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증인’에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양순호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증인’에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양순호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 몇 년 동안 주로 남자 배우들과 호흡하며 강렬한 연기를 보여왔던 배우 정우성이 힘을 빼고 돌아왔다.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소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증인’에서다. 극 중 양순호 변호사 역을 맡아 자폐소녀 지우와 소통하는 과정, 그리고 그 소녀로 인해 현실과 타협하는 남자의 모습을 섬세하고 몰입도 높게 그려낸 정우성을 만났다.

10.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정우성: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좋았다. 내가 느낀 감정을 빨리 연기로 표현하고 싶었다.

10. 줄곧 강렬한 캐릭터를 맡았다가 모처럼 힘을 빼고 연기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정우성: 이전에 연기한 캐릭터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의 속내를 숨기거나 강해 보이려고 애를 썼다. 관객이 볼 땐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에 연기한 순호의 감정 진폭이 다양해서 더 강렬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은 없었다. 상황에 따라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훨씬 더 즉흥적이었고 감정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10. 17년 만에 만난 김향기와의 호흡은 어땠나?
정우성: ‘아수라’ ‘더킹’ ‘강철비’ 같은 영화에서 늘 짐승들과 서로 살아남겠다고 으르렁거렸다. 귀여운 향기를 만났으니 얼마나 편안했겠나. 포근한 안식처에 있는 느낌이었다. 향기가 말수가 적다. 그렇다고 꼭 대화를 해야 소통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켜보고, 바라보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도 소통이다. 향기가 어떤 배우인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보고 있으면 느껴진다. 내가 어떤 배우이고 어떤 사람인지, 현장에서의 자세를 보여주면서 서로에 대해 느낄 수 있게 했다.

10. 극 중 양순호는 어떤 사람인가?
정우성: 순수함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 남자다. 지우(김향기)를 만나면서 자신의 초심을 되찾을 기회를 갖게 된다. 대상이 지우였기에 뻔한 법정 드라마가 되지 않았고, 순호의 딜레마에서 시작해서 새로운 휴먼 드라마가 되지 않았나 싶다.

10. 자신이 양순호와 닮은 점이 있나?
정우성: 노력하는 자세?(웃음)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노력이 압박이 되어 짐이 될 때 어깨 위에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순리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차고 경력이 됐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착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0. 양순호는 현실과 타협한다. 실제로 순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나?
정우성: 다행히도 없었다. 배우라는 직업이 독립된 개체들끼리의 협동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사회구조 안에 있는 직업군에 비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영화 ‘증인’의 정우성이은 김향기와의 호흡에 대해 “포근한 안식처에 있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증인’의 정우성이은 김향기와의 호흡에 대해 “포근한 안식처에 있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아버지(박근형)와의 케미가 좋았다. 시사회를 본 관객들이 많이 웃었는데 촬영현장에서는 어땠나?
정우성: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더라. 접근 방식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순호는 아버지의 제안이 귀찮았다. 진지했다. 촬영현장에서는 아버지의 방식에 맞게 연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오히려 더 덤덤하게 했다. 그랬더니 흥미롭게 그려진 것 같다. 순호와 아버지의 모습은 실제 나와 내 아버지의 모습과 닮은 점도 있지만, 또 다르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아버지와의 시간을 작품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에 대리만족도 있었다.

10. 오랜 친구로 등장하는 송윤아와의 호흡은 어땠나?
정우성: 친한 동료이자 같은 업계에 있는 형(설경구)의 아내다. 자주 볼 기회가 없어서 대화를 나눌만한 공통분모가 별로 없었다.(웃음) 어머니로서 육아에 대한 고단함 같은 이야기를 듣다가 스위치가 ‘탁’ 하고 바뀐 것처럼 촬영에 들어가니 초반에는 낯설었다. 하하.

10.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지우와 소통해야 했다. 연기를 위해 실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아이들을 만났거나, 영상 등을 봤나?
정우성: 일부러 안 만났다. 영화를 위해 그 친구들을 만났다면 김향기가 표현하는 지우를 대하기 전에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선입견을 가졌을 것이다. 예전에 우연히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적은 있다. 한 부분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다른 한 부분이 발달하고, 특별한 재능으로 발휘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참 위대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10. 편견을 가지고 누군가를 바라본 적이 있나?
정우성: 사람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편견이 있고, 어떻게 깰지 고민한다. 어찌 보면 나는 편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조금 일찍 제도권 밖으로 나와 살면서 누군가를 편견으로 대하는 일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보고자 하는 습성이 생겼다.

10. 사람들은 ‘배우 정우성’에게 어떤 편견을 가질까?
정우성: 비슷한 말이지만 편견과 선입견이 다 있을 것이다. 배우이기에 내가 가진 이미지에 대한 요구가 있지 않느냐. 영화, 드라마, 광고 등에서 보이는 이미지, 비주얼 같은 것에서 선입견을 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걸 깨기 위해 ‘스스로 벗어나야지’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했다.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데뷔 초부터 나에게 붙는 수식어를 내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영화 ‘증인’의 정우성이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증인’의 정우성이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주나?
정우성: 데뷔 이후에 ‘배우가 어떤 것이구나’ ‘영화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얼만큼의 파급력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조금씩 쌓여갔다. 배우 생활을 계속해 오면서 어떤 윤리적인 측면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오랜 시간 쌓아온 경력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사회적인 활동 때문에 영화를 선택할 땐 ‘꼭 이래야 해’ 하고 생각하진 않는다.

10.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가?
정우성: 제도권 밖으로 빨리 튀어나온 탓에 일찍부터 사회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저소득층 집안의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부터 여러 문제에 대한 생각들이 성장하면서 확고해졌던 것 같다.

10. ‘SKY 캐슬’을 본 적이 있나?
정우성: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다. 작품 안에 담고 있는 문제의식이 정말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것 같다. 남은 2회가 너무 기대된다. 곽미향은 어떤 폭발을 할지, 예서는 어떤 미래를 맞을지 궁금하다. (웃음)

10. 드라마를 한 지 꽤 오래됐다. 영화만 고집하는 건가?
정우성: 드라마를 일부러 안 하는 건 아니다. 좋은 작품이 여러 번 들어 왔는데 영화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못하게 됐다. 물리적인 여건이 맞으면 자연스레 할 수 있을 것 같다.

10. 20대에 데뷔해서 40대 중반이 됐다. 20대엔 어땠고 40대엔 뭐가 달라졌나?
정우성: 20대 때는 참 행복했다. 영화를 통해 많은 걸 이뤘고, 빠른 시기에 영화를 대하는 가치관도 성립했다. 배우로서 책임감을 조금 일찍 느꼈다. 30대 때는 약간 멍청했다. 약간 무뎌지고, 작업을 대하는 방식이 구태의연해졌다. 40대가 되면서 ‘나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시 자각하고, 다시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10. 영화를 찍는 일도 하고 있다.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정우성: 데뷔 전부터 이야기를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배우를 하면서 촬영현장을 관찰하는 것이 스스로 공부가 됐다. 생각한 걸 형상화하는 방법을 알게 되고, 김성수 감독을 만나면서 내 안에 가진 도전의식에 대해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 그러면서 뮤직비디오, 단편영화 등을 연출했다. 지금은 조선 시대 사극 액션을 준비 중이다. 이 정도까지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웃음)

10.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나?
정우성: 데뷔 이후 지금껏 계속 도전하고 있다. 나를 입증하고 나를 완성하기 위해 도전한다. 배우로서 나를 입증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인생에서의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사람으로 남을지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10. ‘증인’의 주제이기도 한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우성: 누구나 할 법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우린 안 하고 산다. 질문이 가진 의미가 크고 무겁다고 생각한다. 지우처럼 순수한 대상의 입에서 그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나 스스로 다시 질문할 것 같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10. 자신은 때 묻은 사람인가?
정우성: 알게 모르게 묻은 때가 있지 않겠나. 때를 발견했을 때 씻으려고 노력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하다. 때는 씻긴다. 다만 시간이 걸린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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