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면 KBS <꽃보다 남자>(이하 <꽃남>)가 끝난다. 어떤 이들은 구준표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플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 `막장` 드라마의 종영에 시원섭섭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은 지금까지 그 어떤 드라마도 <꽃남>같은 독특한 현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꽃남>은 방영기간 내내 한국 연예계의 사건과 루머와 논란의 중심지였다. 시청자들은 완성도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면서도 주연 배우들에게 열광하고, 주연 배우들은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다 대부분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근거 없는 소문은 물론, 배우들의 가벼운 발언 하나까지 기사화 됐다. <꽃남>이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탤런트 장자연의 자살은 충격적이었다. 보통의 히트 드라마가 성대한 축제 분위기였다면, <꽃남>은 누구도 편히 웃을 수만은 없는, ‘꽃남 잔혹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이상한 ‘꽃남 현상’은 대체 어떻게 발생하게 된 것인가. 그리고 제작진들은 이 드라마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여기에 <꽃남>의 복잡다단했던 사건들을 정리한 ‘꽃남 잔혹사’ 연표와, 이 드라마를 지켜본 팬들의 복잡다단한 심경을 위로해줄 또 다른 ‘꽃남 이야기’들을 준비했다.
“착한 여자들이 전부 좋은 남자를 좋아할 거라는 선입견을 버리세요.” 우리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꽃남>의 추가을(김소은)이 ‘F4의 플레이보이’ 소이정(김범)을 사랑하듯, 시청자들은 좋은 드라마 대신 <꽃남>같은 작품을 사랑하기도 한다. 스토리는 죽은 줄 알았던 구준표(이민호)의 아버지가 살아 돌아올 지경이고, 드라마의 1/3쯤은 OST를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를 찍었으며, MBC <무한도전>의 ‘쪽대본 드라마 특집’에나 어울릴 ‘막장 CG’를 수놓은 이 드라마를 말이다. <꽃남>말고도 시청률 높은 ‘막장 드라마’는 많았다. 하지만 KBS <너는 내 운명>의 주연 박재정은 톱스타가 되는 대신 ‘발호세’라는 조롱을 받았고, SBS <아내의 유혹>은 온갖 패러디가 가능한 유희의 대상이었다. 반면 시청자들은 F4에게 진지하게 열광했다. 이민호의 곱슬머리 위에는 몇 십억 대의 돈이 얹어졌고, F4를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 때문에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이 ‘나쁜 남자’ 같은 드라마여
드라마가 작품성을 따지기 힘들 정도라는 것은 팬들도 잘 알지만, F4들에겐 진지하게 열광했다. |
이것은 마치 나쁜 남자에게 빠진 연인이 그에게 끊임없이 실망하면서도 그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꽃남>의 팬들은 지긋지긋한 ‘almost para…..dies’가 깔리는 본방 대신 멋진 음악들을 깐 새로운 버전의 UCC를 만들고, 엉망인 <꽃남>의 대본과 뛰어난 대본을 비교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이 드라마를 놓지 못했다. 이 기이한 현상의 시작점은, 물론 F4다. <꽃남>의 제작자 송병준 대표는 이 작품의 중요한 순서를 “첫째는 F4 캐스팅, 둘째는 금잔디 캐스팅, 셋째는 스타일링, 넷째는 로케이션”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꽃남>은 시각적인 쾌감에 의존했다. 그것은 <꽃남>이 아무런 맥락 없이 갑자기 윤지후가 공터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드라마에서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꽃남>에서 그것은 지난 15년간 <캔디>이후 가장 인기 있었던 순정만화를 현실화 시킨 것이다.
한시적 독점시장과 이것을 가능케 한 이들의 동상이몽
PPL과 뜬금없는 장면 남발에도 시청률이 높았던 데는 청춘 드라마를 찾기 힘들었던 시장 상황도 컸다. |
그래서 이 ‘꽃남 잔혹사’는 오히려 HOT와 젝스키스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그 때의 가요계와 비슷하다. 10대들은 자신들의 갈증을 채워준 새로운 시장에 열광했지만, 동시에 그들이 소속된 회사의 횡포와 표절, 립싱크 등의 온갖 논란에 괴로워했다. 당시 아이돌 가수 팬들의 “오빠는 좋지만 소속사는 싫다”는 외침은 <꽃남>에 대한 “F4는 좋지만 발연출은 못 봐주겠다”와 일맥상통한다. 심지어 이런 주장은 상당부분 타당하다. 이민호는 원작이 담고 있는 만화적인 설정과 드라마의 현실적인 톤 사이에서 자기 중심을 잡으며 드라마를 이끌어 나갔고, 김범은 자신의 극 중 이름이 ‘마이정’이라는 드링크제 이름으로 바뀌는 상황에서도 진지한 연기를 능청스럽게 했다. 김현중은 사랑하는 여자를 언제나 도와주는, 가장 비현실적인 설정의 캐릭터를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로 납득시켰다. 그래서 팬들은 <꽃남>의 제작진을 비난하면서도 KBS인터넷이 8~9분 정도의 분량에 최저 500원 이상의 과금을 부과하는 드라마 미리 보기를 결제할 수밖에 없다. F4니까.
<꽃남>이 갈수록 엉망이 되는 것은 이 예상치 못한 독점이 낳은 폐해다. F4를 강조하기 위해 스토리와 상관없이 원작의 장면들을 하이라이트처럼 보여주거나, 개연성 없는 뮤직비디오적인 연출이 반복되면서 대본은 갈수록 뒤죽박죽이 됐다. 신화 그룹 회장 강희수가 남편의 생존을 감추고, 금잔디에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협박하는 희대의 악녀가 된 것은 그런 악역이 있어야 그나마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꽃남>에 계속 새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 역시 그것 외에는 새로운 사건을 일으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를 미치게 만든 괴작의 잭팟, 그 이후는?
개연성 없는 주인공들의 만남과 헤어짐 반복되면서 이야기는 극단적인 갈등 없이는 진행되지 못한다. |
물론 이 모든 책임을 제작사에만 돌릴 수는 없다. <꽃남>의 다급한 제작일정은 신인들이 출연한다는 이유로 <꽃남>을 외면한 방송사들 때문이었다. 방송사는 스타의 고자세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신인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청소년 드라마나 청춘 드라마도 만들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터져버린 잭팟은 모두를 미치게 만들었다. ‘꽃남 잔혹사’는 현재 갈수록 악화되는 한국 드라마의 제작 인프라와 시장 상황, 그리고 앞으로 생겨날지도 모를 문제들이 결합한 희비극이다. 방송사는 신인을 키우거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는 새로운 투자 없이, 로또 기다리듯 대박 드라마를 찾고 제작사는 드라마가 성공하면 드라마의 완성도 대신 돈을 선택하며, 수많은 매체들은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들도 ‘논란’과 ‘사건’이라는 말을 붙여 이슈화 시킨다. 그리고 <꽃남>의 모든 진행 과정을 지켜 본 그들은 앞으로 <꽃남>과 유사한 흥행 전략을 펼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제는 이 잔혹사의 다음이다. <꽃남>은 한국 드라마 업계에서도 가요계의 아이돌 시스템과 유사한 수익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 제작자들은 제2의 ‘꽃남’들을 찾을 것이다. 그 때 제작사들은 <커피 프린스 1호점>처럼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지킬 것인가, <꽃남>처럼 모든 것을 포기한 채 F4같은 ‘꽃남’들과 그들의 팬들을 착취할 것인가. 또한 방송사는 드라마 인프라에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또 한 번의 ‘꽃남’을 기다릴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지금 시청자들은 이미 <꽃남>의 온갖 문제를 지적할 만큼의 감식안을 갖고 있다. 이 나쁜 남자 같은 드라마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한 없이 커진 거품은 한 순간에 꺼질 수도 있다. 금잔디는 강희수에게 “당신은 제가 만난 사람들 중 최악이에요”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시청자가 이 드라마에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애정을 쏟아 붓는 연인이 나쁜 엄마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꼴을 보는 심정. 물론 강희수 회장처럼, <꽃남>의 관계자들은 지금 그것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구준표는 그래도 구준표니까. 하지만, 다음에도 금잔디가 또다시 이런 엄마가 있는 남자와 사귈 확률은 얼마나 될까?
1/12 : 3회만에 시청률 20% 돌파.
3회에 등장한 어설픈 ‘오리 CG’ 논란.
이밖에도 여고생에 대한 폭력과 청소년 음주 등의 문제로 ‘막장 논란’ 시작.
1/14 : KBS 드라마 1일 인터넷 다시보기 기록 경신.
1/19 : 5회에 등장하는 뉴칼레도니아에 대한 과도한 PPL 논란.
1/21 : <꽃보다 남자>의 위법성을 일일이 따지는 기사 등장.
김현중 교통사고.
1/22 : 김준 교통사고.
1/23 : 이민호, <꽃보다 남자> 방영 6회만에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후보 올라.
1/26 : 이민호 매니저 교통사고. 소속사는 “촬영 일정이 빡빡해 매니저들도 잠을 못자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사고 원인 밝혀.
7회만에 MBC <에덴의 동쪽> 시청률 제쳐. 2007년과 2008년동안 단 한번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지 못했던 KBS 월화드라마로서는 처음.
1/28 : 구혜선 드라마 촬영 도중 머리 부상.
1/31 : SBS <스타킹>, <꽃보다 남자>를 소재로한 ‘꽃미남 특집’ 방영.
청계천에서 찍을 예정이었던 구혜선과 이민호의 데이트 장면, 몰려든 팬들로 인해 촬영 취소. 이밖에도 <꽃보다 남자>는 촬영 장면을 구경하려는 팬들로 인해 촬영환경이 악화됨.
2/1 : 김범 교통사고.
2/2 : 9회 방영분에서 과도한 아이스크림 PPL로 다시 한 번 PPL 논란. 이후 <꽃보다 남자>는 죽, 베이커리, 핸드폰 등 각종 상품들의 PPL로 비난을 받음.
2/3 : 이민호, 드라마 내용 중 욕설을 발음하는 입모양을 했다는 주장 등장.
불교계 방송시청자단체인 사단법인 보리, <꽃보다 남자>가 “외모 지상주의에 재벌을 우상화 한다”고 비판.
<꽃보다 남자>가 ‘트러블 메이커 드라마’라는 기사 등장.
OST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 기사화.
10회 시청률 30% 돌파.
2/6 : KBS, ‘F4 토크쇼’ 추진.
2/9 : 김범 두 번째 교통사고.
2/14 : MBC <무한도전>, <꽃보다 남자>를 패러디한‘쪽대본 특집’ 방송.
2/16 : 김현중이 과도한 스케줄인해 촬영중 실신했다는 보도 나가. 이에 대해 소속사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
KBS 인터넷, <꽃보다 남자>의 방송 2-3일 전 8-9분 분량의 유료 미리보기 서비스 제공. 미리보기 요금은 최저 500원으로, 이는 보통 드라마 한 편의 다시 보기 가격과 같음.
LG텔레콤, 제작지원한 <꽃보다 남자> 포스터를 자사 서비스인 ‘틴링’ 홍보에 사용하자 LG텔레콤과 CF 계약을 맺지 않은 출연자들이 항의.
김현중, <꽃보다 남자> 인터뷰 중 “잘나가서 논란도 많은 것 같다.”고 말해.
방송통신 심의위원회, <꽃보다 남자>의 각종 유해성을 이유로 특별위원회 심의 결정.
2/18 : 김소은, CF촬영으로 인한 지각으로 KBS및 제작진과 갈등.
2/20 : 김준, 자신이 그룹 티맥스에서 하차한다는 소문 부인.
2/23 : LG텔레콤과 삼성 애니콜, 이민호의 자사 CF 출연 문제를 두고 갈등.
2/27 : 구혜선 교통사고. 구혜선의 부상이 예상보다 심각해져 <꽃보다 남자>는 결국 3월 2일 방영분을 스페셜 방송으로 대체.
2/28 : 이민호 데뷔작인 EBS <비밀의 교정> 재방송. 이후 조기종영 됐던 <달려라 고등어>도 재방송.
3/7 : <꽃보다 남자>에 출연했던 장자연 자살.
3/8 : <꽃보다 남자>의 제작사, 故 장자연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팬에게 현장 공개를 추진해 일부 배우들과 마찰.
3/17 : 21회에서 이민호와 이민정이 극중에서 ‘신화콜’이라는 핸드폰 광고를 찍어 또다시 PPL논란.
3/18 : 방송통신 심의 위원회, <꽃보다 남자>에 중징계인 경고 조치.
3/24 : 김현중의 매니저, 김현중을 보기 위해 달려온 팬들과 실랑이 중 멱살 잡아 경찰에서 조사 받아.
3/31 : <꽃보다 남자> 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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