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지상파 3사의 음악 프로그램은 예능 PD들의 휴식처라는 풍문이 돌 때가 있었다. 오랫동안 활동한 예능 PD들이 매주 형식이 똑같고, 섭외도 상대적으로 쉬운 음악 프로그램을 1년 정도 하면서 다음 프로그램에 대한 구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SBS 는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다. 가수의 안무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촬영과 화려한 무대 기획, 그리고 가수들에게 각자 다른 콘셉트의 무대를 선사하는 는 아이돌과 댄스음악의 전성기였던 2009년의 가요계와 맞물려 가요 팬들에게 화제를 모았다. 한 자리 수에 머물렀던 시청률은 최고 14%를 기록했고, 광고는 완판됐다. 그리고 를 정말 ‘인기’있게 만든 박성훈 PD는 곧 1년을 채우고 를 떠난다. 그의 실질적인 마지막 무대였던 SBS 이 끝난 다음 날, 박성훈 PD에게 지난 1년의 에 대해 물었다.

지난 1년 동안 를 통해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외적으로는 시청률 상승 같은 부분도 있지만 아이돌 그룹의 팬들이 카메라워크를 신경 쓰며 본방송을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 나왔다는 게 흥미롭다. 를 떠나는 소감은 어떤가.
박성훈 : 요즘 늘 농담처럼 말하는데 우울증 걸릴 것 같다. (웃음)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PD가 즐겁기는 쉽지 않고 사실 고통스러울 때도 많은데 는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음악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 향유하고 즐기는 사람인데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음악 자체에 개입하지는 않더라도 그걸 재해석해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프로그램을 정말 재밌게 만들어서 시청률은 안 나올 수 있는데, 음악 프로그램의 미세한 차이를 사람들이 포착해서 좋아해주고, 가수들도 그걸 믿어주고 그게 시청률로 반영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 를 마치면서 제일 아쉬운 건 발라드 무대”
박성훈 PD│“<인기가요>에 특정 기획사가 돈을 댄다는 건 오해다”
에 특정 기획사가 돈을 댄다는 건 오해다”" />
그전에는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처럼 음악의 흐름에 따라 컷을 쪼개거나 색다른 카메라워크를 보여주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박성훈 : 사실 계획에 의한 건 아니었고, 실상 남보다 두 배로 일을 하거나 한 것도 아니다. (웃음) 그런데 노래가 나오고 안무 영상을 받아보면 그 전에 그냥 지나쳤던 매력덩어리들이 보였고,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영상까지 보내준 가수들의 노력을 잘 살리지 않으면 죄악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멤버들이 다 같이 쫙 퍼져서 나오는 멋진 안무의 경우 그게 풀샷으로 쭈욱 보던 중에 퍼지면 아무 맛이 안 나지만 원샷에서 포인트를 주었다가 확 퍼지는 걸 보여주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가 있다. 그걸 다 살리다 보면 컷 수가 많아지는데, 처음부터 리드미컬하게 보여준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성격 탓인지는 모르지만 잘게 자르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심하게 나눈 경우도 많았다. (웃음)

발라드 가수의 무대를 보여주는 방법도 점점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성훈 : 사실 를 마치면서 제일 아쉬운 게 발라드 무대다. 댄스 가수들 중심으로 콘티를 짜다 보니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썼던 장르라서 나중에도 좀 후회할 것 같다. 떠날 때가 다가오면서 점점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수들과는 어떤 식으로 작업했나.
박성훈 : 사실 가수들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없다. 그다지 올바른 문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가수들은 PD에게 ‘다 좋습니다’라고 얘기하지 여기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얘기는 아직 못하는 것 같다. 첫 방송 나가고 나서 아쉬운 거 없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하고. (웃음) 대신 매니저들에게 물어보면 비스트의 ‘미스테리’ 같은 경우는 턱을 잡고 돌리는 안무 같은 게 있다는 식의 얘기를 해 준다. 그렇게 해서 동선이 있는 가수들은 무조건 동영상을 찍어 보내달라고 한다. 리허설 한 번 보고 그걸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영상을 돌려 보면서 무엇이 포인트일지 생각해서 그걸 중심으로 콘티를 짠 뒤 그 앞뒤로 컷을 맞추듯 채워나간다. 퍼즐 같아서 머리는 아픈데 재미있다.

의 카메라워크는 멜로디보다 박자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드럼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 영향도 있을까?
박성훈 : 사실 했다고 하기는 민망한데 학교 때 동아리에서 기타를 치다가 옆에 있던 드럼이 재미있어서 치다 보니 나중에는 홍대 쪽에서 가끔 무대에 섰다. 카메라워크에서도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냥, 거기서 안 자르면 이상한 것들이 있다. 몸이 그냥 그렇게 가는 거다. 예를 들어 티아라의 ‘Bo Peep Bo Peep’의 “팔로 미~팔로 미~”라면 ‘미’에서 안무의 동작이 나오는 것도 박자가 그렇기 때문이고.

댄스 가수에게는 포인트 안무가 있다면 연출에도 춤에 따라 집중하는 ‘포인트 연출’이 있을 것 같다.
박성훈 : 늘 있다.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는 팔을 뻗는 동작이 포인트라고 생각했고, 그러면서도 다리의 움직임을 보여줘야 해서 리드미컬하게 여러 컷을 나눴다.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그걸 어떻게 하면 다 보여줄지가 관건이었다. 특히 박자가 마음에 들었는데 정박자라면 “네게네게네게네게 / 빠져빠져빠져빠져”로 갔을 걸 “네게네게네게빠져 / 빠져빠져빠져버려”로 가는 엇박자가 좋아서 그걸 보여주고 싶다 보니 컷을 많이 나눴고 결과적으로 안무를 다 보여줄 수 있었다.

“어떤 노래가 잘 되고 안 될지에 대한 감이 생겼다”
박성훈 PD│“<인기가요>에 특정 기획사가 돈을 댄다는 건 오해다”
에 특정 기획사가 돈을 댄다는 건 오해다”" />
가 화제가 된 건 아이돌 댄스 음악이 대세가 되면서 그런 식으로 최적화된 영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일하면서 느낀 한국 댄스 음악의 특징들이 있나.
박성훈 : 를 하면서 그 전에는 거의 듣지 않던 가요만 1년 내내 들었다. 일부러 그러려던 게 아니라 애정이 생겼다. 전에는 제작자들이 “이번 노래 정말 대박이다”라고 하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노래에 내가 개입한 뒤로는 그 노래가 좋은 거다 (웃음) 그러니 그걸 제작한 사람들은 얼마나 좋겠나. 매번 노래에 대해 상상하고 결과도 많이 보다 보니 어떤 노래를 에서 부르고 나면 다음 날 어떻게 회자될지 약간 예측되기도 한다.

특별히 기억나는 무대가 있나.
박성훈 : 2PM의 ‘Heartbeat’ 컴백무대는 뭔가 부수고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에 유리를 깨고 나오면 어떨까 했는데 특수 유리를 제작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얼음을 생각하고 얼음 공장에 주문을 했는데 얇은 얼음판을 미리 만들어놓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NG가 나면 그 때부터 다시 잘라야 하는 거다. (웃음) 그래서 무조건 NG없이 가야 했다. 그리고 소녀시대가 ‘디어 맘’을 부를 때 멤버들에게 어린 시절에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가져오게 했는데, 멤버들이 무대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 때 이렇게도 느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카라의 ‘미스터’와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가 전혀 느낌이 다른 안무이듯 연출의 포인트도 달랐을 것 같다.
박성훈 : 예를 들면 SM 가수들의 안무는 파워풀하고 딱딱 끊어져서 콘티를 짜기 수월한 편이다. 가수들도 약속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연습할 때 손을 귀까지 올렸으면 언제나 그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계획대로 찍을 수 있고, 군무가 많아서 앵글을 살리기도 좋다.

2PM 같은 그룹은 그런 면에서 좀 어려웠을 것 같다.
박성훈 : 2PM은 좀 어려웠는데, 포인트는 ‘여자들이 쓰러지게 만들자’ 였다. (웃음) 2PM은 팬들도 그들을 가수가 아니라 남자로 본다는 게 느껴지더라. ‘니가 밉다’ 때는 처음 콘티에서는 안무에서 턱을 쓰다듬는 것까지 보여주고 몸으로 내려갈 때 풀샷을 잡으려고 했는데 작가들이 거기서는 끝까지 보여줘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렇게 갔더니 정말 팬들이 그걸 제대로 보여준 방송이 없었다며 좋아하더라. 그리고 나서는 그 다음 주에는 다른 멤버를 보여줬더니 팬들은 다음 주에는 누굴 잡아줄지 궁금해 하고. 그래서 아예 노래를 반복시켜서 멤버들을 다 보여줬다. 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2PM의 ‘Heartbeat’ 컴백 무대에서는 컴백을 알리는 그래픽의 ‘빈 자리’가 리더 재범을 의미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박성훈 : 그 부분은 나도 몰랐던 부분인데, 알고 보니 그래픽 디자이너가 일종의 ‘이스터 에그’처럼 살짝 심어놓은 거였다. 그래서 덕분에 ‘센스 있는 ’라는 말을 들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웃음)

가수들의 컴백 무대마다 개성을 살린 무대를 연출한 걸 보면 가수에 따라 각자 다른 무대를 연출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박성훈 : 그렇다. 특히 작가들의 안목이 굉장히 세련된 편이라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작가들이 통일된 색감이나 컨셉 같은 것들에 대해 굉장히 풍부한 아이디어들을 제시했다. 개인적으로 MBC에서 ‘쇼의 대가’로 불리는 송승종 부장님이 몇 년 전 를 연출하신 적이 있는데, 거대한 배가 들어오는 장면의 아이디어 같은 걸 보면서 관객을 저런 식으로 흥분시키고 고양시킬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도 시청자들을 좀 놀라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케이윌이 두 명이 돼 마주보고 노래를 한다거나 하는 시도를 했었다. 결과가 그렇게 좋았던 것 같지는 않지만 (웃음)

“라이브의 한계는 음악프로그램으로선 부끄러운 일”
박성훈 PD│“<인기가요>에 특정 기획사가 돈을 댄다는 건 오해다”
에 특정 기획사가 돈을 댄다는 건 오해다”" />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예산과 인원을 투입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어려운 점은 뭐였나.
박성훈 : 시간이다. 가수들의 캐스팅이 화요일에 결정되는데, 그러면 그 날 모든 세트의 컨셉과 색감을 다 결정해야 제작이 가능하다. 또 시청자들의 기대는 높아지니까 대충 할 수는 없고. 기분 좋으라고 하는 얘기겠지만 가수들이 나에게 “이런 건 니까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부탁하는 것들도 있고. 그래서 시청자들이 특정 기획사에서 돈을 댄다거나 컨셉을 가져온다거나 하는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2NE1 컴백 때 그 쪽에서 LED를 크게 세우고 싶어했는데, 그건 우리 제작비로 감당되는 게 아니어서 YG가 그 비용을 댄 것이 전부다. 이런 부분들은 잘못 알려지면 우리 아이디어를 가지고 열심히 일한 스태프들이 속상해 할 것 같다.

TV 음악 프로그램의 특징상 밴드 음악의 사운드를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 같다.
박성훈 : 의 제일 큰 한계는 라이브 연주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외국처럼 많은 인원과 장비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올 라이브 프로그램이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연결하고 음향 체크하는 데만 해도 네다섯 시간씩 걸린다. 그걸 못한다는 게 전문 음악프로그램으로선 부끄러운 일이었다.

29일 방송된 ()은 팀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른 스태프들도 모두 바뀌게 되나.
박성훈 : PD와 스태프들이 같이 움직이는 건 아닌데,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12월 20일 방송을 기점으로 인사 이동이 있어서 카메라 팀 전원과 조명 팀이 바뀌었다. 그래서 나도 이번 주부터 다른 스태프들과 일해서 2주 뒤에 마지막 방송을 한다. 같은 경우는 원래 야외 스포츠나 쇼를 촬영하는 중계팀의 카메라가 16대 정도 들어오는 건데, 이번에는 내가 요청해서 팀이 7대를 맡았다.

케이블 음악 채널이라면 수십 명의 PD가 함께 했을 대형 쇼를 혼자 연출하는 데는 한계도 있었을 것 같다.
박성훈 : 벌려놓고 마무리를 잘 못한 부분이 많았다. 현장에서 방송 시작하기 전에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스케일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원더 월드’라는 콘셉트도 한 포인트만 더 연결되었으면 좀 더 훌륭한 연출이 됐을 텐데 너무 제각각 노는 상태에서 마무리가 어설프게 된 것도 많았고.

“은 아쉬운 것 투성이”
박성훈 PD│“<인기가요>에 특정 기획사가 돈을 댄다는 건 오해다”
에 특정 기획사가 돈을 댄다는 건 오해다”" /> 무대와 VCR을 연결하는 시도나 뮤직 드라마 등 올해는 특히 VCR 분량이 많았다.
박성훈 : 시간적인 이유로 무대에서 어떤 장치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내가 겁을 좀 냈다. 그리고 VCR에서 무대로 연결되는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그러다보니 아이디어가 겹친 것들도 있었다. 방송 하면서 보니까 역시 VCR이 너무 많았다. 후회하고 있다.

이번 무대가 아이돌의 합동 공연에만 편중됐다는 비판도 있다.
박성훈 :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어떻게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느냐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 “얘들이 쟤들이랑 뭘 같이 해? 얘들이 저런 것도 할 줄 알았어?” 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췄다. 아무래도 많이 보고 익숙하던 사람들이 있어야 비틀기도 가능하니까 . 그러다보니까 그 중심으로 캐스팅이 된 것 같다.

아이돌 그룹들이 많다 보니 스케줄을 잡는 게 더 어려웠을 것 같다.
박성훈 : 미친 거다. (웃음) 그래서 가수들과 매니저들을 심하게 힘들게 했다. 게다가 요즘 시청자들 눈높이가 높아졌을 뿐 아니라 작년 이 올해보다 더 좋았다. 전임자가 벌려놓고 나가면 후임자는 죽는 수밖에 없다. (웃음) 그래서 무리수도 많았고.

2PM이 너무 많은 무대에 출연한 데 대한 의아함도 있다.
박성훈 : 그들이 올해의 핫 이슈이기도 했고, 같이 일할 때 애정이 많이 가는 친구들이었다. 물론 밸런스를 맞추는 데 실패한 부분이 있다.

그렇게 1년을 결산하는 무대를 끝내고 보니 어떤 기분인가.
박성훈 : 아쉬운 것 투성이다. 대형 쇼는 와 정말 다른 여건에서 만들어지는데 끝나고 나서야 내가 어떻게 해야 했는지 겨우 깨달은 것 같다.

그동안 가수들의 음악으로 일종의 창작을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박성훈 :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지난 1년 동안 에 푹 빠져 있었고, 요즘에는 으로 정신이 없어서 5kg이 빠졌다. 그동안 를 하면서 남의 음악 프로그램은 봐도 예능 프로그램은 안 보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는데 (웃음) 나는 예능 PD니까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이제 돌아가야지.

인터뷰. 강명석 two@10asia.co.kr
인터뷰,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