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의 발견> 아쌀해도 괜찮아
아쌀해도 괜찮아" /> KBS1 화 밤 12시 40분
강허달림은 ‘봄날은 간다’를 질겅질겅 씹어서 삼키듯 낭독했다. 불량하거나 무성의했다는 말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입 속에 있었던 것처럼 연분홍, 강바람, 옷고름과 같은 단어들은 잇새에 찰싹 달라붙어 눅진하게 그녀의 목소리에 녹아들었다. 주술처럼 듣는 이를 늦은 봄 강가로 데려가던 목소리는 종내에는 찐득거리는 블루스로 편곡된 그 노래를 불렀다. 아, 이렇게나 이 노래가 아름다웠던가. 그렇게 은 ‘봄날은 간다’를 발견했다. 이 프로그램은 이처럼 종종 문학이 아닌 글을 낭독한다. 눈으로 읽던 문장에 소리를 더해주는 보통의 작업이 신선함을 제공한다면, 귀로 듣던 문장에서 멜로디를 제거해 버리는 일은 낯설음을 선사한다. 특히 ‘유행가…세상 모든 삶들을 위한 詩’라는 주제 하에 몸으로 기억할 만큼 익숙한 노래들에 다른 운율을 덧입힌 어제 방송은 고색창연함과 낭만으로 가득한 한 시절의 자취를 탐닉하는 색다른 흥분을 자아냈다. 출연한 음악 평론가 강헌과 잡지 편집장 이충걸이 직접 낭독하는 틈틈이 배우들의 드라마틱한 무대를 섞어 넣어 지루함을 줄였고, 악극배우인 김태랑이 ‘황성옛터’를 읽어 내려갈 때 전해지는 혼연일체의 분위기는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게다가 강헌의 달변으로 덧붙이는 노래들의 시대적 의미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다만 아침 방송인 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태도로 방송을 이끌어 가는 최원정 아나운서의 지나친 쾌활함에는 의문이 남는다. 그리고 글로 쓴 듯한 문장을 이야기하느라 내내 외국인의 말투로 일관한 이충걸의 긴장감 역시 아쉽다. 어떤 문장은 눈으로 읽는 것이 나은가, 생각할 무렵 “아, 아쌀하다고 말할 뻔 했어요. 미안합니다”라고 입말을 내뱉은 그는 꽤 매력적인 패널이었기 때문이다. 글로 쓰듯 좀 더 ‘아쌀하게’ 해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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