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렇게 사랑하며 사는 세상이다. 특별히 비극적일 것도, 대단한 운명이 개입될 것도 없다. 좋을 땐 웃고, 힘들 땐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울고 악을 쓰며 사랑하고 있다. 다들 그렇게 일하며 사는 세상이다. 엄청난 사명감이 있을 것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질 것도 없다.
만들던 드라마의 시청률이 오르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고, 대본이 안 써질 땐 정신병원 입원감인 짓도 서슴없다. 방송국이라는 특별해 보이는 일터에서 사는 사람들도 결국은, 당연하게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그 담담한 이야기들은 보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안도가 되었다. 시청률과는 별개로 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이야기를 들려준 KBS <그들이 사는 세상>에 김교석, 윤이나 TV평론가가 마지막 방문을 했다. /편집자주

그들이 사는 세상이야기란 결국 사랑 이야기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는 사랑만 있고 세상은 없다. 스토리를 산업화하는 시대에 사랑의 편린과 아포리즘을 매 회별로 제시하는 에세이 같은 드라마.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삶의 결들이 보이고, KBS의 <바람의 나라>나 영화 <너는 내 운명>과 같은 비련의, 착하디착한 여주인공이나 순정에 한 몸 다 바치는 남자주인공은 없다. 통속극으로부터 빗겨난 새로움과 현실성은 화면 밖에서도 관계와 사랑에 대한 생각을 낳는다. 그런데 적어도 이 땅에서 드라마란 아라비안나이트처럼 궁금해야 했다.

다들 연애 하고 있습니까?

굳이 따지면 <점원들2>에서 비유한 영화 <반지의 제왕>과 비슷하다. 반지를 들고 걷다가 싸우다 걷다가 어디에 떨어뜨린다. 이 드라마도 연애를 하다 싸우다 연애한다. 그러므로 기승전결이란 있을 수 없다. 표민수 PD는 인터뷰에서 “스머프 마을처럼 한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최대한 다면화되고 자유분방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물론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다만 모두들 사랑만을 이야기해서 그렇지.

지고지순한 순정이든, 헤어진 연인과의 지지부진한 모습이든 관계없다. 등장인물 모두 연애중인 것도 괜찮다. 그런데, 아무리 현실 속 연인이 현빈과 송혜교라도 브라운관 밖에서 자신의 애인과 옛 연인과의 관계를 인정한다거나, 사랑이 다른 사람으로 잊혀지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거나, 지금 누군가 헤어진 널 그토록 아름답게 지켜주고 있음을 감사드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스무 살의 연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던지고 싸우는 세상이 아니던가. 현실로 내려왔다는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흡입력 있게 다가가지 못한 첫 번째 이유다.

게다가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마음 한쪽에 자상을 입은 채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간다. 김 국장(김갑수)과 정지오(현빈)는 순정(지오는 녹내장과 시골집도 있다)을, 주준영(송혜교)과 윤영(배종옥)은 어머니를, 손규호(엄기준)는 집안을. 회가 거듭될수록 밝혀지는 그들의 비밀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를 보는 듯한데, 그런데 모두 다 문제아가 아닌 엄친아다. 이 정도면 투정이다. 역시나 그들 세상에서는 사랑만 한다. 그들의 사랑에 공감을 하다가도 드라마와 현실의 야멸 찬 한계 속에서 허덕이게 된다. 대부분 현실에서는 한 가지 콤플렉스가 아닌 매일 새로운 콤플렉스를 마주하며 사니까.

“사랑이 예뻐 보이냐?” “그냥 가서 콱.”

사랑이야기와 맞물린 또 한 지점에서는 매력적이고 화려한 전문직의 세계가 펼쳐진다. 예전 MBC <우리들의 천국>의 신방과처럼 팬시하다. SBS <온에어>와 같은 트렌디 드라마와 설정이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드라마 대사를 빌리자면, 아픔과 비밀을 공유하지 않으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없기에 시청자 앞에서 드라마 제작 이면의 어려움을 꺼내고 비밀을 공유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아몬드처럼 여물어버린 이 시대에 진지하고 복잡한 사랑의 감정을 인정하고 들어주는 것은 힘들다. 브라운관 속, 화려한 방송가의 투정을 받아줄 정도로 마음이 넉넉하지가 않다.

시청률로만 놓고 보자면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 제목 그대로 그들 세상의 이야기가 됐다. 웰메이드 드라마로 인정받으며 누군가와는 E.T처럼 한 손가락을 마주했으나 ‘세상’과는 손가락 맞추기를 실패했다. 최근 서점가의 동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위로와 응원을 원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현실성이 너무 짙어서 어렵다기보다는 누구나 힘든 이 시점에서 너무 투정을 부린 것이 문제였다. 누구나 다 하는 사랑에 대해서, 누구나 다니는 직장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삶이 아니냐며 쉽게 생각하고 살고 있지는 않냐며 조곤조곤 박박 긁는다. 사랑의 감정도 없냐고 물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이 예뻐 보이냐?” “그냥 가서 콱.” 이런 거다.
글 김교석

“손규호한테 드라마는 야망이고 게임이고, 나한텐 재미고, 선배에겐 생계고 효도고… 참 드라마 하는 이유도 가지가지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에게도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가지가지다. KBS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 가지가지의 이유들 중 어느 한 부분을 만족시키는 대신, 다른 이유는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은 드라마다. 매 회마다 부제를 가지고 준영과 지오의 시점을 넘나들며 ‘여의도 바닥’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물군상을 끌어들이는 <그들이 사는 세상> 속에는 연속성을 갖는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전문직 드라마’라는 타이틀에서는 ‘드라마’에, ‘드라마는 갈등이다’라는 정의와 ‘드라마는 인생이다’라는 정의 사이에서는 ‘인생’에 포커스를 맞춘다.

조금 이기적인 직업을 가진 평범한 인간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작업 자체에 대한 치열한 탐구나 이면의 세계들에 대한 화려한 묘사들을 기대했다면 실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보여주는 ‘드라마 판’이란, 자극적인 사건이나 화려한 가십거리에 치장된 뒷세계가 아니라 조금 이기적인 직업을 가진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든’ 드라마를 만들어보려고 애쓰는 곳이다. 개성이 강한 캐릭터도, 어떤 목표나 이상을 가진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도 없는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이러한 부분에서 SBS <온에어>와 전혀 다른 길을 간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눈으로 드러나는 갈등이나 사건, ‘연인, 원수, 가족, 친구’와 같은 화살표로 긋는 관계 대신 인물들 사이의 감정이 만나고 부딪히고 엇갈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러한 방식으로 드라마PD, 드라마 작가, 배우라는 ‘직업이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벗어던진 <그들이 사는 세상>속의 인물들은 결국 각자의 이름을 가진 한 인간이 된다. 이를 위해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인물들을 둘러싼 배경, 가족, 인간관계의 문제들을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아픔의 비밀을 공유’하듯 드라마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이 과정을 통해 사실은 ‘드라마 같은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준영도, 언제나 멋지고 의리 있고 존경스러운 선배일 것만 같던 지오도, 그 현실 안으로 한 발자국만 걸어 들어가면 결국 ‘구질한’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는 일은 불편함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에는 준영을, 또 다른 순간에는 지오를, 꽤 많은 부분에서 양수경(최다니엘)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른 사람의 비밀을 공유하는 일의 무거움까지 견뎌낸 이들에게만, 바로 내 옆에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는’ 드라마가 된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그들이 사는 세상>이 만들어낸 ‘세상’은 지오와 준영이 다시 연애를 시작한다고 해서, 혹은 또 다시 이별을 맞이한다고 해서 끝나는 세상이 아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진행되는 동안 지오는 미니시리즈 한 편을 끝내고, 단막극 한 편을 찍었으며, 새로운 미니시리즈 촬영에 들어갔다. 오늘 드라마가 끝나면 다음 주에 또 다른 드라마가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계속 이어지고, <그들이 사는 세상> 속 인물들의 삶 역시 그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드라마의 수준이나 시청자들의 수준과 같은 이야기가 아닌, <그들이 사는 세상>과 같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드라마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혹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야 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믿고 위로받는 것 역시 드라마를 보는 많은 이유들 중 중요한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이야기 역시 분명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될 테지만,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들이 외로울 때 우리는 무엇을 했나’라고 말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글 윤이나

글. 윤이나 (TV평론가)
글. 김교석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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