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되게 좋았었나봐?”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기자가 물었다. 그랬다. 이민기는 정적인 로맨스도, 꼬이고 꼬인 인간관계도 없이 인디 뮤지션 현석이 일본의 한적한 마을 본베츠에서 보낸 며칠을 담담히 그린 영화 <오이시맨> 홍보 때문에 수많은 인터뷰를 돌았다. 그리고 충혈된 눈과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얼굴로 <10아시아>와 마지막 인터뷰를 하면서도 이민기의 웃음소리는 종종 인터뷰가 진행된 작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가 편했던 건 단순히 그가 잘 웃어서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연기한 영화 캐릭터를 설명하는 구구절절한 연기론과 미래에 대한 벅찬 다짐 대신, 어쩌다 보니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이십대 중반 청년의 심정을 얘기했다. 자의식의 기름기를 쫙 뺀 그와의 담백한 인터뷰야 말로 정말 ‘오이시’한 경험일지 모르겠다.

영화 제목은 <오이시맨>인데 맛이 뭐랄까, 약간 ‘슴슴’한 느낌이다. 뭔가 감동적이거나 이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슴 한 구석을 스치는 느낌이랄까.

이민기
: 어떤 장면에서 격하게 웃기길 원하고, 감동을 원하는 그런 장치가 없는 영화니까. 여기서 우세요, 감동받으세요, 하는 게 친절한 영화라면 우리는 그렇게 친절한 영화는 아닐 거다. 하지만 그게 더 자연스럽고 실제 같지 않을까. 우리가 하루에 몇 번씩 움직이는 감정을 다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더 쉬운 영화가 될 것 같다.

“캐릭터를 이해한다는 건 사람을 이해하는 거랑은 다른 거 같다”



쉬운 영화일 수 있는데 <오이시맨>의 현석을 연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나. 예전에 맡았던 MBC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의 홍민기나 KBS <얼렁뚱땅 흥신소>의 무열에 비해 너무 조용한 인물이다.

이민기
: 글쎄? 어떤 역을 소화하던 서로 다 다른 사람들이니까 다른 연기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대본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고, 난 글로 써져있는 한 신 한 신을 행동으로 옮기는 거니까.

익숙한 느낌의 인물을 해석하는 것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이민기
: 현석이란 캐릭터를 이해한다는 건 사람을 이해하는 거랑은 다른 거 같다.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니까. 대본 속에 글로 있는 애를 이해한다는 거는 그야말로 그냥 안다는 수준인 거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거 같다. 단지 가능한 건 현석 역 맡기로 한 이후로 내 일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러니까 기타치고, 밥을 잘 안 먹고, 담배를 피우며 한 달을 보내는 것 정도였다. 그래서 이 인물을 어디까지 이해하느냐가 아닌, 어느 정도 그 인물처럼 산 기간을 바탕으로 연기를 하는 것뿐이다. 가령 홍민기를 할 때의 나는 홍민기에 가장 가까웠다. 그 땐 만날 유도하고, 밖에 나갈 때도 도복 입고 다녔으니까. 그러면서 만들어지는 운동선수 비슷한 신체리듬이 있을 거고. 그런 것처럼 현석을 할 때의 나는 현석에 가장 가까운 거지.

인물에 대한 해석이 아닌, 패턴을 익히는 방식으로 연기를 하는 건가.

이민기
: 어차피 연기를 하고 화면에 나오는 몸은 나고, 내가 없으면 현석이고 누구고 나올 수 없는 거니까. 결국 나와 전혀 다른 뭔가가 나올 수는 없는 거 같다. 단지 일상의 나와는 달라야 하니까 그런 식으로 인물의 습관을 몸에 배게 하려는 거지.

최근 MBC <놀러와>에서 사투리를 쓴 것도 그렇게 인물의 습관이 몸에 밴 결과인가.

이민기
: 그렇다. 그 때도 그냥 “안녕하세요, 이민기입니다”라고 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로맨틱 아일랜드> 홍보로 나왔어도 내가 <해운대>라는 영화에서 강한 부산 사투리를 쓰는 해양구조대원 형식 역을 연기하는 사람인데 굳이 서울말을 해야 할까 싶었다. 그런데 반응이 별로… 하하하. 인터넷에서도 얘기가 많았다. ‘쟤 이제 생각 없나보다, 막하나 보다’라는 얘기 들었다. 그러니 빨리 <해운대>가 개봉해야 된다. 그 때 나와서 얘기할 거다. 그 땐 제가요… 이런 생각이었거든요… 이러면서. 하하하.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을 때, 연예인의 포스가 느껴지면 어색할 거 같다”





지금은 사투리를 안 쓰는데.

이민기
: 솔직히 불편하다. 12월에 촬영 끝나고 1월부터 표준어 쓰려고 하니까.

그냥 사투리로 써도 좋을 거 같은데. 그걸 그대로 글로 풀면 재밌을 거 같다. 하하.

이민기
: 그런데 내가 사투리를 해야 할 시기는 지났으니까.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하는 중이다. 사투리 쓰는 역할은 끝났는데 그에 비해 너무 오래 썼다.

그런 오해를 받는 게 어쩌면 평소 이미지가 보통의 연예인과 달리 편하고 자유로워보여서 일수도 있다.

이민기
: 그런 얘기 들은 적 많다. 길거리에 친구들이랑 돌아다닐 땐 별로 신경 안 쓰니까. 인터넷에서 내 사진 밑에 ‘나 압구정에서 쟤 되게 많이 봤다. 쟨 다른 연예인처럼 후광이나 포스 같은 거 전혀 없다. 이민기인지도 모른다’ 그런 리플 달리면, 난 ‘워따… 머리에 후광이 나야 되나, 갑자기 누가 인사하면 포스 있는 척 해야 되나’ 이러고. 그런데 어떤 친구들 보면 계속 따라올 때도 있다. 한참 와서 “오빠 죄송한데요, 제가 악수 한 번만 해도 될까요?”라고 물어보기에 “예, 그런데 왜 아까 안 물어보시고” 이러면 “저..오빠..너무..너무…오빠 너무 멋져요!”라며 뛰어간다. 으하하하. 가끔 그럴 땐 나도 연예인의 포스가 있나보다 생각한다. 하하.

사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런 연예인 혹은 배우로서의 자의식보다는 편안하고 솔직한 느낌을 받는다.

이민기
: 만약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연예인의 포스가 느껴진다고 하면 굉장히 어색할 거 같은데? 말을 대사처럼 한다거나. 가령 ‘현석 연기 어땠어요?’라고 질문 받고선 ‘차가운 얼음 절벽 끝에 서서…심장은 떨리는데…어떤 본능 어쩌고…’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 하하하하.

말 그대로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대화로서 편하고 재밌는데 이게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에게는 안 좋게 비춰질 수도 있을 거 같다.

이민기
: 사람마다 취향의 차이가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 언젠가 어떤 오디션에서 떨어진 다음에 <태릉선수촌>의 이윤정 감독님께 전화해서 “왜 저를 뽑으셨어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의 무엇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궁금해서. 그 때 감독님께서 “너 대본 리딩하다가 배고프니 자장면 한 그릇만 시켜달라고 했었어. 그래서 뽑았어”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만약 다른 오디션 볼 때 자장면 사 달라고 하면 완전 개념 없는 애로 보일 수도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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