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매주 1회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명으로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장산범’ 포스터/사진제공=NEW
영화 ‘장산범’ 포스터/사진제공=NEW
‘장산범’이 아니었으면 한국 공포영화가 한 편도 없는 여름이 될 뻔했다. 여름방학이면 으레 두어 편은 개봉하던 풍경이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진다.

최근 2년 동안 나온 한국 공포영화 흥행작을 보면 ‘부산행’(연상호, 2016)만 7월에 개봉했고 ‘검은 사제들’(장재현, 2015), ‘곡성’(나홍진, 2016)은 11월, 5월 개봉이었다. 이들 작품은 소재에 있어서도 좀비, 엑소시즘이라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숨바꼭질’(2013)의 허정 감독과 ‘장화, 홍련’(김지운, 2003)의 여주인공 염정아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던 ‘장산범’은 모성애라는 익숙한 주제를 청각이라는 참신한 공포 감각과 결합시켰다. 스토리의 완성도에 아쉬움을 표하는 관객도 있지만 공포영화로서 ‘장산범’은 미덕이 있는 작품이다. 우선 깜짝 놀라게 되는 무서운 장면들이 곳곳에 있고 그 장면들이 상투적인 공포영화 관습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는 게 장점이다.

희연(염정아) 가족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한적한 시골마을 외딴집으로 이사한다. 희연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허진)의 증세가 고향에 오면 호전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5년 전 행방불명된 아들 준서의 마지막 모습을 본 시어머니의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희연은 이사하자마자 동네 숲에서 낯선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정체 모를 여자아이를 보살피면서 희연은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는 듯 보인다. 희연의 남편 민호(박혁권)는 여자아이가 딸 준희의 목소리와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을 보고 섬뜩함을 느낀다. 민호가 이성적인 시각으로 여자아이의 기괴함을 알아차렸다면 시어머니는 본능과 육감으로 여자아이의 사악함을 간파한다.

영화 ‘장산범’ 스틸컷/사진=NEW
영화 ‘장산범’ 스틸컷/사진=NEW
‘장산범’은 일종의 도시괴담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괴생명체를 일컫는다. 주로 부산 장산에 출몰하는 고양이과 모습을 한 동물이라 한다. 영화에서는 동굴에 사는 범 비슷한 괴물인데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 해서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괴수로 표현되었다.

준희가 가장 좋아하는 전래동화가 ‘해님달님’이라거나, 영화 초반 준희가 스마트 기기로 목소리를 따라하는 어플을 사용하며 놀고 있는 모습 등은 목소리를 카피한다는 설정을 뒷받침하는 장치들이다. 장산범에 홀린 사람들은 점차 시력을 잃어 가는데, 청각을 극대화하기 위해 강력한 감각인 시각을 앗아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장산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잔인하고 끔찍한 화면보다는 목소리를 흉내 낼 때 만들어진다. 가령, 민호가 목소리만 듣고 딸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여자아이인 걸 발견할 때 민호 못지않게 관객들도 놀라게 된다.

2000년 이후 한국 공포영화에서 모성애는 아이로 인해 시험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원혼에 의해 조종되는 아이는 모성과 가정에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아카시아’(박기형, 2003)나 ‘기생령’(고석진, 2011)에서 엄마는 입양한 아이나 고아가 된 조카를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펼치지만 가정은 붕괴되고 만다.

‘장산범’에서도 희연의 모성애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기본 모티프가 된다.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죄책감, 불쌍한 여자아이에 대한 연민이 모든 출발점이다. 희연의 맹목적이고 직선적인 모성애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오히려 떨어뜨리기도 한다. 낯선 아이에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이런 의구심을 불러온다.

그런데도 희연의 마지막 선택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 캐릭터를 구축하지 않았을까 싶다. 강렬한 결말을 위해 후반부의 이야기가 흐트러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장르가 다 어렵지만 공포영화를 잘 만들기는 참 어렵다. ‘장산범’은 스토리만 생각하면 허술한 부분이 있으나 공포영화가 줄 수 있는 최대의 미덕인 공포의 감각은 분명 신선했다.

이현경(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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