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보니 스타, 아니 서른이 되어 있다. 한 살, 한 살 쿠폰에 도장 찍듯 알뜰히 모아 한 판 꽉 채웠지만, 열심히 나이 먹느라 수고했다며 하다못해 공짜 커피 한 잔 내주는 곳 없다. 그저 얻은 것은 주름살이요, 변치 않는 것은 헐거운 지갑뿐인가. 이 나이 먹도록 독립도 못해 부모 둥지 무너지는 줄 모르고 빌붙어 사는 뻐꾸기 같은 신세도 한심스럽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프리랜서인지라 구만리 같은 앞날은 버겁기만 할 뿐. 흠, 불평불만만 남발하고 있는 것을 보니 슬슬 그들을 찾을 때가 되었나보다. 도와줘, <수박>.

2003년 일본 N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수박>은 ‘해피니스 산챠’라는 이름의 하숙집에 모여 사는 네 명의 여자와 몇몇 이웃들의 여름나기를 그리고 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지는 무더운 여름을 지나보내는 동안, 조금씩 서로의 속내를 터놓고 말 못할 슬픔들을 공유하게 되면서 서서히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겪으며, 곁에 있는 사람의 존재와 소박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 사실 흔하다면 흔한 소재에, 동화적인 감성으로 예쁘고 가볍게 포장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없지 않은 이 드라마를 가슴이 허해질 때마다 즐겨 찾아보는 이유는, <수박>만의 다정한 카운셀링 효과에 있다. 각기 다른 나이를 살고 있는 네 여자의 생활 속 소소한 부분들이 마치 단단하게 이어붙인 누비이불같이 펼쳐져 언제고 덮어보아도 내 것처럼 딱 맞는다. 그래서 그때그때 고단한 마음의 구석까지 포근하게 덮이는데다가, 마음이 좀 말랑말랑해졌다 싶을 때 너무 멀리 보느라 제풀에 지치지 말고 밥공기에 남긴 매실장아찌의 씨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아보자고 속삭인다. 이윽고 나는 그래 그래볼까,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니 상담은 언제나처럼 성공적으로 마무리. 수박씨만큼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고 수박 베어 먹듯 입을 쩍 벌리고 웃고 났더니, 계란 한판이 뭐가 문제냐며, 이 어려운 시기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만 해도 어디냐며 기운이 솟는다.

자자, 좋은 것은 널리 알리고 볼 일이니, 만약 <수박>을 미처 못 본 사람이라면 눈 딱 감고 나를 한 번 믿어볼 것이며, 이미 본 사람이라도 다시 보는 것에 주저 말기를. 물건 좋지 않으면 권하지 않는 ‘텐초이스’이니 말입니다.

글. 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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