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황치열 : 나는 타이틀 선정에서 빠졌다. 아무래도 모든 곡이 좋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더라. 스태프들이 모니터링을 한 뒤에 최종적으로 ‘매일 듣는 노래’로 결정됐다.
10. 사실 첫 미니음반 발매 전, 국내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며 싱글을 발표했다.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치기도 했다.
황치열 : 경연 프로그램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순간적으로 관객들에게 점수를 따야 하기 때문에 창법 자체가 힘 있는 소리를 내야 한다. 슬기와 솔라, 은하 등과 호흡을 맞춘 걸그룹 프로젝트의 방향성은 ‘힘을 빼는 것’으로 뒀다. 그것만으로 좋은 경험이었고, 이번 음반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10. 발매 전 선주문 10만 장을 돌파했다. 굉장한 일이다.
황치열 : 최근 전체 회의를 하면서 알았다. 사실 스태프들은 예상 판매량을 3만 장으로 점쳤는데, 10만 장의 선주문 이야기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감사할 따름이다.
10. 10년이 걸린 만큼 정규 음반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미니음반이다.
황치열 : 우선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없었다. 이번 음반을 계획한 동기는 지난해 롯데면세점 합동 콘서트에 참여했는데 그때 이민호·지창욱·김수현 등과 함께했다. 같이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했는데 공연까지 펼쳤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 때 보여준 편곡된 노래를 불렀는데 공연을 하다 보니까 문득 ‘이렇게 좋은 자리에, 게다가 가수가 나 한 명뿐인데 내 노래를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 싶더라. 그때부터 음반 발매를 계획했다. 음반의 사진부터 글씨체, 글씨의 펄까지 신경을 썼다. 프로듀싱도 직접 하며 수정 작업까지 참여했다. 목표로 하던 시기가 계속 연기되면서 6월에 내놓게 된 것이다.
10.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황치열 : 10년 만에 내놓는 음반인 만큼 첫걸음을 잘 걸어보자는 마음이었다. 화려한 것보다 일상적인 부분을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진중한 음반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취지였다. 그래서 음반 명도 ‘비 오디너리’로 정했다. 일상이란 뜻인데 그런 의미를 담았다.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포인트로 잡고 작업했다.
10. 데뷔 음반도 있는데 첫걸음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을까.
황치열 : 10년 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음반이 만들어졌다. 물론 그때도 좋은 음반이었고 상경에서 처음으로 내놓는 결과물로 의미가 깊다. ‘치열’로 활동했는데 빛을 보지는 못했다. 긴 무명 속에서 정화됐고, 많은 관심과 성원 속에서 ‘황치열’이란 이름으로 발표한다는 점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다. 다시 태어난 황치열의 음반이라고 해야 할까.
10. 중국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황쯔리에 신드롬’이라고 불릴 정도다.
황치열 : 어안이 벙벙하다. ‘꿈같다’는 표현을 공감하지 못했는데, 뭔지 확실히 알았다. 중국 공항에 모인 팬들을 보고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고 뒤를 돌아봤다. 가는 곳마다 팬들이 기다려 주고, 중국 심천으로 팬미팅을 갔을 당시에는 팬들이 많이 모여서 공항 관리자가 못 나가게 한 적도 있었다. 그걸 보고 실감했다. 내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구나, 경연 프로그램을 하면서 ‘기적’을 느꼈다.
10. 케이팝(K-POP) 마니아층의 열광이라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황치열 : 처음부터 한류로 시작한 게 아니다. 한국에서 잘 돼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현지의 유명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한류를 모르는 중국 분들도 많은데 그분들이 알 정도이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접해서 알고 있더라.
10.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았고 힘들었던 무대를 꼽는다면?
황치열 : 힘들었던 무대는 ‘뱅뱅뱅’이었다. 결과적으로 좋았던 무대도 같다. ‘나는 가수다’는 진중하고 가슴을 울리는 무대를 주로 하는데 세 번째 무대까지 계속 2위를 했다. 네 번째 무대는 어떻게 해도 떨어지지 않는 무대였다. 보여드릴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뱅뱅뱅’을 선택했고 중국어로 개사를 하자고 해서 시간을 쪼개서 다 외웠다. 춤까지 소화해야 했는데 감기가 걸려 목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 가수가 뽑은 순위도 1위였고, 관객들이 선정한 순위도 1위를 차지했다.
10. 중국에서 활약 중인데, 한한령에 대한 체감은?
황치열 : 사실 내 입장에서는 한국과 중국 모두에서 사랑을 받기 때문에 양 국에서 원활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 목표이자 바람이다. 중국 팬들도 한국으로 많이 찾아온다. 두 나라가 원만한 관계가 됐으면 한다.
10. 음반은 전반적으로 발라드로 채웠나.
황치열 : 발라드로 4, 5곡 이상 들으면 솔로 가수이다 보니까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총 7번 트랙까지 있는데, 1번은 연주곡이다. 2번부터 노래가 시작되는데 중간에 셔플 리듬의 ‘각’이란 미디엄 템포 곡이 있다. 통통 튀는 리듬이라 발라드로 쳐진 마음을 끌어당기기 좋을 것이다. ‘봄이라서’는 따뜻한 노래를 해본 적이 없다. 공연 때 따뜻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수록했다. 그 뒤로는 다시 슬픈 발라드로 이어지고, 7번은 자작곡 ‘사랑 그 한마디’이다. 자작곡을 넣는 건 처음이다.
10. 자작곡에는 어떤 메시지를 담았나.
황치열 : 가사를 쓰면서 내가 많은 이들에게 이목을 끈 이유를 생각해봤다. ‘고해’라는 정통 발라드 덕분이더라. 정통 발라드를 직접 써서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요즘 발라드 곡은 직설적인데, 정통 발라드는 은유와 함축적인 의미가 돋보이는 만큼 그렇게 써봤다. 황치열하면, 정통 발라드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완성했다.
10. 자작곡을 좀 더 채우는 욕심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황치열 : 내 색깔을 우기면서 가기엔 아직 무리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수가 좋아하는 것과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 차이가 있고 시간이 흐른 뒤에 점차 채워나갈 생각이다. 많은 곡을 받았는데, 나보다 다른 분이 부르면 잘 될 것 같은 곡도 배제했다. 내 색깔에서 최선이 무엇인지 고심해서 준비한 음반이다.
10. 작곡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황치열 : 28살.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스스로 뭔가 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회사에서 받던 20만 원의 용돈도 못 받게 되면서 생활고로 학원 레슨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작곡가 똘아이박과 인연을 맺었고,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를 오가며 어깨너머로 작곡을 배웠다.
10. 인기를 얻으며 경제적으로 가장 크게 바뀌지 않았나.
황치열 : 요플레를 못 사 먹었는데 지금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뚜껑도 대충 핥아먹고 말이다.(웃음) 서울로 올라오면서 적은 돈으로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스쿠터를 샀는데 덕분에 많이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일을 했다. 지난해 11월 말쯤 자동차를 샀다. 스쿠터를 탈 때 가장 힘든 것이 눈과 비가 내릴 때였다. 그때 자동차를 타니까 행복하더라. 그래서 비 오는 날 일부러 차 타고 한강을 가기도 한다. 그 외엔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부모님께 다 드리고 카드를 쓰고 있기 때문에.(웃음)
10. 현재 가요계에서 남자 발라드 가수가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을 것 같다.
황치열 : 이번에 나온 음반이 첫 편, 1장이다. 계속해서 2, 3장을 써 내려가면 노래가 늘어날 것이다. 발라드뿐만 아니라 신나는 노래도 만들어서, 내 음악이 자리가 잡힌다면 화려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진 공연도 해보고 싶다. 9년 동안 못했던 걸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10.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나 꼽는다면?
황치열 : 콘서트다. 가수가 지닌 큰 꿈 중 하나일 거다. 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분들이 보러 오는 것인데, 그것만큼 영광스러운 자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오는 24일과 25일 열리는 국내 콘서트는 의미가 깊다. 중국과 LA 등 해외에서는 공연을 했지만 국내는 이번이 처음이다. 돌출무대에 특수 장치를 만들며 다양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10. 첫 장을 여는 황치열에게 어떤 수식어가 붙었으면 좋겠나.
황치열 : 사실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다. 많이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갖고 태어난 것이 있다면, 근성이다. 근성의 황치열? 하하. 근성의 근원은 아버지 덕분이다. 목표로 둔 것을 쉽게 포기지 않는 아들이 되고 싶었다. 잠을 줄여가며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지금 이 순간의 원천은 팬들이다. 맹목적인 사랑을 주시기 때문에 책임과 의무를 갖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무려 10년이 걸렸다. 가수 황치열이 13일 첫 미니음반 ‘비 오디너리(Be ordinary)’를 발표했다. 지난 2007년 첫 정규 음반 이후 꼬박 10년이 걸렸다. 물론 그간 각종 음악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 OST,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며 싱글은 발표했으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반의 형태는 데뷔 이후 처음이다.10. 타이틀곡을 미리 들어보니, 대중적인 발라드다.
황치열은 숱한 경연 무대에서 보여준 힘 넘치는 모습이 아니라 추억과 감성에 초점을 맞췄다. 특유의 애절한 음색은 살리면서 과한 포장은 내려놨다. 가장 일상적인 곳에서 감성을 건드린다. 타고난 근성으로 포기하지 않았더니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왔다.
황치열 : 나는 타이틀 선정에서 빠졌다. 아무래도 모든 곡이 좋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더라. 스태프들이 모니터링을 한 뒤에 최종적으로 ‘매일 듣는 노래’로 결정됐다.
10. 사실 첫 미니음반 발매 전, 국내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며 싱글을 발표했다.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치기도 했다.
황치열 : 경연 프로그램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순간적으로 관객들에게 점수를 따야 하기 때문에 창법 자체가 힘 있는 소리를 내야 한다. 슬기와 솔라, 은하 등과 호흡을 맞춘 걸그룹 프로젝트의 방향성은 ‘힘을 빼는 것’으로 뒀다. 그것만으로 좋은 경험이었고, 이번 음반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10. 발매 전 선주문 10만 장을 돌파했다. 굉장한 일이다.
황치열 : 최근 전체 회의를 하면서 알았다. 사실 스태프들은 예상 판매량을 3만 장으로 점쳤는데, 10만 장의 선주문 이야기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감사할 따름이다.
10. 10년이 걸린 만큼 정규 음반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미니음반이다.
황치열 : 우선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없었다. 이번 음반을 계획한 동기는 지난해 롯데면세점 합동 콘서트에 참여했는데 그때 이민호·지창욱·김수현 등과 함께했다. 같이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했는데 공연까지 펼쳤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 때 보여준 편곡된 노래를 불렀는데 공연을 하다 보니까 문득 ‘이렇게 좋은 자리에, 게다가 가수가 나 한 명뿐인데 내 노래를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 싶더라. 그때부터 음반 발매를 계획했다. 음반의 사진부터 글씨체, 글씨의 펄까지 신경을 썼다. 프로듀싱도 직접 하며 수정 작업까지 참여했다. 목표로 하던 시기가 계속 연기되면서 6월에 내놓게 된 것이다.
황치열 : 10년 만에 내놓는 음반인 만큼 첫걸음을 잘 걸어보자는 마음이었다. 화려한 것보다 일상적인 부분을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진중한 음반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취지였다. 그래서 음반 명도 ‘비 오디너리’로 정했다. 일상이란 뜻인데 그런 의미를 담았다.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포인트로 잡고 작업했다.
10. 데뷔 음반도 있는데 첫걸음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을까.
황치열 : 10년 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음반이 만들어졌다. 물론 그때도 좋은 음반이었고 상경에서 처음으로 내놓는 결과물로 의미가 깊다. ‘치열’로 활동했는데 빛을 보지는 못했다. 긴 무명 속에서 정화됐고, 많은 관심과 성원 속에서 ‘황치열’이란 이름으로 발표한다는 점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다. 다시 태어난 황치열의 음반이라고 해야 할까.
10. 중국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황쯔리에 신드롬’이라고 불릴 정도다.
황치열 : 어안이 벙벙하다. ‘꿈같다’는 표현을 공감하지 못했는데, 뭔지 확실히 알았다. 중국 공항에 모인 팬들을 보고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고 뒤를 돌아봤다. 가는 곳마다 팬들이 기다려 주고, 중국 심천으로 팬미팅을 갔을 당시에는 팬들이 많이 모여서 공항 관리자가 못 나가게 한 적도 있었다. 그걸 보고 실감했다. 내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구나, 경연 프로그램을 하면서 ‘기적’을 느꼈다.
10. 케이팝(K-POP) 마니아층의 열광이라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황치열 : 처음부터 한류로 시작한 게 아니다. 한국에서 잘 돼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현지의 유명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한류를 모르는 중국 분들도 많은데 그분들이 알 정도이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접해서 알고 있더라.
10.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았고 힘들었던 무대를 꼽는다면?
황치열 : 힘들었던 무대는 ‘뱅뱅뱅’이었다. 결과적으로 좋았던 무대도 같다. ‘나는 가수다’는 진중하고 가슴을 울리는 무대를 주로 하는데 세 번째 무대까지 계속 2위를 했다. 네 번째 무대는 어떻게 해도 떨어지지 않는 무대였다. 보여드릴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뱅뱅뱅’을 선택했고 중국어로 개사를 하자고 해서 시간을 쪼개서 다 외웠다. 춤까지 소화해야 했는데 감기가 걸려 목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 가수가 뽑은 순위도 1위였고, 관객들이 선정한 순위도 1위를 차지했다.
황치열 : 사실 내 입장에서는 한국과 중국 모두에서 사랑을 받기 때문에 양 국에서 원활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 목표이자 바람이다. 중국 팬들도 한국으로 많이 찾아온다. 두 나라가 원만한 관계가 됐으면 한다.
10. 음반은 전반적으로 발라드로 채웠나.
황치열 : 발라드로 4, 5곡 이상 들으면 솔로 가수이다 보니까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총 7번 트랙까지 있는데, 1번은 연주곡이다. 2번부터 노래가 시작되는데 중간에 셔플 리듬의 ‘각’이란 미디엄 템포 곡이 있다. 통통 튀는 리듬이라 발라드로 쳐진 마음을 끌어당기기 좋을 것이다. ‘봄이라서’는 따뜻한 노래를 해본 적이 없다. 공연 때 따뜻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수록했다. 그 뒤로는 다시 슬픈 발라드로 이어지고, 7번은 자작곡 ‘사랑 그 한마디’이다. 자작곡을 넣는 건 처음이다.
10. 자작곡에는 어떤 메시지를 담았나.
황치열 : 가사를 쓰면서 내가 많은 이들에게 이목을 끈 이유를 생각해봤다. ‘고해’라는 정통 발라드 덕분이더라. 정통 발라드를 직접 써서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요즘 발라드 곡은 직설적인데, 정통 발라드는 은유와 함축적인 의미가 돋보이는 만큼 그렇게 써봤다. 황치열하면, 정통 발라드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완성했다.
10. 자작곡을 좀 더 채우는 욕심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황치열 : 내 색깔을 우기면서 가기엔 아직 무리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수가 좋아하는 것과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 차이가 있고 시간이 흐른 뒤에 점차 채워나갈 생각이다. 많은 곡을 받았는데, 나보다 다른 분이 부르면 잘 될 것 같은 곡도 배제했다. 내 색깔에서 최선이 무엇인지 고심해서 준비한 음반이다.
10. 작곡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황치열 : 28살.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스스로 뭔가 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회사에서 받던 20만 원의 용돈도 못 받게 되면서 생활고로 학원 레슨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작곡가 똘아이박과 인연을 맺었고,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를 오가며 어깨너머로 작곡을 배웠다.
10. 인기를 얻으며 경제적으로 가장 크게 바뀌지 않았나.
황치열 : 요플레를 못 사 먹었는데 지금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뚜껑도 대충 핥아먹고 말이다.(웃음) 서울로 올라오면서 적은 돈으로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스쿠터를 샀는데 덕분에 많이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일을 했다. 지난해 11월 말쯤 자동차를 샀다. 스쿠터를 탈 때 가장 힘든 것이 눈과 비가 내릴 때였다. 그때 자동차를 타니까 행복하더라. 그래서 비 오는 날 일부러 차 타고 한강을 가기도 한다. 그 외엔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부모님께 다 드리고 카드를 쓰고 있기 때문에.(웃음)
10. 현재 가요계에서 남자 발라드 가수가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을 것 같다.
황치열 : 이번에 나온 음반이 첫 편, 1장이다. 계속해서 2, 3장을 써 내려가면 노래가 늘어날 것이다. 발라드뿐만 아니라 신나는 노래도 만들어서, 내 음악이 자리가 잡힌다면 화려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진 공연도 해보고 싶다. 9년 동안 못했던 걸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10.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나 꼽는다면?
황치열 : 콘서트다. 가수가 지닌 큰 꿈 중 하나일 거다. 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분들이 보러 오는 것인데, 그것만큼 영광스러운 자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오는 24일과 25일 열리는 국내 콘서트는 의미가 깊다. 중국과 LA 등 해외에서는 공연을 했지만 국내는 이번이 처음이다. 돌출무대에 특수 장치를 만들며 다양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10. 첫 장을 여는 황치열에게 어떤 수식어가 붙었으면 좋겠나.
황치열 : 사실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다. 많이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갖고 태어난 것이 있다면, 근성이다. 근성의 황치열? 하하. 근성의 근원은 아버지 덕분이다. 목표로 둔 것을 쉽게 포기지 않는 아들이 되고 싶었다. 잠을 줄여가며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지금 이 순간의 원천은 팬들이다. 맹목적인 사랑을 주시기 때문에 책임과 의무를 갖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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