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이상하게 자꾸 니가 눈에 들어오네
김수현│이상하게 자꾸 니가 눈에 들어오네
밤사이 내린 비에도 새싹은 훌쩍 자란다. SBS 의 어린 차강진을 연기한 김수현은 MBC 의 수현, KBS 의 재타의 흔적이 희미해 질 정도로 물씬 낯선 분위기를 풍겼다. 짙은 눈썹과 새카만 눈동자, 동그랗게 빚어진 콧망울에 또렷하게 패인 인중까지 소년의 얼굴은 여전했지만, 눈빛과 어깨, 발자국에 뚝뚝 묻어나는 아련한 순정은 철부지의 것일 수 없는 온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SBS 을 통해 좀 더 밝아진 그를 다시 만나는 순간, 깨닫게 된다. 연한 가지에 처음으로 맺힌 꽃봉오리. 단지 키가 자라는 것만으로는 자아낼 수 없는 그 아슬아슬함 때문에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임을.

김수현이란 이름의 첫 꽃봉오리

카메라 밖에서도 김수현은 보는 이를 긴장시킨다. “저희 어머니가, 사실은……. 조금, 요즘 흔히들 말하는……. 그… 극성 엄마셨어요”라고 힘겹게 시작한 이야기는 외동아들이라서 어머니가 사랑을 많이 주셨고, 소극적인 성격을 고칠 겸 고등학생 때부터 극단에서 연기 수업을 받도록 인도해 주신 것도 어머니라는 지극히 훈훈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남자치고는 어려보이는 외모와 굵직한 목소리의 부조화가 가져오는 이미지의 충돌을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제법 예리한 분석을 말하면서도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저는, 사실 좀, 겉과 속이 다릅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이다. 심지어 질문을 듣다가도 서슴없이 “그런데, 그 옴므파탈이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라고 궁금한 걸 묻고는 “음, 그러면 그 단어는 비에게 굉장히 잘 어울리는 말이네요!”라고 나름의 이해를 정리한다.

다른 사람이 별 수 없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그 힘은 사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김수현이 다듬어 온 비장의 카드다. “연기를 하면서 많이 욕심을 내고 고민을 하는 건 캐릭터로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저거, 좀 묘하다. 제법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래서 눈빛이나 목소리로 사람을 밀고 당길 수 있게 몰입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필살의 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풀어 놓는 그 솔직함은 순진무구하다. 그리고 “제가 연기하는 인물이나 역할은 전부 ‘김수현’이 기본이에요. 저에서 출발해서 인물을 만들어 내는 거죠. 누가 봐도 김수현 같을 수 있도록”이라는 설명은 작품 안팎으로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김수현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강진과 수현, 재일과 재타를 겹쳐놓은 교집합,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표정과 말투가 거기 있는 것이다.

“앞으로 한동안은 쉴 틈 없이 달리고 싶어요”
김수현│이상하게 자꾸 니가 눈에 들어오네
김수현│이상하게 자꾸 니가 눈에 들어오네
김수현│이상하게 자꾸 니가 눈에 들어오네
김수현│이상하게 자꾸 니가 눈에 들어오네
막 가속이 붙은 성장을 스스로도 알고 있는지 김수현은 “앞으로 한동안은 쉴 틈 없이 달리고 싶어요”라고 포부 밝힌다. 그래놓고서 “제가 청춘이라는 말에 민감하거든요. 제가 지금 청춘이잖아요. 그런데, 여자 친구는……..”이라며 문장을 마치기도 전에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할 때, 영락없는 스물셋의 장난스러움이 유쾌하다. 그러나 “사실 어떤 역할이든 다 하고 싶지만,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강진이 같은 역할, 남자 냄새가 나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라고 소망을 말할 때, “겁 없이 할 수 있으니까, 어린 애들이 연기를 더 잘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대 제 나이가 조금 알기 시작하면서 겁먹고, 달려들지 못하고 그런 때인 것 같아요”라고 스스로 뛰어넘어야 할 벽을 짚어낼 때, 그의 목소리는 진지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김수현은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가 피워낼 꽃의 크기는 어림잡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좀 야심가에요. 나중에…”라고 싱긋 웃으며 뜸을 들이다가 “하하하. 세계정복이 꿈이라고 말할 뻔 했어요!”라고 결국엔 웃어버렸지만, 사람은 꿈꾸는 만큼 자라는 법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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