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돌이켜보니, 웃을 일이 많았던 한 해였다. 저물어 가는 2011년의 끝에서 우리에게 웃음을 준 예능의 순간들을 정리하는 건, 잊고 있었던 즐거움을 되새기며 한 해를 유쾌하게 마무리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웃음 사이 쓴웃음과 헛웃음도 많았다. 오는 2012년에는 순수하게 웃을 일들이 훨씬 더 많아지기를 빌며, 가 함께 기억하고 싶은 웃음의 순간과 아이콘을 뽑아보았다.예능인들은 애드리브를 점지하는 ‘그 분’이 오시길 기다린다. ‘그 분’은 강호동이 빠진 KBS ‘1박 2일’을 굽이 살피다가 입 트임을 간절하게 원했던 자, 엄태웅을 발견한다. 그리고 ‘고백점프’ 게임에서 ‘뽀숑’을 외쳐야하는 순간, 엄태웅에게 ‘꽈랑꽈랑’이란 믿지 못할 방언을 선사했다. 이는 ‘애드리브 명예의 전당’에 길이 남을만한 순간이었고, ‘그 분’의 위용은 한 번 더 증명됐다. 한편, 언제 오실지 모르는 ‘그 분’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박명수는 스스로 ‘그 분’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는 MBC ‘라디오 스타’에서 귀신같은 단어조합 능력으로 ‘전문 프로 웃음꾼’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정형돈과 하하 등의 전문예능인, 그리고 길과 같은 양다리 예능인을 한 번에 분리할 수 있게 된 또 하나의 기적이 행해졌으니, ‘무한명수교’의 탄생도 머지않았다. 웹툰이 풍작이었던 한 해였다. 그 중에서도 기안84의 은 패션의 새로운 트렌드를, 하일권의 은 허세의 새로운 아이콘을 제시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숫자에 상관없이 하루 종일 뚱뚱한” 이들을 각성케 한 건 네온비와 캐러멜의 였다. 여기에 어떤 납량특집보다 널리 회자되며 부모님과 외국인의 간담까지 서늘하게 만든 호랑의 ‘옥수역 귀신’과 ‘봉천동 귀신’도 가담했다. 이렇게 새로운 웹툰들이 탄탄한 내러티브와 독특한 캐릭터로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을 때, 조석이 그린 는 500회를 돌파하며 독자들을 낚았다. 연재를 시작한 지 장장 5년째에 이르지만 그의 아르헨티나 백브레이커급 센스는 여전히 녹슬지 않은 것이다. 하여 곧 맞이할 600회 때는 팬들이 모두 모여 축하 노래라도 합창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아, 노래 시작하기 전 이것만은 잊지 말자. JYP! 오로지 인간 내면을 ‘검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SBS 의 호칭은, 이름만 지우면 ‘해운회사 딸’, ‘의자왕’ 등 모든 스펙이 드러날 수 있다는 마법을 보여주셨다. 그래서일까. 아들 한 명 키우고 사는 남자 1호는 불같은 성격으로 남자 4호와 밥 먹는 사이인 여자 4호에게 고백하는 민폐남이 되어 애정촌을 떠났고 “기필코 연애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도 커플이 되지 못했던 모태솔로 특집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났다. 매주 배우들은 달라지지만 인기 많은 ‘의자녀’ 여자 3호가 “사실 남자친구가 있다”며 남자 2, 3, 4, 7호를 놀리는 식의 치정극의 혹은 시트콤의 재미는 변하지 않는다. 하긴, MBC 에서도 ‘짝꿍 특집’으로 패러디 된 걸 보면 예능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입증된 셈이다. KBS 는 대중들이 밴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고, 밴드들은 계속해서 즐겁게 음악 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됐다. 그러나 정작 날이 갈수록 힘이 더해졌던 건 심사위원 김종진의 심사평이었다. 그는 밴드 포에 대해 “마치 음악의 바다에서 스노클링만 하고 있다가 해저 2만 리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하더니, “전문가들은 길에서 풀을 보면 그게 잡초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며 ‘밴드 감별사 2급 자격증’이라도 보유한 듯 화려한 심사평을 선보였다. 김종진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모차르트 초기작품”과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를 빗대 아이씨사이다와 시크를 평가했지만, 누구도 그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뜻은 김종진이 명언들을 틈틈이 수집해서 만든 ‘김종진 명언 모음집’만이 알 뿐이다. ‘가카’ 덕분에 새로운 예능을 만났다. 늘 “부끄럽구요”라고 하면서도 “에리카 김 누나는 저만 만났어요”라고 하는 주진우 기자의 어눌한 자랑과 현직 백수지만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지역구로 하는 자칭 ‘위대한 정치인’ 정봉주 전 의원의 ‘깔때기’만 들어도 낄낄거리게 된다. 여기에 귀청 떨어질 듯한 웃음소리로 “‘가카’가 그러실 분이 아니야”라고 정리하는 김어준 총수의 진행과 비장하게 BBK를 부인하는 ‘가카’의 “저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 “안 돼. 거짓말. 점점 커져요” 동요를 붙이는 김용민 교수의 센스는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 못지않다. 하지만 내곡동 사저 비리 의혹과 정치인의 1억 피부 관리 보도를 종종 트래픽 과부하로 다운도 받기 힘든 팟캐스트로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야말로 를 2011년의 가장 웃기고 씁쓸한 코미디로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지난해 장윤주는 MBC 에서 박휘순과 닮은꼴로 밝혀진 정재형에게 “음악인생 끝났다”고 했지만, 2011년 예능은 정재형의 세상이었다. 정재형은 평가를 거부하는 ‘음악의 신’답게 웅장한 오케스트라 곡을 만들면서도 동시에 “이기주의가 사람으로 태어”나, 가래 끓는 요정이 된 캐릭터로 예능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물론 곡 제의를 받을 때마다 본인 곡 ‘러닝’을 사골처럼 우려먹었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손이 아닌 발로 피아노를 치는 초현실적인 예술혼과 예능의 자막까지 고려해 만든 웃음소리 ‘오홍홍홍’은 정재형만의 예능 스타일로 완성됐다. 혹시 이런 그가 부럽다면 진심을 다해 요정님께 빌어보자. 친히 ‘파리 13지구 개차남’의 주문을 외쳐 주실지 모르니까. “알레, 뾰로롱~” (힘내자, 뾰로롱~) 서로 알게 된지는 15년, 리쌍으로 함께 한지는 9년이 된 개리와 길에게 올해만큼 명암이 갈린 적이 있을까. 한 사람은 무려 ‘갖고 싶은 남자’라 불리지만, 다른 한 사람은 ‘3년째 인턴사원’이다. 한 사람은 예능에 입성하고 얼마 안 돼 송지효의 ‘월요남친’이라는 캐릭터를 꿰찼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 주어진 별명은 여전히 ‘길메오’처럼 존재의 이유를 의심받는 것뿐이다. 예능 경력으로는 후배지만 개리에게 예능만하면 커플을 만드는 마성의 짝짓기 능력부터 배워보는 건 어떨까. 개리는 SBS ‘런닝맨’에서는 에이스 송지효와, ‘조정특집’에서는 미존개오 정형돈과 커플이 됐을 정도로 감식안도 출중하다. 가까이에는 ‘유느님’의 환한 빛을 나눠 갖는 ‘찮은이 형’이 있고 멀게는 전통의 서수남·하청일의 예가 있듯 자고로 예능은 뭉칠수록 강해진다. 리쌍이 개리와 길이 뭉쳐야 빛나듯 길도 함께 빛날 수 있는 예능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면 언젠가 전설의 쌍라이트 형제처럼 환한 웃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알아보지 못해 미안했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로 등장해 ‘집행유애’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이태원 프리덤’으로 정점을 찍었을 때, 눈치 챘어야 했다. UV가 올해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의 빅탑스테이지가 아닌 그린스테이지에 선다고 했을 때, 주최 측에 항의라도 했어야 옳았다. 그들은 ‘인천대공원’과 ‘Creep’, ‘미인’, ‘Killing in the name + 열맞춰’ 등을 한데 묶은 록 메들리로 지산에서는 관객들을 미치게 만든 사실상의 헤드라이너였고, KBS 에서는 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15분간 인터뷰 없이 공연만 이어간 ‘레전드’였다. ‘교실 이데아’에서는 원곡의 피처링을 맡았던 크래쉬의 안흥찬과, 자작곡 ‘Who Am I’에서는 유희열-정재형과 호흡을 맞추는 등 활발한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제, 그들의 개그뿐 아니라 음악 또한 믿게 됐다. 유불이개두립(有不二改頭立). UV가 새로운 시초를 세웠다. 올해 오디션 프로그램은 ‘예림’이가 접수했다. 이승철은 Mnet 에 출연한 투개월의 김예림에 대해 “인어가 사람을 홀리는 듯 한 묘한 목소리”라며 칭찬했다. 그리고 에서 손예림을 만난 싸이가 “아이 노래를 듣고 소주가 생각나긴 처음”이라고 고백할 만큼 11살의 소녀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목소리를 가졌다. MBC 에서 이승환과 윤일상은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고 노래할 수 있는 끼가 다분한 신예림의 멘토가 되기 위해 무려 애교 배틀을 벌였다. 이렇듯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예림이들’은 시청자들도 엄마미소 혹은 아빠미소를 띄게 주문을 걸었다. 괜히 성명학의 원조 ‘꽃별천지’가 ‘예림’이란 이름이 ‘천국’에 해당된다는 전우주적인 해석을 도출한 것이 아니다.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글. 김명현 기자 eighteen@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글. 박소정 기자 ninete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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