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TV를 바꿔놓았다. 스쳐지나가던 TV의 모든 순간들이 인터넷을 통해 다시보기가 되고,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더욱 집요하게 평가받는다. 가 올 한 해 예능의 잊지 못할 순간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인터넷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순간 지나가는 웃음으로만 남았던 예능은 그렇게 영속의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이 잊지 못할 순간들을 남겨준 그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김C는 떠났다. MC몽은 빠졌다. 하지만 좋은 감독은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한다. 나영석 PD는 또 한 명의 MC처럼 출연자들을 직접 조율하며 스태프와 출연자들의 대결구도를 ‘1박 2일’의 재미로 만들어냈고, 온갖 위기에서도 수십 명의 제작진을 다독이며 ‘1박 2일’을 여전한 최고 인기 예능으로 이끌었다. 덕분에 밥값은 꽤 나갔지만, 그의 리더십은 더욱 빛났다. ‘누구’냐의 문제는 더 이상 토크쇼의 열쇠가 아니다. 조영남-김세환-송창식-윤형주라거나 송해-이상벽-이상용은 물론, 김영옥-나문희-김수미의 조합은 오전 9시의 토크쇼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조합이다. 그러나 MBC 는 이들을 심야로 불러들였고, 어떤 오전에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들을 이끌어 냈다. 그들의 대기실, 냉장고, 전원주택의 뒷마당을 궁금해 하는 대신 추억과 진심을 들여다보니, 거기 감동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쎄시봉이다. 팔을 바닥에 짚고 상체를 뒤로 누인 후 허리와 다리를 상하운동 시킨다. 얼핏 망측한 몸놀림이라 지탄받을 뻔 했던 이 동작은 ‘뜨거운 형제들’ 제작진으로부터 ‘미국춤’이라 명명 받으며 최강대국의 국격에 걸맞는 위엄을 얻었다. 전통의 유럽도 지지 않았다. 스위스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뮤지션 루시드폴은 에서 “칭찬해 주시니 전남 무안하네요”, “자꾸 그러시면 머리에 김나영” 등 ‘스위스 개그’로 좌중을 혼돈과 중독의 늪에 빠뜨렸다. 그러나 수입상품에 대한 섣부른 모사는 인간관계의 단절을 가져옴을 유념하도록 하자. 암호를 해독하려면 알고리즘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 멘트의 앞머리로 ‘신정환 정신 차려라’라는 조합이 가능한 메시지를 전한 ‘라디오 스타’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정서를 알아야 한다. 김구라가 티아라의 지연에게 ‘눈이 하나인줄 알았다’고 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라디오 스타’는 MC가 게스트를 공격하지만 종종 그 공격은 서로를 향하고, 심지어 제작진조차 툭하면 뼈다귀와 빗물 합성으로 그들을 공격한다. 리스펙트? 그거 먹는 건가요? 이게 ‘라디오 스타’의 신천지다. 원하는 것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것이야 말로 유혹의 기본 법칙이다. 그래서 Mnet 는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60초 후에 발표됩니다”라며 애간장을 태웠다. 특히 “제 점수는요”와 “60초 후에”의 콤보가 발사되던 날, 전국에는 원망 섞인 탄식이 흘러 넘쳤다. 그러나 결국 시청자들은 기다렸고, 보았고, 투표를 했고, 제작진은 웃었으리라. 동방신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올해 데뷔한 10인조 그룹 남녀공학 역시 모든 멤버들의 이름이 네 글자다. 악동광행, 천지유성, 지혜태운, 열혈강호, 가온누리, 알찬성민, 미소수미, 별빛찬미, 한빛효영, 한별혜원. 한 번에 외우기 쉽지 않다. 그래서 ‘라디오 스타’의 김국진은 알찬성민를 ‘알뜰성민’으로 잘못 불렀고, 김구라는 별빛찬미에게 ‘반지코디’, ‘리드보컬’ 등 기억하기 쉬운 이름들을 붙여줬다. 하지만 멤버들의 이름은 새발의 피다. 곡명은 무려 ‘삐리뽐 빼리뽐’이다. 이제 재미있는 에피소드 몇 개 정도론 살아남을 수 없다. 2010년의 토크쇼는 발표된 지 13년 된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를 요구하고, 즉석에서 라이브 공연을 청한다. 토크쇼는 점점 새로운 것을 원하고, 어지간한 개인기로는 이제 명함도 내밀 수 없다. 급기야 남의 개인기까지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개인기의 마에스트로 수영은 가수의 생명인 성대를 걸고 SBS 의 고현정의 절규를 접신 수준으로 재연하기에 이르렀다. 점점 버라이어티화 되어가는 토크쇼의 진화와 한 아이돌의 작두 타는 개인기가 정점에서 만난 2010년의 풍경이다. 아침을 샌드위치와 에스프레소로 해결하고, 트위터에 익숙하며 바이크를 타고 다닌다. 막걸리 대신 와인, 이발소 대신 헤어숍, 트로트 대신 에미넴 음악을 즐긴다. 자칫 허세가 될 수 있는 이 모든 행동을 쿨하게 소화할 줄 아는 올해의 차도남은 54세의 김갑수다. 그가 카메라 안에서 늘 살아있는 캐릭터로 기억되는 것은 카메라 밖에서 이렇게 펄떡이는 청춘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나이란 숫자에 불과한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숫자일지도 모른다. 음을 균일하게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잠시만 긴장을 풀어도 호흡이 짧아짐과 동시에 음은 탄력을 잃고 아래로 쳐진다. 모두의 음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합창에서 내 음이 떨어지는 순간 불협화음이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가 쳐지는 순간 화음은 깨진다. 김성민은 순간의 유혹에 제 음을 잃었고 ‘남자의 자격’은 무참히 흔들렸다. 인생도, 합창도, 플랫이 중요하다. 이 뼈저린 교훈을 주기 위해서 박칼린은 여름 내내 ‘플랫!’을 외쳤는지 모른다. 싸이가 장내를 후끈 달구는 동안, 무대 뒤에서 정형돈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주저앉았다. 사정을 알 리 없는 관중들은 환호했고, 정형돈은 그 환호에 보답하기 위해 힘겹게 일어났다.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평생을 웃게 해줄게요”라는 사랑 고백은 비장한 다짐으로 재해석됐다. 한편 2PM의 택연과 우영은 나중에 음원이 출시되면 깔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무반주 댄스를 선보였건만, 라스 제작진은 신곡 대신 스머프 행진곡을 선곡하며 2PM의 유구한 전통 ‘마법의 안무’를 상기시켰다. 과연, 좋은 싱크로율이다.
글. 강명석 two@
글. 최지은 five@
글. 위근우 eight@
글. 윤희성 nine@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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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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