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면 다 똑같은 거 같아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기보다 가장으로서 우리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예의 그 울림 좋은 목소리로 이선균이 말했다. 이렇게 온화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언제나 여주인공의 곁에서 기다려줄 것 같았던 키다리 아저씨는 자신의 평생 짝과 아이를 가진 진짜 아저씨가 됐다. 그리고 우연이겠지만 영화 와 , MBC 등으로 이어지는 최근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그는 맘 좋은 천사표 로맨틱 가이 대신 때론 포악하고, 때론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맨틱 코미디 가 반가운 건, 그의 로맨스 복귀물인 동시에 여전히 키다리 아저씨와는 거리가 먼 성깔 있는 주인공을 맡으며 두 영역의 교집합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그동안의 모습은 변화일까, 발전일까. 물론, 그에 대한 판단은 관객 각자의 몫이지만 때론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더 올바른 판단을 도와주기도 한다. 다음의 인터뷰처럼.“베드신이 끝나고 나니까 현장이 편해지더라” 첫인상부터 콧수염이 강하게 들어온다. (웃음)
이선균 : 이번 때문에 만든 설정이다. 사실 원래 대본에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캐릭터임에도 멋지게 포장되어 있었다. 모델 같고 옷도 잘 입고. 이게 형편과 매치가 안 되는 거다. 또 내가 비주얼에 자신도 없고. 아무리 꾸민들 ‘와아~’ 이런 게 안 나오니까. 그래서 감독님께 그런 미화된 면을 빼자고 했다. 그림 그리는 아이고, 등단도 못하고 돈도 못 버는데 홍대 주차장 골목에 술 취해있는 아이처럼 보여야하지 않겠느냐고. 동대문에서 직접 옷도 준비하면서 의상 콘셉트를 많이 바꿨다. 또 옷보다도 머리카락이 중요할 거 같아 영화 속의 그런 펌 스타일을 한 번 했다. 그리고 그 머리에는 콧수염을 길러야할 거 같아서 길렀다. 그런데 이게 촬영이 끝나고서 면도를 한 번 해봤는데 너무 이상한 거다. 마치 눈썹 자른 것처럼. 그래서 지금도 굳이 길러서 조금 다듬고 다닌다. 사람들은 거지같다고 놀리는데. (웃음) 김흥국 씨나 박상민 씨가 콧수염을 기르는 게, 안 자르는 게 아니라 못 자르는 게 아닌가 싶더라.
본래 캐릭터를 만들 때 비주얼적인 변화에도 민감한 편인가?
이선균 : 캐릭터 만들 때 신경을 써야지. 멋지게 보여야겠다,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납득하고 구체화해야 하니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캐릭터에 접근하는 한 방법 같다.
그럼 의 정배는 본인이 캐릭터에 맞춘 것 같나, 캐릭터를 자신에게 가져온 것 같나.
이선균 : 나를 많이 데려온 것 같다. 처럼 굉장히 진지한 역할을 할 때는 내가 그쪽으로 가려 많이 노력하고, 가볍고 재밌는 리액션이 중요할 때에는 그 인물을 구체화하려고 내게 많이 가져오려고 한다.
그럼 정배는 잘 오던가.
이선균 : 재밌게 했다. 초반에만 조금 고민하다가, 마지막에는 되게 편하고 부담 없이 했다.
초반에는 어떤 고민이 있던 건가.
이선균 : 일단 초반에는 캐릭터가 명확하게 잡히지 않으니까. 그리고 촬영 중간에 베드신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음식 관리 하느라 짠 거 안 먹었더니 예민했던 것 같다. 짠 걸 안 먹으면 신경질이 좀 난다. 그런데 베드신이 끝나고 나니까 현장이 너무 편하고 좋더라. 아, 못 먹어서 힘들었던 거구나. (웃음)
감량의 어려움인가? 끝나고 나서는 몸 관리를 해야겠다고 했었는데.
이선균 : 그 때 왜 그랬냐면, 내가 피곤하고 잠을 못자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더 찐다. 그래서 미니시리즈 할 때는 되게 찐다. 때도 마지막 방송 때 첫 회보다 5㎏이 쪘다. 밥도 많이 안 먹었는데. 효진이가 살 좀 빼라고 놀리기도 했다. 아, 그래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삼십대 중반이 되니까 ‘급’관리가 안 된다. 이십대만 해도 한 달만 적게 먹으면 배에 왕(王)자 비슷한 걸 만들 수 있었는데, 아니 삼십대 초반, 할 때만 해도 그게 되게 쉬웠는데 이제는 내성이 생겨서 그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거다. 어느 정도는 뭘 해도 해놔야겠더라. 그래서 하기 시작하고 에서 원할 만큼 60㎏대 후반만큼 뺐는데 끝나고 다시 찌고 있다. 어쨌든 운동을 꾸준히 하면 나중에 체중을 줄일 때 쉬워지는 것 같다.
일종의 영점을 만드는 건가.
이선균 : 그게 중요한 거 같다. 중립적인 거.
“상대 배우에게 꾸밈없이 던져줘야 그쪽도 끊임없이 무엇을 준다” 그렇게 중립인 상태에서 받아들인 정배는 어떤 타입의 인물인가. 설정만 보면 예술가적 자의식이 강할 거 같은데.
이선균 : 강하지. 그래서 돈벌이를 못하고. 그렇게 자의식 강하고 욱하는 애가, 작가(최강희)를 끌고 와서 욱하지 못하고 티격태격하다가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여자로 보게 되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빤한 이야기지만 사실 로맨틱 코미디가 빤하지 않나. 반전 없고, 자잘한 재미가 있고. 12월에 로맨틱 코미디를 찾는 연인들이 손잡고 와서 공유하고 싶은 걸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것 같다. 기분 좋은 결말도 있고, 정재형 음악감독의 음악도 좋고. 로맨틱 영화에 어울리는 모든 게 들어있다.
그런 면에서 라는 제목이 절묘한 것 같다. 현실 속의 로맨스라는 것은 쩨쩨함의 연속이지 않나.
이선균 : 그런데 나는 조금 마음에 안 들었다. ‘쩨쩨한’이라는 말은 좋았는데 ‘로맨스’라는 말이 너무 싫은 거다. 너무 규정짓는 거 같아서. 우리는 로맨틱 영화라고. 그런데 제목에 반대하는 게 나밖에 없어서 그냥 넘어가죠 했다. (웃음) 그런데 영화 찍고 나서 보니까 굉장히 어울리는 제목이다. 연애 자체가 쩨쩨한 것도 있고 남녀 주인공이 공동작업 하는 것도 되게 쩨쩨하고. 잘 지은 제목 같다.
그런 티격태격하는 과정을 풀어가는 것에 있어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할 텐데, 최강희와는 SBS 이후 두 번째다.
이선균 : 호감이 있으니까 다시 한 거지. 우리는 를 좋아한다. 다른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런데 그 때 둘의 관계가 정말 드라마 속 영수와 은수 관계 같았다. 서로 존대하고. (최)강희 씨 분량이 너무 많았고, 박흥식 감독님도 영화처럼 디테일하게 오래 찍는 편이라 같이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보면 너무 피곤해 보이고. 그러니까 친해지질 못했지. 나중에 좀 편하고 재밌게 노는 커플로 작품에서 만나면 좋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나도 있었고 강희 씨도 있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가 좋은 거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인연이 안 맞으면 못한다. 내가 다른 작품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못하지 않나.
로맨틱 드라마에 출연할 때마다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여배우들과 호흡을 잘 맞추기 때문 아닐까.
이선균 : 내가 굳이 하는 건 없다. 특별히 살갑게 대한 것도 없고. 좋은 여배우와 했을 뿐이다. 가령 의 (공)효진이는 진짜 준비 안 하는데 너무 잘한다. 정말 신기한 게 대본도 잘 안 보고, 만날 아이폰 가지고 놀다가 딱 슛 들어가면 너무 잘한다. 깜짝 놀랄 만큼. 그러니 좋은 배우다. 내 입장에서는 연기할 때만 꾸밈없이 하려고 하면 되는 거 같다. 꾸밈없이 던져주면 그쪽도 끊임없이 무엇을 줄 것이고 그렇게 착착 가겠지. 그래야 재밌고.
그런 자연스러움 때문에 땐 ‘진짜 사귀는 거 아니야?’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웃음)
이선균 : 마누라한테 누가 그런 얘기를 했다더라. 진짜 웃겨서. (웃음) 사귀는 건 뭐 시간이 있어야지, 아우… 주방에서 내 대사가 많지 않나. 나중에 쪽대본 나오는데 ‘이걸 나보고 다 외워서 하라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주방 신을 다 몰아서 찍으니까. 그 때 다들 대사 별로 없고 나 혼자 떠들려니 너무 억울한 거다. 애들 아이폰 가지고 놀고 있는 거 보면 가만 안두고 싶고. (웃음)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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