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수정 기자]
‘여성 카리스마’. 이은지 EZIN 안무단장은 온몸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사람이다. 큰 키와 또렷한 이목구비, 구릿빛 피부와 파워풀한 춤선이 무대를 장악하는 힘을 지녔다. 1999년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른 뒤, 16년 동안 김종국, 휘성부터 에일리, 제시 그리고 앤씨아 등 다양한 가수의 춤을 췄다. 본격적으로 안무단을 이끈 건 이제 5년째, 여성 안무가로서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쌓고 있는 이은지 단장은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프로였다.
Q. 먼저 어떻게 댄서를 시작하게 됐나?
이은지 단장 : 내가 중학교 다닐 때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최고였다. 공원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면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나도 하고 싶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댄서들을 따라다니다 방송을 보는데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 방송팀에 오디션을 봤다. 그 당시에는 가수보다 댄서가 더 인기가 많았다. 요즘은 아이돌을 되려는 사람들로 줄을 서지만, 그때는 댄서에 줄을 섰다. 오디션을 하루종일 봤다. 붙은 거다. 너무 좋았다.
Q. 1990년대는 댄서가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가 있었던 시절이라고.
이은지 단장 : 댄서들이 인기가 많았다. ING란 팀에 있다가 DHC라는 팀으로 옮겼다. 터보가 만든 팀인데 김종국, 강타, NRG, 클릭비의 안무를 맡았다. 남자팀이었다. 그때 여자가 나 혼자였. 그 팀에 4년을 있었는데 남자팀이다보니 오빠들 백업밖에 못한다. 남자 의상을 입고, 빈칸만 채웠다가 YG에 휘성이라는 가수가 나오는데 그걸 도와주러 갔다. 그때 양현석 사장님이 내가 키가 크고 보이쉬하고, 휘성이 키가 작은 편이니까 언발란스로 파트너를 시키라고 하더라. 그 노래가 ‘위드미(With Me)’였다. 당시 이슈였다. 그때부터 휘성 오빠와 인연이 돼 에일리, 제시, 배치기까지 이어졌다.
Q. 현재는 ‘EZIN’이란 안무단을 이끌고 있다.
이은지 단장 : 팀은 본격적으로 운영한지 5년이 됐다. 원래는 안무단을 꾸리기보다 마음 맞는 사람들 넷이서 프리랜서로 일을 했다. 넷이서 붙어서 다녔다. 그림이 좋으니까 안무의뢰가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안무도 짜고 연습해야 하니까 연습실을 빌리기 시작했고, 팀이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댄서 친구들도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지금이 됐다.
Q. 가장 처음 짰던 안무가 무엇이었나?
이은지 단장 : 처음 내가 안무를 짠 것이 마이티마우스 ‘연애특강’이다. 처음이니까 잘해야 했다. 노래 콘셉트가 발랄하고 재미있었다. 그 콘셉트에 맞게 짜야 하는데 나는 그냥 ‘나 춤 잘춰’라는 식으로 짰던 것이다. 지금 봐도 창피하다. 그때 사장님이 우리가 잘하고, 무대에 섰을 때 그림이 좋으니까 우리 안무를 쓰긴 썼는데… 이제 융통성이 생겼다. 내가 직접 플레이할 때 춤과 안무를 짤 때와는 다르다. 그 가수에 맞게 짜야 한다. 에일리의 경우, 노래를 잘해야 하니까 가수가 추는 것보다 그것을 받쳐주는 게 중요하다. 어떤 가수가 노래보다 포인트 안무가 더 중요하면, 대중적인 걸로 다가가야 한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다.
Q. 안무를 짤 때 콘셉트는 어떻게 정하나?
이은지 단장 : 대략의 콘셉트는 내가 정하는 편이다. 회사에 먼저 보여주고 마음에 들면 안무를 짜는데 수정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처음부터 콘셉트를 말하면서 의뢰해 오는 적도 있다. 그 콘셉트에 맞게 안무를 짠다.
Q. 콘셉트에 따라 안무가 많이 바뀌겠다.
이은지 단장 : 콘셉트가 가장 중요하다. 콘셉트가 없으면 안무가 안 나온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장르를 웬만해서는 안 섞는다. 그러면 대중적이지 않고 산만해 보인다. 회사나 가수들은 사람들이 딱 봤을 때 따라하는 것을 원한다. 장르를 섞는 것은 역효과다. 하지만 댄서들은 해보고 싶다. 그런데 그건 대중적으로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 그 중점을 찾아야 한다. 배치기는 대중적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 노래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 만약 EXID 안무였으면 달랐겠지..
Q. 콘셉트를 위한 안무를 짜다 보면 자기 표현에 대한 갈증이 있지 않을까.
이은지 단장 : 있다. 우리끼리 군무를 만들어서 뮤직비디오도 찍고 유튜브 영상으로 올린 적도 있다. 우리가 대중적인 춤만 추는 것이 아니다. 외국에 가서 워크숍을 하고 갈증을 푸려고 한다. 케이팝이 인기를 끌면서 퍼포먼스를 제작하는 안무가에 대한 시선도 많이 좋아졌다.
Q. 안무가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좋아졌나?
이은지 단장 : 옛날에는 그냥 그림이었다. 요즘은 외국에 나가서 에일리 ‘보여줄게’ 그 안무를 내가 짰다고 말하면 대단하다고 같이 일하자는 경우도 많더라. 같이 사진찍자는 사람도 많다. 레슨이나 워크숍에 초청하는 경우도 있다.
Q. 하긴 예전에는 백댄서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댄서라고 부른다.
이은지 단장 : 우리는 케이팝의 보이는 모습을 만들어 가는 입장이다. 회사에서도 대우가 달라졌다. 댄서들의 퍼포먼스의 콘셉트와 그것을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보는 음악을 댄서가 차지하고 있으니까.
Q. 창작의 고통도 있지 않은가?
이은지 단장 : 저도 모르게 같은 안무가 나올 때가 있다. 짜고 지나간 것을 빨리 잊어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해야 한다고 하면 멘붕이 온다. 하하. 빨리 까먹는 게 다음 안무 짜는 것에 도움이 된다. 새로운 것을 접할 때는 외국 안무가들이나 외국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많이 본다. 그 사람들 제스처나 표정, 콘셉트를 본다. 사실 콘셉트가 정해지면 안무 푸는 것은 쉽다. 콘셉트 잡는 것이 일이다. 섹시라고 하면 광범위하다. 섹시 중에서도 어떤 섹시가 잡히느냐에 따라 일이 수월해진다. 뮤직비디오도 많이 본다. 중국, 일본, 영국, 록밴드도 많이 본다.뮤직비디오를 보면, 거기 안에서도 나름의 콘셉트가 있다. 거기서 찾는 것이다. 콘셉트만 찾으면 안무 만드는 것은 금방이다.
Q. 에일리의 경우, 매앨범 성공했던 가수라 다음 안무 제작이 부담되기도 하겠다.
이은지 단장 : 맞다. ‘헤븐’ ‘보여줄게’ ‘유앤아이’ ‘쟈니’까지 타이틀곡만 다섯 곡을 짰다. ‘불후의 명곡’도 하고 에일리에게 들어가는 안무가 어마어마하다. 너무 많이 했다. 그래서 다음엔 다른 안무가를 합작하자고 하려 했다. 하반기에 정규 앨범이 나오는데 어떤 가수를 나 혼자 해먹어야겠다는 욕심보다 그 가수의 퀄리티와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 Q. 댄서에 대한 시선이 좋아졌다지만, 아직도 아쉬운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이은지 단장 : 음악방송! 내가 16년째 활동 중인데 아직도 돗자리를 깔고 있다. 그나마 MBC ‘쇼!음악중심’은 잘 돼있다. ‘엠카운트다운’, ‘인기가요’, ‘뮤직뱅크’는 너무 심각하다. 솔직히 안무가 입장에서는 드라이 리허설에 우리가 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솔직히 연습실에서 방송국에서 하는 그대로 만들어서 보낸다. 드라이리허설은 음향 체크만 하는 것이고, 우리는 카메라 리허설에만 가면 되는데 드라이 리허설에까지 의상까지 다 입으라하고, 우리가 영상을 안 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전에 보낸다. 솔직히 인력 낭비인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해서 방송을 출연을 해도 댄서들은 소속사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엑스트라도 출연료가 나오는데… 방송국 측에서 가수들 출연료 주는 것처럼 우리도 어느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대기할 공간도 마땅치 않아 드라이리허설을 갔다가 사우나나 집에 갔다가 다시 오는 사람들도 많다.
Q. 이것만큼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음악방송 환경이 있나?
이은지 단장 : 정말 댄서 대기실이라도 제대로 된 공간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Q. 희망적인 건, 계속 댄서에 대한 대우가 나아지고 있다. ‘댄싱9’을 댄서들의 세계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댄싱9’은 어떻게 봤나?
이은지 단장 : ‘댄싱9’은 숨어 있는 댄서들을 불러오게끔 했는데 그게 심사나 서바이벌이 아니라 다양한 댄서를 보여주는 장이었으면 좋겠다. 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하다못해 유치원생들이 흥에 맞춰 추는 것도 평가하지 못하는 게 춤이고, 취향적인 차이가 있다. 서바이벌 형식보다는 이 사람이 기술적으로 모자라지만, 끌리는 매력이 있다든지 사람마다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 장이 됐으면 좋겠다.
Q. 대우나 환경이 나아지고 있으니 앞으로가 더 기대되겠다.
이은지 단장 : 댄서들 대우도 좋아지고, 이미지도 좋아졌다. 댄서들이 춤밖에 모르고, 몇 년 동안 춤만 추는 친구들이 많아서 의외로 순수하다. 진짜 연습만 하다 집에 가니까 오히려 클럽도 잘 안 간다. 띵가띵가 노는 직업이 아닌 뭔가 하나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케이팝이 잘되면서 우리의 역할도 중요시 되고, 커지니까 외국에서도 인정해준다.
Q. 댄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이은지 단장 : 케이팝이 계속 잘나갈 수는 없다. 케이팝 시장 하나만 보기에는 막막할 수 있지만, 한 우물을 파면 뭐라도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16년 해온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앞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 나아갈 방향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 직업은 디렉팅, 콘셉트, 무대 연출까지 많은 경험을 해주는 직업이다. 헝그리 정신도 강해지고, 만약 이것을 하다가 다른 일을 해도 다 거름이 된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 평범한 사람들도 아니고, 괜찮은 직업이다. 아이돌보다는 길게 볼 수 있는 직업이다.
Q.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16년이란 세월을 버틴 힘은 무엇인가?
이은지 단장 : 사실 제일 힘든 게 돈이다. 우리 시대 때는 대우를 안 해줬고, 지금도 힘들지만 옛날보다는 나아졌다. 좋은 환경이 되려고 노력을 한다.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버텨서 네임밸류와 프로필을 쌓았다. 버티면 언젠가는, 어떻게든 써먹힌다. 돈이 안 되더라도 가수들이 방송 출연을 주구장창 하는 것처럼 네임밸류를 쌓아둘수록 좋아진다. 옛날보다 시스템도 좋아졌다. 아직 부족한 건 많지만,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좋아질 것이다. 정말 괜찮은 직업이다. 그리고 즐겁다.
Q. 가장 보람찰 때는 언제인가?
이은지 단장 : 가수들이 나를 찾아줄 때, 능력을 인정해주고, 내가 이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걸 알게 해줄 때.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존재는 아니지만, 자부심이 있고, 고맙고 보람도 된다. 나한테 조금이라도 배웠던 제자들이 찾아오거나 가수가 1위했을 때 내 이름 불러주고, 팀 이름을 이야기해주고.. 그거 하나 때문에 한다. 그 동안 고생하는 게 싹 풀린다.
Q.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이은지 단장 :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생겼다. 이제는 팀을 크게 만들고 싶다. 단순히 가수의 오더를 받아서 트레이닝을 하고, 안무를 짜는 것 말고, 조금 더 많은 친구들을 모여서 가르친 다음에 댄서들끼리의 공연이나 우리들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하나의 회사처럼 커지고 싶다. 오래 걸리겠지만, 같은 댄서여도 방송에 맞는 댄서가 있고, 공연 쪽으로 프로페셔널한 걸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또, 안무가로서 능력이 많은 친구가 있다. 이런 친구들을 잘 만들어서 능력에 맞는 곳으로 배출하고 싶다. 기획사는 가수를 만들지만, 나는 좋은 댄서와 안무가를 ‘여자들로’ 배출하고 싶다. 우리나라 여자 안무가가 방송 댄스로는 많이 없다. 난 여성 댄서로서, 안무가로서 16년 동안 노하우가 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은지 단장 : 우리는 작곡가들처럼 저작권이란 게 없다. 창작하는 건 똑같다. 우리가 창작을 해서 그 안무를 하게 되기까지 많은 자료를 찾고, 고민을 한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밤을 새고, 고생한다. 뚝딱뚝딱 만든다고 생각하지 말고, 노고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 말 한 마디라도 수고한다는 말, 고생이 많다는 말, 알아준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더 보람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 노래를 그리는 사람들② 이은지 안무가, “어설픈 아이돌 말고 프로 댄서가 되라” (인터뷰②)
박수정 기자 soverus@
사진. EZIN 안무단
퍼포먼스 없는 아이돌 음악은 앙꼬 없는 찐빵 아닐까. 아이돌 음악은 노래, 비주얼 그리고 퍼포먼스가 3박자를 맞춰 펼치는 콘셉트 음악이다. 그중 퍼포먼스는 보는 음악의 정점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자 케이팝 한류 열풍의 핵심. 잘 만든 포인트 안무 하나가 노래의 인기를 견인하기도 한다. 아이돌이 컴백할 때마다 유튜브에서 쏟아지듯 만들어지는 해외팬들의 댄스 커버 영상도 퍼포먼스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에 퍼포먼스를 만드는 안무가의 역할도 함께 커졌다. 3분여의 무대를 위해서, 아이돌 그룹의 뒤에서, 땀을 흘리는 안무가들을 만난다.
Q. 먼저 어떻게 댄서를 시작하게 됐나?
이은지 단장 : 내가 중학교 다닐 때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최고였다. 공원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면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나도 하고 싶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댄서들을 따라다니다 방송을 보는데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 방송팀에 오디션을 봤다. 그 당시에는 가수보다 댄서가 더 인기가 많았다. 요즘은 아이돌을 되려는 사람들로 줄을 서지만, 그때는 댄서에 줄을 섰다. 오디션을 하루종일 봤다. 붙은 거다. 너무 좋았다.
Q. 1990년대는 댄서가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가 있었던 시절이라고.
이은지 단장 : 댄서들이 인기가 많았다. ING란 팀에 있다가 DHC라는 팀으로 옮겼다. 터보가 만든 팀인데 김종국, 강타, NRG, 클릭비의 안무를 맡았다. 남자팀이었다. 그때 여자가 나 혼자였. 그 팀에 4년을 있었는데 남자팀이다보니 오빠들 백업밖에 못한다. 남자 의상을 입고, 빈칸만 채웠다가 YG에 휘성이라는 가수가 나오는데 그걸 도와주러 갔다. 그때 양현석 사장님이 내가 키가 크고 보이쉬하고, 휘성이 키가 작은 편이니까 언발란스로 파트너를 시키라고 하더라. 그 노래가 ‘위드미(With Me)’였다. 당시 이슈였다. 그때부터 휘성 오빠와 인연이 돼 에일리, 제시, 배치기까지 이어졌다.
Q. 현재는 ‘EZIN’이란 안무단을 이끌고 있다.
이은지 단장 : 팀은 본격적으로 운영한지 5년이 됐다. 원래는 안무단을 꾸리기보다 마음 맞는 사람들 넷이서 프리랜서로 일을 했다. 넷이서 붙어서 다녔다. 그림이 좋으니까 안무의뢰가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안무도 짜고 연습해야 하니까 연습실을 빌리기 시작했고, 팀이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댄서 친구들도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지금이 됐다.
Q. 가장 처음 짰던 안무가 무엇이었나?
이은지 단장 : 처음 내가 안무를 짠 것이 마이티마우스 ‘연애특강’이다. 처음이니까 잘해야 했다. 노래 콘셉트가 발랄하고 재미있었다. 그 콘셉트에 맞게 짜야 하는데 나는 그냥 ‘나 춤 잘춰’라는 식으로 짰던 것이다. 지금 봐도 창피하다. 그때 사장님이 우리가 잘하고, 무대에 섰을 때 그림이 좋으니까 우리 안무를 쓰긴 썼는데… 이제 융통성이 생겼다. 내가 직접 플레이할 때 춤과 안무를 짤 때와는 다르다. 그 가수에 맞게 짜야 한다. 에일리의 경우, 노래를 잘해야 하니까 가수가 추는 것보다 그것을 받쳐주는 게 중요하다. 어떤 가수가 노래보다 포인트 안무가 더 중요하면, 대중적인 걸로 다가가야 한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다.
Q. 안무를 짤 때 콘셉트는 어떻게 정하나?
이은지 단장 : 대략의 콘셉트는 내가 정하는 편이다. 회사에 먼저 보여주고 마음에 들면 안무를 짜는데 수정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처음부터 콘셉트를 말하면서 의뢰해 오는 적도 있다. 그 콘셉트에 맞게 안무를 짠다.
Q. 콘셉트에 따라 안무가 많이 바뀌겠다.
이은지 단장 : 콘셉트가 가장 중요하다. 콘셉트가 없으면 안무가 안 나온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장르를 웬만해서는 안 섞는다. 그러면 대중적이지 않고 산만해 보인다. 회사나 가수들은 사람들이 딱 봤을 때 따라하는 것을 원한다. 장르를 섞는 것은 역효과다. 하지만 댄서들은 해보고 싶다. 그런데 그건 대중적으로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 그 중점을 찾아야 한다. 배치기는 대중적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 노래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 만약 EXID 안무였으면 달랐겠지..
Q. 콘셉트를 위한 안무를 짜다 보면 자기 표현에 대한 갈증이 있지 않을까.
이은지 단장 : 있다. 우리끼리 군무를 만들어서 뮤직비디오도 찍고 유튜브 영상으로 올린 적도 있다. 우리가 대중적인 춤만 추는 것이 아니다. 외국에 가서 워크숍을 하고 갈증을 푸려고 한다. 케이팝이 인기를 끌면서 퍼포먼스를 제작하는 안무가에 대한 시선도 많이 좋아졌다.
Q. 안무가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좋아졌나?
이은지 단장 : 옛날에는 그냥 그림이었다. 요즘은 외국에 나가서 에일리 ‘보여줄게’ 그 안무를 내가 짰다고 말하면 대단하다고 같이 일하자는 경우도 많더라. 같이 사진찍자는 사람도 많다. 레슨이나 워크숍에 초청하는 경우도 있다.
Q. 하긴 예전에는 백댄서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댄서라고 부른다.
이은지 단장 : 우리는 케이팝의 보이는 모습을 만들어 가는 입장이다. 회사에서도 대우가 달라졌다. 댄서들의 퍼포먼스의 콘셉트와 그것을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보는 음악을 댄서가 차지하고 있으니까.
Q. 창작의 고통도 있지 않은가?
이은지 단장 : 저도 모르게 같은 안무가 나올 때가 있다. 짜고 지나간 것을 빨리 잊어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해야 한다고 하면 멘붕이 온다. 하하. 빨리 까먹는 게 다음 안무 짜는 것에 도움이 된다. 새로운 것을 접할 때는 외국 안무가들이나 외국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많이 본다. 그 사람들 제스처나 표정, 콘셉트를 본다. 사실 콘셉트가 정해지면 안무 푸는 것은 쉽다. 콘셉트 잡는 것이 일이다. 섹시라고 하면 광범위하다. 섹시 중에서도 어떤 섹시가 잡히느냐에 따라 일이 수월해진다. 뮤직비디오도 많이 본다. 중국, 일본, 영국, 록밴드도 많이 본다.뮤직비디오를 보면, 거기 안에서도 나름의 콘셉트가 있다. 거기서 찾는 것이다. 콘셉트만 찾으면 안무 만드는 것은 금방이다.
Q. 에일리의 경우, 매앨범 성공했던 가수라 다음 안무 제작이 부담되기도 하겠다.
이은지 단장 : 맞다. ‘헤븐’ ‘보여줄게’ ‘유앤아이’ ‘쟈니’까지 타이틀곡만 다섯 곡을 짰다. ‘불후의 명곡’도 하고 에일리에게 들어가는 안무가 어마어마하다. 너무 많이 했다. 그래서 다음엔 다른 안무가를 합작하자고 하려 했다. 하반기에 정규 앨범이 나오는데 어떤 가수를 나 혼자 해먹어야겠다는 욕심보다 그 가수의 퀄리티와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 Q. 댄서에 대한 시선이 좋아졌다지만, 아직도 아쉬운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이은지 단장 : 음악방송! 내가 16년째 활동 중인데 아직도 돗자리를 깔고 있다. 그나마 MBC ‘쇼!음악중심’은 잘 돼있다. ‘엠카운트다운’, ‘인기가요’, ‘뮤직뱅크’는 너무 심각하다. 솔직히 안무가 입장에서는 드라이 리허설에 우리가 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솔직히 연습실에서 방송국에서 하는 그대로 만들어서 보낸다. 드라이리허설은 음향 체크만 하는 것이고, 우리는 카메라 리허설에만 가면 되는데 드라이 리허설에까지 의상까지 다 입으라하고, 우리가 영상을 안 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전에 보낸다. 솔직히 인력 낭비인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해서 방송을 출연을 해도 댄서들은 소속사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엑스트라도 출연료가 나오는데… 방송국 측에서 가수들 출연료 주는 것처럼 우리도 어느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대기할 공간도 마땅치 않아 드라이리허설을 갔다가 사우나나 집에 갔다가 다시 오는 사람들도 많다.
Q. 이것만큼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음악방송 환경이 있나?
이은지 단장 : 정말 댄서 대기실이라도 제대로 된 공간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Q. 희망적인 건, 계속 댄서에 대한 대우가 나아지고 있다. ‘댄싱9’을 댄서들의 세계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댄싱9’은 어떻게 봤나?
이은지 단장 : ‘댄싱9’은 숨어 있는 댄서들을 불러오게끔 했는데 그게 심사나 서바이벌이 아니라 다양한 댄서를 보여주는 장이었으면 좋겠다. 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하다못해 유치원생들이 흥에 맞춰 추는 것도 평가하지 못하는 게 춤이고, 취향적인 차이가 있다. 서바이벌 형식보다는 이 사람이 기술적으로 모자라지만, 끌리는 매력이 있다든지 사람마다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 장이 됐으면 좋겠다.
Q. 대우나 환경이 나아지고 있으니 앞으로가 더 기대되겠다.
이은지 단장 : 댄서들 대우도 좋아지고, 이미지도 좋아졌다. 댄서들이 춤밖에 모르고, 몇 년 동안 춤만 추는 친구들이 많아서 의외로 순수하다. 진짜 연습만 하다 집에 가니까 오히려 클럽도 잘 안 간다. 띵가띵가 노는 직업이 아닌 뭔가 하나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케이팝이 잘되면서 우리의 역할도 중요시 되고, 커지니까 외국에서도 인정해준다.
Q. 댄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이은지 단장 : 케이팝이 계속 잘나갈 수는 없다. 케이팝 시장 하나만 보기에는 막막할 수 있지만, 한 우물을 파면 뭐라도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16년 해온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앞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 나아갈 방향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 직업은 디렉팅, 콘셉트, 무대 연출까지 많은 경험을 해주는 직업이다. 헝그리 정신도 강해지고, 만약 이것을 하다가 다른 일을 해도 다 거름이 된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 평범한 사람들도 아니고, 괜찮은 직업이다. 아이돌보다는 길게 볼 수 있는 직업이다.
Q.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16년이란 세월을 버틴 힘은 무엇인가?
이은지 단장 : 사실 제일 힘든 게 돈이다. 우리 시대 때는 대우를 안 해줬고, 지금도 힘들지만 옛날보다는 나아졌다. 좋은 환경이 되려고 노력을 한다.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버텨서 네임밸류와 프로필을 쌓았다. 버티면 언젠가는, 어떻게든 써먹힌다. 돈이 안 되더라도 가수들이 방송 출연을 주구장창 하는 것처럼 네임밸류를 쌓아둘수록 좋아진다. 옛날보다 시스템도 좋아졌다. 아직 부족한 건 많지만,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좋아질 것이다. 정말 괜찮은 직업이다. 그리고 즐겁다.
Q. 가장 보람찰 때는 언제인가?
이은지 단장 : 가수들이 나를 찾아줄 때, 능력을 인정해주고, 내가 이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걸 알게 해줄 때.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존재는 아니지만, 자부심이 있고, 고맙고 보람도 된다. 나한테 조금이라도 배웠던 제자들이 찾아오거나 가수가 1위했을 때 내 이름 불러주고, 팀 이름을 이야기해주고.. 그거 하나 때문에 한다. 그 동안 고생하는 게 싹 풀린다.
Q.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이은지 단장 :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생겼다. 이제는 팀을 크게 만들고 싶다. 단순히 가수의 오더를 받아서 트레이닝을 하고, 안무를 짜는 것 말고, 조금 더 많은 친구들을 모여서 가르친 다음에 댄서들끼리의 공연이나 우리들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하나의 회사처럼 커지고 싶다. 오래 걸리겠지만, 같은 댄서여도 방송에 맞는 댄서가 있고, 공연 쪽으로 프로페셔널한 걸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또, 안무가로서 능력이 많은 친구가 있다. 이런 친구들을 잘 만들어서 능력에 맞는 곳으로 배출하고 싶다. 기획사는 가수를 만들지만, 나는 좋은 댄서와 안무가를 ‘여자들로’ 배출하고 싶다. 우리나라 여자 안무가가 방송 댄스로는 많이 없다. 난 여성 댄서로서, 안무가로서 16년 동안 노하우가 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은지 단장 : 우리는 작곡가들처럼 저작권이란 게 없다. 창작하는 건 똑같다. 우리가 창작을 해서 그 안무를 하게 되기까지 많은 자료를 찾고, 고민을 한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밤을 새고, 고생한다. 뚝딱뚝딱 만든다고 생각하지 말고, 노고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 말 한 마디라도 수고한다는 말, 고생이 많다는 말, 알아준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더 보람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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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기자 soverus@
사진. EZIN 안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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