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여고괴담>이냐? 그러나 <여고괴담>은 계속 됩니다.” 영화 <여고괴담5-동반자살>(이하 <여고괴담5>)을 만든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지난 12일, 이종용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참석한 언론 시사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쾅-쾅-쾅 시간차 공격으로 다가와 심장 떨리게 한 단발머리 귀신이 첫 선을 보인 지도 벌써 10년이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동안 교환일기를 쓰던 여고생들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고작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반항했던 아이들은 클럽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적 또는 악으로 설정되었던 대상도 선생님에서 같은 친구로, 남자친구로 계속 바뀌었다.

그러나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압박, 여고라는 닫힌 공간에서 싹트는 우정에 대한 강박은 여전하다. 여고괴담 10주년 기념작 <여고괴담5>는 그 시선을 극도로 유지하고 있다. 언주(장경아)와 전교 1등을 다투는 유진(오연서)은 언주의 단짝 소이(손은서)를 이용해 언주를 괴롭히려고 하고, 언주의 의문의 자살 이후 소이를 향한 전교생들의 린치는 잔인하다. “전편들에 대한 사랑고백”이라는 는 대사와 신마다 과 에 대한 오마주가 담겨 있어 시리즈를 모두 섭렵한 팬이라면 찾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진 걸 뺏는 건 절대로 용서 못해” 유진, 오연서
전교 1등을 다툴 정도로 성적도 좋고, 특유의 카리스마로 친구들 사이에서도 대장 노릇을 한다. 그러나 “학교 다닐 때는 친구가 전부”인 것 같다는 오연서의 생각과는 다르게 유진에게 친구는 그저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유진은 한 번 얻은 모든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 오연서는 영화의 메세지를 “남자를 조심하라”로 요약했지만 사실 남자보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대상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끝까지 가는 유진일지 모른다.

“우린 죽음도 함께 하는 영원한 친구야” 언주, 장경아
“한겨울에 시체분장보다 힘들었던 건 지독한 분장 냄새 때문에 촬영장에서 늘 혼자였던 것”이라는 장경아의 외로움은 슬픈 귀신 언주에게는 오히려 힘이 되었다. 귀신이지만 무섭다기 보다 불쌍한 언주는 유진을 꺾고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모범생에다 평생을 함께할 친구, 소이도 있는 행복한 아이였다. 그날 밤,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기 전까지는. “공부 잘해 집 잘 살아, 걔가 뭐가 부족해서 자살 하겠어”라는 친구들의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던 언주는 왜 자살을 결심한 것일까?

“우리 이젠 다른 반이잖아, 나한테 그만 집착해” 소이, 손은서
어찌보면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소이. 언주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지만 2학년이 되면서 반이 달라지고 유진의 계략으로 언주를 멀리하게 된다. 그렇게 유진과 어울리지만 자꾸 자신에게 집착하는 언주가 부담스러운 한편 미안하기도 하다. “각자의 아픔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슬픈” 자살의 동기를 가졌던 소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여고에서 벌어지는 괴담의 중심에 서게 된다.

관전포인트
“공포를 위한 폭력이라기보다 고통 속에 있는 순수한 여고 2학년생이 누군가를 미워했을 때 벌어지는 비극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여고괴담5>는 공포라는 장르에 충실하게 선혈이 낭자하다. 그러나 이미 강도 높은 슬레셔 영화와 매년 여름 찾아오는 호러 영화들로 단련된 공포물 수요층에게 그 시각적 쾌락은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공포의 강도는 희생양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살해되었는가에도 방점이 찍히지만 영화 전체를 짓누르는 분위기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 <여고괴담5>는 순간순간 비명을 유발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혼전임신, 낙태, 학교폭력 등 여고생들의 고통스러운 사연을 뮤직비디오 수준의 단편적인 처리에만 머물러 감독이나 배우들이 강조했던 “여고생들의 슬픈 이야기”에 관객들이 눈물 흘리기에는 그 깊이가 충분치 않다. 시리즈가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닌 소녀들의 슬픔을 담아내고자 한다면 책을 읽는 것 같은 우정 묘사 대신 여고생들의 교실로 들어갔던 초기작들의 세밀함을 소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진제공_ 필름마케팅 비단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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