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와 영화 를 함께 한 존 쿠삭은 이렇게 찬사를 보냈다. “공리는 모나리자 같다. 걸어오는 그녀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실제로 공리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걸어 나온 모나리자를 만난 것과 같이 현실감이 결여된 경험이었다. 그녀는 명화에서 갓 튀어나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아우라로 주변을 압도한다. 홍차를 가져다 준 스태프에게 표시하는 감사의 제스처, 통역가와 인터뷰어 모두 아우르며 대화를 이끄는 매너까지. 그것은 배우이기 때문에 획득한 분위기를 앞서 대륙에서 나고 자란 여성이 가지는 당당함과 기품을 체화한 이가 보여주는 품이기도 하다. 세계의 예술 영화 트렌드는 늘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지만 그 주파수가 한창 중국에 맞춰져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곳을 상징하는 이름, 공리. 그녀가 할리우드에서 여성이자 아시안으로 살아가는 것과 배우가 되기 이전부터 흠모했던 배우들에 대해 말했다. 동시대의 실력 있는 여배우들의 롤모델인 그녀가 누군가의 연기를 보고 반했다는 얘기를 하다니, 그 자체로도 너무나 기묘한 체험이었다.로 최초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그동안 공리라는 배우는 아시아의 상징 같은 이미지였는데 의외로 한국을 늦게 방문한 것 같다. (웃음)
공리: 사실 비공식적으로는 의 장소 헌팅을 포함해서 여러 번 왔었다. 물론 이번 영화는 아쉽게도 런던과 태국에서 촬영을 진행했지만 한국에는 늘 공식적으로 오고 싶었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에서 얼마나 유명하고 중요한 영화제인지 잘 알고 있어서 늘 경쟁부문에 초청받고 싶었다. (웃음)
“강인한 모습과 함께 신비로움, 지혜로움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 에 이어 도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둘러싼 중국의 격변을 다룬 시대극이다. 최근에는 주로 시대극 위주로 작업하고 있는데.
공리: 영화를 고를 때는 시나리오를 보고 고르는데 소재와 인물이 좋을 경우 선택한다. 많은 현대극들의 제의가 있었지만 대부분 인물이 단순했다. 곧 중국에서 개봉할 작품인 전까지는. 이 영화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현대극인 것 같다. (웃음) 앞으로도 시대를 떠나 얼마나 좋은 작품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선택할 것이다. 에 매력을 느꼈던 것도 중국인들이 전쟁 시기에 겪었던 마음을 표현한 것도 있지만 미카엘 하프스트롬 감독과 존 쿠삭, 주윤발, 와타나베 켄 같은 배우들과 함께 일을 해보고 싶었다. 모두 너무 존경하는 배우들이고, 주윤발과는 를, 와타나베 켄과는 을 한 적이 있어서 친하다. 존 쿠삭과는 처음 일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는 2차 대전의 시발이 되는 진주만 폭격 사건을 다뤘다. 이것은 중국 뿐 아니라 한국, 일본, 동남아 등 아시아 전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인으로서 이 프로젝트 자체에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남달랐을 듯하다.
공리: 한국도 전쟁을 경험한 국가로서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거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대형 영화인만큼 그들이 바라보는 아시아, 중국의 모습일 수밖에 없지만 이 작품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작가가 중국에 거주하면 9년 동안 작품을 집필했다. 공정한 시각으로 그 시대의 상황을 보면서 썼고, 그 안에서 중국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진실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연기했다. 실제로 당시에는 외국에서 공부하다가 전쟁 시기에 고국으로 돌아와서 저항세력에 가담했던 여성들이 많았다. 내가 맡았던 애나 역시도 그런 여자였고, 그런 애나의 강인한 모습과 함께 신비로움, 지혜로움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애나가 마지막에 상하이를 떠나면서도 꼭 돌아와서 내 할 일을 할 거라고 말하고, 그것을 지켰을 때 감동했다. 민족의식이랄까 민족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그걸 보고 드디어 네가 좋은 역할을 했구나, 이전까지는 악역을 많이 했는데 이제야 정면에 서는 역할을 했구나 하고 좋아하더라. (웃음)
보통 역사물이나 스케일이 큰 영화에선 여성이 사랑을 좆고 남자는 대의를 추구하는데 애나는 다른 남자 캐릭터들이 사랑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조국을 구한다는 대의를 우선에 두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공리: 영화를 쓴 작가가 서양인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의 눈에는 중국 여자가 굉장히 강인하고 인내심도 있고 의리 있게 비춰져서. (웃음) 보통 다른 영화들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보호를 받는데 여기서는 남자가 이야기의 축을 형성하지만 애나가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다. 그녀가 등장함으로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 역시도 그 점에 매력을 느꼈다.
애나라는 캐릭터의 그런 강인한 모습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공리라는 배우에게 빚진 점이 크다. 강인하면서도 첫눈에 반할만한 여성성을 가지고 있고 신비하기까지 한 그녀는 아시아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공리: 사실 할리우드라는 시장에서 아시아 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대부분 선택 당하는 입장이니까. 다만 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시나리오와 감독인데, 좋은 감독들은 자기 작품에 아시아 배우가 필요할 때 어떤 배우가 필요한지 굉장히 오랫동안 관찰하고 고민한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스토리를 어떤 배우가 와서 표현해야 제대로 할까를 생각한다. 그 결과 어떤 영화는 끝나고 나면 감독만 보이고, 어떤 영화는 배우만 보이는 경우가 생긴다. 물론 둘 다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감독만 보인다고 하면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배우만 남으면 그 영화는 굉장히 비참한 거다. 물론 감독이 표현하는 의미를 배우가 잘 살렸다고 하는 게 가장 좋은 경우다. 그런 작품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이모, 롭 마샬, 마이클 만 감독이 기억에 남는다” 유난히 명감독들과 작품을 많이 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감독이 있는지.
공리: 일단 장이모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처음 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8편을 함께 했다. 당시가 배우로서 처음 시작할 때였는데 그에게서 너무나 많은 걸 배웠다. 배우로서 초반에 이미 장이모, 첸카이커 같은 최고의 감독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너무 영광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오스카에서 감독상도 받은 의 롭 마샬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뉴욕에 가서 처음 찍은 영화를 그런 대단한 감독과 함께 했다는 게. (웃음) 를 찍으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마이클 만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는 여자의 심리까지도 너무나 잘 표현했고, 강함과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세밀하게 묘사해서 매번 놀랐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대표적인 아시아 배우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다른 대표적인 아시아 배우인 주윤발, 와타나베 켄과 함께 하면서 아시아 배우로서 세계를 무대로 일한다는 것에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을 것 같다.
공리: 배우는 지역성을 가진 직업이 아니다. 어느 한 곳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다. 중국인으로서 다른 나라에 가서 문화를 접하고 삶을 살아보는 것도 굉장히 좋은 경험이다. 전 세계의 문화는 다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곳에서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경험일 테고, 시야를 넓히고 배울 수 있는 기회다. 나 역시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시각이 넓어졌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또 그런 것들을 영화 안에서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 기회가 된다면 많은 배우들이 다른 곳에서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최근에는 한국의 배우들도 할리우드에 많이 진출하고 있는데, 거기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면 좋겠다.
배우이기도 하지만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굉장히 날카롭고 가차 없는 심사위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웃음)
공리: 맞다. (웃음) 영화제에서는 무서운 심사위원이 된다. 심사위원이라는 자리를 배우한테 주는 이유가 배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주지는 않는다. 배우라는 직업이 전반적인 제작 과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영화에 공정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나 역시도 초반부터 작품에 이입되지 않으면 냉정하게 보고, 한 번 몰입되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기 때문에 역으로 또 정확하게 볼 수 있다.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예민하고 감성적이다. 동시에 굉장히 이성적이기도 하다. 감성을 연기하지만 여기서 몇 발자국을 걸어가야 하고 동선도 체크하는 등 이성적인 면을 기억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 더 정확해지는 것 같다.
“알 파치노나 로버트 드니로를 보며 연기를 배웠다” 현재 촉망받거나 이미 인정받고 있는 한국 혹은 아시아의 다수의 여배우들이 본받고 싶은 배우로 오랫동안 공리를 꼽고 있다. 그런 당신에게도 닮고 싶은 배우가 있었나.
공리: 알 파치노나 로버트 드니로. (웃음) 특히 에서 그들은 대사도 별로 없고 움직임도 거의 없다. 오로지 눈빛만으로 그 캐릭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여준다. 를 처음 봤을 때가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있을 땐데, 수업 시간에 그 영화를 처음보고 많은 걸 배웠다. 보통 남자 배우들은 다른 남자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여자 배우들은 다른 여자 배우들의 연기하는 모습을 통해서 학습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남자 배우들을 통해서 연기를 어떻게 하는 건지 배웠다. (웃음)
공리라는 이름에서 리라는 한자어가 지혜롭다는 뜻이다. 배우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지혜로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공리: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떤 배우들은 연기하고 나서 프로모션 활동을 한다거나 연출을 한다거나 다른 쪽의 일들을 준비하는데, 나는 배우로 시작해서 그거 하나만 잘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 한 가지만 유지하고 몰입하고 있고. 배우로서 살아오면서 모든 작품을 내 생각에 따라서 선택했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싫어하거나 남들이 시키는 건 하지 않았다. 그중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 선택은 내가 좋아서 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내가 좋다고 느끼는 캐릭터들을 연기할 것 같다. 위험부담은 있겠지만 내가 좋다면 언제든 그 길이 옳다고 생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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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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