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김창환 : 기존 가수의 노래를 리믹스하는 건 그 음악을 EDM 화(化)시키는 거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걸 EDM이라고 할 수는 없지. EDM이란 무엇이냐. 쉽게 말하자면 DJ 음악이다. 대중가요와는 다르다. 대중 가수는 팬과 대중에게 평가를 받지. 그러나 EDM은 대중을 상대하되 대중을 상대하지 않는 음악이다. 아무리 유명한 가수가 낸 곡이라도 DJ들이 안 틀어주면 알려질 방법이 없다는 거다. 씨엔블루나 f(x)의 경우에는 EDM을 ‘차용’하는 거지. 그들의 음악은 팬과 대중이 평가하잖아. 그 음악이 진짜 EDM이 되려면 프로 DJ의 평가를 거쳐야 한다. 전문가라는 한 매체를 통과해야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거다. 그리고 DJ들은 뮤지션 혹은 가수가 하는 음악을 인정하지 않는다. EDM은 클럽에서 플레이가 돼야 비로소 빛이 나기 시작하는 건데, 지금 아무도 그들의 음악을 틀지 않는다. DJ를 거치지 않은 음악이기에 EDM으로서 가치가 없는 거지. 이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만약 DJ가 만든 음악에 피처링으로 리한나를 썼다고 한다면, 이 음악은 (EDM으로서)다른 가치를 얻는다. EDM은 EDM 아티스트가 해야 한다는 게 공론이다.
Q. DJ들에게 먼저 인정받아야 한다니,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김창환 : 그렇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EDM을 좋아하는 지금의 젊은 친구들 가운데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 그냥 클럽문화를 즐기는 친구들이 있고 둘째, EDM 마니아들이 있다. 후자는 DJ들과 생각이 똑같다. 7~90년대 록 음악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당시에도 ‘기타만 들었다고 다 록커냐?’라는 풍토가 있었잖아. EDM 역시 ‘EDM은 우리 거다’라는 게 심한 장르다. 더욱이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젊은이들이 금방 의견을 교류하고 소통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Q.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고품질의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바람직한 현상? 깨트리고 싶은 장벽?
김창환 : 그 벽에 부딪혀보고, 벽을 깨트리고 싶은 마음은 있다. 방법론적인 문제, 말하자면 어떻게 찾아들어가야 하는 문제가 가장 고민이 된다. 젊고 신선하고 유능한 DJ를 발굴해서 그 DJ를 뮤지션으로 키워야하는 거다. 예전보다 2배는 어렵다. 예전에는 가수를 발굴해서 트레이닝 시켜서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었다면, EDM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형태의 스타를 찾아서 EDM 분야를 공부시키고 발전시켜서 뮤지션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Q. 그런데 대중이 아는 EDM의 패턴은 비교적 단순하다. 박명수가 TV에서 “까까까까”를 외친 것도 있고, 곡의 전개 역시 어느 정도 빤해 보인다. 분위기가 고조됐다가 드랍이 터지고 브레이크가 걸리는.
김창환 :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형태를 가진 음악을 다 EDM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박명수 정도의 매체 파워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자신의 음악을 어떻게 알릴 수 있겠냐. EDM 만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페스티벌이나 클럽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EDM라는 장르가 21세기 젊은이들에게 특화된 음악 같다. 다른 세계를 가진, 자기만의 취향이 확실한 젊은이들.
Q. 클럽이나 페스티벌에서만 들을 수 있다면, 청자가 너무 한정적인 것 아닌가?
김창환 : 클럽은 가장 핫한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젊음이 넘치는 친구들이 모여서 자신이 소비하는 문화를 공유하는 곳이지. 젊은이들이 SNS라는 거대한 정보의 세계에 퍼트려주면, 히트까지 가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청자가 한정적이지 않다는 거다. SNS라는 매체를 통해서 클럽에 있는 개개인이 모두 1인 미디어가 되니까. EXID같은 경우에도 1인 미디어를 통해 히트를 친 사례 아닌가. 각각의 1인 미디어가 모이면 폭발적인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에 어떻게 들어가느냐다. 젊은이들에게 인정을 받는 게 두렵고 힘든 일이지, ‘젊은이들만을 상대해서 이 음악이 히트할까, 세상에 알려질까?’ 하는 문제는 요즘 세상에서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Q. 그런데 클럽에 모이는 ‘핫’한 젊은이들은 재밌는 소비 성향을 보인다. ‘힙’을 추구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거부한다. ‘히트’라는 개념과는 충돌하는 욕구다.
김창환 : 여러 욕구를 다 충족시켜야 한다. 만약 방송이나 음원사이트에 노출되면 누구나 아는 노래가 돼버리잖아. 반면 언더그라운드 성향을 가진 클럽에서 어떤 음악을 먼저 접하고 전파한다는 건 젊은이들에게 굉장한 자부심을 준다. 리미티드에 대한 애착이 심한 시대잖아. 그런 욕구 역시 함께 충족시킬 수 있어야겠지.
Q. 당신은 작곡가로 알려지기 전에 DJ로도 활동했다. 당시의 경험이 지금도 도움이 되나?
김창환 : 그렇다. 형태와 모양이 바뀌었을 뿐이지 원리는 같은 거니까. DJ라는 직업은 좋은 음악을 선곡해서 대중에게 알려준다는 게 근본적인 목적이다. DJ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흔히 생각하는 다방에서 노래를 틀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나중에 클럽에서 클럽 음악을 소개하는 DJ가 전 세계적으로 생겨났다. 나는 클럽 DJ문화의 1세대이기 때문에 그 흐름을 알고 있다. 작곡만 하는 친구들보다 클럽 문화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DJ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 역시 거의 100% 가지고 있었다. 만약 나에게 SM처럼 엑소를 만들라고 한다면, 그건 자신 없다. 물론 그룹을 만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SM처럼 아이돌 문화의 생리를 꿰뚫을 수는 없다. 반면 EDM에는 노하우가 있으니까.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는 분야를 찾은 거다.
Q. 전자 음악을 하는 한 밴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젠 자신이 구상한 바를 구현해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하더라. 다만 그 ‘구상’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더 중요해졌겠지.
김창환 : 소스가 100% 디지털이냐, 아니냐는 이미 젊은이들에게 큰 고민거리가 안 되는 것 같다.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어떤 아이템에 어떤 음악을 만들어서 전문가들을 감동시키고 대중에게 다가가느냐가 EDM이 가진 고민 중 하나일 것이다.
Q.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 EDM은 여러 소스들을 사용해서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음악이고. 제작 방식이 가요와는 완전히 다를 것 같다.
김창환 : EDM은 쉽게 말해 소리에 열광하는 음악이다. 과거의 가요가 ‘멜로디가 얼마나 좋아?’ ‘가사가 우리를 얼마나 감동시켜?’를 가지고 평가됐다면, 이제는 ‘어떤 신기한 소리를 만들어서 우리한테 들려줘?’가 기준이 되는 거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소리를 찾으면, 그 소리를 얼마나 오래 듣건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멜로디가 가사가 좋은 노래를 만나면 ‘예스럽다’고 하지. 무게 중심을 싣는 포인트가 달라졌다. EDM은 특히나 클럽에서 틀어지고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어야 하는 음악이잖아. 그래서 신나는 포인트에 어떤 멋진 소리를 얹어주느냐, 그 드랍이 우리를 얼마큼 감동시키느냐에 젊은이들이 포인트를 맞추는 것 같다.
Q. 신나야 하면서도 대충 만들 수 없는 게 EDM 아닌가. 굉장히 다양한 소스들이 굉장히 치밀하게 짜여야 할 것 같다.
김창환 : 그러니까 EDM을 정확히 알아야한다. 가요는 박자가 신나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면, 이제는 대중이 어떤 형태의 EDM 음악을 원하는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너무 많은 소스를 써도 안 되고, 적은 소스를 써도 안 된다. 대중이 원하는 소스를 가장 중심에 가져다 놓으면서 만들어야지. 가사와 멜로디가 좋아야 하는 현상을 소리로 대치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Q. 거의 모든 음악이 그렇듯, EDM 역시 외국에서 시작된 트렌드다. 일단은 그들의 방향을 쫓는 게 목표인가? 아니면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할 포부도 가지고 있나?
김창환 : 문화의 거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한국이 이끌어갈 수 있는 장르는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시장을 봐라. 애플이 아이폰을 만드니까, 삼성이 발 빠르게 대처해 갤럭시 휴대폰을 상용화 시키지 않았나. 나도 ‘삼성 폰을 만들자’는 생각이 있다. EDM이 유럽의 것이긴 하지만 동양화된 EDM은 한국이 가장 앞서나갈 것이고, 적어도 아시아 사람들만큼은 유럽의 EDM보다는 한국의 EDM에 열광하게 만들자. 그게 내 목표다. 지금은 그걸 어떻게 현실화할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 건 스타를 만드는 것일 테다. 그 과정은 아까도 말했듯 쉽지 않을 것이다. EDM 스타는 장르에 대한 이해 없이 아이돌 만들 듯 제작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음악적인 요소가 강한 친구를 발굴한 뒤에 아이돌 못지않게 트레이닝 시켜서 스타로 만드는 거다. 더욱이 그 스타성은 TV에 노출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운타운의 힘으로 방송이나 매스컴이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90년대보다 어려운 길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셈이다.
Q. 아까 ‘한국화된 EDM’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형태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김창환 :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중국 사람들이 한국의 제품을 선호하잖아. 그런데 그 물건들이 다 한국에서 기원된 거냐? 아니다.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여서 한국화 시킨 거다. 한국에서 출발한 건,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한국의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에서 EDM이 히트해서 중국에 진출하게 된다면, 그 음악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된다. ‘유럽의 음악을 따라했으니까 이 음악은 한국의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걸.
Q. 스타DJ를 키우는 것 역시 난제다. 스타란 모두가 좋아해야 하는 인물인데, 아까도 말했듯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오히려 거부한다.
김창환 : 그게 무척 어렵다. 아직 풀어내지 못한, 풀어내야 하는 고민이고. 이를 테면 90년대 김건모는 ‘특이함’의 아이콘이었다. 아무도 그를 제작하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엔 알엔비라는 장르가 국내에 없었거든. 그런데 김건모가 그걸 들고 나온 거야. 다들 안 된다고 했다. 흑인 음악은 우리나라에서 안 먹힌다고. 그런데 내 생각은 달랐다. ‘젊은이들은 새로운 걸 원한다. 기존 세력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편입하기 싫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다른 세상을 만들어서 그 곳으로 사람들을 불러와야 하지. 그렇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냈을 때, 대중에게 줄 수 있는 폭발력이 있다. 기존 세력이 만들어놓은 뭔가를 똑같이 만들어도, 이를 테면 내가 또 다른 엑소를 제작한다고 해도 그 그룹은 진짜 엑소가 될 수 없잖아. 하지만 김건모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엄청난 폭발력을 가졌듯, K-EDM도 비슷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있다.
Q. K-EDM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기존 DJ들의 반발도 있을 것 같다.
김창환 : K-EDM이라는 말을 붙인 건 한국에서도 EDM을 한다고 선포하는 개념이었다. 그냥 EDM이라고 하면, 유럽권을 떠올리기 마련이잖아. K팝을 생각해봐라. 그냥 ‘팝’이라고만 하면 미국이나 영국을 떠올리지만, ‘K’를 붙여주면 가요를 떠올린다. K-EDM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 EDM을 시작할 거야. 그러니 한 번 봐 줘’라고 포고하는 거다. 내가 K-EDM이라는 말을 쓰면서 DJ들에게도 욕을 많이 먹었다. K-EDM이 뭐냐고. 차차 자리를 잡으면 그런 얘기도 줄어들겠지.
Q. K-EDM이 전문용어나 장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란 건가?
김창환 : 90년대에 김건모를 소개하면서 ‘흑인 음악’이라는 말을 했다. 당시에는 알엔비란 단어를 대중이 몰랐으니까, 전문 용어를 던지는 것보다는 직관적인 단어를 쓴 거다. 그런데 나중에는 김건모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고, 그러면서 알엔비라는 장르도 자연스레 흡수됐다. K-EDM도 비슷하다.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던져놓고 우리의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거다. 형태는 뭐든 가능하다. 한국형 DJ가 될 수도 있고 한국형 페스티벌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그게 한국의 브랜드가 돼서 해외에 나가게 되면 그 때 K-EDM이라는 개념이 더 명확해질 것이다.
Q. 어쩌면 음악시장의 새로운 플랫폼의 탄생으로 볼 수도 있겠다.
김창환 : 그렇지. 오프라인 플랫폼을 새로 만든다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Q. 대중음악과는 완전히 영역이 다른, 말 그대로 새로운 길을 파내고 있는 것 같다.
김창환 :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음악이라는 콘텐츠의 가치가 없어졌다. 대신 팬덤만이 살아남았지. 음악을 사는 게 아니라 ‘오빠들’을 사는 팬덤.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은 아이돌 뿐이었고, 아이돌이란 패를 쥔 사람들에게 행운이 간 거다. 그런데 EDM의 가치는 좀 다르다. 아이돌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 내가 무엇을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EDM이 보였다. 여긴 음원을 얼마나 파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단, 음악을 어떻게 공연으로 만드느냐의 문제다. 팬덤이 필요 없는 음악이고, 콘텐츠의 가치가 중요한 시장이다. 결국 난 90년대에 가던 길을 계속 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마이다스이엔티
선율 하나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또 그것을 해내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가슴 떨리는 일이다. 댄스, 록, 발라드, R&B, EDM, 힙합 등등 세상엔 정말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발라드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댄스를 들으며 흥을 돋우고, 어떤 이는 힙합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기도 한다. 작곡가가 없었다면 즐기지 못할 일들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곡가들의 세계는 어떨까. 음표를 그리며 감동을 전하는 작곡가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1990년대는 가요계 르네상스로 회자되곤 한다. 댄스, 발라드, 힙합, 록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이 고루 사랑받았고, 히트곡의 영향력 또한 엄청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작곡가 김창환이 있었다. 김창환은 김건모, 신승훈, 클론, 노이즈, 홍경민, 채연 등을 스타 반열에 올렸으며 ‘핑계’, ‘잘못된 만남’, ‘날 울리지마’, ‘이브의 경고’, ‘쿵따리 샤바라’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도 김창환이었다.Q. 최근 그룹 씨엔블루나 f(x)가 자신의 곡을 리믹스해 발표한 적이 있다. EDM 시장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는 어떤가? 긍정적인 신호로 보일 것 같은데.
그러나 어느 순간, 김창환의 이름은 뿌옇게 흐려졌다. 아이돌 시장이 가요계 주류로 떠오른 시점부터다. 실제로 그는 채연을 데뷔시킨 후, 팬덤이 중심이 되는 시장, 콘텐츠의 가치가 떨어지는 소비 행태가 자신과 맞지 않다고 여겼다. 그가 찾은 대안은 바로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의 세계였다. 공연이 중심이 되고 음악이 제 가치를 찾는 곳. EDM 개척은 김창환에게 새롭고도 익숙한 일이었다.
김창환 : 기존 가수의 노래를 리믹스하는 건 그 음악을 EDM 화(化)시키는 거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걸 EDM이라고 할 수는 없지. EDM이란 무엇이냐. 쉽게 말하자면 DJ 음악이다. 대중가요와는 다르다. 대중 가수는 팬과 대중에게 평가를 받지. 그러나 EDM은 대중을 상대하되 대중을 상대하지 않는 음악이다. 아무리 유명한 가수가 낸 곡이라도 DJ들이 안 틀어주면 알려질 방법이 없다는 거다. 씨엔블루나 f(x)의 경우에는 EDM을 ‘차용’하는 거지. 그들의 음악은 팬과 대중이 평가하잖아. 그 음악이 진짜 EDM이 되려면 프로 DJ의 평가를 거쳐야 한다. 전문가라는 한 매체를 통과해야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거다. 그리고 DJ들은 뮤지션 혹은 가수가 하는 음악을 인정하지 않는다. EDM은 클럽에서 플레이가 돼야 비로소 빛이 나기 시작하는 건데, 지금 아무도 그들의 음악을 틀지 않는다. DJ를 거치지 않은 음악이기에 EDM으로서 가치가 없는 거지. 이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만약 DJ가 만든 음악에 피처링으로 리한나를 썼다고 한다면, 이 음악은 (EDM으로서)다른 가치를 얻는다. EDM은 EDM 아티스트가 해야 한다는 게 공론이다.
Q. DJ들에게 먼저 인정받아야 한다니,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김창환 : 그렇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EDM을 좋아하는 지금의 젊은 친구들 가운데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 그냥 클럽문화를 즐기는 친구들이 있고 둘째, EDM 마니아들이 있다. 후자는 DJ들과 생각이 똑같다. 7~90년대 록 음악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당시에도 ‘기타만 들었다고 다 록커냐?’라는 풍토가 있었잖아. EDM 역시 ‘EDM은 우리 거다’라는 게 심한 장르다. 더욱이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젊은이들이 금방 의견을 교류하고 소통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Q.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고품질의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바람직한 현상? 깨트리고 싶은 장벽?
김창환 : 그 벽에 부딪혀보고, 벽을 깨트리고 싶은 마음은 있다. 방법론적인 문제, 말하자면 어떻게 찾아들어가야 하는 문제가 가장 고민이 된다. 젊고 신선하고 유능한 DJ를 발굴해서 그 DJ를 뮤지션으로 키워야하는 거다. 예전보다 2배는 어렵다. 예전에는 가수를 발굴해서 트레이닝 시켜서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었다면, EDM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형태의 스타를 찾아서 EDM 분야를 공부시키고 발전시켜서 뮤지션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Q. 그런데 대중이 아는 EDM의 패턴은 비교적 단순하다. 박명수가 TV에서 “까까까까”를 외친 것도 있고, 곡의 전개 역시 어느 정도 빤해 보인다. 분위기가 고조됐다가 드랍이 터지고 브레이크가 걸리는.
김창환 :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형태를 가진 음악을 다 EDM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박명수 정도의 매체 파워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자신의 음악을 어떻게 알릴 수 있겠냐. EDM 만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페스티벌이나 클럽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EDM라는 장르가 21세기 젊은이들에게 특화된 음악 같다. 다른 세계를 가진, 자기만의 취향이 확실한 젊은이들.
Q. 클럽이나 페스티벌에서만 들을 수 있다면, 청자가 너무 한정적인 것 아닌가?
김창환 : 클럽은 가장 핫한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젊음이 넘치는 친구들이 모여서 자신이 소비하는 문화를 공유하는 곳이지. 젊은이들이 SNS라는 거대한 정보의 세계에 퍼트려주면, 히트까지 가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청자가 한정적이지 않다는 거다. SNS라는 매체를 통해서 클럽에 있는 개개인이 모두 1인 미디어가 되니까. EXID같은 경우에도 1인 미디어를 통해 히트를 친 사례 아닌가. 각각의 1인 미디어가 모이면 폭발적인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에 어떻게 들어가느냐다. 젊은이들에게 인정을 받는 게 두렵고 힘든 일이지, ‘젊은이들만을 상대해서 이 음악이 히트할까, 세상에 알려질까?’ 하는 문제는 요즘 세상에서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Q. 그런데 클럽에 모이는 ‘핫’한 젊은이들은 재밌는 소비 성향을 보인다. ‘힙’을 추구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거부한다. ‘히트’라는 개념과는 충돌하는 욕구다.
김창환 : 여러 욕구를 다 충족시켜야 한다. 만약 방송이나 음원사이트에 노출되면 누구나 아는 노래가 돼버리잖아. 반면 언더그라운드 성향을 가진 클럽에서 어떤 음악을 먼저 접하고 전파한다는 건 젊은이들에게 굉장한 자부심을 준다. 리미티드에 대한 애착이 심한 시대잖아. 그런 욕구 역시 함께 충족시킬 수 있어야겠지.
Q. 당신은 작곡가로 알려지기 전에 DJ로도 활동했다. 당시의 경험이 지금도 도움이 되나?
김창환 : 그렇다. 형태와 모양이 바뀌었을 뿐이지 원리는 같은 거니까. DJ라는 직업은 좋은 음악을 선곡해서 대중에게 알려준다는 게 근본적인 목적이다. DJ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흔히 생각하는 다방에서 노래를 틀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나중에 클럽에서 클럽 음악을 소개하는 DJ가 전 세계적으로 생겨났다. 나는 클럽 DJ문화의 1세대이기 때문에 그 흐름을 알고 있다. 작곡만 하는 친구들보다 클럽 문화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DJ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 역시 거의 100% 가지고 있었다. 만약 나에게 SM처럼 엑소를 만들라고 한다면, 그건 자신 없다. 물론 그룹을 만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SM처럼 아이돌 문화의 생리를 꿰뚫을 수는 없다. 반면 EDM에는 노하우가 있으니까.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는 분야를 찾은 거다.
Q. 전자 음악을 하는 한 밴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젠 자신이 구상한 바를 구현해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하더라. 다만 그 ‘구상’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더 중요해졌겠지.
김창환 : 소스가 100% 디지털이냐, 아니냐는 이미 젊은이들에게 큰 고민거리가 안 되는 것 같다.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어떤 아이템에 어떤 음악을 만들어서 전문가들을 감동시키고 대중에게 다가가느냐가 EDM이 가진 고민 중 하나일 것이다.
Q.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 EDM은 여러 소스들을 사용해서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음악이고. 제작 방식이 가요와는 완전히 다를 것 같다.
김창환 : EDM은 쉽게 말해 소리에 열광하는 음악이다. 과거의 가요가 ‘멜로디가 얼마나 좋아?’ ‘가사가 우리를 얼마나 감동시켜?’를 가지고 평가됐다면, 이제는 ‘어떤 신기한 소리를 만들어서 우리한테 들려줘?’가 기준이 되는 거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소리를 찾으면, 그 소리를 얼마나 오래 듣건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멜로디가 가사가 좋은 노래를 만나면 ‘예스럽다’고 하지. 무게 중심을 싣는 포인트가 달라졌다. EDM은 특히나 클럽에서 틀어지고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어야 하는 음악이잖아. 그래서 신나는 포인트에 어떤 멋진 소리를 얹어주느냐, 그 드랍이 우리를 얼마큼 감동시키느냐에 젊은이들이 포인트를 맞추는 것 같다.
Q. 신나야 하면서도 대충 만들 수 없는 게 EDM 아닌가. 굉장히 다양한 소스들이 굉장히 치밀하게 짜여야 할 것 같다.
김창환 : 그러니까 EDM을 정확히 알아야한다. 가요는 박자가 신나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면, 이제는 대중이 어떤 형태의 EDM 음악을 원하는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너무 많은 소스를 써도 안 되고, 적은 소스를 써도 안 된다. 대중이 원하는 소스를 가장 중심에 가져다 놓으면서 만들어야지. 가사와 멜로디가 좋아야 하는 현상을 소리로 대치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Q. 거의 모든 음악이 그렇듯, EDM 역시 외국에서 시작된 트렌드다. 일단은 그들의 방향을 쫓는 게 목표인가? 아니면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할 포부도 가지고 있나?
김창환 : 문화의 거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한국이 이끌어갈 수 있는 장르는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시장을 봐라. 애플이 아이폰을 만드니까, 삼성이 발 빠르게 대처해 갤럭시 휴대폰을 상용화 시키지 않았나. 나도 ‘삼성 폰을 만들자’는 생각이 있다. EDM이 유럽의 것이긴 하지만 동양화된 EDM은 한국이 가장 앞서나갈 것이고, 적어도 아시아 사람들만큼은 유럽의 EDM보다는 한국의 EDM에 열광하게 만들자. 그게 내 목표다. 지금은 그걸 어떻게 현실화할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 건 스타를 만드는 것일 테다. 그 과정은 아까도 말했듯 쉽지 않을 것이다. EDM 스타는 장르에 대한 이해 없이 아이돌 만들 듯 제작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음악적인 요소가 강한 친구를 발굴한 뒤에 아이돌 못지않게 트레이닝 시켜서 스타로 만드는 거다. 더욱이 그 스타성은 TV에 노출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운타운의 힘으로 방송이나 매스컴이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90년대보다 어려운 길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셈이다.
Q. 아까 ‘한국화된 EDM’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형태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김창환 :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중국 사람들이 한국의 제품을 선호하잖아. 그런데 그 물건들이 다 한국에서 기원된 거냐? 아니다.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여서 한국화 시킨 거다. 한국에서 출발한 건,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한국의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에서 EDM이 히트해서 중국에 진출하게 된다면, 그 음악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된다. ‘유럽의 음악을 따라했으니까 이 음악은 한국의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걸.
Q. 스타DJ를 키우는 것 역시 난제다. 스타란 모두가 좋아해야 하는 인물인데, 아까도 말했듯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오히려 거부한다.
김창환 : 그게 무척 어렵다. 아직 풀어내지 못한, 풀어내야 하는 고민이고. 이를 테면 90년대 김건모는 ‘특이함’의 아이콘이었다. 아무도 그를 제작하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엔 알엔비라는 장르가 국내에 없었거든. 그런데 김건모가 그걸 들고 나온 거야. 다들 안 된다고 했다. 흑인 음악은 우리나라에서 안 먹힌다고. 그런데 내 생각은 달랐다. ‘젊은이들은 새로운 걸 원한다. 기존 세력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편입하기 싫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다른 세상을 만들어서 그 곳으로 사람들을 불러와야 하지. 그렇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냈을 때, 대중에게 줄 수 있는 폭발력이 있다. 기존 세력이 만들어놓은 뭔가를 똑같이 만들어도, 이를 테면 내가 또 다른 엑소를 제작한다고 해도 그 그룹은 진짜 엑소가 될 수 없잖아. 하지만 김건모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엄청난 폭발력을 가졌듯, K-EDM도 비슷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있다.
Q. K-EDM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기존 DJ들의 반발도 있을 것 같다.
김창환 : K-EDM이라는 말을 붙인 건 한국에서도 EDM을 한다고 선포하는 개념이었다. 그냥 EDM이라고 하면, 유럽권을 떠올리기 마련이잖아. K팝을 생각해봐라. 그냥 ‘팝’이라고만 하면 미국이나 영국을 떠올리지만, ‘K’를 붙여주면 가요를 떠올린다. K-EDM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 EDM을 시작할 거야. 그러니 한 번 봐 줘’라고 포고하는 거다. 내가 K-EDM이라는 말을 쓰면서 DJ들에게도 욕을 많이 먹었다. K-EDM이 뭐냐고. 차차 자리를 잡으면 그런 얘기도 줄어들겠지.
Q. K-EDM이 전문용어나 장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란 건가?
김창환 : 90년대에 김건모를 소개하면서 ‘흑인 음악’이라는 말을 했다. 당시에는 알엔비란 단어를 대중이 몰랐으니까, 전문 용어를 던지는 것보다는 직관적인 단어를 쓴 거다. 그런데 나중에는 김건모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고, 그러면서 알엔비라는 장르도 자연스레 흡수됐다. K-EDM도 비슷하다.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던져놓고 우리의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거다. 형태는 뭐든 가능하다. 한국형 DJ가 될 수도 있고 한국형 페스티벌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그게 한국의 브랜드가 돼서 해외에 나가게 되면 그 때 K-EDM이라는 개념이 더 명확해질 것이다.
Q. 어쩌면 음악시장의 새로운 플랫폼의 탄생으로 볼 수도 있겠다.
김창환 : 그렇지. 오프라인 플랫폼을 새로 만든다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Q. 대중음악과는 완전히 영역이 다른, 말 그대로 새로운 길을 파내고 있는 것 같다.
김창환 :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음악이라는 콘텐츠의 가치가 없어졌다. 대신 팬덤만이 살아남았지. 음악을 사는 게 아니라 ‘오빠들’을 사는 팬덤.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은 아이돌 뿐이었고, 아이돌이란 패를 쥔 사람들에게 행운이 간 거다. 그런데 EDM의 가치는 좀 다르다. 아이돌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 내가 무엇을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EDM이 보였다. 여긴 음원을 얼마나 파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단, 음악을 어떻게 공연으로 만드느냐의 문제다. 팬덤이 필요 없는 음악이고, 콘텐츠의 가치가 중요한 시장이다. 결국 난 90년대에 가던 길을 계속 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마이다스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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