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여장남자건, 외계인이건 상관 안 해
네가 여장남자건, 외계인이건 상관 안 해
후지TV의 가을 개편 홍보 CM이 화제가 됐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비롯 이전과 달라지는 후지TV의 가을 이후 프로그램을 예고하는 이 CM은 100Kg가 넘는 거구의 임신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파자마를 입고 침대에 누워 배를 쓰다듬던 여자가 카메라를 보고 말한다. “많이 낳겠습니다.” 출산의 마음과 노력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방송사의 의지가 담긴 CM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CM은 큰 거짓말을 하고 있다. 주인공이 바로 마츠코 데락스이기 때문이다. 그의 성별은 남자. 직업은 여장남자 탤런트. CM은 비만을 임신으로 꾸미고, 남자를 여자로 속여 가을 개편을 홍보한다. 뻥의 엔터테인먼트다.

일본 TV에서 성 정체성은 일종의 캐릭터다. 편견이나 선입견, 차별의 문제를 떠나 이들은 그 자체를 오락으로 흡수한다. 게이라도, 트랜스젠더라도, 여장남자라도 재미만 있다면 수용한다는 식이다. 한국에선 한류연예인으로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잇꼬도 마찬가지다. 웃음의 리듬이 빠른 일본 오락 프로그램에서 잇꼬의 성 정체성을 논할 시간은 없다. 이들은 그저 트랜스젠더 잇꼬의 걸쭉한 입담과 잦은 노출을 즐긴다.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루나 아이 역시 같다. 성을 전환했다는 이들의 이력은 그저 개그의 소재일 뿐이다. 섹시하게 차려입은 하루나 아이가 돌연 아저씨 ‘오오니시 켄지(하루나 아이의 본명)’가 될 때 대중은 폭소를 터뜨린다.

편견에서 재미를 찾다
네가 여장남자건, 외계인이건 상관 안 해
네가 여장남자건, 외계인이건 상관 안 해
2008년과 2009년은 유독 트랜스젠더 연예인의 활동이 돋보이는 해였다. 뉴하프(New Half)란 신조어가 있을 정도로 국내에 비해 트랜스젠더 연예인이 많은 일본이지만, 지난 2년은 특히 하루나 아이와 잇꼬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2010년. 올해는 여장남자 연예인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140Kg의 마츠코 데락스와 케이오대학교 출신의 미츠 만그로브는 각종 오락프로그램에 나와 독설을 내뱉는다. 남성에서 여성이 된 뉴하프 연예인들이 그 이력을 살려 주로 미용이나 패션 캐릭터로 활약한 것과 달리, 여장남자 연예인들은 거칠고 직설적인 멘트로 주목받고 있다. “요즘 잡지들은 부록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라던지, “미의식은 착각에서 시작한다”라던지, “여자 아나운서들은 죄다 쓸모가 없다”라던지. 일면 술집 마담 캐릭터의 확장 같기도 하다.

일본 TV는 순전히 캐릭터 싸움이다. 개그 콤비는 철저히 먹고 주는 역할이 구분되어 있고, 아이돌 멤버들은 오락프로, 드라마, 그리고 연극 무대에 나가 나름의 위치를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지 정치적으로 옳은지 그른지가 아니다. 남성을 버리고 여성이 된 사람보다 여자에게 미를 이야기하기에 더 적합한 사람은 없다. 마담의 말투를 그대로 살려 술집의 질펀한 토크를 재현할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짭짤한 심야 프로그램도 없다. 실제로 마츠코 데락스와 미츠 만그로브를 게스트로 부른 많은 프로그램이 술집에 앉아 바에 턱을 기대고 마담의 이야기를 듣는 구조를 취한다. 편견을 버리는 대신 편견에서 재미와 이점을 찾는달까. 일본 TV가 유독 성적으로 꽤 관대해 보이는 건 사실 다 재미 때문일지 모른다.

글. 도쿄=정재혁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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