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욱 감독이 기로에 섰다" />
MBC (이하 )은 ‘계상네’와 ‘지원네’의 이야기다. ‘계상네’ 집주인은 안내상(안내상)과 윤유선(윤유선)이 아니라 윤유선의 동생 윤계상(윤계상)이고, ‘지원네’ 집주인은 박하선(박하선)의 친척동생 김지원(김지원)이다. 오지명부터 이순재까지, 또는 SBS 부터 MBC 까지 집주인이 연장자라는 사실은 김병욱 감독의 일일 시트콤의 기본적인 틀이었다. 는 김병욱 감독의 세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작품이다. 아니, (아직은) 일으키고 싶은 작품이다.
MBC 과 은 젊은 남자의 좌절을 담았다. 아이가 있는 이혼남 이민용(최민용)은 결국 서민정(서민정)을 선택하지 못했고, 이지훈(최다니엘)은 신세경(신세경)을 사랑했다 해도 결실을 맺기 어려웠다. ‘서운대’에 다니던 황정음(황정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지훈의 가족이 가정부를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이민용과 이지훈은 모두 가족의 일에 적극적이지 않고, 일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는 돈 많은 가부장의 허용 범위에만 있고, 그들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못한다. 시리즈는 이 남자들이 현실을 잊은 것처럼 사랑을 하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 시간을 건너뛰거나(), 멈춰 버리면서() 이야기를 끝냈다.
현실과 감정이 만나지 못하는 곳에서 , 김병욱 감독이 기로에 섰다" />
집주인이 젊은 남자와 그 보다 더 어린 여자로 바뀌면서 이 전제는 반대로 뒤집힌다. 윤계상이 누굴 사랑하든 윤유선은 의 이현경(오현경)처럼 강하게 반대하기 어렵다. 박하선은 김지원의 스쿠터 운전 정도에만 잔소리를 한다. 대신 그들에게, 자유롭지 못한 건 시간이다. 윤계상은 르완다로 떠나야 하고, 이적(이적)은 내레이션을 통해 이 이야기가 과거의 것임을 상기시킨다. 남자는 언젠가 떠나고, 미래는 결정돼 있다. 시간을 멈추거나 건너 뛸 수 없다. 남녀는 더 자유롭게 살고, 사랑할 수 있다. 대신 미래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두 집이 땅굴로 연결돼 있고, 두 집의 가장이 미혼의 의사와 여고생인 것은 비현실적이다. 윤계상이 언젠가 떠나고, 그 전에 누군가와 사랑하리라는 상황은 현실적이다. 그만큼 캐릭터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선택에 이르는 이야기는 보다 명확해야 한다. 전작들에서 현실의 문제에 부딪친 것은 작품 속의 젊은 남자였지만, 에서 가장 현실에 부딪치는 사람은 김병욱 감독 자신이다. 윤계상이나 김지원이 정해진 시간 안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은 보다 촘촘한 에피소드가 필요하다. 반면 그들이 현실 위에 있으려면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안수정(크리스탈)과 안종석(이종석)은 부모대신 삼촌들에게 용돈을 요구하고, 그들의 부모는 생활고에 시달린다. 부모의 보호 없이도 여유로운 삶을 살던 김지원의 집에는 돈에 허덕이는 백진희가 들어온다. 안정된 직장을 가진 채 역시 자유롭게 사는 윤지석(서지석)과 박하선의 멜로 사이에 고시생 고영욱이, 때론 백진희의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자유롭고, 주관이 뚜렷하며, 인생의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젊은 한국 남녀는 평범한 현실과 좀처럼 섞이기 어렵다. 는 그들과 반대되는 입장의 캐릭터를 한 곳에 모아놓으면서 현실에 잡아둔다.
의 불균질한 세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윤지석과 박하선, 또는 윤계상과 김지원은 그들의 관계에 집중한다. 반면 안내상과 윤유선, 또는 백진희의 에피소드는 현실적인 가난에서 소재를 가져온다. 의 이지훈이 가진 집안 배경은 가정부나 ‘서운대’ 출신에게 마음을 주는 것 자체가 현실적인 고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윤계상은 그가 백진희와 사랑에 빠진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윤계상과 백진희는 함께 이야기를 하지만, 두 사람의 세계는 섞이기 어렵다. 윤계상에게 백진희의 현실은 그의 현실을 크게 바꿔 놓을 수 없다. 한 편에서는 한 의사와 여고생의 알 수 없는 감정이 흐르고, 한 편에서는 사업이 망한 가장의 기막힌 현실이 이어진다.
‘하이킥 월드’, 현실에 순응하거나 현실을 넘어서거나 , 김병욱 감독이 기로에 섰다" />
의 호흡이 엇갈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윤계상과 김지원 각자의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호흡은 일일 드라마에 가깝다. 그들은 천천히 서로의, 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며 누군가와의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한다. 반면 안내상과 윤유선 가족이나 백진희는 가난을 소재로 시트콤적인 호흡의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또는 매사에 실수를 반복하는 박하선처럼 시트콤적인 웃음에 최적화된 캐릭터도 있다. 윤유선이 폐경 이후 겪는 스트레스 때문에 안내상이 “이게 다 폐경이다”라고 댓글을 다는 것은 시트콤적인 과장이 섞인 에피소드다. 반면 윤계상과 김지원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이런 웃음이 들어갈 여지가 적다. 하루를 책임질 웃음과 6개월 동안 이어질 스토리텔링이 좀처럼 섞이지 못한다. 까지 이어져 온 특유의 가족 관계가 거의 반대로 뒤집힌 상황에서 는 새로운 구성의 에피소드를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김병욱 감독은 또다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부딪친다. 과 의 엔딩은 그가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두 작품 모두 처음부터 캐릭터를 극복할 수 없는 현실에 던져 놓았고, 캐릭터 중 누군가는 상처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병욱 감독은 두 작품 모두 캐릭터의 고통을 끝까지 몰고 가지는 않았다. 시트콤의 중반은 현실 문제를 거의 개입시키지 않은 채 캐릭터의 사랑 이야기나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채웠다. 두 작품의 문제의 엔딩은 시트콤적인 재미와 김병욱 감독이 애초에 보여주고 싶어했던 현실이 덜컹거리며 만난 결과물이다.
역시 김병욱 감독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백진희가 윤지석과 박하선의 관계를 돕다 윤지석에게 살짝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그가 능숙하게 웃음을 일으킬 수 있는 에피소드다. 안내상이 할머니 분장을 한 채 바깥 일을 나가면서 겪는 에피소드는 웃기는 아이템과 훈훈한 감동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에서 이미 능숙하게 보여준 이런 구성만 끌고 가더라도 유효한 감동과, 유효한 웃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에피소드가 반복될수록 ‘계상네’와 ‘지원네’의 집주인이 보여줄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 또는 그들이 현실과 뒤섞이며 생기는 새로운 고민을 보여주기는 어렵다. 가 50회에 접어든 지금, 윤계상이 르완다로 갈 날은 멀지 않았다. 그가 그저 잘 웃고 약간 어설픈 구석이 있는 사람으로만 묘사되고 끝날 수는 없는 일이다. 김병욱 감독은 이후 자신이 마련한 새 터 위에 어울리는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현실에 순응하거나, 현실을 넘어서거나.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MBC (이하 )은 ‘계상네’와 ‘지원네’의 이야기다. ‘계상네’ 집주인은 안내상(안내상)과 윤유선(윤유선)이 아니라 윤유선의 동생 윤계상(윤계상)이고, ‘지원네’ 집주인은 박하선(박하선)의 친척동생 김지원(김지원)이다. 오지명부터 이순재까지, 또는 SBS 부터 MBC 까지 집주인이 연장자라는 사실은 김병욱 감독의 일일 시트콤의 기본적인 틀이었다. 는 김병욱 감독의 세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작품이다. 아니, (아직은) 일으키고 싶은 작품이다.
MBC 과 은 젊은 남자의 좌절을 담았다. 아이가 있는 이혼남 이민용(최민용)은 결국 서민정(서민정)을 선택하지 못했고, 이지훈(최다니엘)은 신세경(신세경)을 사랑했다 해도 결실을 맺기 어려웠다. ‘서운대’에 다니던 황정음(황정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지훈의 가족이 가정부를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이민용과 이지훈은 모두 가족의 일에 적극적이지 않고, 일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는 돈 많은 가부장의 허용 범위에만 있고, 그들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못한다. 시리즈는 이 남자들이 현실을 잊은 것처럼 사랑을 하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 시간을 건너뛰거나(), 멈춰 버리면서() 이야기를 끝냈다.
현실과 감정이 만나지 못하는 곳에서 , 김병욱 감독이 기로에 섰다" />
집주인이 젊은 남자와 그 보다 더 어린 여자로 바뀌면서 이 전제는 반대로 뒤집힌다. 윤계상이 누굴 사랑하든 윤유선은 의 이현경(오현경)처럼 강하게 반대하기 어렵다. 박하선은 김지원의 스쿠터 운전 정도에만 잔소리를 한다. 대신 그들에게, 자유롭지 못한 건 시간이다. 윤계상은 르완다로 떠나야 하고, 이적(이적)은 내레이션을 통해 이 이야기가 과거의 것임을 상기시킨다. 남자는 언젠가 떠나고, 미래는 결정돼 있다. 시간을 멈추거나 건너 뛸 수 없다. 남녀는 더 자유롭게 살고, 사랑할 수 있다. 대신 미래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두 집이 땅굴로 연결돼 있고, 두 집의 가장이 미혼의 의사와 여고생인 것은 비현실적이다. 윤계상이 언젠가 떠나고, 그 전에 누군가와 사랑하리라는 상황은 현실적이다. 그만큼 캐릭터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선택에 이르는 이야기는 보다 명확해야 한다. 전작들에서 현실의 문제에 부딪친 것은 작품 속의 젊은 남자였지만, 에서 가장 현실에 부딪치는 사람은 김병욱 감독 자신이다. 윤계상이나 김지원이 정해진 시간 안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은 보다 촘촘한 에피소드가 필요하다. 반면 그들이 현실 위에 있으려면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안수정(크리스탈)과 안종석(이종석)은 부모대신 삼촌들에게 용돈을 요구하고, 그들의 부모는 생활고에 시달린다. 부모의 보호 없이도 여유로운 삶을 살던 김지원의 집에는 돈에 허덕이는 백진희가 들어온다. 안정된 직장을 가진 채 역시 자유롭게 사는 윤지석(서지석)과 박하선의 멜로 사이에 고시생 고영욱이, 때론 백진희의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자유롭고, 주관이 뚜렷하며, 인생의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젊은 한국 남녀는 평범한 현실과 좀처럼 섞이기 어렵다. 는 그들과 반대되는 입장의 캐릭터를 한 곳에 모아놓으면서 현실에 잡아둔다.
의 불균질한 세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윤지석과 박하선, 또는 윤계상과 김지원은 그들의 관계에 집중한다. 반면 안내상과 윤유선, 또는 백진희의 에피소드는 현실적인 가난에서 소재를 가져온다. 의 이지훈이 가진 집안 배경은 가정부나 ‘서운대’ 출신에게 마음을 주는 것 자체가 현실적인 고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윤계상은 그가 백진희와 사랑에 빠진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윤계상과 백진희는 함께 이야기를 하지만, 두 사람의 세계는 섞이기 어렵다. 윤계상에게 백진희의 현실은 그의 현실을 크게 바꿔 놓을 수 없다. 한 편에서는 한 의사와 여고생의 알 수 없는 감정이 흐르고, 한 편에서는 사업이 망한 가장의 기막힌 현실이 이어진다.
‘하이킥 월드’, 현실에 순응하거나 현실을 넘어서거나 , 김병욱 감독이 기로에 섰다" />
의 호흡이 엇갈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윤계상과 김지원 각자의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호흡은 일일 드라마에 가깝다. 그들은 천천히 서로의, 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며 누군가와의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한다. 반면 안내상과 윤유선 가족이나 백진희는 가난을 소재로 시트콤적인 호흡의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또는 매사에 실수를 반복하는 박하선처럼 시트콤적인 웃음에 최적화된 캐릭터도 있다. 윤유선이 폐경 이후 겪는 스트레스 때문에 안내상이 “이게 다 폐경이다”라고 댓글을 다는 것은 시트콤적인 과장이 섞인 에피소드다. 반면 윤계상과 김지원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이런 웃음이 들어갈 여지가 적다. 하루를 책임질 웃음과 6개월 동안 이어질 스토리텔링이 좀처럼 섞이지 못한다. 까지 이어져 온 특유의 가족 관계가 거의 반대로 뒤집힌 상황에서 는 새로운 구성의 에피소드를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김병욱 감독은 또다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부딪친다. 과 의 엔딩은 그가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두 작품 모두 처음부터 캐릭터를 극복할 수 없는 현실에 던져 놓았고, 캐릭터 중 누군가는 상처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병욱 감독은 두 작품 모두 캐릭터의 고통을 끝까지 몰고 가지는 않았다. 시트콤의 중반은 현실 문제를 거의 개입시키지 않은 채 캐릭터의 사랑 이야기나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채웠다. 두 작품의 문제의 엔딩은 시트콤적인 재미와 김병욱 감독이 애초에 보여주고 싶어했던 현실이 덜컹거리며 만난 결과물이다.
역시 김병욱 감독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백진희가 윤지석과 박하선의 관계를 돕다 윤지석에게 살짝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그가 능숙하게 웃음을 일으킬 수 있는 에피소드다. 안내상이 할머니 분장을 한 채 바깥 일을 나가면서 겪는 에피소드는 웃기는 아이템과 훈훈한 감동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에서 이미 능숙하게 보여준 이런 구성만 끌고 가더라도 유효한 감동과, 유효한 웃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에피소드가 반복될수록 ‘계상네’와 ‘지원네’의 집주인이 보여줄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 또는 그들이 현실과 뒤섞이며 생기는 새로운 고민을 보여주기는 어렵다. 가 50회에 접어든 지금, 윤계상이 르완다로 갈 날은 멀지 않았다. 그가 그저 잘 웃고 약간 어설픈 구석이 있는 사람으로만 묘사되고 끝날 수는 없는 일이다. 김병욱 감독은 이후 자신이 마련한 새 터 위에 어울리는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현실에 순응하거나, 현실을 넘어서거나.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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