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눈물>, 황제펭귄이 우리에게 준 것
, 황제펭귄이 우리에게 준 것" /> MBC 금요일 밤 11시 10분
쓰러지는 빙벽들 사이로 몸을 피하는 북극곰의 모습을 주시했던 부터, MBC의 ‘눈물 다큐’ 시리즈는 문제의식이 뚜렷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그 원인을 제공한 공범에 다름 아닌 우리의 눈물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시리즈의 패턴으로 정착 되었다. 그러나 의 첫 번째 본편은 단 한순간도 남극 바깥으로, 황제펭귄이 아닌 것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동물 생태 다큐멘터리처럼 방송은 알을 낳고, 새끼를 길러 결국 바다로 떠나는 펭귄의 겨우살이를 그저 관찰자의 입장에서 묵묵히 지켜 볼 뿐이었다. 먹이를 찾아 바다로 떠난 펭귄의 모험이나, 다른 동물과의 비교도 없었다. 등장하는 것은 오직 황제펭귄과 하얀 눈뿐이었다.

다른 동물이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황제펭귄이 혹한의 땅에서 수행에 가까운 육아를 감행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천적이 도달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추운 곳에서 황제 펭귄은 자신이 선택한 위험과 자신의 방식으로 싸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새끼를 품고, 동료와 고통을 분담하며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새끼들 역시 작은 몸을 서로에게 내어주며 생존의 방식을 전수받는다. 공평하게 분담된 희생과 양보가 집단을 살리고, 세대를 이어가게 한다는 교훈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만, 방송은 굳이 이러한 가르침을 설명하려들지 않는다. 털갈이를 하는 새끼를 두고 펭귄들이 바다로 떠나는 순간에도 담담한 태도는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걸고 길러낸 새끼이건만, 펭귄들은 삶을 각자의 몫으로 남겨 둔 채 이별을 한다. 그리고 방송은 말없이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는 이들의 검은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이 사람처럼 보인 것은 다만 생김새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반성을 넘어, 남극의 삶으로 우리를 돌아보게 했다. 그저 때가 되어 돌아온 시리즈는 아닌 것이다.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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