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핑크│청순발랄 칠공주
에이핑크│청순발랄 칠공주
걸 그룹의 필수조건이 긴 생머리, 청순하거나 귀여운 외모, 늘씬한 다리, 발랄한 타이틀곡을 뒷받침하는 애교 넘치는 안무라면, 에이핑크는 걸 그룹의 정석이다. 하얀 교복을 입고 일명 ‘나비춤’을 추며 “자꾸 떨려요 매일 그대 생각해요, 자꾸만 커지는 내 마음을 그댄 모르죠”라고 수줍게 고백하는 일곱 소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설레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S.E.S와 핑클 시절까지 갈 것도 없이 데뷔 시절 소녀시대의 풋풋함을 보는 듯한 에이핑크는 섹시하고 파워풀한 걸 그룹 사이에서 말 그대로 ‘요정’ 혹은 ‘인형’이다.

요정돌보단 왁자지껄 소녀들
에이핑크│청순발랄 칠공주
에이핑크│청순발랄 칠공주
하지만 이건 마법이다. 그것도 지속 기간이 고작 3~4분밖에 되지 않는. 스위치를 ‘무대 On’에서 ‘무대 Off’로 바꾸면 요정 대신 일곱 명의 왈가닥 여고생들이 짠- 하고 등장한다. 환상이 깨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에이핑크의 진짜 매력은 이 반전에서 나온다.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면서 윙크라는 걸 처음 해봤고”(보미) “그냥 걸치고 있으면 그게 옷이라 생각했던”(은지) 선머슴 같던 소녀들의 ‘요정돌’ 변신이라니, 스스로도 “우리가 어울릴까, 다른 사람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라고 인정한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는 수줍게 눈웃음을 짓고 단어 하나하나에 악센트를 달리하며 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애쓰지만, 평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화장도 거울도 아닌 음식이다. 데뷔 전 찍었던 리얼리티 프로그램 에서 야식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무섭게 돌진하던 소녀들의 표정은 “방송을 떠나, 저녁을 굶어 진짜 배고파서 나온 리얼”이었고, 그 와중에 “일곱 명이라 음식을 많이 시켜도 금방 없어져서 생각보다 많이 못 먹었어요…”라고 되뇌는 유경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하다.

“한 40대쯤 돼서도 일곱 명이서 콘서트를 열고 싶어요”
에이핑크│청순발랄 칠공주
에이핑크│청순발랄 칠공주
그런 소녀들에게 인터뷰는 대기실이나 숙소에서 나누던 수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와하하하”, “으헤헤”, “우와아아아”와 같은 웃음소리와 함께 꼬리에 꼬리를 문 대답이 튀어 나온다.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지만 “서울 애들은 깍쟁이라 분명 텃세 부릴 것”이라는 친구들의 걱정과 달리 씩씩한 성격으로 멤버들과 급속도로 가까워진 ‘부산 가시나’ 은지와 “2층 침대에서 편하게 내려오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그냥 떨어진” 말괄량이 남주는 에이핑크의 분위기 메이커다.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연습생 시절에도 남들 앞에 나서서 얘기한 적이 거의 없는 초롱은 리더가 된 후 “독한 마음”을 먹고 동생들에게 잔소리를 하다가도 같이 울어버리는 귀여운 맏언니다. 오죽하면 “막내 하영이의 눈물샘은 초롱이와 연결돼 있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청순한 분위기와 사랑스런 눈웃음을 가진 둘째 보미 역시 돌려차기가 특기인 태권도 3단에 “좀비 영화와 눈알 먹고 껍질 벗기는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다. 물론 10년 넘게 미술을 공부하다가 춤이 좋아 가수의 길로 들어선 나은처럼 옷을 예쁘게 입고 말투가 나긋나긋한, 멤버들이 뽑은 “가장 요정돌 이미지에 가까운 멤버”도 있다. 외동딸이다 보니 외로울 땐 인형과 대화하는 버릇까지 있지만 “언니가 여섯 명이나 생긴” 그룹 생활이 즐겁고 “은지 언니는 알에서 태어났어요?”라는 엉뚱한 농담을 좋아하는 하영이보다 더 막내다운 건, “갇힌 호랑이보다 풀린 강아지가 더 무섭다”고 털어놓을 만큼 겁이 많고 심성이 여린 유경이다.

그래서 라면 이야기에 흥분하고 귀신 이야기에 꺄-악 소리를 지르는 그들은 마치 옹기종기 모여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새 수다를 떨며 수학여행 첫날밤을 보내는, 여느 여고에 있을 법한 ‘칠공주’ 같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한 40대쯤, 다들 자녀가 있을 때도 일곱 명이서 우리 옛날 노래를 부르는 콘서트를 열고 싶은” 꿈을 꾸고 있는 에이핑크 멤버들이 요즘 가장 보고 싶은 영화로 를 선택한 것은 재밌는 우연이기도 하다. 데뷔한 지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걸 그룹의 20년 후를 예측하는 건 성급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 날 그 날 서운했던 일은 아무리 피곤해도 숙소에서 바로 얘기하고 풀어요. 이렇게 해야 나중에 갈라지지 않는대요”라는 기특한 생각을 하는 이 일곱 소녀들이라면 일곱 아줌마가 되어 무대에 설 그 날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