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꽁꽁 얼어오던 어느 출근길 아침. 문득 작년에 냉동실에 넣어둔 보드카가 생각났다. 친구들에게 맛보이겠다고 어설프게 보드카 칵테일 만드는 법을 배워와서는 보드카를 사고 마트를 몇 군데 뒤져서 라임을 샀던 일 등이 말이다. 결국 칵테일 비율 조합의 실패로 그날의 히트상품은 되지 못했지만 보드카 칵테일은 언제나 마이 페이보릿 칵테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드카가 좋은 이유는 티끌하나 없는 맑디 맑은 그 녀석 자체의 아름다움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다양한 칵테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1. 원통형의 목이 긴 투명한 유리잔을 준비하고,
2. 소주잔 한잔 혹은 한잔 반 분량의 보드카를 유리잔에 붓고,
3. 왕소금으로 박박 문질러 씻은 라임 하나를 즙을 짜서 넣은 후 (기호에 따라 즙을 짠 라임을 통째로 유리잔 속에 투하해도 좋다)
4. 얼음과 사이다를 좋아하는 농도에 맞게 섞어 마시는 방법이다. 사이다의 강한 맛이 싫다면 토닉워터로 대체해도 좋다.

만약 보드카가 남았다면 남은 보드카는 냉동실에 보관하도록 하자. 보드카는 원래 혹독하게 추운 러시아의 눈 속에서 보관하던 술이라 미지근한 냉장실 보다는 요즘 날씨 같은 혹한의 냉동실이 제격이다. 그렇게 냉동실 한 켠에 보드카를 넣어뒀다는 사실을 잊을 쯤한 어느 날, 당신이 냉동실을 열어 그날 남긴 보드카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는 투명한 액체의 움직임에 매료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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