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일본에서 홈런 타자로 성공한 이승엽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다면? 아마도 많은 팬들은 최고의 무대에 진출한다는 사실 만으로 기뻐하는 동시에 과연 거기서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의 시선을 보낼 것이다. 일본에서 ‘마왕’이라 불리며 최고의 격투스타로 군림하던 추성훈의 미국 격투단체 UFC 진출은 격투계에선 바로 그런 의미다.

UFC 진출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 그랜드블룸에 천천히 들어오는 추성훈의 첫인상은 한 마리 사자. ‘무릎 팍 도사’에 나왔던 그 때처럼 깔끔한 정장에 가슴엔 포켓치프를 하고 있지만 세상엔 몇 겹 천으로는 가릴 수 없는 야성이 있다. 고백하건데 단 한 번 잡은 질문 기회에서 정말 궁금했던 한국 내 안티 팬들에 대한 질문 대신 그의 코를 골절시킨 미사키 카즈오와의 재대결에 대해 물어본 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진심으로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최대한 자신의 생각을 오해 없이 전달하고 싶었던 듯 일본어로 대답한 그는 “유도복을 입고 입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태극기와 일장기 모두 붙여 입장하고 싶다”거나 “현재 국적이 일본이기 때문에 UFC에선 아키야마 요시히로로 소개될 것”이라며 한일 사이 중간자로서의 입장을 솔직하게 밝혔다. 몇몇 격투 커뮤니티의 안티 팬들은 그를 향해 애국 장사를 해먹는다고 폄하하지만 사실 그는 언제나 그렇게 중간자로서 겪는 어려움을 솔직하게 밝혔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가 세계 최강의 격투가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을 향해 들어가며 “혹독한 경험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그 잔혹한 무대야 말로 국적과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운 해방구이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 현장의 한 마디 : “다음 시합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현재 UFC는 세계 최고의 종합격투기 단체로 군림하고 있다. 아무리 한 마리 사자 같은 추성훈이라고 해도 맹수가 득시글대는 밀림 UFC는 위험한 무대다. 그것은 스스로를 “UFC 내 같은 체급에서 내가 최하위”라고 밝힌 추성훈이 누구보다 잘 아는 일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는 “몇 년 후에 어떻게 될지 격투가로서 대답하기 어렵다”며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음 시합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가 서있는 곳은 그런 곳이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