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매주 1회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명으로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사진=영화 ‘분장’ 포스터
/사진=영화 ‘분장’ 포스터
분장은 배우가 자신이 맡은 등장인물에 걸맞게 꾸미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배우는 분장을 통해 허구의 이야기 속 인물을 생동하는 인간으로 창조해 낸다. 분장은 배우의 몸, 피부에 직접적으로 행해지는 변신술이다. 분장을 한 배우는 자신의 얼굴과 인물의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게 된다. 이는 두 개의 피부가 겹쳐져 있는 모습이라 할 수도 있다.

영화 ‘분장’은 겹쳐진 두 개의 얼굴이 담고 있는 진심과 진실이 무엇인지 끈질기게 추적한다. ‘분장’은 배우로, 단편영화 감독으로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남연우의 첫 장편데뷔작이다.

오랜 기간 무명배우로 지내 온 송준(남연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소수자 연극 ‘다크라이프’의 주인공 주디로 캐스팅된다. 송준은 트랜스젠더인 주디로 완벽하게 변신하기 위해 고심하다 실제 트랜스젠더인 이나(홍정호)를 만나게 된다.

이나의 도움으로 송준은 자신만의 주디를 구현하게 되고 공연은 연일 매진된다. 이나의 소개로 성소수자 모임에도 참석하게 된 송준은 진심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대변하고자 노력한다.

주인공이 연극을 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들은 많지만 ‘분장’에서 연극은 주인공의 삶과 매우 밀착되어 있다. 주디의 현실과 송준의 현실이 점차 오버랩되면서 갈등은 정점에 이르게 된다.

/사진=영화 ‘분장’ 스틸컷
/사진=영화 ‘분장’ 스틸컷
송준은 공연 막바지에 이르러 자신의 허위의식을 발견하게 되고 자괴감에 빠진다. 성소수자를 누구보다 이해한다고 믿었던 자신의 내면에 있는 뿌리 깊은 편견과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이 ‘분장’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자 힘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만큼이나 관객도 자신의 기만을 들킨 기분이 들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불편함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 멀리 떨어진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시선을 갖게 되지만 내 문제에는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분장’은 이런 인간의 부조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분장은 가면과 다르다. 가면은 필요할 때 썼다가 벗을 수 있지만 분장은 공연이 끝나기 전까지 지울 수 없다. 다른 모습이 된다는 점은 같아 보이지만 본질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분장’은 가면과 분장 사이의 차이를 설명한다. 가면은 존재를 감춰주지만 분장은 또 다른 존재로 바꿔준다. 송준은 자신의 분장이 가면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충격에 빠진다. 그 순간, 송준이 하고 있는 연극은 진짜 연극이 되어 버린다. 현실보다 더 절실하고 더 참된 연극을 하고 싶었던 송준은 절망한다.

‘분장’은 예술가 영화이자 성장영화다. 연극배우로서 송준은 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한 인간으로서 송준은 자신의 신념을 검증한다.

‘분장’은 각본, 연출, 음악(오도이) 등 두루 미덕이 갖추고 있지만 배우들의 호연과 조화가 유독 눈에 띤다. 출연진 대다수가 ‘가시꽃’(이돈구, 2013)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이다. 두 작품을 함께 보면 배우들의 변신이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다.

‘가시꽃’에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여성 역을 맡았던 양조아는 ‘분장’에서는 독특한 캐릭터의 조감독으로 출연한다. 양조아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무거운 영화의 분위기를 순간순간 밝게 만든다. 트랜스젠더로 출연한 홍정호는 ‘가시꽃’에서 마초적인 성격의 청년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성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송준 친구 우재 역의 한명수, 송준 동생 송혁 역의 안상민 등 모든 출연 배우들의 장래가 기대된다.

이현경(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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