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융합형 콘텐츠 산업 컨퍼런스 2009가 12월 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제목만 보면 괜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컨퍼런스가 제기하는 문제는 간단하다. 인터넷과 DMB, IPTV, 비디오 게임 등 다양한 플랫폼이 존재하는 현재, 과연 과거의 방식으로 콘텐츠를 기획, 제작, 유통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면 어떤 방식이 가능할 것인지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 중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수석 부사장이자 한국계 미국인 지니 한의 ‘영화 산업과 융합 콘텐츠’라는 발표는 할리우드라는 거대 메커니즘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발표였다. 다음은 발표 이후 매체 공동으로 진행한 지니 한과의 인터뷰다. 9살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대형 제작사의 요직에 앉은 그녀의 이력 때문인지 발표 내용의 구체적 사례 뿐 아니라 한국 영화인들의 미국 진출에 대한 질문이 유독 많이 나온 인터뷰였다.할리우드 대형 제작사의 수석 부사장으로서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
지니 한 : 내가 한국계인 탓도 있지만 나는 무엇보다 한국인이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 덕에 돈을 많이 벌기도 했고. (웃음) 우리 회사에서 제작한 1, 2의 경우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시장 규모 역시 인구에 비해 매우 크기 때문에 할리우드는 최근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에 이병헌 같은 배우를 섭외하는 것도 한국 및 아시아 시장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본다.
“한국은 불법 다운로드가 너무 심해 마케팅이 힘들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마켓으로 눈을 돌리는 건 결국 자국 마켓의 한계 때문은 아닌가.
지니 한 : 갈수록 영화로 돈을 벌기 힘든 시대다. 과거에는 영화를 잘 홍보해서 극장에 걸면 재미가 없더라도 기대 심리 때문에 일주일 정도는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서비스를 통한 즉각적인 입소문이 만들어지면서 재미있을 거라고 속이는 것이 하루 정도만 가능하다. 또 전 세계 동시 개봉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그렇게 되면 주연배우 가령 톰 크루즈 같은 배우가 모든 나라에서 프로모션을 할 수 없다. 프로모션용 프린트도 재활용할 수 없이 각 나라에서 동시에 찍어야 하고. 현재 수익 구조를 보면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제작비를 충당하고, 해외 마켓에서 홍보비를, 그리고 DVD나 TV를 통해 비로소 순이익을 얻을 수 있다.
입소문 얘기를 했는데 그런 면에서 이제는 마케팅의 방식도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지니 한 : 만 천 달러로 제작한 저예산 호러 영화인 의 마케팅이 좋은 사례다. 부인이 집에서 자꾸만 귀신을 본다고 해서 남편이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해 집 안의 일들을 기록한다는 내용인데 정말 무섭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 개의 대학도시에서 주말 밤 12시에만 상영을 했다. TV광고나 신문 광고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입소문이 퍼지고 본 사람들끼리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일종의 공짜 광고가 된 셈이다. 이후, 이 영화가 다른 도시에도 개봉할 것인지를 소비자가 직접 요청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만약 백만 명이 요청하면 전국 개봉을 하기로 약속하고. 이게 꾸준히 카운트가 올라가면서 백만 명을 돌파하자 그걸 또 비디오 캠코더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파티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려 천백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한국에서의 마케팅은 어떤가. 쉽진 않을 거 같은데.
지니 한 : 쉽지 않다. 우선 불법 다운로드가 너무 심하다. 사실 이 얘기를 하자면 24시간이 모자란다. 왜 유독 한국에서만 저작권 침해가 심한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그리고 사업상으로 한국 관계자를 만났을 때 상호의견 교환을 조금 어색해하는 면이 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선 친근함이 중요하지 않나. 하지만 일 대 일 만남에서는 굉장히 강하다. 술을 마시면서. (웃음)
“한국영화의 스토리에는 엣지가 있다”
파라마운트사의 작품 중 1, 2는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한국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이 있었나.
지니 한 : 한국인들은 태권 V와 함께 성장한 세대라 그런지 로봇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또 아시아 마켓에선 블록버스터 액션을 많이 좋아한다. 사실 그래서 의 경우 아시아에서는 굉장히 편하게 마케팅을 했다. 워낙 비주얼이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게 솔직한 대답이다. 다만 조금 특이한 케이스가 있다면 역시 마이클 베이 감독이 만든 다. 우리는 엄청나게 기대를 했는데 미국에선 흥행 참패를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미국 전체에서의 수익보다 더 큰 수익을 냈다. 당시 황우석 박사의 연구 때문에 인간 복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던 것과 맞물려 생각하지 못한 흥행을 했다.
반대로 한국의 블록버스터 을 미국에 배급한 경험도 있는데 미국에서 한국 영화의 성공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지니 한 : 내가 볼 때는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하는 것이 한국 작품을 그대로 배급하는 것보다는 좀 더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 액션 블록버스터보다는 좀 더 미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적이고 아시아적인 것을 강조하는 작품이 더 통할 것이다. 가령 처럼 아시아 문화와 크로스오버를 이룬 작품이 미국 시장에서 더욱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일반적인 스타일의 액션 영화를 잘 만든다고 해도 미국과 한국 액션 영화의 제작비는 차이가 크기 때문에 결국 퀄리티 차이가 생긴다. 의 경우 특수효과가 좋지만 같은 장르의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면 경쟁력이 조금 떨어진다. 한국 영화는 스토리에 있어서 상당히 ‘엣지’가 있으니 강한 부분을 강조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한국의 어떤 작품에 ‘엣지’가 있나.
지니 한 : 미국의 필름스쿨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에 대해 배우는 커리큘럼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이끌어내지만 이 작품의 경우에는 굉장히 불행하고 여운이 있는 결말을 만든다. 복수라는 주제도 흥미로운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너무 폭력적이라 보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분명 미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스타일이었다. 또한 스토리 진행에 있어서도 A 다음에 B 다음에 C인 도식적 구성을 깨부쉈기 때문에 흥미롭다.
“한국 배우도 일상적인 캐릭터도 맡을 수 있을 것” 그러면 우리나라 감독이 미국 시장에 도전할 때 한국에서 만들어 미국에 배급하는 것보다 미국에서 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나.
지니 한 : 한국 영화를 팔 마켓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배급보다는 현지 제작이 나을 거라고 본다. 실제로 미국 제작자들도 한국의 감독들이 매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시스템의 차이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감독의 파워가 상당히 센 편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좀 더 많은 분업이 이뤄지는 시스템이라 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앞서 이병헌 이야기를 했는데 그를 비롯한 한국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려면 어떤 것이 더 보강되어야 할까.
지니 한 : 가장 중요한 건 영어다. (웃음) 그리고 최근까지 아시아 배우들이 미국에서 활동할 때는 쿵푸 같은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이 있어야 어필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일종의 캐릭터 배우로 한정지어지는 면이 있었다. 닌자를 연기한 의 이병헌이나 의 비처럼. 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고 할리우드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의 캐릭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당신처럼 한국계로서 영화 산업의 요직을 차지하거나 한인 배우들의 작품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미국 내 한인 사회의 영향력 때문인지 궁금하다.
지니 한 : 한국인 커뮤니티 자체가 커져서 성장한다기보다는 우리 부모 세대의 인식이 바뀐 것이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예전에는 자식에게 변호사 아니면 의사가 되라고 했지만 이제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해 오픈마인드가 된 것 같다.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성공 케이스가 있으니까. (웃음)
사진 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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