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포스티노: 계약이 만료돼 회사를 나왔습니다. 미스틱에 있기 전까지 계속 프리랜서로 활동했기 때문에 크게 다르다고 느끼는 점은 없어요. 미스틱에 들어간 건 결혼하고 아내와 영국 유학을 다녀온 후였어요. 당시 안정적인 생활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에 들어갔죠. (소속돼 활동하는 것과 프리랜서의) 장단점이 있더라고요. 저는 작업을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좀 더 컸습니다.
10. 이스턴 클라우드는 무슨 의미인가요?
포스티노: 영국 유학 시절 작곡한 노래의 제목입니다. 어릴 때부터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보는 걸 좋아했어요. 자라면서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없어졌는데, 런던에서 다시 보게 됐죠. 런던이 의외로 날씨가 좋거든요. 런던의 하늘에서 영감을 받아 쓴 ‘이스턴 클라우드’가 내가 항상 머릿속에 갖고 있는 만들고 싶은 음악의 이미지였어요. 그래서 레이블의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10. 원래의 이름은 포스티노 레코드였다고 들었는데요.
포스티노: 원래는 내 음악을 하려고 만든 레이블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이 레이블을 통해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 중인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을 도와주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레이블에 내 이름을 내세우는 게 맞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10. 레이블에 소속된 아티스트에는 누가 있나요?
포스티노: 재즈피아니스트 태경, 가수 겸 작곡가 팬시, 베이시스트 남정훈, 보컬 권월 등이 있습니다. 아티스트의 장르는 구분하지 않아요. 이스턴 클라우드가 갖고 있는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아티스트면 되죠. 이 외에도 혼자 음악하는 음악인들을 발굴해서 이끌어주고 싶어요. 나중에 자립할 수 있게끔 멘토링을 해주는 거예요. 나의 롤 모델인 퀸시 존스가 그랬듯 나의 프로듀싱 능력으로 마이클 잭슨처럼 멋진 아티스트를 배출하고 싶어요.
10. 작곡가로서 이름을 왜 포스티노로 지었습니까?
포스티노: 이탈리아어로 우체부라는 뜻인데, 스무 살 때 자주 가던 술집에 안도현 시인의 산문집 ‘사람사람’이 있었어요. 거기 수록된 작품 중 하나의 제목이 ‘일 포스티노’였죠. 안도현 시인이 영감을 받았다는 동명의 영화를 봤는데, 영화의 감성과 나의 감성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요즘은 컴퓨터로 작업한 전자음악들이 주를 이루잖아요. 대개 전자음악이라고 하면 인간미가 없고 기계음을 써서 차갑다는 편견을 갖거든요. 전자음악에도 사람이 직접 쓴 손편지처럼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다는 의미도 담긴 이름입니다.
10. 지난해 ‘차트 역주행’의 신화를 새로 쓴 윤종신의 ‘좋니’를 만들었죠.
포스티노: 24~25살 때 만든 노래예요. 당시에 팝과 록, 발라드를 섞은 느낌의 곡을 쓰고 싶었는데, 깨작깨작 만들어 놓고서 후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놔뒀어요. 그렇게 한참이 지난 작년, 미스틱에서 발라드 곡을 써 달라고 해서 예전에 써놓은 메모들을 찾았어요. 그때 ‘좋니’의 데모를 발견한 거죠. (윤)종신이 형도 들어보더니 좋다고 하더라고요. 가사는 형에게 써 달라고 부탁했어요. 일주일 정도 지나고 새벽에 형이 메신저로 가사를 보여줬는데, 가사가 너무 좋은 거예요! 내친 김에 가이드 녹음까지 형에게 부탁했죠. 그런데 형이 노래를 너무 잘 부르는 거죠. 하하. 그대로 종신이 형이 ‘좋니’를 부르게 된 겁니다. 당시 종신이 형만큼 이 곡의 가사를 맛있게 살려 부르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10. 녹음 당시 윤종신에게 요구한 방향이 있나요?
포스티노: 원래 가수에게 맡기는 스타일이에요. 노련한 가수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법을 사용하는데, 저는 그걸 응용하려고 하죠. ‘좋니’ 역시 그랬습니다.
10. ‘좋니’가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포스티노: 신기했죠. ‘좋니’가 미스틱 소속으로 작업한 마지막 곡이었거든요. 이 곡이 차트 1위에 처음 올랐을 때 회사를 그만 두고 푸껫으로 가족 여행을 가 있었어요. 숙소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다가 연락을 받고 알았어요. 정말 놀랐어요. ‘좋니’가 지붕킥(실시간 이용량이 정점에 이른 상태)을 할 때마다 종신이 형이 메시지를 보내더라고요.(웃음) 20년 가까이 음악을 해오다보니 내가 이렇게 축복을 받는구나 싶어서 감격스러웠어요. 또 종신이 형과 처음 작업을 했던 것이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2013) OST를 통해서였는데, 그때는 형이 만든 노래를 제가 불렀어요. 제가 작곡한 노래를 종신이 형이 부른 것은 ‘좋니’가 처음이에요. 그래서 더 감사하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10. ‘좋니’의 커버 열풍도 뜨거웠습니다.
포스티노: ‘좋니’가 미스틱의 음악 플랫폼 리슨을 통해 공개됐잖아요. 리슨의 기본이 마케팅을 최소화하는 것이거든요. 따로 이 곡을 홍보하지 않는다길래 그럼 반주 음원을 함께 공개하자고 제안했죠. 사람들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 할 것 같았어요. SNS의 커버 콘테스트도 열자고 했어요.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좋아해주고 불러줘서 감사했어요. 부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커버를 해봤습니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와요.(웃음)
10.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포스티노: 속 시원한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곡 후반부에 ‘아프다’라고 고음이 터지는 부분이 있잖아요. 이전에는 그런 멜로디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 시도해봤죠. 여기에 코드 진행은 정직하고 단순하게. 포인트가 있다면 이런 부분 아니었을까요. 그야말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는 점이요.
10. 엄정화의 정규10집 수록곡 ‘Photographer (Feat. 정려원)’도 작업했습니다. 이 곡은 발라드와 정반대인 일렉트로니카 장르인데요.
포스티노: ‘Photographer’는 앨범에 수록될 거라고 생각지 못한 곡이에요. 원래 앨범 총괄 프로듀싱을 맡은 조영철 대표님에게 부탁 받고 쓴 노래는 따로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거절 당하고(웃음) 기존에 만들어놨던 ‘Photographer’가 채택됐어요. 예전에 만들어 놓은 트랙에 멜로디를 붙일 때는 팬시와 공동 작업했습니다. 굉장히 실험적인 트랙이죠. 실은 저의 주된 장르가 발라드가 아니라 EDM이에요. 영국에서도 EDM 음악을 배웠고, 특히 댄스와 일렉트로니카 장르에 관심이 많습니다.
10. 과거에 작업한 스케치를 지금까지 갖고 있나요?
포스티노: 그럼요. 어릴 때부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다 메모했어요. 조각조각 작업해 놓은 것들도 다 저장해뒀죠. 대용량 외장하드 여러 개에 나눠 담았어요. 그 중에 하나를 고양이가 망가뜨린 적이 있어요. 거금을 들여서 복구했죠. 제 보물이니까요.(웃음)
10. 작곡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포스티노: 중학생 때요. 그때는 (작곡이) 놀이였어요. 학교 다녀오자마자 컴퓨터를 켜서 작업했죠.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그보다 더 어릴 때부터였고요. 할머니가 피아노를 연주하시고 할아버지는 성악을 하셨어요. 또 아버지는 팝송을 좋아하셨죠.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이니그마(Enigma)의 ‘Mea Culpa’라는 노래를 들려줬어요. 당시에 저에게는 센세이션이었어요. 그걸 듣고 전자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10. 꿈을 빨리 찾았군요.
포스티노: 맞아요. 중학생 때 음악을 독학하고 고등학생 때는 클래식 레슨을 받았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실용음악, 대중음악이었지만 그에 앞서 클래식을 공부한 게 어마어마한 도움이 됐어요.
10. 음악을 다루는 직업에는 가수나 연주자, 댄서도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작곡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포스티노: 실은 학창 시절에 댄스 동아리를 했어요.(웃음) H.O.T. 멤버인 이재원과 같은 동아리였죠. 그렇다고 제가 춤을 잘 춘 건 아닌데 좋아했어요. 당시에 브레이크 댄스가 너무 재미더라고요. 장기 자랑을 하면 무조건 춤으로 나가고. 하하. 그런데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작곡가였어요. 제가 듀스를 정말 좋아했는데, 듀스가 아니라 듀스 같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또 마이클잭슨을 좋아하지만 제일 존경하는 것은 그의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예요. 마이클잭슨을 만들어준 사람이니까요. 지금도 제 롤 모델이에요.
10. 2004년 만든 이기찬의 ‘그대 없이 난 아무것도 아니다’는 딥 하우스 장르의 곡입니다. 최근 유행한 장르인데, 트렌드에 앞서가는 편이었나요?
포스티노: 그 즈음에 제가 하우스 음악에 빠져 있었어요. 22살에 독립해서 홍대에 있는 조그마한 오피스텔에 살았거든요. 그때부터 클럽을 다니면서 음악을 들었어요. 한번은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너무 좋아서 찾아보니까 그게 딥 하우스더라고요. 거기에 꽂혀서 만든 게 ‘그대 없이 난 아무것도 아니다’였죠. 당시에는 생소한 장르였는데, 운이 좋게도 타이틀곡으로 선정됐어요.
10. 2007년 솔로 1집 앨범을 발표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요?
포스티노: 그 시기에 슬럼프가 왔어요. 마침 그해에 아내와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캐나다에서 10년 가까이 유학생활을 한 친구예요. 그래서 함께 런던으로 떠났어요.
10. 런던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포스티노: 아내도 일을 했고 저도 호텔 일식당의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어요. 처음 3개월은 재료 다듬기만 하다가 점점 하는 일이 늘었죠. 방 하나에 부엌과 화장실이 전부인 집에 살았어요. 차도 없었는데, 그래도 행복했어요. 없이 살아도 눈치 볼 필요가 없고 음악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환경이어서 행복했습니다.
10. 음악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포스티노: 오디오 엔지니어링 스쿨을 다니고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아무래도 저는 한국에서 작곡가로 일한 경험이 있다 보니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어렸을 때 독학으로, 어깨 너머로 배우던 걸 한 번에 정리하는 기분이라 좋았고 공부를 하면서 영어도 많이 늘었죠. 특히 대학원에서는 ‘창작 실습(Creative Practice)’이라는 전공 과목이 있어서 미술, 연극 등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그것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10. 2009년 영국의 유명 댄스뮤직 사이트인 주노다운로드(Junodownload)에서 차트 1위에 오른 적도 있다고요?
포스티노: 그게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이었어요. 주노다운로드가 하우스 DJ들이 주로 음원을 구매하는 곳이거든요. 저도 거기에 뛰어들어보고 싶었죠. 그런데 그러려면 레이블도 있어야 하고 뚫어야할 벽들이 많았어요. 힘들게 제 채널을 열어서 모아놓은 음악들을 하나둘씩 올렸죠. 그 중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내세운 ‘Bushey Hill Jazz House’가 1위를 한 거예요. 당시에는 일렉트로닉이 독특한 장르였기 때문에 ‘나 좋으려고 만든 음악이 어떻게 1위를 했지?’ 싶었어요.(웃음)
10. 한국이 그리웠던 적은 없었나요?
포스티노: 돌아가고 싶었던 적은 없고, 향수를 느낀 적은 있어요. 한국에서는 친구들이랑 소주를 마시는데 런던에선 소주 값이 너무 비싸서 못 마셔요. 그럴 때 한국이 그립더라고요.(웃음) 친구들이랑 소소하게 만날 수 있는 자리들이 없으니까.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김범수 형에게 연락이 왔어요. MBC ‘나는 가수다’를 위해서 돈스파이크, (구)준엽이 형과 편곡 작업을 하는데 도와달라고요. 그 뒤로부터 한국에서 다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그냥 영국에 남아있었어야 했는데.(웃음)
10. 다시 영국에 갈 생각인가요?
포스티노: 영국이든 유럽이든,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아내도 유학 생활을 오래 했고, 저도 약간 집시의 마인드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거든요. 어디 살든 3년이 마지노선이에요. 떠나야 해요.(웃음)
10. 영국 유학 전 슬럼프에 빠졌다고요?
포스티노: 당시에 가요를 만드는 일에 질렸어요. 저는 원래 싱어송라이터나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는데, 그 즈음 편곡을 더 많이 했거든요. 남의 노래를 꾸며주는 작업이요. 그러다 도저히 못 견디겠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제가 굉장히 부지런하거든요. 매일 작업하고 정통의 방법을 따라서 작업하고 흠잡을 데 없는 결과물을 내는데, 가끔 어디서 베짱이들이 나타나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 그걸 보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생각했죠. ‘패배감이나 자괴감 느끼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 하자. 일이 조금 부족하고 유명세가 덜하더라도 내가 행복하면 되지. 굶어 죽기야 하겠어?’ 이런 마음으로 솔로 앨범을 내고 밴드 활동도 하고 유학도 간 거죠.
10. 음악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작업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포스티노: 예당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묶어 만든 댄스 리믹스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 업계의 일을 시작했고요. 그 뒤에 SM엔터테인먼트의 음악들을 작업했어요. 당시에 S.E.S 바다의 노래를 듣고 저음이 굉장히 좋아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 또 신승훈·윤종신·이기찬·박정현·김연우 등 노래 잘하는 가수들과도 함께 일했고요. 생각해보니 아이돌 음악을 만든 적은 별로 없네요. 최근에는 Mnet ‘프로듀스101(이하 프듀)’ 시즌1~2의 경연 곡들을 편곡하는 데 참여했어요. ‘프듀’ 음악은 곡뿐만 아니라 무대 위의 비주얼과 퍼포먼스까지 신경 쓰며 작업해서 재밌었어요. 아, 또 재미있었던 작업이 있어요. 2013년 방송된 tvN의 뮤직드라마 ‘몬스타’요. 음악감독으로 일했거든요.
10. 하이라이트 용준형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 말이죠? 애시청자였습니다.(웃음)
포스티노: 하하. 드라마를 연출한 김원석 PD님과 함께 작업했는데 장면 연출을 제가 직접 하기도 하고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고 그러느라 밤을 새운 적도 많았어요. 맨날 새벽 4시에 집에 들어갔는데 그래도 재밌었어요. 특히 주연 배우였던 하연수, 용준형이 부른 ‘너의 의미’를 작업할 때 즐거웠어요. 드라마에서 마지막 무대였던 ‘그것만이 내 세상’의 편곡도 제가 했죠. 제 솔로 1집 앨범에 있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삽입됐어요.(웃음) 그 노래를 비투비가 불렀는데 그때는 제가 그 친구들을 잘 몰랐을 때거든요. 그런데도 노래를 참 잘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기억나는 건 배우 강하늘 씨예요.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무엇이든 잘 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더라고요.
10. 소화하는 분야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 같아요. 또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포스티노: 공연 음악도 좋고, 무대나 영화 연출도 하고 싶어요. 연출이 재밌는 것 같아요. 단편영화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갖고 있어요. 레이블 이스턴 클라우드를 통해서 시도해 보려고요. 영상도 직접 촬영하고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요.
10. 요즘은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포스티노: 옛날에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또 음악을 듣고도 영감을 받았는데 요즘에는 잘 안 떠올라요. 대신 예전에 만들어 놓은 스케치들을 다시 보면서 소스를 찾죠. 다행인 거죠. 어릴 때 만들어 놓은 데서 다시 영감을 받는 거니까요. 그리고 음악을 만들 때 음악만 생각하지 않아요. 이 음악이 무대 위에서 구현될 때를 생각하고, 또 듣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이 음악을 들을까도 생각해요.
10. 2016년 네이버 뮤지션리그에 공개한 ‘Do sole mio’를 들었어요. 아들 도솔 군과 아내를 위한 노래라고요?
포스티노: 공개된 건 미완성 버전인데, 곧 완성할 거예요.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제가 쓴 모든 가사가 다 아기에 대한 것이에요. 예전에는 사랑 이야기를 주로 다뤘는데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노랫말은 작사가에게 맡겨야겠어요.(웃음)
10. 솔로 앨범 발매도 계획하고 있나요?
포스티노: 그럼요. 올 가을이나 겨울께 두 번째 솔로앨범을 내려고요. 그동안 틈틈이 작업한 곡들을 정리해서 수록할 것 같아요. 제가 직접 노래를 부를지는 모르겠어요. 1집 때는 제가 다 불렀는데 지금은 노래에 대한 욕심이 많지 않아서요.(웃음)
10. 자신에게 음악이란 무슨 의미인가요?
포스티노: 나에게 음악이란… 어렸을 때는 막연히 좋았어요. 들으면 위로 받았고 신선했고, 또 따라하고 싶었죠. 지금은 음악을 하고 있는 자체가 고마워요. 밥이자 영양소이고, 생업이자 꿈이죠. 앞으로의 더 큰 꿈은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한 음악인들을 프로듀서로서 지원해주는 거예요. 갑자기 생각났는데, 예술 중에서 사람을 에워쌀 수 있는 건 건축과 음악뿐이래요. 건축이 어떤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음악도 듣는 사람을 특정한 시공간으로 데려다 주잖아요. 그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10. 음악인을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포스티노: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입시가 전부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들 중에 실용음악을 대학에서 전공한 이들은 몇 없어요. 오히려 러프한 환경에서 독자적으로 익힌 사람들이 더 많죠. 기술은 유튜브에서 독학으로도 배울 수 있어요. 대신 다양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에서 하지 못하는 경험들을 쌓으라고 하고 싶어요. 그 경험이 각자의 음악을 완성시킬 테니까요.
10.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나요?
포스티노: 일단 레이블이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고, 다이어트도 성공하고 싶네요.(웃음) ‘좋니’가 잘되고 나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노를 저으라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죠. 저는 늘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물론 ‘좋니’ 덕분에 잔잔하게 흘러가기 좋은 날씨가 찾아온 것은 맞아요. 앞으로 이 기운을 받아 오래도록, 평생, 행복하게 음악하고 싶습니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좋니’가 잘되고 나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노를 저으라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죠. 저는 늘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10. 지난해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이하 미스틱)를 나와 독립레이블 이스턴 클라우드를 설립했다고요?
가수 윤종신의 ‘좋니’를 만든 음악 프로듀서 포스티노(본명 이준호·39)의 말이다. 지난해 음원차트에서 ‘역주행 신화’를 새로 쓰며 1위를 휩쓴 ‘좋니’는 포스티노가 20대 중반에 쓴 곡이라고 한다. 그는 독학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중학생 때부터 작곡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완성된 곡은 물론 작업 초기 단계의 스케치, 음표나 가사를 흘려 적은 메모까지 모두 갖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매일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 어느 한 군데 고인 적 없이, 포스티노의 삶은 늘 치열하게 흘렀다.
포스티노: 계약이 만료돼 회사를 나왔습니다. 미스틱에 있기 전까지 계속 프리랜서로 활동했기 때문에 크게 다르다고 느끼는 점은 없어요. 미스틱에 들어간 건 결혼하고 아내와 영국 유학을 다녀온 후였어요. 당시 안정적인 생활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에 들어갔죠. (소속돼 활동하는 것과 프리랜서의) 장단점이 있더라고요. 저는 작업을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좀 더 컸습니다.
10. 이스턴 클라우드는 무슨 의미인가요?
포스티노: 영국 유학 시절 작곡한 노래의 제목입니다. 어릴 때부터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보는 걸 좋아했어요. 자라면서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없어졌는데, 런던에서 다시 보게 됐죠. 런던이 의외로 날씨가 좋거든요. 런던의 하늘에서 영감을 받아 쓴 ‘이스턴 클라우드’가 내가 항상 머릿속에 갖고 있는 만들고 싶은 음악의 이미지였어요. 그래서 레이블의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10. 원래의 이름은 포스티노 레코드였다고 들었는데요.
포스티노: 원래는 내 음악을 하려고 만든 레이블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이 레이블을 통해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 중인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을 도와주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레이블에 내 이름을 내세우는 게 맞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10. 레이블에 소속된 아티스트에는 누가 있나요?
포스티노: 재즈피아니스트 태경, 가수 겸 작곡가 팬시, 베이시스트 남정훈, 보컬 권월 등이 있습니다. 아티스트의 장르는 구분하지 않아요. 이스턴 클라우드가 갖고 있는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아티스트면 되죠. 이 외에도 혼자 음악하는 음악인들을 발굴해서 이끌어주고 싶어요. 나중에 자립할 수 있게끔 멘토링을 해주는 거예요. 나의 롤 모델인 퀸시 존스가 그랬듯 나의 프로듀싱 능력으로 마이클 잭슨처럼 멋진 아티스트를 배출하고 싶어요.
10. 작곡가로서 이름을 왜 포스티노로 지었습니까?
포스티노: 이탈리아어로 우체부라는 뜻인데, 스무 살 때 자주 가던 술집에 안도현 시인의 산문집 ‘사람사람’이 있었어요. 거기 수록된 작품 중 하나의 제목이 ‘일 포스티노’였죠. 안도현 시인이 영감을 받았다는 동명의 영화를 봤는데, 영화의 감성과 나의 감성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요즘은 컴퓨터로 작업한 전자음악들이 주를 이루잖아요. 대개 전자음악이라고 하면 인간미가 없고 기계음을 써서 차갑다는 편견을 갖거든요. 전자음악에도 사람이 직접 쓴 손편지처럼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다는 의미도 담긴 이름입니다.
10. 지난해 ‘차트 역주행’의 신화를 새로 쓴 윤종신의 ‘좋니’를 만들었죠.
포스티노: 24~25살 때 만든 노래예요. 당시에 팝과 록, 발라드를 섞은 느낌의 곡을 쓰고 싶었는데, 깨작깨작 만들어 놓고서 후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놔뒀어요. 그렇게 한참이 지난 작년, 미스틱에서 발라드 곡을 써 달라고 해서 예전에 써놓은 메모들을 찾았어요. 그때 ‘좋니’의 데모를 발견한 거죠. (윤)종신이 형도 들어보더니 좋다고 하더라고요. 가사는 형에게 써 달라고 부탁했어요. 일주일 정도 지나고 새벽에 형이 메신저로 가사를 보여줬는데, 가사가 너무 좋은 거예요! 내친 김에 가이드 녹음까지 형에게 부탁했죠. 그런데 형이 노래를 너무 잘 부르는 거죠. 하하. 그대로 종신이 형이 ‘좋니’를 부르게 된 겁니다. 당시 종신이 형만큼 이 곡의 가사를 맛있게 살려 부르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포스티노: 원래 가수에게 맡기는 스타일이에요. 노련한 가수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법을 사용하는데, 저는 그걸 응용하려고 하죠. ‘좋니’ 역시 그랬습니다.
10. ‘좋니’가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포스티노: 신기했죠. ‘좋니’가 미스틱 소속으로 작업한 마지막 곡이었거든요. 이 곡이 차트 1위에 처음 올랐을 때 회사를 그만 두고 푸껫으로 가족 여행을 가 있었어요. 숙소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다가 연락을 받고 알았어요. 정말 놀랐어요. ‘좋니’가 지붕킥(실시간 이용량이 정점에 이른 상태)을 할 때마다 종신이 형이 메시지를 보내더라고요.(웃음) 20년 가까이 음악을 해오다보니 내가 이렇게 축복을 받는구나 싶어서 감격스러웠어요. 또 종신이 형과 처음 작업을 했던 것이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2013) OST를 통해서였는데, 그때는 형이 만든 노래를 제가 불렀어요. 제가 작곡한 노래를 종신이 형이 부른 것은 ‘좋니’가 처음이에요. 그래서 더 감사하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10. ‘좋니’의 커버 열풍도 뜨거웠습니다.
포스티노: ‘좋니’가 미스틱의 음악 플랫폼 리슨을 통해 공개됐잖아요. 리슨의 기본이 마케팅을 최소화하는 것이거든요. 따로 이 곡을 홍보하지 않는다길래 그럼 반주 음원을 함께 공개하자고 제안했죠. 사람들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 할 것 같았어요. SNS의 커버 콘테스트도 열자고 했어요.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좋아해주고 불러줘서 감사했어요. 부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커버를 해봤습니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와요.(웃음)
10.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포스티노: 속 시원한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곡 후반부에 ‘아프다’라고 고음이 터지는 부분이 있잖아요. 이전에는 그런 멜로디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 시도해봤죠. 여기에 코드 진행은 정직하고 단순하게. 포인트가 있다면 이런 부분 아니었을까요. 그야말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는 점이요.
10. 엄정화의 정규10집 수록곡 ‘Photographer (Feat. 정려원)’도 작업했습니다. 이 곡은 발라드와 정반대인 일렉트로니카 장르인데요.
포스티노: ‘Photographer’는 앨범에 수록될 거라고 생각지 못한 곡이에요. 원래 앨범 총괄 프로듀싱을 맡은 조영철 대표님에게 부탁 받고 쓴 노래는 따로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거절 당하고(웃음) 기존에 만들어놨던 ‘Photographer’가 채택됐어요. 예전에 만들어 놓은 트랙에 멜로디를 붙일 때는 팬시와 공동 작업했습니다. 굉장히 실험적인 트랙이죠. 실은 저의 주된 장르가 발라드가 아니라 EDM이에요. 영국에서도 EDM 음악을 배웠고, 특히 댄스와 일렉트로니카 장르에 관심이 많습니다.
10. 과거에 작업한 스케치를 지금까지 갖고 있나요?
포스티노: 그럼요. 어릴 때부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다 메모했어요. 조각조각 작업해 놓은 것들도 다 저장해뒀죠. 대용량 외장하드 여러 개에 나눠 담았어요. 그 중에 하나를 고양이가 망가뜨린 적이 있어요. 거금을 들여서 복구했죠. 제 보물이니까요.(웃음)
10. 작곡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포스티노: 중학생 때요. 그때는 (작곡이) 놀이였어요. 학교 다녀오자마자 컴퓨터를 켜서 작업했죠.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그보다 더 어릴 때부터였고요. 할머니가 피아노를 연주하시고 할아버지는 성악을 하셨어요. 또 아버지는 팝송을 좋아하셨죠.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이니그마(Enigma)의 ‘Mea Culpa’라는 노래를 들려줬어요. 당시에 저에게는 센세이션이었어요. 그걸 듣고 전자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10. 꿈을 빨리 찾았군요.
포스티노: 맞아요. 중학생 때 음악을 독학하고 고등학생 때는 클래식 레슨을 받았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실용음악, 대중음악이었지만 그에 앞서 클래식을 공부한 게 어마어마한 도움이 됐어요.
10. 음악을 다루는 직업에는 가수나 연주자, 댄서도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작곡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포스티노: 실은 학창 시절에 댄스 동아리를 했어요.(웃음) H.O.T. 멤버인 이재원과 같은 동아리였죠. 그렇다고 제가 춤을 잘 춘 건 아닌데 좋아했어요. 당시에 브레이크 댄스가 너무 재미더라고요. 장기 자랑을 하면 무조건 춤으로 나가고. 하하. 그런데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작곡가였어요. 제가 듀스를 정말 좋아했는데, 듀스가 아니라 듀스 같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또 마이클잭슨을 좋아하지만 제일 존경하는 것은 그의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예요. 마이클잭슨을 만들어준 사람이니까요. 지금도 제 롤 모델이에요.
10. 2004년 만든 이기찬의 ‘그대 없이 난 아무것도 아니다’는 딥 하우스 장르의 곡입니다. 최근 유행한 장르인데, 트렌드에 앞서가는 편이었나요?
포스티노: 그 즈음에 제가 하우스 음악에 빠져 있었어요. 22살에 독립해서 홍대에 있는 조그마한 오피스텔에 살았거든요. 그때부터 클럽을 다니면서 음악을 들었어요. 한번은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너무 좋아서 찾아보니까 그게 딥 하우스더라고요. 거기에 꽂혀서 만든 게 ‘그대 없이 난 아무것도 아니다’였죠. 당시에는 생소한 장르였는데, 운이 좋게도 타이틀곡으로 선정됐어요.
10. 2007년 솔로 1집 앨범을 발표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요?
포스티노: 그 시기에 슬럼프가 왔어요. 마침 그해에 아내와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캐나다에서 10년 가까이 유학생활을 한 친구예요. 그래서 함께 런던으로 떠났어요.
10. 런던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포스티노: 아내도 일을 했고 저도 호텔 일식당의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어요. 처음 3개월은 재료 다듬기만 하다가 점점 하는 일이 늘었죠. 방 하나에 부엌과 화장실이 전부인 집에 살았어요. 차도 없었는데, 그래도 행복했어요. 없이 살아도 눈치 볼 필요가 없고 음악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환경이어서 행복했습니다.
10. 음악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포스티노: 오디오 엔지니어링 스쿨을 다니고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아무래도 저는 한국에서 작곡가로 일한 경험이 있다 보니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어렸을 때 독학으로, 어깨 너머로 배우던 걸 한 번에 정리하는 기분이라 좋았고 공부를 하면서 영어도 많이 늘었죠. 특히 대학원에서는 ‘창작 실습(Creative Practice)’이라는 전공 과목이 있어서 미술, 연극 등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그것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10. 2009년 영국의 유명 댄스뮤직 사이트인 주노다운로드(Junodownload)에서 차트 1위에 오른 적도 있다고요?
포스티노: 그게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이었어요. 주노다운로드가 하우스 DJ들이 주로 음원을 구매하는 곳이거든요. 저도 거기에 뛰어들어보고 싶었죠. 그런데 그러려면 레이블도 있어야 하고 뚫어야할 벽들이 많았어요. 힘들게 제 채널을 열어서 모아놓은 음악들을 하나둘씩 올렸죠. 그 중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내세운 ‘Bushey Hill Jazz House’가 1위를 한 거예요. 당시에는 일렉트로닉이 독특한 장르였기 때문에 ‘나 좋으려고 만든 음악이 어떻게 1위를 했지?’ 싶었어요.(웃음)
10. 한국이 그리웠던 적은 없었나요?
포스티노: 돌아가고 싶었던 적은 없고, 향수를 느낀 적은 있어요. 한국에서는 친구들이랑 소주를 마시는데 런던에선 소주 값이 너무 비싸서 못 마셔요. 그럴 때 한국이 그립더라고요.(웃음) 친구들이랑 소소하게 만날 수 있는 자리들이 없으니까.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김범수 형에게 연락이 왔어요. MBC ‘나는 가수다’를 위해서 돈스파이크, (구)준엽이 형과 편곡 작업을 하는데 도와달라고요. 그 뒤로부터 한국에서 다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그냥 영국에 남아있었어야 했는데.(웃음)
10. 다시 영국에 갈 생각인가요?
포스티노: 영국이든 유럽이든,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아내도 유학 생활을 오래 했고, 저도 약간 집시의 마인드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거든요. 어디 살든 3년이 마지노선이에요. 떠나야 해요.(웃음)
포스티노: 당시에 가요를 만드는 일에 질렸어요. 저는 원래 싱어송라이터나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는데, 그 즈음 편곡을 더 많이 했거든요. 남의 노래를 꾸며주는 작업이요. 그러다 도저히 못 견디겠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제가 굉장히 부지런하거든요. 매일 작업하고 정통의 방법을 따라서 작업하고 흠잡을 데 없는 결과물을 내는데, 가끔 어디서 베짱이들이 나타나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 그걸 보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생각했죠. ‘패배감이나 자괴감 느끼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 하자. 일이 조금 부족하고 유명세가 덜하더라도 내가 행복하면 되지. 굶어 죽기야 하겠어?’ 이런 마음으로 솔로 앨범을 내고 밴드 활동도 하고 유학도 간 거죠.
10. 음악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작업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포스티노: 예당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묶어 만든 댄스 리믹스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 업계의 일을 시작했고요. 그 뒤에 SM엔터테인먼트의 음악들을 작업했어요. 당시에 S.E.S 바다의 노래를 듣고 저음이 굉장히 좋아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 또 신승훈·윤종신·이기찬·박정현·김연우 등 노래 잘하는 가수들과도 함께 일했고요. 생각해보니 아이돌 음악을 만든 적은 별로 없네요. 최근에는 Mnet ‘프로듀스101(이하 프듀)’ 시즌1~2의 경연 곡들을 편곡하는 데 참여했어요. ‘프듀’ 음악은 곡뿐만 아니라 무대 위의 비주얼과 퍼포먼스까지 신경 쓰며 작업해서 재밌었어요. 아, 또 재미있었던 작업이 있어요. 2013년 방송된 tvN의 뮤직드라마 ‘몬스타’요. 음악감독으로 일했거든요.
10. 하이라이트 용준형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 말이죠? 애시청자였습니다.(웃음)
포스티노: 하하. 드라마를 연출한 김원석 PD님과 함께 작업했는데 장면 연출을 제가 직접 하기도 하고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고 그러느라 밤을 새운 적도 많았어요. 맨날 새벽 4시에 집에 들어갔는데 그래도 재밌었어요. 특히 주연 배우였던 하연수, 용준형이 부른 ‘너의 의미’를 작업할 때 즐거웠어요. 드라마에서 마지막 무대였던 ‘그것만이 내 세상’의 편곡도 제가 했죠. 제 솔로 1집 앨범에 있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삽입됐어요.(웃음) 그 노래를 비투비가 불렀는데 그때는 제가 그 친구들을 잘 몰랐을 때거든요. 그런데도 노래를 참 잘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기억나는 건 배우 강하늘 씨예요.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무엇이든 잘 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더라고요.
10. 소화하는 분야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 같아요. 또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포스티노: 공연 음악도 좋고, 무대나 영화 연출도 하고 싶어요. 연출이 재밌는 것 같아요. 단편영화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갖고 있어요. 레이블 이스턴 클라우드를 통해서 시도해 보려고요. 영상도 직접 촬영하고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요.
10. 요즘은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포스티노: 옛날에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또 음악을 듣고도 영감을 받았는데 요즘에는 잘 안 떠올라요. 대신 예전에 만들어 놓은 스케치들을 다시 보면서 소스를 찾죠. 다행인 거죠. 어릴 때 만들어 놓은 데서 다시 영감을 받는 거니까요. 그리고 음악을 만들 때 음악만 생각하지 않아요. 이 음악이 무대 위에서 구현될 때를 생각하고, 또 듣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이 음악을 들을까도 생각해요.
10. 2016년 네이버 뮤지션리그에 공개한 ‘Do sole mio’를 들었어요. 아들 도솔 군과 아내를 위한 노래라고요?
포스티노: 공개된 건 미완성 버전인데, 곧 완성할 거예요.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제가 쓴 모든 가사가 다 아기에 대한 것이에요. 예전에는 사랑 이야기를 주로 다뤘는데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노랫말은 작사가에게 맡겨야겠어요.(웃음)
10. 솔로 앨범 발매도 계획하고 있나요?
포스티노: 그럼요. 올 가을이나 겨울께 두 번째 솔로앨범을 내려고요. 그동안 틈틈이 작업한 곡들을 정리해서 수록할 것 같아요. 제가 직접 노래를 부를지는 모르겠어요. 1집 때는 제가 다 불렀는데 지금은 노래에 대한 욕심이 많지 않아서요.(웃음)
10. 자신에게 음악이란 무슨 의미인가요?
포스티노: 나에게 음악이란… 어렸을 때는 막연히 좋았어요. 들으면 위로 받았고 신선했고, 또 따라하고 싶었죠. 지금은 음악을 하고 있는 자체가 고마워요. 밥이자 영양소이고, 생업이자 꿈이죠. 앞으로의 더 큰 꿈은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한 음악인들을 프로듀서로서 지원해주는 거예요. 갑자기 생각났는데, 예술 중에서 사람을 에워쌀 수 있는 건 건축과 음악뿐이래요. 건축이 어떤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음악도 듣는 사람을 특정한 시공간으로 데려다 주잖아요. 그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10. 음악인을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포스티노: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입시가 전부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들 중에 실용음악을 대학에서 전공한 이들은 몇 없어요. 오히려 러프한 환경에서 독자적으로 익힌 사람들이 더 많죠. 기술은 유튜브에서 독학으로도 배울 수 있어요. 대신 다양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에서 하지 못하는 경험들을 쌓으라고 하고 싶어요. 그 경험이 각자의 음악을 완성시킬 테니까요.
10.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나요?
포스티노: 일단 레이블이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고, 다이어트도 성공하고 싶네요.(웃음) ‘좋니’가 잘되고 나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노를 저으라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죠. 저는 늘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물론 ‘좋니’ 덕분에 잔잔하게 흘러가기 좋은 날씨가 찾아온 것은 맞아요. 앞으로 이 기운을 받아 오래도록, 평생, 행복하게 음악하고 싶습니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