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실제로 만난 그녀는 <상하이>를 작업한 존 쿠삭이 보냈던 “모나리자”라는 찬사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우아하다. 그녀와 대화를 나눈 것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걸어 나온 모나리자를 만난 것처럼 기묘한 경험이었다. 명화에서 갓 튀어나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주변을 꽉 채우는 아우라. 홍차를 가져다 준 스태프에게 표시하는 감사의 제스처, 통역가와 인터뷰어를 모두 아우르며 대화를 이끄는 매너까지. 그것은 배우이기 때문에 획득한 분위기를 앞서 대륙에서 나고 자란 여성이 가지는 당당함과 기품을 체화한 이가 보여줄 수 있는 품이기도 하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어떤 배우들은 연기하고 나서 프로모션 활동을 한다거나 연출을 한다거나 다른 쪽의 일들을 준비하는데, 저는 배우로 시작해서 그거 하나만 잘 하려고 노력했어요.” 오로지 배우라는 과제에만 몰입해서 20여년을 살아온 그녀가 영화와 배우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영화들을 추천했다.
2000년 | 라스 폰 트리에
“<어둠 속의 댄서>는 제일 좋아하는 영화예요. 처음 극장에서 보고선 영화가 다 끝나고도 계속 자리에 앉아있었어요. 몸이 안 움직이더라구요. 이게 도대체 무슨 영화인가 싶었죠. (웃음) 너무나 강한 인상에 멍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기회가 되면 셀마 같은 캐릭터도 너무 해보고 싶어요. 물론 비욕보단 못하겠지만요. (웃음) <어둠 속의 댄서>는 캐릭터도 그렇고 영화를 만들어가는 기법까지 완벽한 영화예요. 마지막에 뮤지컬적인 장면도 너무 놀랍죠.”
오로지 아들만이 삶이 이유인 여인의 비극과 그녀의 유일한 탈출구인 화려한 뮤지컬 신은 하나의 영화로 묶이기엔 사뭇 다르다. 그러나 그 이질적인 충돌에서 이 영화의 개성이 생겨난다. 제 53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여우주연상 수상작.
1972년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면서 수업에서 학생들이 다 같이 <대부>를 보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 때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를 보면서 너무나 많은 걸 느끼고 충격을 받았죠. 영화도 정말 훌륭한 작품이구요. 1편을 봤을 때 놀라웠던 게 알 파치노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였어요. 그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신인이었는데도 타고난 배우라는 걸 느낄 수 있었죠. 또 코폴라 감독의 재량도 대단했죠. 그 시대를 잘 보여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때에 살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가족과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강해지려고 악착같이 살던 남자는 결국 무자비한 삶의 방식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그 비극과 복수는 대를 이어 계속된다.
1974년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대부 1>에 이어 <대부 2>를 찍을 때 배우들은 이미 연기에 물이 오를 때로 오른 상태였어요. 대사도 별로 없었고 동작이나 다른 표현도 거의 없었어요. 그저 눈빛만으로 그 캐릭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여줘요. 당시에 <대부>에 나왔던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보통 남자 배우들은 다른 남자 배우들을 보면서, 여자 배우들은 다른 여자 배우들을 보면서 연기를 배우는데 저는 그 남자배우들을 통해서 연기를 어떻게 하는 건지 학습했죠. (웃음)”
<대부>는 누구나 알고, 누구나 얘기하는 영화사의 교과서다. 그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는 영화의 줄거리 안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비극이 모두 담겨있다.
1993년 | 브라이언 드 팔마
“<칼리토>도 알 파치노의 영화네요. (웃음) 이 영화도 물론 조직의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여자와의 사랑도 너무나 잘 표현되었어요. 제가 주로 예전 영화들을 얘기하는 이유가 요즘은 특수효과나 기술적인 부분이 영화를 많이 도와주는데 과거의 영화는 그런 도움 없이 감독과 촬영감독이 진짜로 다 찍어냈잖아요. 물론 지금도 훌륭한 영화들이 많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갖가지 효과들이 주의력을 분산시킨다고 할까요? 요즘 영화를 보면 느낄 수 없는 감성을 예전 영화를 보면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뒷골목 생활을 청산하려는 남자. 그러나 늘 그렇듯 어둠의 세계는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신파에 가까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알 파치노라는 배우의 힘이다.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아시아 여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선택의 범위는 넓지 않다. 대부분 특정 이미지로 소비되거나 한정된 배역 안에서 선택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본인을 움직이는 작품만을 선택하겠다는 고집. 그것이 바로 지금의 공리를 만들었고, 앞으로 그녀가 걸어갈 길에 신뢰를 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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