부끄러웠던 사람들
정기적으로 샤이니 민호를 보고 싶은 약속 없는 누나들
비정기적으로 여자 아이돌을 보고 싶은 약속 없는 삼촌들
결정적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추리물을 본 적이 없어 추리물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들
일단 따지자면 단점: 그래서 X는 대체 언제 나올 것인가, 추리 스릴러는 산으로 가버렸다.
굳이 따지자면 장점: 그런데도 반전이 될 것만 같은 소소한 복선, 잊을 만하면 나온다.
엄마아빠와 함께 볼 수 있나? ☆☆☆
뻔하지 않은 이야기 볼 수 있나? ☆☆
주체할 수 없는 폭소 유발할 수 있나? ☆
글. 한여울 MBC 에브리원 토요일 밤 11시 30분
도대체 어떤 장르인가: 고품격 엔터테인먼트 서바이벌 로맨틱 기업극화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구청 부지를 무단 점유하고 있는 해병대 컨테이너에 세 들어 근근이 살아가는 군소기획사 희 엔터테인먼트의 수장 구 대표(박희본)의 오만궁상 생존기. 파워 없는 매니저, 의리 없는 배우, 눈치 없는 인턴, 센스 없는 광고주가 벌이는 ‘누가누가 찌질한가’ 대결은 MBC 도, SBS 도 보여주지 못한 궁극의 업계 기밀이다. 이 사람을 주목하라: 희 엔터테인먼트의 차세대 청춘스타 윤박(윤박)을 빼돌린 대형기획사 일국 엔터테인먼트의 오한철(조한철) 본부장. 소속 연기자의 성생활 및 야동 취향 관리, 모발 이식과 유두 리프팅 등 각종 시술 강요는 물론 배우가 도망치면 오픈카에 용역 태워 올가미 던지며 추격하는 등 피도 눈물도 없는 프로페셔널 매니저. 하지만 할 일이 없으면 5분마다 안절부절 하는 중증 워커홀릭으로, 최근 입술을 도둑맞는 사고 후 깨달은 것은 “여자는 안 되나보다”. 중학교 때 만든 메일 주소 ‘프리티오’를 굳이 트위터에서도 쓰고 있다.
당신을 위해 태어났다!
방송계와 연예계의 변방을 떠도는 비정규직 노동자
꽃 피는 봄이 반갑지 않은 재수생과 취업준비생
내가 제일 못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는 소심증 환자
측근에게 배신당한 아픔으로 울화병 2기에 접어든 사람
최근 연애에 실패한 사람 및 평생 실패할 연애도 없었던 사람
일단 따지자면 단점: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개그 코드, 혼자 웃다가 외로워진다.
굳이 따지자면 장점: 아는 사람만 아는 19금 코드, 다 알아 듣는 나는 뭘까?
엄마아빠와 함께 볼 수 있나? ☆
뻔하지 않은 이야기 볼 수 있나? ☆☆☆☆
주체할 수 없는 폭소 유발할 수 있나? ☆☆☆
글. 최지은 JTBC 월~금 저녁 8시 5분
도대체 어떤 장르인가: 청담동 빈부격차 르포 찌질 궁상 가족극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서평의 반지하에 살다가 우연히 청담동으로 이사를 하게 된 혜자(김혜자)네 식구들. 그러나 현실은 80년대스러운 만화방이 딸린 낡고 누추한 주택일 뿐, 돈 때문에 궁상을 떨어야 하는 일상은 변한 게 없다. 그래도 보통의 삶과 차원이 다른 ‘하이 소사이어티’ 청담동에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혜자와 딸 지은(오지은)은 온갖 거짓말까지 불사하며 고군분투한다. 이 사람을 주목하라: 왕년엔 가수, 한 때 혜자네 반지하에서 아이돌 그룹 청담불패를 키워낸 사장이었지만 지금은 혜자의 동생 보희(이보희)와 9:1로 계약해 온갖 시중을 들고 있는 조 매니저(조관우). 300원 짜리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실라쳐도 100원은 꼭 빌려야 하고, 보희의 오디션 현장에 뒤늦게야 도착해 간식만 야금야금 챙겨 먹는 그는 이 시트콤 최고의 찌질 캐릭터다. 다만 “꼼꼼하고 손끝이 야무져” 살림 하나는 끝내주게 하는데, 그 때문에 혜자네 집에서 신데렐라처럼 마구 부려 먹히기까지 한다. 배드민턴을 잘 친다 하여 ‘(자칭) 팔달구 득음한 셔틀콕’.
당신을 위해 태어났다!
먼 훗날의 강남 입성을 꿈꾸는 강북 거주자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늘 마이너스로 수렴하는 통장 잔고가 미스터리한 워킹 푸어
집안, 재산, 학벌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어 우울한 청춘
독특한 건 이제 지겹다, 오랜만에 지극히 평범한 시트콤을 보고 싶은 시청자들.
일단 따지자면 단점: 궁상떠는 혜자네의 모습에 마냥 웃기보다 종종 가슴이 먹먹해진다.
굳이 따지자면 장점: 하여, 나의 처지와 비교하며 깊은 공감을 느끼고 알게 모르게 위로 받게 된다.
엄마아빠와 함께 볼 수 있나? ☆☆☆☆
뻔하지 않은 이야기 볼 수 있나? ☆☆
주체할 수 없는 폭소 유발할 수 있나? ☆☆☆
글. 황효진 MBN 월~금 저녁 8시
도대체 어떤 장르인가: 본격 아이돌 스타 육성 판타지 뱀파이어물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지구별 한국 걸 그룹에게 빠진 철없는 뱀파이어 왕자(이정)가 호위무사 세 명을 데리고 한국에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그 걸 그룹이 속해있는 기획사의 연습생이 되어 벌어지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기본 줄거리보다는 이 어이없는 설정을 얼마나 유치하고 뻔뻔하게 구현해내고 있는가가 핵심이다. 뱀파이어들과 얽힌 비밀과 큰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작진도 까먹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사람을 주목하라: 중반을 지나며 시들해진 이 시트콤 특유의 어처구니없는 개그를 끝까지 사수하고 있는 건 아이큐 790의 천재 뱀파이어 야리루 지니어스(홍종현)다. 모두가 러브라인에 얽히고 지구인스럽게 변해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미개한 지구를 우습게 여기다 매번 엎어지고 자빠지는 우주 천재. 야리루가 스마트패드 아기 기르기 게임을 하다가 아기에게 집착하게 되는 에피소드는 이 캐릭터와 이 시트콤이 얼마나 이상하지만 웃긴지 확인하기에 적합하다.
당신을 위해 태어났다!
지구 기준 꽃미남들이 TV에 하루 30분씩 나와 주면 그저 행복한 누나들
수신고 3인방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과거 KBS 애청자
사는 것도 힘든데 시트콤에서마저 감정소모 없이 일단 웃어보고 싶은 생활인
KBS 를 행복하게 보던 시절이 그리운 어른
일단 따지자면 단점: 누군가에게 재미있다고 말해도 일단 이런 시트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굳이 따지자면 장점: 내가 얼마나 마이너한 개그 코드를 가지고 있는지 들키지 않을 수 있다.
엄마아빠와 함께 볼 수 있나? ☆
뻔하지 않은 이야기 볼 수 있나? ☆☆☆☆☆
주체할 수 없는 폭소 유발할 수 있나? ☆☆☆
글. 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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