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선율 하나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또 그것을 해내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가슴 떨리는 일이다. 댄스, 록, 발라드, R&B, EDM, 힙합 등등 세상엔 정말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발라드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댄스를 들으며 흥을 돋우고, 어떤 이는 힙합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기도 한다. 작곡가가 없었다면 즐기지 못할 일들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곡가들의 세계는 어떨까. 음표를 그리며 감동을 전하는 작곡가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박근태
박근태
지난 20일 오전, 미쓰에이 수지와 엑소 백현의 듀엣곡 ‘드림(Dream)’이 300시간 연속 차트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양 측 소속사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두 사람의 활약을 널리 알렸고, 팬들은 지문이 닳도록 가창력을 칭찬했다. 하지만 ‘드림’의 흥행 뒤에는 숨겨진,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공신이 있다. 바로 작곡가 박근태다.

박근태는 지난 20여 년간 대중가요를 작곡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인물. 가히 명사수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는 백발백중의 히트 실력을 뽐냈다. 이효리, 신화, 이선희, 신승훈, 백지영, 샵, 룰라, 아이유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손을 거쳐 간 가수들이 많다.

비결은 ‘경계’에 있었다. 박근태는 철저하고 까다롭게, 자기 복제를 경계했다. 생각해보라. ‘타임리스(Timeless)’의 성공 이후, 얼마나 많은 제작자들이 ‘제 2의 타임리스’를 요구했겠는가. 그러나 박근태는 ‘타임리스2’ 대신 ‘브랜드 뉴(Brand New)’를 내놓았다. 실로 화끈한 변신. 그리고 그 저변에는 “가수의 인생에 중요한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10. ‘드림’의 성적이 무척 좋다. 프로젝트의 출발이 좋아서, 상당히 고무적인 상태겠다.
박근태 : 일단 수지와 백현이 솔로로서 입지를 다지게 돼서 팬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조합을 만들어놓고 잘 안 되면 후에 나올 곡들도 위태로울 상황이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잘 돼서 기분이 좋다. 롱런할 느낌이라 더욱.

10.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 달라.
박근태 : 작곡가가 주도가 돼 곡을 만들어보자는 기획이었다. 아이돌이든 인디 뮤지션이든, 재능을 발견만 한다면 가능성 있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 아티스트들의 숨겨진 면을 꺼내서, 혹은 매치업해서 조직하는 것이다. ‘드림’의 경우, ‘아이돌과 아이돌의 만남은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했다. ‘아이돌 멤버 가운데 보컬리스트로서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두 사람을 매칭해봤다. SM과 JYP, 설득하기 어려운 회사들이잖아. 인맥으로만 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만한 음악이 필요했다.

10. 두 사람과의 작업은 어땠나?
박근태 : 말끔하게 잘 끝났다.(웃음) ‘이런 음악을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고, 두 사람 모두 그걸 잘 파악했다. 해석도 잘 해서 녹음은 금방 끝났다. 사실 나는 녹음을 하루 안에 끝내는 법이 없거든. 그런데 두 친구는 각각 두 시간 만에 끝냈다. ‘재녹음할까요’ 봤는데 내가 괜찮다고 했다. 할 필요가 없었다. 두 시간 만에 원하는 퀄리티가 나왔다는 건, 그들의 재능인 거다.

10. ‘실력파’ 아이돌이란 말이 있잖아. 그건 어쩌면 ‘아이돌에겐 실력이 없을 것이다’라는 편견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박근태 : 실력이라는 게 사실은 주관적인 부분이다. 기술을 잘 습득하는 것도 실력이고 타고난 음색도 실력이다. 수지와 백현은 가지고 있는 톤이 좋았다. ‘드림’의 장르 역시 두 사람의 목소리에서 발견했다. 음악을 먼저 만들고 억지로 가수를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작업이었다. 둘의 목소리에서 모티브를 찾아 발전시키다보니 장르도 정해졌고, 사운드도 정해졌다. 선남선녀가 만났으니 가사도 당연하게 로맨틱한 내용으로 나온 거고, 그걸 기반으로 뮤직비디오도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진행된 작업이었다.

10. 작곡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도 가수의 목소리에 근간을 둔 프로젝트이기 때문인가?
박근태 : 맞다. 물론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내가 전면에 나올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시작부터 나설 생각은 없다. ‘내가 주인이다’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가수와 작곡가가) 상생하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었다.

10. 기획사에서 의뢰를 받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수로부터 영감을 얻어 작업을 진행하는 거잖아. 시야가 넓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겠다.
박근태 : 물론 제작사의 의뢰는 지금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아서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내가 주체가 돼서 아티스트들의 다른 면들을 끄집어내자는 것이었다. 지금은 한 곡만 오픈이 된 상태지만, 사실은 방대하다. 꽤 많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했고 앞으로 오픈하게 될 텐데. 아무튼 준비도 오래했고, 기획도 오래했고 섭외도 오래 걸렸다.

박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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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작곡가 데뷔 23년 차다. 당신의 시작이 궁금하다.
박근태 : 어렸을 때 록 음악을 좋아했다. 록 이외의 음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어떤 계기로 작곡 공부를 하고 데뷔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처음에는 좋아하는 것만 있었을 뿐, 시장에서 원하는 걸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 재주가 없었지. 그러다 처음 내 이름을 알리게 된 곡이 룰라의 ‘백 일째 만남’이었다. 그 곡이 히트하고 나서 곡 의뢰가 상당히 많이 쏟아졌다. 그런데 내가 원래 좋아하던 록이나 ‘백 일째 만남’ 작업을 하면서 공부한 레게 외에는, 시장에서 원하는 걸 아무것도 만들 수 없었다. 충격을 받고 1년 정도 혼자서만 음악 작업을 했다. 댄서블한 곡에 대해 공부도 하고 습작도 많이 했다. 어느 정도 감을 익히고 나서 나온 곡이 소찬휘 ‘헤어지는 기회’, 젝스키스 ‘폼생폼사’ 등이다.

10. 지금은 상당히 많은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지만, 처음 히트곡이 1~2곡 씩 쌓였을 때에는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다. 전작의 히트를 넘어야 한다는.
박근태 : 소포모어 징크스 같은 게 있다. 히트곡을 낸 가수와 또 한 번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엔 전작으로 인한 부담이 좀 있다. 게다가 제작사 쪽에서 ‘저번 곡처럼 해달라’고 요구할 때가 많은데, 그건 절대 하지 않는다. 전작의 틀을 깰 수 없다면, 다시 작업하지 않는 편이다. 가수와 관계없이 전작의 히트를 얘기하는 거라면? 크게 부담은 없다.

10. 소찬휘, 젝스키스, DJ DOC 등, 데뷔 초엔 댄스곡으로 많은 성공을 거뒀다. 그 이후엔 어땠나?
박근태 : 그 때도 내가 할 줄 아는 음악만 했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적당한’ 음악. 그 적당함을 뛰어넘고 싶은데,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상관관계를 찾기 시작했다. 음악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건 목소리고,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잖아. 그 상관관계가 뭘까, 난 뭘 할 수 있을까 따져보기 시작한 거다. 그걸 조금 찾은 게 90년대 후반 정도? 타샤니의 ‘경고’가 그 때 나왔다. 그러고 나서, 또 1년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

10. 아니, 그 땐 왜 그랬나?
박근태 : 슬럼프.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 욕심은 있는데 몸은 훈련이 안 돼 있던 시기였다. 할 일이 잔뜩 쌓였는데 한곡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해외 송캠프 참석 차 해외에 나갔다가, 좀 오래 머무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로 한 거다. 바로 가수의 목소리, 톤. 그 톤의 음역대에서 가장 매력 있는 창법을 탐구했다. 거기에서 어떤 이미지가 나오고 장르가 정해진다. 내가 할 수 없는 장르면 공부해서 만들어 가고. 그즈음에 만든 곡이 윤미래의 ‘시간이 흐른 뒤에’, 샵의 ‘스위티(Sweety)’ 브라운아이드소울의 ‘정말 사랑했을까’ 등이다.

10. 댄스와 발라드, 극과 극의 장르인데도 고루 히트를 시켰다.
박근태 : 내가 장르가 많은 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장르는 가수의 톤이나 이미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거든. 이번 ‘드림’도 마찬가지다. 사실 내가 연차에 비해 곡이 적다. 보통 내 연차 정도면 작품 수가 800~1,000곡이 돼야 하거든. 그런데 나는 200 곡 정도밖에 없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음악 산업의 구조를 얘기해야 한다.(웃음)

나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니고, 전문 작곡가잖아. 그러다보니 사실 내 음악이라는 게 따로 없다. 물론, 한 가수를 데뷔 때부터 계속 함께 하며 색깔을 만들어가는 것도 방법이겠지. 그런데 그게 어떤 단점이 있냐면, 한 곡이 히트하면 계속 비슷한 스타일로 가야한다. 아무리 영역을 나눠보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같은 음악을 계속 하다 보면, 그 안에 매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SG워너비의 ‘타임리스’를 만들고 나서, 3~4년 정도 비슷한 노래가 쏟아져 나왔다. 제작자 역시 ‘타임리스2’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거절했다. 당연히 다음 앨범에 참여도 안 했다.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창작자로서 제약이 많은 작업들, ‘어떤 곡처럼 해 달라’ 하는 작업은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복제에 빠지면, 그 시절에만 유행했던 작곡가로만 남을 것 같았다. 어떤 작법이 만들어지면, 그게 계속 재생산 되고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런데 그 작법의 유행이 끝나면? 사람들이 그걸 싫어하기 시작한다. 그것에 대한 경계심이 심했다.

10. 이야기한 대로 ‘타임리스’의 성공 이후 소위 ‘소몰이’ 스타일의 곡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당시를 한국 가요계 최악의 시기로 꼽는 사람도 생기더라.
박근태 : 그 음악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너무 많은 제작자들과 상업 작곡가들이 그런 음악을 했던 거다. 사실 내 곡 중에도 비슷한 스타일의 노래가 있다. 내 스타일을 한 번 복제한 거지. 차트에서 2~3달 정도 1등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성적은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곡이다. 내가 좀 극단적이긴 하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런데 내가 그 때 같은 스타일의 곡을 계속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매몰되지 말자고 경계하면서 작업했던 곡이 신화의 ‘브랜드 뉴’, 박상민의 ‘해바라기’, 조피디 ‘친구여’ 같은 곡들이다.

10. 대단하다. 사실 어느 정도 히트곡이 쌓이면 요령이 생길 법도 하잖아. ‘이렇게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하겠구나’ 하는. 그 유혹이 처음부터 쉽게 끊어지던가?
박근태 : 창피한 곡들도 사실은 많다. 그렇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생각하는 건, 이 산업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다. 제작자의 용역을 받아 수동적으로 작업하는 게 아니라, 나와의 작업을 기점으로 가수에게 중요한 순간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에 따른 노력은 당연히 필요한 거고. ‘아우, 힘들어. 하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10. 지금이야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지만,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때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고통이 수반됐을 것 같다.
박근태 : 그랬던 것도 있고 의외로 쉽게 갔던 것도 있다.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어느 순간 음악으로 뚝 떨어지는 것 같다. 내 작곡 방식이 그렇다. 누군가에게 곡을 줄 때, 그 사람을 인터뷰하고, 목소리도 들어보고, 전에는 어떻게 활동을 했는지 알아보고, 계속 그 사람 생각만 하는 거다. 2주일이고 3주일이고. 그러다보면 불현듯 뭔가가 뚝 떨어진다. 곡을 쓰는 것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거의 앉은 자리에서 끝난다. 지금은 훈련이 돼 있어서 괜찮은데, 이 작법을 체득할 때에는 고생을 많이 했지.

박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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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까 가수에게 중요한 순간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실제로 백지영은 ‘사랑 안 해’를 통해 복귀에 성공했고, 발라드 가수로 새 길을 열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곡 작업이 인생의 무게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성공했을 때의 뿌듯함도 클 테고.
박근태 : 내 개인의 명예나 욕심만을 위해 일을 한다고 말하기엔 경력도 많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돼야 한다. 단순히 퀄리티가 높기만 해서 좋은 음악이 아니잖아. 음악적 완성도는 당연하게 챙기는 거고. 작곡은 사람의 미래를 다루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그게 성공했을 때의 뿌듯함은 말도 못 하지. 옥주현의 경우도 그렇다. 핑클의 데뷔 앨범 작업을 함께 했었는데, 주현이가 솔로 데뷔를 하면서 나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런데 주현이가 성악 발성을 하잖아.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 때 나온 곡이 ‘난’이라는 곡이다. 뮤지컬 같은 구성을 가지고 있다. 가요에서는 그런 프리템포가 거의 없거든. 그 곡이 대박을 치지 않았지만, 결국 옥주현이 뮤지컬 스타가 됐잖아. 솔로 가수로서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첫 걸음이었는데 그걸 잘 해줘서 정말 대견하다.

10. 그런가 하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사례도 있다. ‘애니모션(Anymothin)’과 같은 CF 음악이다.
박근태 : 전부터 광고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광고주와 가요 제작자, 양 쪽에서 모두 원하는 게 홍보 효과잖아. 양 측의 니즈(needs)를 연결시켜주는 게 음악인데, 음악은 늘 배경에 있었지, 광고의 주가 된 적은 없었다. 광고주의 니즈와 제작자의 니즈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찾아서 시장을 개척해보고자 했다. 그 첫 작업물이 라네즈 CF에 삽입됐던 성시경의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였다. ‘애니모션’ ‘애니클럽(Anyclub)’ ‘애니스타(Anystar)’ 시리즈는 제일기획, 차은택 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당시 애니콜은 학생들보다는 직장인들이 많이 쓰는 브랜드였다. 문화를 만들어 유행시키자는 접근이었다. 구매층의 세대를 낮추기 위해서 말이다. 광고음악인데도 차트에서 1등을 하고, 그 프로젝트가 삼성 주력 상품의 주력 콘텐츠가 돼 무척 뿌듯했다. 그런데 시리즈가 계속되다 보니 가요계에서 느꼈던 딜레마가 마찬가지로 생겨서, 4탄부터는 손을 떼게 됐다.

10. 자기복제에 대한 경계가 정말 철저하군. 그런데 또, 작곡가에게도 자기만의 색깔이라는 게 있잖아. 자기 색깔과 자기 복제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한데.
박근태 : 그렇지. 자기 색깔을 가진다는 건 절대 나쁜 게 아니다. 작곡가 개인의 선택일 뿐이지. 다만 나는 상업 작곡가로서, 스스로가 가수에게 갈 길을 찾아주고 방향을 꺾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한 가지 스타일만 고수하면 길을 찾아줄 수 있을 확률은 적어지잖아. 유행에 편승하는 가수들 하고만 작업하게 될 테고, 장기적으로는 가수에게 별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10. 그 덕분일까. 박근태의 음악은 트렌디하면서도 수명이 길다. 개인적으로 샵의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을 정말 좋아한다. 발매된 지 15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세련됐다.
박근태 : 그 곡은 이미지 구현이 잘 된 곡이다. 샵이 그동안 댄서블한 음악만 했잖아. 좀 더 정서적인 접근을 해보자고, 말하자면 역발상을 한 거다. 가수들이 내주는 감정과 멜로디의 감정이 잘 붙었던 것 같다.

10. 비슷한 맥락에서, 결국 곡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가수의 몫이잖아. 최종 단계에서는 창작자의 직접적인 컨트롤이 불가능해지는 셈이지. 그게 작곡의 어려움이자 묘미일 것 같다. 혹시 상상했던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훌륭히 곡을 소화해낸 가수가 있었나?
박근태 : 윤미래의 ‘시간이 흐른 뒤’라는 곡은 윤미래 밖에 못할 것 같다. 윤미래 목소리에 최적화된 멜로디와 사운드다. 듣기에는 되게 쉬운데 부르기엔 까다로운 곡이다. 톤 하나로 승부하는 곡이라서, 톤이 좋지 않으면 기교가 아무리 훌륭해도 느낌이 살지 않는다. 멜로디가 죽는다. 그 곡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던 케이스다. 사실 곡을 만드는 건 실제로 시간이 얼마 안 걸린다. 다만 디렉션을 어떻게 주느냐, 가수와 어떤 교감을 하느냐가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완성도가 달라진다.

10. 그래. 아까 녹음을 하루 이상 한다고 했지?
박근태 : 백지영의 ‘사랑 안 해’ 같은 경우에는 두 달 이상 걸렸다. 나는 두 달로 알고 있는데, 지영이는 네 달이라고 하더라고. (10. 작업 기간이?) 아니, 녹음 기간이! 당시 백지영이 처해 있던 상황이 좋지 못했다. 그걸 풀 수 있는 방법은 진심을 전하는 것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장르도 발라드로 가게 됐다. 아마 그 몇 달 동안 지영이가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오케이 트랙을 수도 없이 만들었다. 그러다 갈아엎고 새로 다시 하고. 그러면서 감정이 만들어진 거다. 나중에는 한 번에 불러도 노래가 되더라. 결과적으로는 고생한 의도와 보람이 증명된 거라, 뿌듯했다.

박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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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는 장르의 구분이 확연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하이브리드’ 장르가 유행이잖아. 그런데 작곡가는 늘 앞장서서 가야 하는 입장이니까…
박근태 : 아니, 꼭 내가 앞장서서 갈 필요는 없다. 그런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워낙 많잖아. 만약 내가 맡은 작업에서 장르간의 결합이 필요하다면, 하겠지. 알아내서 할 수 밖에 없겠지. 하지만 작곡에 있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멜로디의 압축력이다. 짧은 한 소절의 노래라도 감정이 전달되는 게 좋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10.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유행하는 스타일이 달라졌고, 시장의 흐름도 빨라졌는데 위기감은 안 느끼나. 이를 테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랄지.
박근태 : 음악을 잘 해야겠지. 시대가 원하는 음악을 잘 찾아내야할 거고.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멜로디의 밀도가 높은 음악을 하고 싶다. 마음을 끌어당기는 음악. 장르에 관계없이 말이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장르를 연구하기도 하면서.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곡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작만이 답이라고 하기도 한다. 나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작을 하는 게, 지금 내게는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컨디션이 돼야 한다. 한 때 1년 동안 40곡 정도를 쓴 적이 있다. 내 입장에서는 굉장한 다작인데, 여러 일이 많다보니 집중이 되지 않더라. 그 이후로는 다작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좋은 음악만 남길 수 있게, 끝까지 검수를 한다. 그리고 그 태도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고 싶다.

10. 마지막 질문이자, 조금 유치한 질문이다. 박근태에게 음악이란?
박근태 : 초등학생 때부터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꿔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게 내 직업이 됐고. 다른 직업은 고민해본 적도 없다. 상투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 그냥 음악이 내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미스틱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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