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배우 최희서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lsh87@
배우 최희서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lsh87@
“최희서는 대한민국 영화계를 이끌 차세대 여배우죠. 그가 아니고는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를 상상할 수가 없어요.”

배우 최희서에 대해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에서 상대배우로 호흡을 맞춘 이제훈이 이와 같이 말했다. 오는 28일 개봉되는 ‘박열’은 1923년 도쿄, 6000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실화를 그린 영화다. 최희서는 일본 여성 후미코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후미코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일본의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박열과 뜻을 같이 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지만 그 이면엔 학대당했던 어린 시절의 아픔도 갖고 있다. 최희서는 기개를 떨치는 인물을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표현해내며 언론시사회 이후 찬사를 받았다.

최희서의 일본어 연기는 처음이 아니다. 이준익 감독과 함께 한 전작 ‘동주’(2016)에서도 일본 여성 역을 맡은 바 있다. 당시 그는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쿠미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 연기와 완벽한 일본어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두 편의 작품으로 이제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사실 그는 2009년에 데뷔해 100여 편의 드라마, 영화, 연극 무대에서 내공을 쌓아온 중고신인이다. 최희서를 처음 발견한 건 ‘동주’의 제작자 신연식 감독이다. 그는 지하철에서 대사를 연습하던 최희서를 보고 명함을 건넸다.

첫 주연작으로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마친 최희서는 영화 개봉 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하루에 몇 번씩이나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준익 감독님과 이제훈 씨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무대 인사를 가고 있는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나”라며 웃었다.

◆ 이국적 외모에 4개 국어…엄친아 수식어보단 연기력으로 승부

최희서는 한국에서 태어난 뒤 부모님의 직업 특성 상 일본과 미국에서 유년,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고 다시 미국 UC버클리에 교환학생으로 나서며 공연예술을 부전공했다. 그의 이력 덕분에 ‘엄친아’라는 수식어를 얻었지만 최희서는 “지금까지 연기적인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수식어”라며 걱정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일본어, 영어, 이태리어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오디션을 볼 수 있는 범위는 넓어졌지만 최희서의 스펙트럼은 외국어보다 탄탄한 연기력에서 비롯됐다. 이준익 감독은 최희서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잘 하는 배우가 필요했고 최희서를 찾았다. 그런데 그는 일본어보다 연기를 더 잘 하는 배우다”라고 칭찬했다.

“제가 대표작도 없어요. 그렇다 보니 그저 외국어 실력과 학교 이름이 제 특징이 됐죠.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더라고요. 본명 최문경이라는 이름이 학구적인 이미지를 자아낸다고 생각해 작명소에서 예명까지 받았어요. 엄친아라는 수식어는 싫어요. 일본인 전문배우가 되면 어떡하죠? 하하.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이고 싶어요.”

‘박열’ 최희서 스틸
‘박열’ 최희서 스틸
◆ 매 작품마다 대본노트 만들어…“완벽에 가까운 배우가 될래요”

최희서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카카오 브런치를 통해 지난 5월부터 영화 ‘박열’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게재 중이다. 수준급 글 솜씨로 놀라움을 자아냈지만 그 중 직접 업로드한 ‘대본노트’가 네티즌들의 시선을 모았다.

노트에 오려진 대본이 붙어있고 그 주변엔 최희서가 대본을 읽으며 느낀 생각이나 캐릭터가 느꼈을 감정 등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비단 ‘박열’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최희서는 매 작품을 만날 때마다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대본노트를 만들었다. 그는 “여태 많은 작품을 했음에도 노트 한 권을 꽉 채운 적이 없었는데, 이번 ‘박열’의 대본노트를 만들며 노트가 부족할 정도였다”라고 설명했다.

‘박열’의 후미코를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자서전을 읽었고 당시 재판기록도 살펴보며 점차 캐릭터와 동화됐다. 실제 후미코가 잠든 문경의 산소를 찾기도 했다. “오래 알던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 가끔 그를 그리워하며 산소를 찾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최희서는 배역을 맡으면 제대로된 역할 소화를 위해 모든 시간과 정신을 쏟는다고 고백하며 그것이 배우로서 자신의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교환학생 시절 한 스승에게서 전해들은 ‘성스러운 불만족’을 가슴에 새겼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하면서 계속 불만을 느끼고 더 나은 것을 찾을 때 점점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희서는 “내 연기에 대한 불만족이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원동력이 된다. 100퍼센트 만족하는 연기는 아마 평생 없을 거다. 완벽해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계속 발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 무명 10년 만에 뭍으로…이젠 대세 배우로

10년간 좋아하는 일을 해왔지만 소위 ‘떠야 한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최희서는 불안감을 버틸 요량으로 더 많은 작품을 했다. 대책 없이 기다리기 보단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노력은 기회로 찾아왔다.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한 그는 마냥 행복하다며 웃다가도 “‘계속 일본인 역할만 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후미코 역이 강렬해서 센 여성 캐릭터만 연기해야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오늘 하루에 충실하자는 모토를 세우고 성실하게 이행 중이다. 고민이 있어도 그것이 제1의 고민은 아니다”라며 긍정적으로 말했다.

꾸준히 준비했기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 최희서는 평범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며 조심스럽게 꿈꾸다가 “내가 어떤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할 포지션이 아니다”라며 자각했다. 계속해서 발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자세다.

‘뜨면 변한다’는 말이 있다. 장난스럽게 묻자 최희서는 크게 소리 내 웃었다.

“저를 한 번 봐주세요. 제가 변할 것 같나요? 어린 나이였다면 스타병에 걸릴 유혹에 더 많이 노출됐을지도 모르죠. 전 10년을 무명으로 살았어요. 변하고 싶지 않아요. 계속해서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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