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진 기자]
영화 ‘다른 길이 있다’ 포스터 / 사진제공=몸, 무브먼트
영화 ‘다른 길이 있다’ 포스터 / 사진제공=몸, 무브먼트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벼랑 끝에 몰려 더는 피할 곳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 크든 작든 내 아픔이 가장 고통스럽게 느껴지고,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나와는 다른 길에 있다고 느꼈던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영화 ‘다른 길이 있다'(감독 조창호)는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기로 한 두 사람의 아프지만 아름다운 여정을 그린다. 인생의 끝자락에 몰려 자살을 결심한 수완(김재욱)과 정원(서예지)의 고통과 비밀 그리고 위로를 담았다.

수완과 정원은 맨 처음 메신저를 통해 만나 검은 새, 흰 새라는 닉네임으로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평범하지 않다. 죽음을 결심한 두 사람은 감정의 동요 없이 담담하게 언제, 어디서 만나 어떻게 자살할지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물에 빠져 죽자고 제안하는 수완과 차에서 연탄불을 피워 죽자고 말하는 정원에게서 어떤 망설임도 찾아볼 수 없다.

수완과 정원은 각자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동반 자살을 계획하게 됐다. 수완은 어릴 때 목격한 엄마의 죽음으로 아직 괴로워하고, 정신병원에 가짜로 입원해 있는 아버지, 그리고 최근 헤어진 여자친구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 인터넷에서 동반 자살할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나약하기만 한 수완은 죽으려는 의지조차 부족해 보인다.

그런 수완이 정원을 만나 자신의 아픔이 아닌 타인의 아픔을 마주하게 됐다. 정원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전신마비의 엄마를 돌보고 있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과 아픔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고통 때문에 한 차례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숨겨왔던 아픔은 감당할 수 없게 커졌고, 그녀는 이번엔 확실히 죽으리란 결심을 하고 수완을 만나러 춘천으로 떠난다.

수완과 정원은 춘천으로 가는 배에서 한 번 마주쳤다. 하지만 인터넷 채팅으로 동반자살을 모의 한 두 사람은 서로의 닉네임만 알 뿐, 얼굴도 이름도 모르기에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던 다음날, 우연히 한 라이브 카페에서 다시 한 번 만나 두 사람은 같이 밤을 보내며 서로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추운 겨울로, 러닝타임 내내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위태로운 느낌을 준다. 배우 김재욱과 서예지도 담담한 얼굴로 각각 수완과 정원을 연기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수완과 정원을 연기하는 두 사람은 오히려 담담해서 더 아픈 느낌을 준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바라보며 서서히 변해가는 수완과 정원의 모습은 뭉클함을 선사한다.

동반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지만 아픔보다는 위로를, 절망보다는 희망을 전하는 ‘다른 길이 있다’는 19일 개봉 예정.

이은진 기자 dms3573@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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