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BBC가 내놓은 영국 드라마 은 한 시즌에 세 편, 지금까지 불과 두 시즌, 여섯 편이 방송됐을 뿐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한국 팬들은 영국 현지 방영이 끝난 직후 컴퓨터로 동영상을 만들고, 자막을 제작한다. 게다가 KBS에서는 현지 방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2월 3, 4, 5일 사흘간 연속 방영할 예정이고, 아마도 시즌 1처럼 곧 DVD와 블루레이를 내놓을 것이다. 지금 극장에는 영화 이 상영 중이고, 만화가 권교정은 셜록을 주인공으로한 또 다른 만화 을 발표했다. 1891년에 발표된 작품의 주인공은 어째서 12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을까. 특히 이 원작의 캐릭터와 구성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서 현대적으로 바꿨다는 점, 120여년의 역사동안 홈지언, 셜로키언, 베이커 스트리트 일레귤러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팬들이 있었다는 점은 이 오래된 명탐정의 매력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셜록 홈즈 본인이었다면 이런 질문에 어떻게 생각했을까. 셜록 홈즈는 왜 사랑받을까. 이 글을 읽고 그 답에 확신을 얻지 못했다면 퀴즈를 통해 셜록 홈즈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보는 것도 좋다. 또한 셜록 홈즈의 추리가 현재의 한국에 어떻게 응용되는지, 그리고 에 출연하는 베네딕트 컴퍼배치를 보며 실제 셜록의 이미지를 떠올릴 사람들을 위해 좋은 블로그 하나 추천한다.

“존재의 진부함에서 벗어나려고 허구한 날 애면글면하며 지내는 게 내 인생이야.”
-셜록 홈즈, 1891년 에 발표된 첫 사건 ‘보헤미아 왕실 스캔들’에서
“보통 사람들은 거리와 상점과 자동차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셜록과 함께라면 전쟁터를 보게 됩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 2010년 BBC 의 첫 사건 ‘분홍색 연구’에서

세계 유일의 자문탐정 셜록 홈즈(이하 셜록)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이 알려진 인물이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외모, 주소, 인간관계, 취미를 알고 있다. 그가 심심할 때면 집의 벽에 총을 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셜록이 어떻게 자랐고, 성 정체성이 무엇이며, 어떻게 돈을 벌어 집세를 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셜록의 인생에는 사건은 있지만 일상은 보이지 않고, 불길한 모험은 있어도 평온한 생활의 흔적은 없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어 사건들을 해결하지만, 그 자신은 우리와 섞이지 않는다. 코난 도일 또는 존 왓슨(이하 왓슨)이 기록한 시리즈의 현대적 리메이크 BBC 에서 셜록의 형 마이크로프트의 발언은 셜록에 대한 가장 명쾌한 해석일 것이다. “과학자나 철학자의 두뇌”를 가졌지만 “어린 시절 꿈은 해적”이었던 남자. 동화 속의 해적처럼 이 남자는 사람이 죽는 범죄 현장도 신나는 모험으로 만들고, “지적으로 걸출한 만큼 인간적으로 동정심을 결여한, 심장이 없는 두뇌”(‘그리스인 통역사’편)로 범죄를 추리해 우리를 평온한 일상으로 돌려보낸다. 에서 왓슨이 셜록을 통해 ‘전쟁’에 참여하면서 마음의 병을 고치는 것은 대중이 지난 한 세기동안 셜록에게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겨운 일상 대신 전쟁에라도 데려다 줘!

120년 뒤 시작된 셜록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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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세기가 지나면서 왓슨은 셜록의 일에 참여하는 것 이상을 바라게 된 것 같다. 에서 왓슨은 셜록에게 블로그에 쓴 셜록에 관한 글이 그를 먹여 살린다고 주장하고, 때때로는 2인조 수사팀처럼 움직인다. 한 세기 전 셜록이 “나의 보스웰”(전기작가)라고 불렀던 왓슨의 역할이 “내 블로거”로 바뀐 건 흥미롭다. 전기작가는 글 속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블로거의 글은 결국 자신을 표현한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셜록은 독자들에게 영국의 구석구석을 안내하는 머리 좋은 해적 선장이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가정부부터 귀족까지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가 상상밖의 사건과 함께 맞물려 묘사된다. 그러나 에서 대중은 셜록의 안내를 따르지 않는다. 1시즌 첫 에피소드 ‘분홍색 연구’에서 범인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셜록 앞에 나타나 자신이 셜록 이상의 천재라고도 주장한다.

블로그와 SNS로 자신을 표현하는 이 시대의 대중은 누구나, 무엇이든 자신이 주체가 되길 원한다. 그래서 ‘분홍색 연구’와 두 번째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 ‘라이헨바흐 폭포’는 일종의 수미상관이다. ‘분홍색 연구’의 범인은 평범한 모습으로 대중 속에 섞여 ‘사냥감’을 노리고, 피해자는 눈에 쉽게 띄는 분홍색 의상을 한 여성이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는 미디어를 통해 스타가 된 셜록이 대중에게 자신이 ‘fake’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분홍색 옷의 여인과 셜록은 대중 속에 섞이기 힘든 독특한 개인이다. 반면 대중은 주체가 되고픈 욕망을 가졌지만 서로의 틈 속에 얼굴과 이름을 숨긴 채 범죄를 저지르거나 누군가의 죄를 판단한다. 의 2시즌에서 셜록의 위기가 추리의 실패가 아닌 스스로에 대한 조절에서 비롯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벨그라비아 스캔들’의 매력적인 여성 아이린 애들러는 셜록의 이성을 흔들고, ‘바스커빌 사냥개’에 등장하는 환상은 셜록 스스로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게 만든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는 그가 스스로에 대해 ‘증명’하는 동시에, 심장이 없는 것 같았던 그가 인간적인 감정 때문에 선택의 기로에 선다. 더 이상 그는 세상을 관찰하며 모험만 하는 보헤미안일 수 없다. 대중은 끊임없이 그를 의심하고, 이성과 감각은 때때로 자신을 배신한다. 그 때 셜록이 세상으로부터 독립된 개인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란 있을까.

이름 없는 이들의 욕망이 탄생시킨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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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시리즈에 대한 가장 뛰어난 리메이크는 아닐지라도 가장 새로운 리메이크다. 은 셜록을 크게 변형시키거나, 지나치게 원작을 재현하는 대신 셜록의 캐릭터적인 특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현대인이 공감하고, 다시금 욕망할 수 있는 셜록을 만들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셜록은 새로운 문명이 들어오고, 도시가 한 없이 뻗어나가던 그 때 모든 신세계에 대한 답을 내려주며 모든 것에서 벗어난 보헤미안이었다. 반면 에서 셜록은 보헤미안으로 살려고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미디어는 그의 활동을 노출시키고, 정부는 그의 신원을 감시한다. 지구 전체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지지 못한다. 셜록은 이런 세상에 여전히 순응하지 않은 개인이다. 셜록은 자신의 천재성과 세상에 대한 균형을 잡아주는 유일한 ‘친구’ 왓슨을 통해 대중의 하나로 사라지지 않고 유일한 개인으로 남을까.

누구나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천재이자 보헤미안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은 이 21세기 대중의 욕망을 셜록에 투영했다. 그건 의 시즌 2가 방영 직후 자막판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KBS가 현지 방송 한 달여 만인 2월 3일부터 사흘간 방송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일 것이다. 세상을 주체로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은 대중의 욕망과 인터넷의 익명성을 통한 대중의 욕망의 실현은 한국도 전혀 다르지 않다. 새로운 산업과 문화가 발달하던 영국에서 셜록이 탄생했고, 인터넷, 스마트폰, SNS로 세계가 하나로 묶이는 순간 셜록의 영향력이 한국에도 더욱 크게 확대됐다. 우리는 한 개인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셜록이라면. 셜록은 20세기처럼 확신에 찬 답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신과 불안, 개인과 대중, 나와 세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채로 계속 자신의 답을 찾아나가는 셜록의 모습이야말로 동시대인이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개인일 것이다.

그래서 21세기의 셜록이 결국 셜록을 좋아했던 모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산물이라는 점은 셜록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반전이다. 애초에 코난 도일이라는 개인이 발표했던 시리즈는 열렬한 팬들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됐다. 작품의 오류들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모리어티와 마이크로프트에 그럴듯한 역사를 부여해 셜록이 시대마다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든 건 결국 셜록의 팬들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처럼 세상은 끝없이 커지고,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며,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때 100년 넘게 이어진 팬들이 만든 셜록이 지금의 대중적인 욕망과 만나 다시 새로운 주인공이 됐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대중의 욕망이 탄생시킨 가장 독창적인 개인이 활약할 때가 돌아왔다. 그리하여, 이 천재이자 보헤미안이며 고독한 개인에게는 그의 팬이 했던 이 말이 가장 적당할 듯하다.

“홈즈는 지금은 아니어도 미래의 우리 모두의 상징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 1946년, 홈즈 팬클럽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스의 리더 에드거 W.스미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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