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보다 니 아버지가 더 좋은데? 아니 괜히 쏘가지 피울 때는 미워두. 엄마를 얼마나 위하는데. 햇빛에 탄다구 이런 것도 다 사다주구. 넌 이런 거 안 사다주잖아.”
KBS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모처럼 자투리 시간이 생겨 고향집에 들른 지오(현빈)는 떠나는 날 늘 아버지의 구박받이 노릇을 하는 어머니(나문희)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엄마 나랑 서울 가서 살래?” 한다. 하지만 지오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난 니 아버지가 더 좋은데?” 하더니 멀찌감치 서 있던 아버지에게 달려가는 게 아닌가. 지오가 어머니에게 서울 가서 살자한 소리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한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오는 아들이 탈 버스도 오기 전에 아버지가 부른다고 냅다 달려가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힘들다.
시집가던 날, 아버지께 첫 쏘가지를 부리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뒤섞인 지오를 보며 젊은 날의 내가 생각났다. 경우 똑 부러지게 바르고 살아생전 남에게 싫은 소리라곤 안 하신 우리 아버지도 무슨 까닭인지 지오 아버지처럼 유독 엄마만 쥐 잡듯 잡았었다. 심지어 시집가던 날도 별 것 아닌 일로 아침부터 엄마를 닦달하셨는데, 그 정도가 심하기도 했거니와 집 떠나는 아침이라 가뜩이나 심란해져 아버지에게 평생 처음으로 덤벼봤다. 그런데 “엄마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느냐, 내가 있어도 이러니 내가 없으면 오죽하시겠느냐” 하며 쏘아붙이자 놀랍게도 아버지가 별 대거리 없이 방으로 쓰윽 들어가 버리시는 게 아닌가. 마치 쥐가 호랑이를 물어뜯은 형국이었는데, 지오의 아버지가 아들의 버럭질에 머쓱해 자리를 피하듯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다. 어쩌면 인륜지대사인 딸의 혼사 날 더 이상의 분란은 만들고 싶지 않으셨던 것일 수도 있고, 생전 처음 겪는 딸의 패악에 당황스러워서였을 수도 있다. 나도 시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 처지였기에 망정이지, 여건만 허락했다면 지오처럼 엄마더러 짐 싸서 함께 떠나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우리 엄마는 뭐라 했을까? 지오 어머니의 답과 엇비슷했을까?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그런 말을 묻지 않았고, 대신 아버지가 자리를 피하신 후 엄마를 부여잡고 한 삼십분 넘게 펑펑 울었다. 덕분에 결혼식 사진을 보면 내 얼굴은 죄다 이스트를 넣은 빵 모양 부풀어 있으니 아버지에게 덤빈 벌은 톡톡히 받은 꼴이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댓 차례 지오 어머니가 하는 말처럼 ‘쏘가지’를 부려봤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별 대거리 안하고 내 ‘쏘가지’를 받아 넘기셨는데, 그 속이 궁금해도 돌아가신지 이미 십 년이 넘었으니 이젠 물을 수도 없다.
고마워요, 노 작가
<그들이 사는 세상>이 끝난 뒤 오랜만에 앨범을 뒤적거려 결혼식 사진을 봤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아침결에 기막힌 일을 당했음에도 예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계셨다. 그 얼굴을 아버지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보고 잠깐 기도도 드렸는데, 민망하게도 기도는 부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좀 해주십사 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날 참 사랑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식들을 부탁하듯, 아버지도 그런 마음이었을 테니. 언제까지나, 죽어서까지도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자식은 자식 아닌가. 아버지와 나는 서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나를 사랑했음만은 너무나 분명하다. 지오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말이다.
이 깨달음은 내가 노희경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드라마 속에는 그렇게 내 얘기가, 언젠가 우리가 겪어 봤음직한 얘기가 드라마 안에 녹아 있다. 세상은 주인공 같이 잘난 사람만이 살아가는 게 아니거늘,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 나머지 다른 캐릭터들의 삶이 줄줄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꼬락서니가 아니어서 좋다. 그리고 나의 지난날을 반추하며 ‘생각’이란 걸 할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 고맙다. 내 아버지의 사랑을 재생시켜 주어서.
KBS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모처럼 자투리 시간이 생겨 고향집에 들른 지오(현빈)는 떠나는 날 늘 아버지의 구박받이 노릇을 하는 어머니(나문희)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엄마 나랑 서울 가서 살래?” 한다. 하지만 지오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난 니 아버지가 더 좋은데?” 하더니 멀찌감치 서 있던 아버지에게 달려가는 게 아닌가. 지오가 어머니에게 서울 가서 살자한 소리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한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오는 아들이 탈 버스도 오기 전에 아버지가 부른다고 냅다 달려가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힘들다.
시집가던 날, 아버지께 첫 쏘가지를 부리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뒤섞인 지오를 보며 젊은 날의 내가 생각났다. 경우 똑 부러지게 바르고 살아생전 남에게 싫은 소리라곤 안 하신 우리 아버지도 무슨 까닭인지 지오 아버지처럼 유독 엄마만 쥐 잡듯 잡았었다. 심지어 시집가던 날도 별 것 아닌 일로 아침부터 엄마를 닦달하셨는데, 그 정도가 심하기도 했거니와 집 떠나는 아침이라 가뜩이나 심란해져 아버지에게 평생 처음으로 덤벼봤다. 그런데 “엄마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느냐, 내가 있어도 이러니 내가 없으면 오죽하시겠느냐” 하며 쏘아붙이자 놀랍게도 아버지가 별 대거리 없이 방으로 쓰윽 들어가 버리시는 게 아닌가. 마치 쥐가 호랑이를 물어뜯은 형국이었는데, 지오의 아버지가 아들의 버럭질에 머쓱해 자리를 피하듯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다. 어쩌면 인륜지대사인 딸의 혼사 날 더 이상의 분란은 만들고 싶지 않으셨던 것일 수도 있고, 생전 처음 겪는 딸의 패악에 당황스러워서였을 수도 있다. 나도 시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 처지였기에 망정이지, 여건만 허락했다면 지오처럼 엄마더러 짐 싸서 함께 떠나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우리 엄마는 뭐라 했을까? 지오 어머니의 답과 엇비슷했을까?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그런 말을 묻지 않았고, 대신 아버지가 자리를 피하신 후 엄마를 부여잡고 한 삼십분 넘게 펑펑 울었다. 덕분에 결혼식 사진을 보면 내 얼굴은 죄다 이스트를 넣은 빵 모양 부풀어 있으니 아버지에게 덤빈 벌은 톡톡히 받은 꼴이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댓 차례 지오 어머니가 하는 말처럼 ‘쏘가지’를 부려봤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별 대거리 안하고 내 ‘쏘가지’를 받아 넘기셨는데, 그 속이 궁금해도 돌아가신지 이미 십 년이 넘었으니 이젠 물을 수도 없다.
고마워요, 노 작가
<그들이 사는 세상>이 끝난 뒤 오랜만에 앨범을 뒤적거려 결혼식 사진을 봤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아침결에 기막힌 일을 당했음에도 예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계셨다. 그 얼굴을 아버지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보고 잠깐 기도도 드렸는데, 민망하게도 기도는 부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좀 해주십사 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날 참 사랑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식들을 부탁하듯, 아버지도 그런 마음이었을 테니. 언제까지나, 죽어서까지도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자식은 자식 아닌가. 아버지와 나는 서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나를 사랑했음만은 너무나 분명하다. 지오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말이다.
이 깨달음은 내가 노희경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드라마 속에는 그렇게 내 얘기가, 언젠가 우리가 겪어 봤음직한 얘기가 드라마 안에 녹아 있다. 세상은 주인공 같이 잘난 사람만이 살아가는 게 아니거늘,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 나머지 다른 캐릭터들의 삶이 줄줄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꼬락서니가 아니어서 좋다. 그리고 나의 지난날을 반추하며 ‘생각’이란 걸 할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 고맙다. 내 아버지의 사랑을 재생시켜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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