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대화가 그렇듯이 인터뷰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면 예상했던 모습과 의외의 일면을 보게 된다. 송지효 역시 마찬가지였다. 첫인상은 세상모르고 낮잠을 자는 모습까지 보인 SBS ‘런닝맨’(이하 ‘런닝맨’)에서처럼 씩씩한 ‘멍지효’ 그대로였다.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순한 미소 뒤에 숨겨두었던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욕심을 이야기하는 얼굴에서는 MBC 의 야심가 은고가 엿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론 낯선 이와 친해지는 과정을 어색해하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마음 여린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송지효의 여러 얼굴 중 가장 반가운 하나가 바로 솔직함이었다. 호탕하게 웃고 거침없이 이야기한 그녀와의 대화가 즐거웠던 이유 역시 바로 그것이었다.어제 ‘런닝맨’ 촬영을 했다고 들었다.
송지효: 명동이랑 목동 등 여러 군데 돌아다니면서 높이뛰기도 하고 배드민턴도 쳤다. 하도 뛰어다녔더니 다리에 알이 배겼다. 너무 힘들었다. (웃음)
“사람들이 방송으로 갖는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런닝맨’ PD들이 송지효 씨가 이렇게 잘 할 줄 몰랐다고 하더라.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송지효: 사실 하면서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게 ‘런닝맨’인 것 같다. (웃음) 하루 종일 촬영을 해도 어떻게 편집되어서 나갈지 모르겠다. 그냥 멋모르고 뛰어다닌 걸 좋게 봐주신 것 같다. PD님들과 SBS MC를 할 때부터 친분이 있어서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왔다. 그 때도 너무 어려서 산만하게 굴고 그랬는데 그 모습들 중에서 지금 ‘런닝맨’에 나오는 어떤 모습을 보신 것 같다. 1년을 넘게 했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 어떻게 나오는지 예측이 안 된다. 다만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노는지에 대해서 조금은 알 것 같다.
예능이 익숙하지 않았을 텐데 카메라를 겁내지 않는 것 같았다.
송지효: 사실 지금도 카메라는 겁난다. 대신 PD님들을 믿는다. 어떻게 망가져도 좋게 편집하고 뺄 건 빼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리얼리티 예능은 장단점이 확실하다. 씩씩한 ‘멍지효’의 모습을 매력으로 봐주는 사람도 있지만 방송에서의 모습을 너무 진짜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다.
송지효: 연기하는 것과는 엄청 다르지. 하지만 그걸 신경 쓰면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사실 모든 걸 따지면 연기할 때도 착하고 순한 역할만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지금 이런 모습을 보여줘서 관객이나 시청자가 어떤 이미지를 가진다면 다음에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면 되는 거니까. 무엇보다 내가 불편한 게 싫다. ‘런닝맨’에서도 처음에는 굉장히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캐릭터였는데 실제 내 모습이 아니니까 어색한 게 다 보이더라. (웃음) 방송에서의 모습으로 오해하시면 하시는 대로 그냥 흘러가듯 두는 게 맞는 것 같다.
촬영과 병행할 때는 육체적으로도 힘들었겠다.
송지효: 이 끝나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정말 많이 먹고 많이 자고 편하게 지내고 있다. 사극이라서 더 힘들었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현장의 어려움에 특별한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잠을 못 자는 것도 대본을 외우는 것도 같으니까. 오히려 지방 촬영이라 편한 점도 많다. 숙소도 가깝고 촬영 끝나고 다른 걸 할 게 없으니까. 집이었다면 인터넷도 하고 하다못해 팩이라도 한 장 더 붙였을 텐데 그 시간에 자면 되니까.
지방 숙소 생활을 힘들어하는 배우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가보다.
송지효: 그냥 따뜻한 물 나오고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으면 어디든 오케이였다. (웃음) 상황을 불평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드라마는 어차피 시청자 반응을 보면서 진행하는 거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고생해도 잘 만들어지고 시청자를 만족시키면 다 좋다. 솔직히 배우야 6개월만 고생하면 되는 거니까.
후반부의 은고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 시청자들도 있었다. 지혜롭고 현명한 여자였던 은고가 변해가는 모습이 아쉽지는 않았나?
송지효: 은고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이 하다보면 내 생각과 달라지기 마련이다. 생각과 상황이 일치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게 주어지지 않을 때도 연기를 해야 하니까. 오히려 은고는 제일 아쉬움이 덜 남았다. 계백과 은고와 의자가 끌어가는 이야기에서 순하디 순한 여성으로만 그려지지 않았고, 그녀가 백제라는 나라를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충분히 보여졌다. 물론 잠을 못 자서 내가 더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못 보여줬다거나 감독님과의 소통에서 이해를 제대로 못 해서 다르게 보여졌을 수도 있다. 사소한 부분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진심을 다 했기 때문에 괜찮다.
“청순가련은 체질에 안 맞아서 못 하겠다” 은고는 물론 영화 의 왕후나 MBC 의 효린도 마냥 착하고 순하지만은 않았다. 단순히 애정관계에 머물지 않고 파국의 씨앗을 안고 있는 역할을 주로 했다.
송지효: 처음 보는 분들은 인상 때문에 날 순하게 생각하시기도 한다. 그런데 작품을 하려면 감독님들과 미팅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하지 않나? 유하 감독님도 을 함께 하기 전에 영화 때도 미팅을 하면서 만났었고 도 을 함께 했던 감독님인데, 오랫동안 봐오신 분들은 내 안에 있는 욕심 같은 걸 보시는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해도 순한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연기를 하다 보면 자존심 상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단단해진 부분도 많다.
오히려 전형적인 청순가련 캐릭터를 한 적은 없다.
송지효: 한 번도 안 했다. 그런 건 체질에 안 맞아서 못 하겠다. (웃음) 예쁜 척하고 내숭 떠는 여자들은 내가 봐도 싫기 때문에 안 하고 싶다. 아름답고 고혹적이고 멋있는 여자는 정말 좋아하는데 누가 봐도 예쁘지만 그것만 보여주려고 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가 인기에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송지효: 뭇 남성들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지. (웃음) 하지만 예전부터 생각해온 게 사람들의 관심은 좋지만 인기를 쫓아가지는 말자였다. 그러면 인기에 반영되는 것만 해야 하는 제약이 생기니까. 제약이나 울타리를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런 부분은 처음부터 생각도 안 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여성스러워진 것 같다. 예전에는 정말 다리도 쩍쩍 벌리고 앉고. (웃음) ‘그게 왜? 뭐가 어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의 연아 역할이 잘 어울렸나 보다.
송지효: 원래 강풀 씨의 원작을 엄청 좋아했다. 실제로 오랫동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서 어르신들에 대한 연민 같은 게 있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찾아가서 하고 싶다고 했다. 큰 역할은 분명 아니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고 따뜻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일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끌고 가는 영화가 아니라 선생님들께 배울 게 굉장히 많을 것 같았다. 이순재 선생님과 함께 연기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컸다.
무엇을 배웠나?
송지효: 사실 연기는 각자의 스타일이 분명하다. 연기 수업을 받아도 가르쳐 주는 분의 스타일을 배우는 거다. 발성이나 발음조차도 가르쳐주는 게 다를 뿐더러 그런 건 어딜 가나 배울 수 있다. 를 하면서 시나리오와 흐름과 왜 이 장면이 만들어지고, 다음 장면으로 어떻게 감정이 이어져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을 배웠다. 왜 뒷모습만 보이더라도 이 장면에 내가 있어야 하는 건지, 뒷모습이라도 어떤 감정으로 시선을 갖고 가야 하는지, 어떤 제스처를 해야 하는지 디테일과 깊이를 따지다 보니 그냥 흘러가는 장면조차도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 단순히 감독님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연기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다보니 연기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이후 까지 공백이 좀 있었다. 경력에 비해 작품 수가 많지 않은 편이다.
송지효: 제일 많이 듣는 얘기다. (웃음) 솔직히 얘기하면 흥행작이 많지 않아서 작품이 많이 안 들어왔다. 나보다 작품이 먼저 보이는 걸 하기도 했고. 특히 이후에는 그냥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스스로도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회사에서도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한 시기였다.
배우로서 주목을 받은 시기였는데 아쉬웠을 것 같다.
송지효: 예전에는 연기를 하는 사람인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싶었다. 좋은 게 있으면 하면 되고 나쁜 게 있어도 해도 되고. 그래서 끝나고 쉬면서도 조바심이 없었던 것 같다.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닌데 말도 안 되는 나만의 여유로움이 있어서. (웃음) 그래서 그 때는 시간이 그렇게 흐른 줄도 모르고 오랫동안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오히려 요즘 들어 해야 하는 캐릭터와 해야 하는 연령대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최근 친한 영화사 언니와 만났는데 라는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작품은 딱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가 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나는 이미 고등학생처럼 보일 수는 없는, 신선함이 없으니까 이런 역할은 어렵지. 그런 의미에서 어떤 나이에 해야 하는 캐릭터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언니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왜?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했을 텐데 요즘은 피부로 느끼니까 좀 더 다양한 것들을 많이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들을 하고 싶나?
송지효: 어떤 목적을 세우고 달려가는 성격은 아니다. 언제는 이걸 하고 언제까지 이걸 할 거라고 계획한다고 해서 되는 게 절대 아니지 않나? 그래서 과거에도 인터뷰를 하거나 주위 사람들과 얘기할 때 나한테 들어오는 게 뭐든 다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진심이었는데 누구나 그렇게 얘기하니까 사람들이 듣기에는 그냥 하는 말처럼 들렸나 보더라. 하지만 정말로 어떤 것이든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면 뭐든 할 수 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다짐했던 게 변하지 말자” ‘런닝맨’에서의 모습도 그렇고 얘기를 나눠보니 왜 여성 팬들이 많은지 알 것 같다.
송지효: 그러게. 여자 분들이 좋아해주신다. (웃음)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나 고민도 많이 들어주는 편인가?
송지효: 그러기 전에 도망간다. (웃음) 얘기를 들어주는 건 좋지만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라 누군가와 친해지기 전의 과정을 못 견뎌한다.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친해지기 위한 여자들의 수다가 너무 고통스럽다. (웃음) 그래서 늘 친한 친구들만 만나다보니까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다. ‘런닝맨’ 멤버들과도 친해지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방송 상에서는 장난을 치다가도 “컷” 소리만 나면 어색해 죽을 것 같은 거다.
연예계에서 일하기 쉽지 않은 성격이다.
송지효: 처음에는 일만 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하다보니까 여러 가지가 필요하더라. 일을 하면서 인간관계라는 게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연예계 뿐 아니라 일반적인 조직 생활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다른 일을 했어도 많은 사람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지는 못 했을 거다. 성격을 고치려고도 무단히 노력을 해봤는데 어느 순간 스트레스를 받아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찾게 되더라. 집에만 있으려고 하고 전화도 꺼 놓고. 쉽사리 고쳐질 것 같지 않다. (웃음) 그래서 가족들에게 집착이 심하고 친구도 18년 된 친구와만 놀고 사무실, 피부과, 집, 이 세 곳만 왔다 갔다 한다. (웃음)
처음 잡지 모델을 시작했을 때는 왜 그 일이 하고 싶었나?
송지효: 사실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 아버지가 건축 일을 하셔서 그 쪽 일을 하고 싶었다. 설계처럼 딱딱 들어맞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레고 같은 걸 하면서 조각들이 잘 맞춰졌을 때 보람을 느끼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모델 제의를 받아서 시작했는데 의외로 너무 재밌는 거다. 우연찮게 시작했는데 보람되거나 뿌듯한 건 아니었지만 재미있었다.
어떤 점이 재미있었나?
송지효: 정체되어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조명도 옷도 메이크업도 포즈도 매 번 다르지 않나. 그런 게 잘 맞았던 것 같다.
일을 오래 하다보면 누구나 처음 마음 같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달라질 수도 있고 주위 환경이 달라질 수도 있고. 재미만으로 할 수는 없을 텐데.
송지효: 단순한 성격이라서. (웃음) 재미만 보고 달려가다 어느 순간 뒤 돌아보니 ‘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단순한 직업이 아니구나’하는 걸 느꼈지만 그 때 포기하기에는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기도 했다. 다른 배우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런 스타일로 연기를 하고 이렇게 관리를 하는구나 같은 걸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생각하는 과정에서 다른 재미와 보람을 느껴서 계속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것만은 지켜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송지효: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다짐했던 게 변하지 말자였다. 인기나 눈에 보이는 걸 쫓아가지 말자는 마음은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것 같다. TV에 얼굴이 나오는 사람이다 보니까 혜택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그런 것을 쫓아가다 보면 언젠가 그냥 연예인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무엇을 할 때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오히려 의욕이 떨어지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마음은 늘 그대로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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