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신이 한국 인디 음악의 메카가 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밴드 안에서 음악의 종 다양성이 보존되기 때문일 것이다. 펑크록이 대세였던 90년대 중반에도 어디에선가는 데쓰 메탈이 연주되고 있었고, 시부야계 스타일이 득세하던 시기에도 어떤 밴드는 테크니컬한 기타 솔로를 들려줬다. ‘인디 10’ 다섯 번째 주인공인 딕펑스 역시 그런 면에서 흥미로운 밴드다. 김태현(보컬), 김현우(키보드), 김재흥(베이스), 박가람(드럼)으로 구성된 이 밴드는 기타 없이 건반을 전면에 내세운 펑키한 피아노 록을 들려준다. 뮤지컬 배우 송용진이 대표로 있는 음악창작단 해적 소속으로서 뮤지컬 에도 출연하며 음악 외적인 활동도 활발히 하는 이들 딕펑스는 홍대 신 안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길 바라고 있을까.최근 그린 플러그드 페스티벌에 출연했다. 이런 대규모 공연에 참여한 느낌이 어떤가.
김태현 : 다른 것보다 야외 공연이라는 게 좀 힘든 것 같다. 항상 클럽에서 조명 받고 공연하다가 대낮에 사람들 앞에 서니 벌거벗은 기분이었다.
“인디밴드 딕펑스라고 불러달라” 홍대 신의 여러 뮤지션과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한 경험일 텐데.
김태현 : 클럽 공연을 하며 친해진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하지만 처음 보는 분은 누군지 몰라서 인사를 안 한다. 쉽게 친해지긴 힘든 거 같다. 기본적으로 우리를 잘 모르고. (웃음)
혹 친해지고 싶은 뮤지션은 없었나?
김태현 : 이번 페스티벌에 나오진 않았지만 김바다 밴드를 되게 좋아한다. 그런데 예전에 같이 공연할 때 사고를 쳐서… 우리 공연이 끝나고 그쪽 팀이 올라오는데 내가 실수로 김바다 씨가 가져온 보컬 이펙터를 떨어뜨렸다. 너무 미안해서 인사도 못하고 도망치듯 내려왔다. 그 뒤로 미안해서 인사를 못한다.
이런 걸 물어보는 건, 딕펑스 스스로를 홍대 신의 한 일원으로 여기는지 궁금해서다.
김태현 : 우리는 어디 가면 항상 인디밴드 딕펑스라고 얘기해달라고 한다. 우리의 뮤지컬 경력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말고 인디밴드로 불러달라고. 그게 좋다. 홍대 신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뮤지컬 덕분에 팬이 많이 생기지 않았나.
김태현 : 팬이 정말 많이 늘었다. 선물도 많이 주시고.
박가람 : 클럽 공연에 50명이 왔는데 정말 예전엔 없던 역사적인 일이다. 고마워하고 있다.
그런 변화가 어색하진 않나.
김태현 : 아직까진 무대 바깥에서 사진 찍고 그런 게 되게 어색하다.
박가람 : 나는 사실 굉장히 밝은 사람인데 팬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팬이 오면 ‘아, 네’ 이러다가 딱 사진 찍고 ‘감사합니다’ 하고 보내면 나중에 사진 올라오고 ‘시크남 박가람’이라고 한다. 시크하긴 뭐가! (웃음) 이번 그린 플러그드에서도 팬이랑 사진을 찍었는데 누군가 댓글로 ‘안 웃으면 말도 못 붙이게 생겼음’이라고 적어서 충격을 먹었다.
클럽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자연스러운데 밖에선 그게 아닌가 보다.
김재흥 : 무대에선 자연스런 모습이 많지. 그래서 태현이의 소위 안티 사진도 많고. 되게 웃기게 찍혀있다. 아침에 그걸 보고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웃음)
“뮤지컬을 하면서 관객유도하는 법을 배웠다” 말하자면 인디밴드로서의 공연과 뮤지컬 공연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도 있겠다.
김태현 : 우리가 걱정한 건, 다른 밴드들이 인디밴드가 뮤지컬을 하는 것에 대해 안 좋게 보는 것이었다. 그런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그런 티를 낸 밴드는 못 봤다. 우리가 뮤지컬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는 거 같다.
김현우 : 그 두 가지 활동이 전혀 다르다는 건 확실히 알게 됐다. 뮤지컬을 하면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박가람 : 이 친구(김현우)가 한 얘기가 있는데, 홍대 공연이 민주주의라면 뮤지컬은 독재라고 하더라. (웃음)
김현우 : 언젠가 (송)용진이 형에게 대판 혼난 적이 있다. 내가 대사를 틀리니까 그 다음 친구가 헷갈려서 틀리고, 그 때부터 다들 웃겨서 웃으면서 대사를 한 거다. 용진이 형이 그걸 보고 완전 화나서…
김태현 : 죽을 뻔했다. (웃음) 그 이후로 또 웃긴 일이 있으면 다들 꾹 참는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되는 일면도 있지 않나.
김태현 : 사람들을 유도하는 방법이랄까, 그런 것이 늘었다. 홍대 공연은 아무래도 자유롭지 않나. 어디를 쳐다봐도 되고 보기 싫으면 안 봐도 되고. 그런데 뮤지컬은 무조건 관객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 시즌1 초반의 영상을 보면 너무 산만하다. 계속 다른 곳 쳐다보고. 그러다가 이제는 관객 시선을 끌어오고 박수 유도하는 걸 많이 배웠다.
박가람 : 우리가 클럽에서 공연을 하면 여섯 곡 정도 부른다. 그 사이를 매끄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뮤지컬의 경우 스토리가 있어서 곡 사이사이 웃음코드를 비롯한 요소들을 주며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지 않나. 그런 걸 공연에 도입하면서 전체 곡을 하나의 묶음으로 소화하는 법을 배웠다. 예전에 토토의 공연을 봤는데 한 편의 뮤지컬을 본 느낌이었다. 그런 걸 우리도 좀 배운 거 같다.
그런 스토리 라인이 있는 콘셉트 앨범을 만들어도 재밌을 거 같다.
김태현 : 뮤지컬은 로 족하다. 우리가 뮤지컬 밴드로 시작한 건 아니니까.
김현우 :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김재흥 : 좋은 추억으로만 가져가면 좋겠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면서.
아, 정말? 하지만 꼭 뮤지컬 활동의 일환으로서 그런 얘길 한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딕펑스의 음악은 뮤지컬적인 요소가 있지 않나. 특히 ‘아스피린’ 같은 곡에서.
김태현 : 그런 요소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듣긴 한다. 우리가 곡을 쓰거나 노래할 때 그냥 남들과 똑같이 하면 차별화가 안 되지 않나. 그래서 무대 위에서 보여줄 만한 것들을 많이 생각하며 곡 작업을 한다. 그러다보니 그런 걸 많이 쓰게 된다.
김현우 : 그런 것도 있고 회사 대표이자 이번 앨범 프로듀스를 해준 용진이 형이 뮤지컬 배우다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색을 넣은 게 있다.
그런 뮤지컬적인 요소와 피아노 록이라는 장르적 측면이 결합해 딕펑스의 색깔을 만든다. 어떤 방향을 미리 정하고 가는 건지, 아니면 서로의 음악적 색깔이 섞이면서 만들어간 건지 궁금하다.
김태현 : 후자다. 처음 밴드 시작할 땐 현우가 벤 폴즈 음악을 들려주고 이런 거 하자고 해서 한 거였다. 피아노로도 록을 할 수 있다는 모토로 멤버를 모은 건데 하다 보니 연극적 요소도 들어가고.
그런 면에서 각 멤버의 음악적 취향이 궁금하다. 건반 연주를 들으면 제리 리 루이스의 연주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김현우 : 사람들이 그 사람의 연주를 많이 권하긴 하는데 솔직히 많이 접하진 못했다. 그런 사람들 흉내를 안 내본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유일하게 좋아한 사람은 재즈 피아니스트인 오스카 피터슨뿐이다. 이 사람이 퍼포먼스가 좋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귀로만 들어도 그가 쳤다는 걸 알 수 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귀로만 듣고 김현우가 쳤다는 걸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태현 : 나 같은 경우에는 퀸의 프레디 머큐리처럼 노래하는 게 목표다. 사실 내가 처음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흑인 음악 때문인데 대학 가서 여러 장르의 음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정말 잘한다고 느낀 보컬이 프레디 머큐리다. 록이든 발라드든 좀 더 가벼운 팝이든 그 때마다 목소리가 다 다르다. 하여튼 너무 잘한다.
리듬 파트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건반이 사운드의 핵인 만큼 본인들은 자제해야 하는 면이 있을 텐데.
김재흥 : 둘 다 곡의 멜로디를 중요하게 여기고 거기에 맞는 리듬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서로 부딪히는 게 없다. 건반이 메인이고 우리는 최대한 그것이 드러나는 연주를 하려 한다.
하지만 화려한 필인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욕심이 있을 수 있지 않나.
박가람 : 나는 그런 거 싫어한다.
나머지 : 정말? 그랬어?
박가람 : 사실 옛날에는 엑스재팬을 좋아했다. 요시키는 드럼을 굉장히 화려하게 치지 않나. 그러다 넬을 듣게 됐는데 정말 좋았고, 이 팀처럼 칠 것만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학교 선배 중에 정말 화려하게 드럼을 치는 사람이 있는데 칠 땐 몰랐는데 보는 입장에선 그게 별로더라. 다른 파트들도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고. 그래서 나는 음악에 어울리게만 치는 편이다.
김재흥 : 내가 중학교 때부터 듣고 즐겨 카피했던 건 크라잉넛 형님들 같은 음악이었다. 그러다 입시 때문에 재즈도 하고 그랬던 건데 이제 다시 딕펑스를 통해 어릴 때 했던 스타일로 돌아온 것 같다. 이런 연주가 좋다.
“우린 한 명이라도 빠지면 큰일난다” 서로 고집 안 피우고 잘 화합하는 것 같다.
김태현 : 곡 작업을 하면서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다. 뭔가 하자고 하면 다들 ‘그래’ 이러니까. 다른 밴드들은 그 때 서로의 의견을 세우다 깨지는데 우리는 그런 적이 없다.
김재흥 : 가사 같은 것도 태현이가 어떤 의견을 내면 다들 ‘좋네’ 이러면서 간다. 다들 성격들이 그렇다. 이건 죽어도 아니야, 이런 게 없다.
김태현 : 귀찮으니까.
박가람 : 난 별다른 생각이 없다. 그냥 하자고 하면 다 따라간다.
그럼 제안은 누가 제일 많이 하나.
박가람 : 재흥이가 제일 많이 한다. 리더니까. 이 친구가 뭐 하자고 하면 대부분 따른다.
김재흥 : 음악적 아이디어는 다들 다양하게 내고, 그걸 뒷받침할 아이디어를 다른 멤버가 내는 방식이다. 내가 하는 제안은 다 잡일에 대한 거다. 홈페이지에 영상 올리고 그런 거.
안 그래도 궁금했다. 무슨 영상을 그리 많이 찍나. (웃음)
김재흥 : 영상도 조금, 포토샵도 조금 할 줄 알아서 그걸 홈페이지에 써먹다보니 그게 어느 순간 밴드의 이미지가 된 것 같다.
박가람 : 음악도 그렇지만 연기하는 것도 재밌다. 그거 보면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 좋고.
김현우 : 우리 홍보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겠지. 전략까진 아니고 우리를 표현하고 알릴 수 있는 그런 수단 정도로.
그런 것도 재밌긴 한데 정제된 앨범으로 표현된 딕펑스도 보고 싶다. 앨범 계획은 없나.
박가람 : 아까도 말했지만 난 별다른 생각이 없어서.
김재흥 : 앨범을 진짜 내고 싶다, 이런 건 없다. 용진이 형이 내라면 내는 거고. 너네 EP 하나 내, 이러면. (웃음)
김태현 : 우리 이러면 인터뷰에 너무 줏대 없이 나올 거 같아. 이러면 안 돼.
박가람 : 왜, 솔직하게 대답해야지.
앨범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 알겠다. (웃음) 그러면 딕펑스라는 팀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욕심은 있나.
김태현 : 딕펑스는 무조건 해야지.
박가람 : 한 명이라도 빠지면 큰일 난다.
김재흥 : 서로 말도 안 되는 코러스를 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면 이걸 누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웃음)
그렇게 꾸준히 활동하며 딕펑스가 어떤 밴드가 되면 좋겠나.
김재흥 : 아직 뭔가를 정의하기에는 우리가 어린 거 같다. 아직 잘 모른 채 시작하는 단계니까.
김현우 : 음악을 꾸준히 하겠지만 음악만 하진 않을 거 같다. 여태 보여준 뮤지컬이나 영상처럼 중간 중간 다양한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사람들의 이목도 끌고 싶다.
글. 위근우 eight@
서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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