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딱히 아이돌 그룹 유키스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동안 KBS <천하무적 야구단>을 볼 때마다 막내 동호 군은 어디 있나, 누가 말을 걸어 주긴 하나, 표정은 어떤가, 유심히 살피게 되더군요. 누군가가 혹시 눈치를 준 건 아닌지, 그래서 주눅이 들어 있는 건 아닌지 자꾸 마음이 쓰여서 말이죠. 하기야 표정이 편치 않다한들 제가 뭘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하도 악명 높은 형들, 아니 아저씨들이 여럿이다 보니 걱정이 돼 감시 아닌 감시를 하게 되는 거죠 뭐. 아들을 훈련소에 보낸 엄마 마음이랄까? 괜히 짠하고 불안하고 그렇더라고요.

아직 어린애를 저 아저씨들 틈에 넣다니!

사실 아직 솜털 보송보송한 동호 군이 지난 여름 아홉 번째 멤버 선발 오디션에 나온 걸 보고 설마, 설마 했습니다. 최고참 이하늘 씨와는 부모 자식 사이라 해도 어색치 않을 나이 인지라 도통 한 팀이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 말이죠. 그저 유키스 홍보를 위한 일회성 출연이겠거니 했어요. 그런데 결국 수많은 도전자들을 제치고 아홉 번째 멤버로 낙점 되더군요. 기획사나 팬들은 반색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건 아니지 싶었어요. 아무리 다들 들어가고 싶어 용을 쓴다는 주말 버라이어티라 해도 평균 연령이 워낙 높은 팀이라 동호 군 입장에서는 또 다른 학교에 가는 기분일 것 같아서요. 다른 멤버들처럼 야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것도 아니고, 체력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이 통하는 상대도 있을 리 없으니 무슨 낙이 있겠느냐고요. 함께 KM <소년소녀 가요백서>을 진행하던 카라의 한승연 양의 뒤를 이은 생계형 아이돌도 아니고 말이죠.

그 왜 화제의 ‘이근배가 뭐에요?’ 적에도 그래요. 김창렬 씨가 시킨 대로 “사랑해요, 이근배”를 외치더니, 순간 ‘익은 배’가 떠올랐던지 동호 군이 불쑥 묻더군요. 다들 폭소 만발, 뒤집어졌지만 저는 이내 걱정이 앞서던 걸요. 이하늘 씨가 지나치게 고된 지옥훈련에 잔뜩 심정 상해있었던 때라 카메라가 꺼진 뒤가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지난 ‘추신수 선수 특집’ 때 부동의 4번 타자 오지호 씨가 헛스윙을 하자 감히 “지호 형 배트 스피드가 느려요”라는 당돌한 평가를 내리기도 하고, 또 그걸 들은 김창렬 씨는 어린 아들의 뜬금없는 한 마디에 놀라 웃듯 동호 군을 끌어안고 “귀여워”를 연발하며 볼을 부비더라고요. 그걸 보니 이젠 마음이 턱 놓이던 걸요. 동호 군도 기억나죠? KBS <스타 골든벨>에 천하무적 팀이 출연했을 때 ‘김창렬 씨에게 천하무적 야구단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김창렬 씨가 ‘가족’이라고 답했잖아요. 아니 천하의 DJ DOC와 패밀리라니, 그것도 프로그램을 넘어 평생 가족으로 갈 거라니 이보다 든든할 데가 있나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니까요.

아이돌 여럿 잡을 동호 군의 활약

그건 그렇다 치고 무엇보다 일취월장한 야구 실력을 언급 하지 않을 수 없죠? 사실 감격의 팔도원정경기 첫 승 때 마지막 플라이 볼을 동호 군이 멋지게 잡아내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땐 그저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졌다고만 여겼어요. 그러다 홍천 드래곤즈와의 경기 때 형들은 섣불리 건드리지도 못하는 최강 투수의 공을 쳐내고 그 덕에 다행히 무승부를 기록하는 걸 보고 그제야 무릎을 쳤지요. 수비만 잘해줘도 고마울 진데 그처럼 적시 안타까지 쳐내는 걸 보면 그만큼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는 얘기니까요. 거기에 김성수, 조빈 등 새로 영입된 선수들에게 치어 선발에서 빠져 안타깝더니만 ‘추신수 선수 특집’에서는 김C 감독이 당당히 8번에 넣었더라고요. 전광판에서 동호 군 이름을 찾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더구나 이 경기에서도 첫 안타는 동호 군이 기록했으니 이변이 없는 한 주전 자리는 한동안 고수할 수 있겠죠? 그런가하면 며칠 전에 TV를 보다 “오옷, 우리 동호다!”하고 소리쳤다는 거 아닙니까. 검은색 수트를 입고 ‘만만하니’를 부르는 동호 군의 한껏 도도한 표정이 어찌나 귀여운지! 이러다 기획사들이 동호 군을 롤모델 삼아 아이돌 여럿 잡으면 어쩌지요? 어지간한 근성으로는 어렵지 싶은데.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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