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 너무 예쁘다고 생각해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가 당선되었고, 20년째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연기 잘 하는 배우로 인정받았고, “가정이 가장 행복한 공간인가”라는 질문에 너무나 당연한 듯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결국 자신이 꿈꿨다가 이루지 못한 것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염정아는 “그렇게 생각하니 슬프다”며 웃었다. 예술은 대개 결핍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지극히 균형 잡히고 안정된 인생의 정점에서 MBC 를 통해 ‘김인숙, K, 김마리’라는, 모두 다르면서도 같은 한 여인을 연기한 염정아는 또 다시 예상을 뛰어넘는 최고의 카드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연기 생활 20년을 맞은 그가 “이제는 선배들을 많이 의식하나, 뒤따라 달려오는 후배들을 더 의식하게 되나?”라는 물음에 “나만 본다. 나만”이라고 간결하게 답한 것은 자신의 연기도, 인생도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온 사람다운 반응이기도 하다. 차분히, 요란하지 않게 정상에 오른, 그리고 여전히 가장 흥미로운 배우로 손꼽히는 마흔의 여배우 염정아를 만났다.

엔딩에 대해 제작진은 ‘약간 열린 결말’이라고 했는데, 인숙과 지훈은 어떻게 됐을 거라 생각하나.
염정아 : 죽었을 것 같다. 집에서 둘이 헬기 타고 가는 장면을 보며 ‘저렇게 행복했는데…’ 하면서 엄청 울었다. 작가님들께서는 지훈이 헬기 조종 자격증을 따고 그러는 것들을 통해 결말을 열어 놓으셨지만 나는 헬기 탈 때도 조금 슬픈 예감이 드는 표정으로 연기를 했다. 만약 살았으면 둘이 잠깐 좋았다가 엄청 싸울 걸? (웃음)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 이 작품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염정아 : 한 캐릭터로 좀 다양한 모습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다. 그동안 가정 일에 파묻혀 살았고 특별히 새 작품에 대한 목마름 같은 건 없었는데 대본을 받아보니 ‘괜찮다, 욕심난다’ 해서 큰맘 먹고 한 거다. 그런데 실제로 해 보니까 너무 힘들었다. 겁도 없이 덤빈 거지. (웃음)

“김인숙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김영애, 염정아│염정아 “할머니가 돼도 섹시함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김영애, 염정아│염정아 “할머니가 돼도 섹시함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소화해온 편인데도 다른 때보다 더 힘들었나.
염정아 : 아무래도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이 사람 만났을 때와 저 사람 만났을 때 태도가 다르고, 그 다음 순간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예전 영화 의 엄마,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캐릭터를 갖고 가는 거고 영화 의 선생님, 하면 코미디로 쭉 갈 수 있었지만 이건 드라마라 시간도 없고 한 주에 두 편씩 찍어내야 하는 상황이라 힘들었고 스트레스도 좀 많이 받았다. 이를테면 착한 눈빛과 착한 척 하는 눈빛의 경계를 정하는 것도 힘들었다. 초반에는 굉장히 어려웠는데 그래도 몇 회 지나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탁~. (웃음)

초반에는 김인숙이 불쌍하고 착한 여자처럼 보이지만 점점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도 속여야 했는데, 그렇게 안에 품고 있는 것을 어디까지 보여주느냐도 고민이었을 것 같다.
염정아 : 사실 나는 이 여자의 과거도, 현재의 상황도, 앞으로 어떻게 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조절해서 보여주는 건 힘들었다. 맨날 엔딩에 뭔가 의미 있는 신이 나오니까 “제가 지금 이렇게 웃어도 돼요? 다음에 뭐 있어요?” 하고 감독님께 여쭤봤다. 매 신 표정 하나하나가 부담스럽고,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동년배의 여자 대 여자 입장으로 봤을 때는 김인숙이 어떤 사람이라고 이해했나.
염정아 : 사실 염정아라는 사람이 김인숙을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인물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시청자가 이해를 하겠나. 보통 엄마로선 아들인 조니를 버리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물론 그 여자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이후에 찾지 않은 것도 그렇고 조니가 찾아왔을 때 그렇게 냉정하게 대할 수 있던 것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이었다. 조니가 칼에 찔렸는데 취임식장에 간 것도 그렇고. 하지만 마지막회에서 인숙이 지훈에게 단죄받기 위해 속마음을 막 털어놓는 신을 보며 그런 부분들을 다 씻어내고 이 여자를 용서하게 됐다. 이해라기보다는 내가 용서한 거다. 그럼에도 인숙에 대해서는 충기(기태영)가 얘기한 것처럼 ‘법적으로 무죄, 인간적으로 유죄’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조니가 칼에 찔리고 사라진 뒤 9회쯤에서 인숙이 많이 울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작가들에게 얘기했다던데.
염정아 : 그런데 “절대 눈물을 흘리면 안됨. 절대 울어서는 안됨” 이라고 하셔서…(웃음) 사실 난 아가씨 때도 엄마 역할을 했었지만 그건 가짜였던 것 같다. 보통 엄마라면 내 아들이 내 앞에서, 나를 위해 죽어가거나 찔렸는데 모른 척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물론 그건 김인숙이니까 그런 거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 연기하기는 힘들었지만 그 뒤에 내가 지훈이에게 절규하면서 “우리 아들, 내 아들. 조니야, 그러면 안돼!” 하는 대사는 진짜 엄마의 심정으로 했다.

는 캐릭터 간의 기 싸움이 많은 작품이기도 했는데, 특히 공순호 역의 김영애와 맞붙는 연기는 어떤 경험이었나.
염정아 : 일단 선생님의 연기에 방해가, 누가 되지 않고 싶었고 그 와중에 내 연기를 해야 했다. 나는 한 번에 모든 걸 쏟아내는 스타일이라 NG가 나면 소모전이 되니까 한두 번 만에 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려면 아무리 긴 대사도 완벽하게 숙지해야 하고 감정 변화도 읽고 있어야 하는데 감독님도 카메라 두 대로 그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셨고, 선생님도 연기할 때 배려를 워낙 많이 해 주셨다. 내가 연기하는 부분을 찍을 때 선생님은 뒷모습만 나오는데도 똑같이 받아 주셨다. 나는 그렇게 하면 내 거 할 때 잘 한다. 그게 내 단점이기도 하다.

각각 연기 경력 40년, 20년에 접어드는 배우로서 그런 게 20년이라는 공력의 차이일까?
염정아 : 그렇기도 하고, 선생님은 워낙 타고 나신 것 같다.

그렇다면 본인은 노력파에 가까운가?
염정아 : 음, 나도 좀 타고난 게 있다. (웃음) 다른 때는 내가 영리하다는 걸 잘 모르겠는데,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그런 쪽으로는 머리가 영리한 것 같다. (웃음) 그냥 감성만 갖고 연기하는 것보다 계산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특별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연습하거나 하는 게 아님에도 그 쪽으로는 머리가 좀 돌아가는 것 같다.

집중력이 뛰어난 건가.
염정아 : 뛰어나려고 훈련이 많이 돼 있는 거다.

그럼 현장에서 연기 감정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어떻게 하는 편인가.
염정아 : 옛날에는 슬픈 연기 할 때 할머니 돌아가신 생각 하고 그랬는데, 그러면 연기가 더 안 된다. 그냥 순전히 김인숙으로 가야지만 나오지, 그런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게 그동안 연기하면서 얻은 노하우다.

“인숙에게 지훈은 너무 사랑하는 남자였을 것”
김영애, 염정아│염정아 “할머니가 돼도 섹시함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김영애, 염정아│염정아 “할머니가 돼도 섹시함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SBS 에서는 그야말로 현실적인 일하는 엄마의 캐릭터를 보여줬다면 김인숙은 좀 더 드라마틱하고 비현실적인 캐릭터인데 그 지점을 연기하기에 어땠나.
염정아 : 그런 게 땅에 발붙인 캐릭터와 안 붙인 캐릭터의 차이인데 이런 경우에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감독님, 작가님까지 다 함께 만들어야 하는 면이 크다. 내 입장에서는 대사에도 어려운 단어나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말투가 많아서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사극 같기도, 연극 같기도 했는데 현대극 안에서 그런 것들을 불편하지 않게 들리도록 하는 게 내 임무니까 나에게 가장 편한 상태로 만들려고 애썼다.

김인숙의 복잡미묘한 캐릭터 안에서 일관되게 품위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톤은 어떻게 만들어 나갔나.
염정아 : 일부러 어떻게 해야겠다는 연습을 통해 만들었다기보다는 대본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연기하면서 익힌 감으로 한 것 같다.

이십대 때 쉬지 않고 일해 온 경험이 그런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되나.
염정아 : 분명히 그런 면이 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작품을 너무 가리지 말고 일을 많이 해 보라고 얘기한다. 그래야 안다고.

한지훈과 김인숙의 관계는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연인, 남매, 모자 관계의 분위기가 모두 느껴졌는데 연기할 때는 어떤 느낌으로 하려고 했나?
염정아 : 초반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점점 진행될수록 지훈을 내가 너무 사랑하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사랑하지만 내가 가질 수 없는 남자, 아무래도 내가 가지는 건 너무 비양심적이지 않나. (웃음)

인숙과 지훈의 로맨스가 더 드러나지 않은 것은 인숙이 사랑보다 성취욕이나 복수를 더 우선시했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이 충돌할 때 스스로는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
염정아 : 사실 내가 지금 딱 그 지점에 서 있다. 그런데 결국 내가 선택할 건 가정인 것 같다. 연기를 너무 하고 싶지만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아이들이 너무나 엄마를 필요로 할 텐데 나는 그걸 모른 체 하지 못할 것 같다.

앞서 ‘보통 엄마’라면 김인숙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는데, 스스로는 어떤 엄마라고 생각하나?
염정아 : 나는 좀 극성 엄마인 것 같다. (웃음)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데 나이가 좀 든 뒤에 결혼해 아이를 낳았는데 내 새끼니까 얼마나 예쁘겠나. 그리고 내가 좀 몸을 던져 헌신하는 스타일이라 아이들과 있으면 피곤해서 잠들 때까지 애들 쫓아다니면서 노느라 바쁘다. 촬영하는 동안 일주일에 한두 번 밖에 못 봤는데, 작은 애는 16개월이라 마냥 엄마 보면 반가워하고 네 살짜리 큰 애는 조금 새침하게 삐져 있다가 한두 시간 지나야 다시 엄마한테 오고 그러는 게 더 짠했다.

빡빡한 드라마 스케줄 속에서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남달랐겠다.
염정아 : 미안하고, 정말 너무 보고 싶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싶기도 하지만 되도록 그런 생각 안 하려고 했다. 그러면 연기를 못 하는데 어차피 하기로 해놓고 너무 바보 같은 짓이지 않나. 그러다 집에 가면 김인숙은 금세 잊어버린다. 어제도 롯데월드 가서 저녁까지 놀아줬다. 원래 에버랜드 데려가기로 약속했는데 황사가 너무 심해서 집 앞 뽀로로 테마파크에 가자고 했더니 큰 애가 입이 이만큼 나오는 바람에. (웃음)

는 대본이 상당히 치밀한 작품인데 배우 입장에서는 그렇게 디테일하게 짜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잘 맞나, 혹은 내 해석의 여지가 좀 더 있는 작품이 더 좋은가.
염정아 : 나는 짜인 거, 시키는 거 하는 걸 잘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걸 좋아한다. 그게 허술하지 않다면.

그렇다면 연기 이전에 잘 짜인 작품을 만나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염정아 : 반 이상은 운인 것 같다. 너무 잘 될 것 같다고 기대하지만 해놓고 보면 별로인 것도 있고, 별로 기대 안 하고 했는데 잘 되는 작품도 있고. 는 그동안 반응이 어땠는지 잘은 모르지만 요즘 마트 가거나 하면 잘 봤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염정아 씨”가 아니라 “K”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고. 한 번은 촬영하느라 어느 공원을 지나가는데 할아버지 두 분이 앉아 계시다가 나를 보고 “K”라고 하시는데 굉장히 뿌듯했다. (웃음) 사실 드라마를 누군가가 좋게 봐 주고 반응해 준다는 건 대단한 힘이다. 현장에선 정말 견디기 힘들다. 잠을 안 자니까! (웃음) 그런데도 버틸 수 있는 건 그걸 보고 즐거워해 주시는 분들 덕분이다.

“이제는 내 색깔이 뭔지 좀 알게 된 것 같다”
김영애, 염정아│염정아 “할머니가 돼도 섹시함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김영애, 염정아│염정아 “할머니가 돼도 섹시함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KBS ‘1박 2일’로 오랜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염정아 : ‘1박 2일’은 워낙 좋아해서 촬영하는 동안만 빼면 항상 봐온 프로그램이다. 한 번 바람을 쐬고 싶기도 했고, 너무 칙칙하고 어두운 캐릭터를 하다 보니까 ‘나 칙칙한 사람 아니야’ 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웃음)

‘1박 2일’에서 파트너를 결정한다면 누가 좋을까.
염정아 : 이승기? 제일 예쁘니까. (웃음) 우리 딸이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이기도 하고.

‘야생’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입수, 야외취침에 민낯 공개를 불사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염정아 : 사실 그건 출연 결정하고 나서 들었다. (웃음) 그냥, 남들 하는 만큼 해야지. 안하려면 가지 말아야 하는 거고.

연기자가 아닌 인간 염정아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는 편인가.
염정아 : 예전에 MBC 에 한 번 나간 걸 빼면 예능을 잘 안 했다. 미스코리아 때 예능 나가면 얌전빼는 게 몸에 뱄었고 연기자가 나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좀 별로였는데 결혼하고 애 낳으면서 아줌마가 되었는지 뻔뻔해진 것 같다. 재미있었다. (웃음) 예능을 계속 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이번에는 드라마도 끝났고 하니까.

연기라는 걸 처음 시작했을 때도 나에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나?
염정아 :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다. 이거 외에는 다른 걸 생각도 안 해봤다. 내 스스로 너무 예쁘다고 생각해서 미스코리아도 나갔고. (웃음) 연기를 하고 싶어서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선택해서 갔으니까.

그런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예쁘고 잘 하는데 사람들이 내 기대만큼 사랑해주지 않아서 고민한 적도 있나?
염정아 : 이십대 때. 그런데 그 때는 그럴 만 했던 것 같다. 지금보다 훨씬 예뻤지만, (웃음) 어설펐던 시절이다. 뭐가 뭔지 잘 몰랐고, 지금 생각해보니 별로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다만 발음 같은 게 좀 타고난 편이라 늘 대사는 잘 소화했던 것 같다. 그런 것 때문에 계속 올 수 있었던 거고.

악녀 캐릭터를 많이 했던 것도 사랑을 덜 받은 이유였을까?
염정아 : 그런 것도 있을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그런 캐릭터를 많이 욕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응원도 해 주고 하니까. 만약 아직도 착하고 여리여리하고 예쁜 여자들만 좋아하는 시대라면 내가 계속 연기를 하고 있지는 못했을 거다. 그런 게 나랑 잘 안 어울리니까. (웃음) 나도 예전에는 그런 걸 잘 몰랐는데 이제는 내 색깔이 뭔지 좀 알게 된 것 같다.

사실 외모에서 느껴지는 도회적이고 예민한 분위기와 실제 성격은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보는 사람들은 비주얼적인 면에서 배우를 받아들이는 면이 많은데 그래서 아쉬운 점도 있나.
염정아 : 물론이다. 좀 더 예쁘면 좋겠다던가, 좀 더 착하게 생기면 좋겠다던가, 좀 더 포동포동한 스타일이면 좋겠다던가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그냥 나는 나니까. 나 같은 색깔을 가진 배우가 또 누가 있겠나. 내 바람은 나이를 먹어도, 할머니가 돼도 섹시함이 있는 배우가 되는 거다. 아마, 여배우니까 그런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연기를 하지 않을 때 가정으로 돌아가서 배우가 아닌 인간 염정아로 살 수 있는 공간이 확실히 있는 셈인데, 결혼 전에는 어땠나.
염정아 : 그래서 늘 일을 했던 것 같다. 어떻게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연애도 별로 안 했고 친구도 별로 없어서 집에… 그냥 있었다. 맥주 마시면서. (웃음)

결혼 후에도 집에 있다 보면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 않나?
염정아 : 너무 재밌는 드라마의 캐릭터를 봤을 때 ‘와, 저거 내가 하고 싶다’ 이런 정도? 그런 게 많았던 건 아니고, 을 재밌게 봤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니까. (웃음) 그리고 을 굉장히 재미있게 봐서, 그런 느낌의 여자 버전이 있다면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로 비슷한 작품을 한 것 같다.

20년 동안 한 분야에서 일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고 그만 둘까 고민하게 될 때도 있었을 텐데.
염정아 : 한창 일할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예전에 여드름이 너무 많이 나서 얼굴을 화면에 들이밀 수가 없어서 한참 쉰 적이 있는데 내 의지로 쉬는 게 아니니까 속상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일하기 싫으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가정이 있으니까, 그러다가 다시 하고 싶은 작품을 만나면 돌아올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지금 비슷한 연배로 고현정이나 김희애처럼 여전히 흥미로운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여배우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라이벌보다는 같이 잘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 같기도 하다.
염정아 : 물론이다. 내가 마흔 살이 됐는데, 예전에는 사십대 여배우가 어떻게 드라마 주인공을 했겠나. 세상이 바뀐 거다. 아마 내가 할머니가 되면 그 때는 또 다를 거다. 그럴 거라 믿고, 그걸 당연하게 만들어 준 사람들이 지금 같이 가고 있는 배우들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신인 배우들이 ‘평생 배우’를 꿈꾸지만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 신인 시절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 중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은 그리 많지 않은데 20년 동안 연기를 해 온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 줄 수 있을까.
염정아 : 그냥,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하면 좋겠다. 외모를 가꾸라는 게 아니다. 스스로를 귀하게 생각하면 좋겠다. 공주병 걸리라는 얘기도 아니다. 연기 아닌 다른 데 가서 너무 소모되지 말고, 차곡차곡 쌓아 가면 되지 않을까.

인터뷰,글. 최지은 five@
인터뷰.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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